나는 살면서 딱 한번 완전범죄를 저질렀다

by 임세규

해 질 녘 어스름한 저녁 하늘이 1982년 가을을 불러온다.

동네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놀림을 받는 그를 봤다. 작은 눈과 까만 피부, 왜소한 체구의 그를 아이들은 '부시맨'이라 놀려댔다. 그는 항상 외톨이였다.

6학년을 올라갔고 그가 내 짝이 됐다. 또래의 아이들은 그와 함께 어울리는 친구마저 싫어했다.

나는 어릴 때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고 덩치가 좋았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을 갈 수 있었던 시절. 매표소 직원과 실랑이를 하던 어머니는 억울했다.

"쟤가 어딜 봐서 1학년이여. 4학년은 돼 보이는구먼."

몸집이 크니 장점도 있었다. 그와 어울리며 놀아도 친구들은 내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와 같이 있던 그에게 왕따는 없었다.

"이거 먹어."

도시락 밥 위에 있던 계란 프라이를 그의 밥에 올려 주었다.

"엄마, 계란 2개 해주세요. 모자라요. "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엄마 몰래 살짝 더 담아갔다.

친구의 형이 만화가게를 열었다. 그를 데려가서 하루 종일 '킥킥 ' 대며 만화를 실컷 공짜로 봤다. 학교가 끝나면 해질 녘까지 자전거를 탔다. 바람에 하늘 거리는 코스모스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해 여름 우리는 동네 뒷산에 올라 매미를 잡으며 신나게 놀았다. 그와 나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한 여름의 열기를 나무 그늘 밑에서 식히고 있었다. 멀리서 친구의 이름이 가냘프게 들려왔다. 그의 누나가 그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강원도 태백에서 전학 온 그에게 진폐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스르르' 잠이 몰려왔다. 희미하게 아버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 거기 말이여. 그 집 김 씨가 죽었다네. 쯧쯧.. "

그가 살던 곳은 일명 '거지 아파트, 돼지 아파트라 불리는 도심 속 판자촌이었다. 쌀가게를 했던 어머니를 따라 배달을 몇 번 갔었다. 다닥다닥 길게 늘어서 있는 집들 가운데로 공용 수돗가가 있었다. 머리를 감는 아저씨도 보였다.

아버지를 잃은 그에게 두 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가족의 따뜻한 온기가 있는 집을 떠나야 했다. '재개발'로 인해 그의 집은 오도 가도 못했다. 철거반이 들어왔다. 무자비한 굴착기가 들어섰다.

"아이고 이놈들아 ~ 이놈들아~ "

목놓아 우는 친구의 어머니 곁에 '그렁그렁 ' 하얀 눈방울을 흘리는 그가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 무리 속에는 '글썽글썽 ' 동동 발을 구르는 내가 있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나는 살면서 딱 한번 완전범죄를 저질렀다. 경찰이 와서 잡아가도 별일 없을 거다. 공소 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3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우리 가게에 손님이 오면 가끔 내가 쌀을 팔기도 했다. 쌀 '한 되'는 나무로 만든 상자에 쌀을 담았을 때의 양을 말한다. 가득 담은 무게가 800g 정도다. 엄마 몰래 검은 비닐봉지에 쌀을 모았다. 한 되가 없어지면 머지않아 들통 날 것 같아 이틀마다 반 되를 담았다.


일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살금살금 가게로 내려가 몰래 숨겨 놓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달렸다. 쌀 봉지 무게가 제법 나갔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었다.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쫓아오는 것 같았다.

임시 천막이 놓인 그의 집으로 갔다. 누가 볼세라 얼른 쌀 봉지를 내려놓고 다시 달렸다. 아침에 일어나 쌀을 발견한 그의 어머니도 좀 의아해했을 거다. 그래도 족히 며칠은 먹을 양이었다. 쌀이 없어서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어린 마음의 순수함 때문이리라.

단짝이던 친구의 빈자리가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다. 며칠 째 비가 내렸고 그를 볼 수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 빗물이 고인 웅덩이가 생겼다.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길을 냈다. 빗물이 '쪼르르' 따라가며 또 다른 웅덩이를 만들었다.

비 개인 오후 맑은 날씨였다. 그와 놀던 뒷동산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작은 이삿짐 트럭이 보였다. 멀리서 그가 차에 오르는 모습을 봤다. 마음이 먹먹했다.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는 그를 그저 멀리서 보고만 있었다. 점점 멀어져 가는 학교를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동안 친구해 줘서 고맙다고.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마음 한편에 나와 함께한 시간을 간직하고 있을까. 파란 가을 하늘 구름 한 점이 바람에 실려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가 떠난 집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나는 그와 함께 먹은 그해 여름의 아이스크림을 기억한다. 나는 그와 놀던 1982년, 우리 동네 해 질 녘 노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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