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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Apr 15. 2023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도 죽지 않아요.

" 이렇게 살 수 있어요.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도 죽지 않아요. "


귓전을 맴도는 그녀의 말 한마디다. 수도와 전기, 가스도 없다. 먹을 건 최대한 자급자족으로 해결한다. 젊은 남편과 아내가 10개월 된 아기와 함께 30만 원으로 한 달 생계를 이어간다. 부부는 도시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한 인텔리들이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문명의 혜택을 거부한 채 외딴 시골에서 살아가는 걸까.. 마을에서 좀 더 들어간 동백숲이 그들의 터전이다.


수도는 없지만 물은 집 바로 옆 샘터에서 길러다 쓴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항아리에 붓고 하루 정도 기다렸다가 마신다. 항아리가 물을 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가스는 화덕을 쓴다. 아궁이는 보일러 역할을 한다. 형광등 대신 촛불을 사용한다.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물과 햇볕을 용한다. 부부에게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넉넉한 여유를 갖는다. 먹을 만큼만 벼농사를 지어 쌀을 수확하고 직접 기른 채소들로 자급자족을 한다. 제철 음식을 뚝딱 차려내는 아내는 정말 대단하다. 농사를 짓고 텃밭을 일군다는 건 쉽지 않다. 더군다나 도시 출신인 두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음은 자급자족을 위한 공부와 노력, 부지런함의 결과다.


미국의 철학자, 시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쓴 책 윌든이 있다. 이 책은 그가 1845년 ~ 1847년 동안 윌든이라는 호숫가에서 실제로 자급자족을 하며 살았던 생활을 기록한 거다. 자연과 교감하며 생각한 느낌들을 적은 글이다. 그는 자연 속에서 내면의 풍요로움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살아보고 싶고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과 대면하고 싶어 숲으로 갔다.

살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죽음이 닥쳤을 때 내가 제대로 살지 않았구나 하고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 또래의 사람들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부부가 자연과 함께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소로우의 철학과 일치 한다.  항상 뭔가에 쫓기는 삶은 도시의 물질적인 혜택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가 아니던가.. 밥 지을 화덕의 불을 만들기 위해 2시간이 걸린다는데 이들은 그 여유로움을 즐긴다고 한다. 부부의 삶은 돈과 소비와 거리가 멀다. 분명 또래의 청년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일반적인 삶이 항상 옳지는 않다. 그 기준 또한 애매모호하다. 어떤 이들은 젊은 부부를 돈도 없고 배경도 없으니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삶의 철학이 확고하지 않다면 부부처럼 살 수 없다. 무슨 사연이 있어 시골 외진 곳에서 사는가 싶지만 부부는 도시의 경쟁이 싫고 원자력 사고로 인한 피해를 보며 자연 친화적인 삶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소한의 검소한 생활로 자연과 함께 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젊은 부부의 생각이다.


이들이 도시의 자기 또래 청년들과 발맞추며 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뒤처지는 삶은 아니다. 햇살이 느긋하게 비추는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부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숲이주는 선물은 부부에게 감동이었으리라. 하지만 살아간다는 건 언제나 이렇게 자유로운 낭만을 주진 않는다.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 보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불편함 (전기, 가스, 수도)을 감수하더라도 돈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집과 얼마 떨어져 있는 마을 주민들은 부부가 사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다. 외딴 시골 숲에서 살려면 준비를 많이 해왔겠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어떻게 돈을 버는지, 직업이 뭔지 궁금하다.


부부의 생활비는 한 달에 3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공과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먹을 건 대부분 자급자족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산에서 나오는 재료를 가지고 수저, 빗자루, 바구니를 만들어 장터에 내다 판다. 수입원 30 만원은 이렇게 번다.

마을과 동떨어져 살고 있다고 해서 이웃 사람들과 전혀 교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귀촌 한 또래의 젊은 부부와  맛깔나는 음식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아무래도 서로 의지가 많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결혼, 출산, 육아, 퇴직순으로 평범하게 사는 삶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간다. 이 열차에 오르지 않으면 마치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일반화하면 안 된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던 내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갖고 허투루 살지 않으면 된다.


한국 사회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샘 리처드 교수의 강연이 흥미롭다. 교수는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에 대한 각 나라별 설문 결과를 제시했다. 호주, 미국, 영국, 스웨덴, 그리스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인생의 의미를 가족으로 답했고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라고 답했다. 하지만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가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리처드 교수는 유독 한국인만 이렇게 답한 건 짫은 기간 동안 고도성장을 이룩한 한국인들의 경험에 의한 부작용이라 했다. 질적 풍요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든다면 한국인 대부분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한다.


물질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다보면 더 큰걸 이루기 위한 경쟁이 필요하다, 이럴 때 오는 실패와 좌절이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라 하지만 도시의 삶은 하루하루가 치열하고 힘들다. 이런 도시를 떠나 사는 사람들이 한편으로 부럽다.


전기와 수도가 없어도 되는 삶을 사는 부부의 선택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다큐를 찍을 때가 2016년이었으니 지금은 부부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다. 한적하고 외진 시골에 산다고 어찌 고민과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들 부부는 동백숲이주는 아침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잘 살아갈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적당한 여유와 함께 말이다.


그녀가 다큐 마지막에 남긴 말처럼  사회의 시스템을 벗어나도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을 그들은 실천하며 증명하고 있다.


https://youtu.be/xHlRKN6 FN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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