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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Apr 09. 2023

걷는다는 것

' 적당한 햇살, 바람과 함께 걷기만 해도 흔들리던 일상의 안녕들은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




아파트 화단에 있는 목련은 자랑스럽게 뽐내던 하얀 꽃잎들을 떨구고 싱싱한 초록 잎으로 다시 출발하려 준비 중이네요. 온갖 생명이 기지개를 활짝 켜는 계절의 생동감이 좋습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면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건 맞지만 오히려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충전을 받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던 곳, 선영이가 알바를 하는 곳, 가영이가 다니는 영어 학원을 솔깃 보며 걷다 보면 15년 전 서울울 떠나 이곳 시흥시 은행동에 첫 집을 장만한 대우 1차 아파트 주변에 도착합니다.


큰 아이는 싱싱 카를 타고 둘째는 유모차를 타며 거닐 던 작은 길들이  4차선 도로가 되었습니다. 상가 음식점들은 예전에 이곳이 잡초가 무성한 저수지 낚시터 입구였음을 상상할 수 없게 끔 만들었군요.


말끔히 단장된 호수 공원 벤치에 앉아 봅니다. 마당이 넓은 오리 구이집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나무 타는 향과 모닥불이 은은히 잘 어울리던 곳이었습니다.


' 사람도 환경도  많이 달라졌구나  '


15년이라는 시간은 30대 중반이었던 제게 50이라는 나이를 주고 말았네요. 언제 크나 싶었던 큰 아이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지하철이 들어왔고 은계지구라는 대단지 아파트도 생겼습니다. 


세월,  참 느린 것 같다가도 덧없이 빠르게 가고 있네요. 때로는 크고 작았던 삶의 흔들림 들도 어디론가 흘러간 듯합니다. 일상의 편안함은 어쩌면 무뎌져가는 감각 덕분에 안녕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걷다가 보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재미있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끼고 뛰는 이, 가방을 메고 스터디 카페로 들어가는 학생, 마스크를 나눠주는 인근 교회 사람들, 풋풋한 연인들의 미소, 히히덕거리며 떠들썩한 남자아이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평범함이 그저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족욕기에 발을 담가봅니다. 따뜻함이 두 발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스르르 스며들어 옵니다.


걷는다는 것, 내일을 위한 한걸음의 준비라는 걸 오늘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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