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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저빔 Jun 21. 2023

선생님의 꿈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새 학기가 되면 자기소개에 대한 꾸미기나 그에 관련된 발표를 많이 합니다. 그 활동을 하면서 빠지지 않고 넣게 되는 항목 중의 하나는 장래 희망일 거예요.


  아이들의 장래 희망을 물어보고 답하면서 서로의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에는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금은 온 힘을 다해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색칠하고 가위질하며 풀을 붙이는 아이들의 얼굴 위로 미래의 모습을 드리워 상상해 보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질 때가 많습니다.


  꿈에 대한 이유를 말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저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의사나 약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 중에 부자가 되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가진 아이들은 많지 않아요. 물론 그런 이유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대부분은 돈을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공짜로 치료해주거나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는 따뜻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참 반갑습니다. 돈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태도는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잊고 살아가는 수준 높은 도덕성이 아니던가요. 제가 초등학교 교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쉬는 시간에는 귀가 따가울 만큼 친구를 고자질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대기도 하는 아이들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다들 한 움큼씩의 온기를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제 마음도 함께 따스해집니다.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왜 어른이 될 때까지 지켜지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다가 괜히 슬퍼진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합니다.


  너희의 그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고. 훗날 고개를 들어서 보아야 할 만큼 큰 사람이 되더라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헤아리는 사람으로 자라달라고. 그래서 쪼그리고 앉아야만 볼 수 있는 한없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너희들의 온기가 전해지게 해달라고.


  그렇게 큰 어른들도 한때는 이렇게 복닥거리는 교실에서 작은 몸으로 무언가에 열심이었을 아이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아이를 더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은 상상도 가끔은 하지요.


  특히나 장래 희망이 선생님인 아이를 만나면 어느새 옷매무새를 신경 써서 가다듬고 말도 더 조심하게 됩니다.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이런 비유라고 생각해요. 괜찮은 식당이라 판단하고 예약하긴 했는데, 예약 날까지 시간이 많이 있어 아직은 고민 중이고 어쩌면 취소할지도 모르는 손님을 대하는 식당 사장님의 마음가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서 저는 그만큼의 무게와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를 보고 그 아이가 계속 선생님의 꿈을 키워갔으면 하고요.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선생님이 꿈인 아이들을 교실에서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교실도 많거든요.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낯설어서 속상할 때도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선생님이 참 높아 보이고 좋아 보였는데, 참 대단한 사람 같아 보였는데, 그래서 반에 여학생 몇 명은 무조건 선생님이 꿈일 정도로 인기가 좋았었는데 말이에요.


  아이들 눈에 비친 선생님의 모습이, 혹은 매스컴에서 전하는 이 시대 교사의 모습이 얼마나 볼품없어 보였으면 장래 희망이 선생님인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을까 생각하면 조금 서글퍼집니다. 선생님이 꿈인 사람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저는 또 ‘라떼’의 이야기를 풀어내곤 하지요.


  “선생님이 어릴 때는 선생님이 진짜 인기 많은 직업이었는데, 요즘은 왜 그런지 인기가 너무 없어.”

  “선생님이 힘들어 보여서 하기 싫어요.”

  “선생님이 보니까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쉬는 시간에도 컴퓨터를 놓지 못하고 업무를 하는 제 모습이 아이들 눈에도 크게 담겼을 거라는 생각에 내심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요즘 말 안 듣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 되면 힘들 것 같아요.”

  “엄마가 선생님 하면 힘들다고 하지 말래요.”


  너희들도 다 알고 있었구나. 교사를 힘들게 하는 학생과 그들에게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교실을. 점점 추락해가는 교권과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의 눈에도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여서 저는 또 한 번 슬퍼졌습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선생님이 되면 좋은 점도 많다고, 그러니 생각을 바꿔보라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1학년 아이들과 자기소개에 대한 만들기를 하면서 장래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커서 뭐가 되고 싶으세요?”


  생각지도 못하게 훅 들어온 도현이의 질문이었어요.

  “응? 선생님은 벌써 다 컸는데?”

  “그게 아니라요, 꿈이 뭐냐고요. 장래 희망이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벌써 선생님이 됐는데 또 뭐가 되어야 해?”


  아이들의 꿈에 대해 그동안 수없이 물어왔지만, 저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제 꿈이 무엇인지 물어온 아이는 도현이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러면 선생님은 꿈이 없는 거예요?”


  눈을 껌뻑이며 제 대답을 기다리는 도현이를 앞에 두고 바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난감했습니다. 그렇게 뜸을 들이는 선생님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던 도현이는 이내 실망한 표정으로 색종이 자르기에 집중했어요.

  “선생님, 이거 모양 어떻게 그려요?”

  “선생님, 글씨 이렇게 쓰는 거 맞아요?”


  꿈에 대한 고민도 잠시, 여기저기서 애타게 선생님을 불러대는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 뒤로 도현이의 질문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빈 교실에서 흩어진 색종이 조각을 쓸어 담는데 도현이 자리에서 걸음이 멈추었습니다. 아까 그 질문이 떠올라 한참이나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거든요.


  도현이가 이야기한 꿈은 계획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형편이 어떻든 내 안에서 나를 그리고 나중을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계획 같은 것 말이에요. 지금 내가 번듯한 직장을 가지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든 아니든, 좋은 집과 비싼 차를 소유하고 있든 아니든, 미래의 나를 오롯이 그릴 수 있는 희망적인 청사진.


  그런 희망을 물어보는 도현이에게 이미 선생님이 되어서 더 이상 될 게 없다는 저의 너무 ‘어른다운’ 대답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고달픈 어른들의 현실을 보여준 거울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고 북돋아 주어야 할 자리에 있는 선생님이 ‘꿈이 없는 사람’으로 비쳤을 걸 생각하니 아차 싶었지요. 실수했다는 생각에 그날 밤엔 잠까지 설쳤습니다. 만발의 준비를 하고, 다음 날 도현이가 등교하기만을 기다렸어요.


  “도현아, 도현이가 어제 물어본 거 있잖아. 꿈 말이야. 어제 생각해봤는데 선생님 꿈이 생각났어.”

  “와, 진짜요? 선생님 꿈이 뭔 데요?”

  환해진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도현이를 보니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구나 싶어 다행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는 거야. 눈만 쳐다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럼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해주고 가르치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때? 멋지지?”

  “에이, 선생님, 그건 마법사 아니에요? 다른 사람 마음을 어떻게 읽어요. 하하하.”


  도현이의 웃는 얼굴을 보니 그래도 안심되었습니다. 적어도 도현이에게 저는 이제 꿈이 있는 선생님일 테니까요.


  도현이의 질문에 대한 제 답이 너무 싱겁다고 느끼셨나요, 아니면 저처럼 직업이 생겨버려서 더 이상 꿈꿀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이라도 자신만의 대답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이라는 건 없습니다. 다만 교실의 수많은 도현이들은 어른들의 꿈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꿈을 들려주는 어른이 되어주세요. 아이들도 어른들과 함께 꿈꿀 수 있게요. 아직 꿈을 찾지 못한 아이들이 교실에는 생각보다 많거든요. 싱겁고 사소한 꿈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어른들의 숨겨온 꿈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분명히 긍정적인 힘을 얻을 거예요.


  꿈이라는 단어는 그 속에 기대와 희망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듯합니다. 그걸 물어봐 준 도현이 덕분에,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마음속에 원하는 일을 새기고 간직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어떤 아이들과 함께 있든, 희망을 품고 지낼 수 있다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이 덜 고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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