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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저빔 Jun 21. 2023

잔반에서 얻은 깨달음

아이들에게 배운 날

  교사가 되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원래부터 먹는 속도가 느린데다가 어릴 때부터 체하기도 잘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식사 시간이 남들보다 두 배는 걸리는 편이었지요.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부터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식판을 채운 아이들을 모두 자리에 앉히고 나면, 그제야 마지막으로 제 식판을 집어 듭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 옆에 자리 잡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국물이 옷에 묻어서, 실수로 젓가락을 떨어뜨려서, 오렌지 껍질을 까기가 어려워서, 후식으로 나온 요구르트의 뚜껑이 안 열려서….


  급식실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을 부르는 이유는 끝이 없습니다. 휴지를 가져와 닦아주고, 새 젓가락으로 다시 바꾸어주고, 과일 껍질을 까주고, 후식 뚜껑까지 열어주고 나면 겨우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허겁지겁 몇 숟가락 뜨다 보면 아이들 대부분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러면 또 줄을 세워 돌아가야 하기에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였습니다. 급하게 먹다가 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허기진 채 식사를 마무리하는 게 나았으니까요. 빨리 먹는 아이들을 먼저 교실로 올려보내면 편하겠지만, 요즘은 안전사고가 빈번해서 그것마저 쉽지 않습니다. 교사의 임장하에 한꺼번에 줄을 서서 장소를 옮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거든요.

 

  초임 때는 침착하게 단 몇 숟가락 만에 식사를 끝마치는 선배 선생님들이 제일 존경스러웠습니다. 신속한 식사 속도가 저에게만큼은 초등교사의 필수 덕목으로 여겨졌지요. 애초에 저에겐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식사 때마다 쫓기듯 먹는 게 점점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자고 생각을 바꾼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식판은 늘 잔반으로 넘쳤고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은 날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점심을 먹고 도란도란 수다를 떨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원래 그렇게 조금 드세요?”

  매일 산더미 같았던 잔반을 아이들도 모를 리 없었습니다.


  “응, 선생님은 원래 많이 못 먹어.”

  ‘선생님은 원래 밥 먹는 데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려서, 천천히 먹으면 많이 먹을 수 있는데, 그러면 너희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학교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매일 이렇게 많이 남기는 거야.’


  아이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왠지 멋쩍었습니다. 대신 ‘급식실 선생님들이 반찬을 너무 많이 주셔서 힘들다, 선생님이 아마 잘 먹게 생겼나보다, 너희랑 키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양은 두 배나 넘게 받는 게 말이 되냐, 그러니 다 못 먹는 게 당연하다’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잖아도 잔반이 많은 것이 교사로서 모범적이지 않다고 여겼기에 식판을 든 손이 늘 부끄러웠거든요. 그걸 정당화할 변명이 필요했던 참이었습니다.

 

  물론 많이 먹으라고 넉넉히 주시는 건 당연히 감사한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핑계를 찾아야 할 때였습니다. 어른이라고 무조건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까지 내세우며 잔반이 많은 변명에 대한 힘을 보탰습니다. 그런데 투덜거리는 제 얘기를 듣고 있던 이경이가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요, 음식을 받기 전에 선생님이 먼저 조금만 달라고 얘기하면 되잖아요.”


  듣고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침착하게 말하는 이경이의 조언을 듣고 있던 제 얼굴은 홍당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아주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그걸 시도해 보지도 않고 아이들 앞에서 불평이나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과연 배식받으면서 제가 정말로 말할 기회가 없었던 걸까 하고요.


  사실은 말할 용기가 부족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반찬은 ‘많이 주세요’, 싫어하는 반찬은 ‘조금만 주세요’하던 아이들의 종알거림을 옆에서 들을 때마다 철없고 유치하다고 비웃었습니다(사실은 부러웠는데도요.). 완전히 초딩 입맛인 저도 치킨은 많이 받고 싶고 나물은 조금만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초등학생과 뭐가 다를까 싶어 그냥 넘긴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적게 달라고 말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요.


  어른으로서 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의젓해 보이고, 또 성숙해 보여야 했으니까요. 앞에서는 괜찮은 척, 품위 있게 만족하는 척하느라 정작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애꿎은 사람만 탓했던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의견이나 불만이 있으면 앞에서 이야기해야지,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뒤로 이야기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가르쳤으면서 정작 저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른스러워 보이기 위해 비겁했던 저에게, 이경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제 손안에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점심시간 배식을 받을 때마다 ‘조금만 주세요’라는 말은 저의 새로운 단골 멘트가 되었습니다.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으며 엄지를 날려주는 이경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학생인지 헷갈릴 지경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식판의 잔반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가끔은 다 먹는 날도 있었고요.


  며칠 뒤 환경 사랑 포스터 그리기 시간에 이경이는 잔반이 많은 식판과 깨끗이 비운 식판을 나란히 그렸습니다. 그러고는 꼼꼼하게 색칠까지 하고 나서 큰 글씨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남길 거면 처음부터 적게 받자’


  교실 뒤에 이경이 그림을 전시하면서 내내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놀리는 건가 하기엔 저와 마주치던 이경이의 표정이 너무 해맑았습니다. 그러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니 별수 없었지요. 이경이에게 웃으며 고백했습니다.

  “이경아, 선생님 너무 찔린다.”

  “아니에요, 선생님. 요즘엔 적게 받으시잖아요. 저도 잔반 줄이려고요. 잘 실천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그린 거예요. 근데 진짜로 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헤헤”


  그날은 아이들에게 큰 걸 배웠다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제대로 이해했던 날이었거든요. 그렇게 또 한걸음 전진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교사로서 그런 아이들을 매일 곁에 둔다는 것도 안심이 되는 일이고요.


  이경이가 깨달음을 줬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오늘은 또 배울 점이 없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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