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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May 09. 2023

딸과의 역사토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정당한가..

[ 아빠와 딸의 한국사 토론 주제 ]


중학교 2학년인 가영이와 주말마다 한국사 함께 공부하며 토론을 한다. 시험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올바른 역사관을 기를 수 있을까 고민 중에 생각해 낸 방법이다.


역사는 우리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이 남긴 과정의 기록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역사 속 인물의 입장에서 토론을 해보면 사고의 영역을 더욱 넓힐 수도 있다. 공감능력은 저절로 따라오는 덤이다.


이번주 아빠와 딸한국사 토론 주제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옳았는가에 대한 찬반이다. 옳다 쪽은 내가 그 반대는 가영이다.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군주를 배신한 역적이었나..



[ 아빠의 설명 고려 말 대외정세 ]


이성계를 이해하기 위해 고려 말의 시대적 배경을 보자. 려말 중국은 원에서 명나라로 바뀌는 교체기였어.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정복한 몽골제국(1206년)은 힘이 약해져 북원 (1368년)으로 밀려났지. 남쪽으로 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건국된 후 나날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한편 고려는 공민왕에서 우왕으로 이어지며 임금은 허수아비일 뿐 권문세족이 실권을 장악했어. 이때 권문세족의 횡포를 보다 못해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신진사대부 란다.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들로 명나라(성리학을 기본 이념)와의 관계를 중시했어.


몽골(원 )은 지는 해, 새로운 나라 명나라는 뜨는 해였지. 국제정세는 이러했으나 고려는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동정벌을 강행하는데, 이유가 있었단다. 명나라는 고려에게 무리한 조공을 요구했어. 또한 요동정벌의 결정적인 사건은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가져가겠다는 위협 때문이기도 해. 려말은 권문세족 (친원 )과 신진사대부 (친명 ) 두 세력이 충돌했지. 친원인 권문세족의 힘이 더 세서 명나라를 치자는 국론이 힘을 더 받은 거야.


[ 아빠의 설명을 들은 딸의 요약 ]


아빠, 흥미로운데요. 그러니까 고려말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몽골(원나라)이 망하고 명나라가 건국되었네요.

고려의 두 세력 중 권문세족은 원나라와 친했고 신진사대부는 친명 이었구요. 명나라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고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니까 결국 명나라를 우리가 먼저 치자는 여론이 만들어졌네요.


아빠, 저라면 요동정벌에 찬성하겠어요. 고려는 최영 장군과 이성계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잖아요. 이 둘의 힘이라면 명나라에게 한방 날릴 수 있었을 것 같아요.


[ 딸의 생각에 대한 아빠 의견 ]


오! 맞다. 최영과 이성계가 서로 반목하지 않고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면 명나라에게 고려의 힘을 보여줬을 거 같기도 하네. 그러나 그 당시 고려의 상황은 매우 힘들었어. 나라를 주무르는 권문세족의 횡포가 도를 넘었고. 백성들의 억울함은 쌓여만 갔지. 군사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거야. 고려시대는 백성이 곧 군사였으니까.


이성계는 신진사대부와 함께 떠오르는 무인이었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계의 대상이었지. 최영 또한 마찬가지로 이성계의 힘이 너무 세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 아마도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가도록 만든 건 그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거야.


[ 위화도 회군에 대한 딸의 생각 ]


그래서 결국 이성계는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병사들을 이끌고 갔군요. 위화도를 찾아보니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흐르는 압록강 위의 섬이네요.

위화도를 앞에 두고 군사를 되돌려 철군을 해서 위화도 회군이라 하는구나. 그림을 보니 쉽게 이해가 됐어요. 그런데 아빠, 옛날에는 왕의 말을 거역하면 반역죄로 큰 벌을 내리지 않았나요? 이성계가 왕의 명을 어기고 돌아왔다는 건 신하로서 임금을 무시한 거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 아빠의 설명, 이성계가 회군한 이유 ]


이성계는 명나라를 공격할 수 없는 4가지를 주장했어. 4대 불가론이라고 하지. 시험에 잘 나오는 내용이야.


1. 큰 나라를 작은 나라가 공격할 수 없다.

2. 지금은 농번기다.

3. 대규모 군사를 움직이면 왜구가 쳐들어 온다.

4. 장마철이니 아교가 녹을 수 있다.


맞는 말이야. 이성계는 천하제일의 명장이고 전쟁 영웅이었어. 수많은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었지. 혹자는 4대 불가론을 비겁한 변명이라고 해. 하지만 그는 명과의 싸움은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회군한 이유지.


여기서 아빠는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위화도 회군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던 상황에서 망설이다가 내린 과감한 결단이었을까..  아빠는 이성계가 위화도를 향해 떠날 때부터 왕이 되려고 마음먹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회군 이후 바로 조선을 개국시킨 건 아니거든. 처음부터 계획했다면 군대를 이끌고 돌아온 후 바로 왕이 되었겠지.


이성계는 회군 이후 곧바로 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어. 반대세력을 모조리 제거 (1388년, 위화도 회군) 한 후 공양왕(1389~1392)을 왕위에 올렸지. 그는 왜 바로 왕이 되지 않았을까.. 고려시대의 왕은 하늘이 내려주신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왕은 먼 친척이라 해도 혈통이 이어져야만 권위를 인정받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성계는 명분이 필요했을 거야.


[위화도 회군은 옳았는가, 아빠와 딸의 생각]


>> 아빠는 옳다.


앞서 말했듯 이성계 앞에 놓인 상황(날씨, 군사력)을 볼 때  명나라와의 싸움은 승산이 없었어. 무모한 전쟁을 했다면 고려는 더욱 힘들어졌을 거야. 비록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지만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생각해. 이성계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군사를 되돌린 거지. 회군 이후 반대파를 모조리 휩쓸어버린 것 역시 살기 위한 방법이었을 거야.


 >> 딸은 아니다.


고려에는 또 하나의 전쟁 영웅 최영이 있었어요. 명나라를 치려 했을 때는 그만큼의 전쟁준비를 하고 이성계를 보냈을 거 아닌가요? 지는 한이 있더라도 명나라와 한판 승부를 벌였어야 했어요. 왕의 명을 거역한 건 명백한 반역이에요. 왕이 되려는 흑심이 있었기에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했다고 저는 생각해요. 회군 후에 살기 위해서라지만 최영을 죽인 건 이성계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최영을 설득해서 다시 충분한 전쟁준비를 해야 했어요.




[ 아빠와 딸이 함께 방문한 이성계의 묘 ]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이다. 이성계를 비롯한 아홉개의 능이 있다. 영조, 선조의 묘도 있다. 위화도 회군에 대해 딸 아이와 의견을 나눈후 태조의 능을 방문하니 그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듯 하다.


참 오랜만에 듣는 맑고 투명한 물소리다. 새소리와 어우러진 잣나무와 소나무의 향이 참 좋다. 숲길을 한참 걷다가 도착한 곳, 건원릉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가 남긴 역사의 흔적 때문일까..

멀리서 바라본 그의 능에 알 수 없는 경외감이 흐른다. . 적막함 속에 바람마저 잠잠하다.

조선을 건국한 왕 이성계는 언덕 위에서 묵묵히 아빠와 딸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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