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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저빔 Jun 21. 2023

친구가 될 이유

그냥 친구예요

  지호와 윤찬이는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완전히 달랐습니다. 지호는 약간의 반항기를 지닌 개구쟁이였지만 윤찬이는 무척 점잖은 아이였거든요. 아무래도 둘 사이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지호야, 너는 윤찬이랑 왜 친한 것 같아?”

  ‘선생님이 보기에는 둘이 되게 다른 것 같은데 친하게 지내는 게 신기해.’


  “음… 우리 둘이 비슷해서요.”

  둘이 비슷한 점이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몹시 의아했습니다.


  “어떤 점이 비슷한데?”

  “우리 둘 다 I거든요. 완전히 I예요.”


  지호가 말한 이유는 뜻밖에도 MBTI 성격 유형이었어요. 둘 다 내향적이라 서로 잘 맞는다고요. 듣고 보니 무릎을 칠 만한 이유였습니다. 지호를 깊이 모르는 사람은 장난이 심한 지호를 외향적이라고 오해할 법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를 굉장히 잘 받는 아이였거든요.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어려워하기도 했고요. 내면적으로 자신의 감정이 함부로 건드려지면 반항적인 반응으로 나타났던 겁니다.


  또 섬세하게 감정을 다루는 일에 서툴던 탓에 장난이 싸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항상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던 건 지호가 내향적인 아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호를 두고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면서 뒤로 사고 치는 아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어요. 완벽히 잘못된 판단이었지요.


  반면 윤찬이는 엄청난 모범생이었습니다. 겉보기엔 지호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하지만 어쩌다 발표한 게 정답이 아니거나 친구들의 주목을 받을 때면 귀가 새빨개질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심하게 부담스러워했거든요.


  알고 보면 둘 다 강한 내향성의 아이들이었던 거예요. 그걸 서로가 알아보고 친해졌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가까이 지낸다는 건 서로 마음을 열어 의지하고 힘이 되어준다는 말과도 같으니까요.


  “그렇네. 너희 둘이 정말로 비슷하네.”

  “맞죠, 선생님? 근데 사람들이 자꾸 아니라고 해서요.”


  선생님의 동의를 얻고는 만족해하는 지호를 위해 쐐기를 박아주기로 했습니다.

  “아니야, 선생님이 보니까 완!전!히! 맞아.”

  “그렇죠? 그렇죠? 역시! 하하하”

  그렇게 지호의 말에 공감하며 실컷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거예요. 서로 성향이 비슷해서일 수도, 관심 가거나 좋아하는 분야가 같아서일 수도 있겠지요. 혹은 우리가 모르는 아이들만의 그 무언가일 수도 있고요. 그게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던 지호와 윤찬이에게 친한 이유를 물어보는 일이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큰 아파트 단지가 두 개 있었어요. 공교롭게도 그 둘은 극명하게 달랐지요. 하나는 방 세 칸짜리 부자 아파트(어린 시절 아이들의 표현을 빌려), 나머지는 거실이라 부를 공간도 제대로 없었던 방 두 칸짜리 아파트였습니다.


  좁은 아파트에 살았던 저는 부자 아파트에 사는 선화와 가장 친했어요. 선화네 집에 처음 갔을 때 넓은 거실과 거기에 놓인 소파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른이 눕고도 자리가 남을 만큼의 큰 소파가 있는 집을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더구나 선화는 외동이었기에 그 큰 집에 달랑 세 식구가 산다는 것이, 또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는 사실이 부럽기만 했습니다. 네 식구가 살던 우리 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넓었으니까요. 넓이만 달랐을까요. 집을 채우고 있던 모든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표시 내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아요. ‘넌 좋은 집에 살아서 좋겠다’라는 마음을 들켜버리면, 우리가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란 걸 인정하게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선화와 저는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어요. 매일 보는 사이인데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던지, 글쓰기를 좋아했던 우리 둘은 서로의 생각을 글로 나누기를 좋아했어요. 나중에는 주고받은 편지가 모여 서랍을 채우고도 넘칠 정도였지요.


  선화가 가끔 큰 문구센터에서 사 오는 예쁜 편지지는 저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학교 앞 작은 문방구에서는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것이었거든요. 디즈니 만화 그림이 배경이었던 편지지, 화려하지만 촌스럽지는 않은 꽃 그림이 가득했던 반투명 편지지의 느낌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저를 보며 특별한 날이면 꼭 예쁜 편지지에 써주겠다고 약속하곤 했던 선화의 말이 따뜻했습니다.


  우리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선화의 사려 깊고 착한 마음씨 덕분이었습니다. 선화는 ‘좁은 집에 살았던’ 저를 전혀 다르게 대하지 않았어요. 그런 우리를 다르게 대했던 건 오히려 선생님이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전부 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애들끼리 어울려 놀던데. 너희 둘은 어떻게 단짝이냐? 신기하다.”

  ‘너희 둘은 사는 수준이 다른데 어떻게 이렇게 친하게 지내냐? 이해가 안 된다.’


  비록 어렸지만, 선생님의 이야기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지요. 그런 선생님에게 선화는 예의를 지키면서도 야무지게 선을 그었습니다.

  “선생님, 그런 건 상관없어요. 저희는 그냥 친구예요.”


  그때의 정확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저 부끄럽다고만 생각했는지, 억울하다고 느꼈는지, 그것도 아니면 화가 났는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차분히 말하는 선화 옆에서 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는 것,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그 말과 어투까지도 제 마음에 또렷이 남았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어요.


  선화에게 참 고마웠습니다. 예쁜 편지지도, 편견 없이 저를 대해 준 그 마음도, 선생님에게 당당하게 말해준 용기도 고마웠어요. 때로는 아이들의 현명한 대답이 어른들의 어리석은 질문보다 더 성숙할 때가 있습니다. 우문현답이라는 말처럼요.


  선화는 그때 질문을 했던 선생님보다 분명히 더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고, 선화도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만 몰랐을 뿐이지요. 만약 시간을 여행할 수 있다면 그때의 제 옆에서 이렇게 말해주려 합니다. 애초에 선생님의 질문이 잘못된 거라고, 너희는 너희들의 세계를 그대로 지켜가라고요.     


  누군가와 친구가 될 이유는 충분합니다. 서로 비슷해서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또 서로 달라서 친구가 될 수도 있지요.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마음이 가는 친구도 있습니다.


  편견 없이 친구를 만들고 노는 일에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선수라는 걸 누구나 잘 압니다. 그러니 누구하고 친하게 지내라, 누구하고는 놀지 마라, 이렇게 선 긋고 경계를 정해버리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해 전 우리 반이었던 아이 둘은 함께 놀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엄마들 사이가 안 좋아서 아이들도 어울리지 못하게 해달라는 당부가 있었거든요. 그 둘은 일 년 동안 짝이 될 수도, 같은 모둠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함께 놀고 싶어 했고 친해질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엄마 눈치를 보느라 그 마음을 거둬야 했어요. 자녀가 놀 친구까지 정해버린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의 친구를 잃게 했습니다.


  ‘친구가 어디 걔 하나뿐이냐, 다른 친구랑 놀면 되지.’

  이렇게 단순히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친구를 결정할 기회를 놓친 대신, 어른들의 눈치를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그 질문 이후로 선화랑 놀 때마다 괜히 눈치를 보게 됐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어둡고 무거워집니다. 놀고 싶은 친구와 놀 수 없는 교실은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고 슬픈 일일 테니까요.     


  글을 쓴다는 건 혼자만의 세상을 종이에 차려내고 그 세상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일입니다. 그 세계에 기꺼이 발을 내딛어주는 독자를 본다는 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이지만 동시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기도 해요. 이렇게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글은 왠지 더한 느낌입니다.


  선화가 이 글을 읽는다면 뭐라고 할까요. 어깨를 두드려줄까요?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아무 내색하지 않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시절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선화에게 편지를 써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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