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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Feb 03. 2024

흡연은 자유지만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지.

마트에 들러 귤을 사고 집에 오는 길,  둘째가 다니는 중학교 앞 건널목이다.
한눈에 봐도 앳된 아이들 대여섯 명이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한 녀석의 라이터가 안되는지 다른 녀석이 킬킬 거리며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있다.

횡단보도와 교문 앞까지의 거리는 성인 남자의 보폭으로 15걸음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다. 고등학생 같아 보이진 않는다. 얼굴이 중학생임을 숨길 수 없다.

나는 비겁했다. 신호대기 하는 차를 잠시 옆에 세워두고 또는 창문이라도 내려서 너희들이 담배를 피우는 건 자유지. 그래도 학교 앞에서 대놓고 흡연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으냐라고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 휭 ~ ' 하니 가버렸다.

유명 정치인이 대낮에 중학생에게 돌로 머리를 가격 당하는 세상이다. 그 아이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 치지만 이미 우리 사회분위기는 언젠가부터 일정의 선을 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상한 분위기가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흘러간다.

' 라테는 말이야 ~ ' 는 말이 전형적인 꼰대라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 때는 말이야 최소한 학창 시절에 담배는 몰래 숨어서 피웠어. 어른들 눈초리를 피했단 말이야.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단 말이지.

만일 내가 훈계를 한답시고 그 아이들에게 한마디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두 가지 시나리오가 불 보듯 그려진다.
첫 번째 어른이 하는 말씀이니 받아들인다. 두 번째 ' 아저씨가 뭔데요.. 왜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데요..' 시비를 걸어온다.

내가 그냥 지나친 이유는 두 번째 상황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훈계를 해야 했을까..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비겁한 것인가. 시시비비를 미리 넘겨짚은 겁쟁이이었던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문화는 그 당시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한다. 조선시대에 담배가 처음 들어왔을 무렵 담배는 만병통치 약으로 인식되었다. 하멜 표류기의 조선시대 담배에 관한 기록을 보면 4살 된 어린아이들도 흡연을 한다는 기록이 있다.

많이 알려져 있듯 정조 임금은 소문난 애연가였다. 담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모든 조선의 백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나라까지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현대 의학이 도입되면서 담배가 우리 몸에 해롭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 시대 조선사회의 담배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기호 식품으로 온 나라가 하얀 연기로 덮여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퇴색되어가고 있는 담배 예절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의 나라였다. 윤리와 신분질서가 엄격했다. 담배 예절도 이에 맞게 만들어졌다. 노비는 양반 앞에서 흡연을 할 수 없었고 어린아이는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18세기에 쓴 경도 잡지란 책을 보면 지위가 낮은 사람이 신분 높은 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25년 동안 흡연을 했고 지금은 금연 10년 차다. 담배 중독을 끊어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오죽하면 ' 금연하는 사람과 상종을 하지 말라 '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만큼 독하게 마음먹어야 끊을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담배를 피워왔으니 흡연자의 심리를 잘 안다. 식후 땡이라 불리는 담배의 맛과 스트레스 이후 담배는 꿀맛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중독에서 비롯된 착각이었음도 알고 있다. 실제로는 내 몸에게 매일 같이 독약을 주입하는 것과 다름없었음을 25년이 지난 후 깨달았다.

청소년기의 흡연이 해롭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신체기관이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게 되면 당연히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알면서도 아이들은 흡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일종의 영웅심일 수도 있겠다.

청소년 흡연에 대한 인식이 요즘 들어 바뀌어 간다. 길거리에서 대놓고 끼리끼리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청소년 흡연을 비행으로 바라보고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만 어른들은 못 본 체 슬쩍 지나간다. 어른인 나 역시도 그랬다.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한마디도 못한 채 외면했다.

반성한다. 그래도 어른이 나서서 좋은 말로 타일러야 했다. 어린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대놓고 당당하게 흡연하는 모습을 보고 못 본 체 지나치지는 말아야겠다. 꾸짖듯이 말을 건네면 그들 역시 잘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반항심이 앞설것이다. 묵직한 말 한마디를 건네리라.

' 너희들 시기에 담배를 피우는 건
이해한다. 아저씨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최소한의 흡연 예절은 지켜야 하지 않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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