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저빔 Jun 21. 2023

나를 챙기는 법

그렇게 어른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민하가 갑작스레 쪽지를 건넸을 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어리둥절했습니다.    

 

  선생님께

요줌드러 선생님에 이마가 빨같다. 선생님이 괜찮느시면 좋겠다. 선생님 힘내세요! 선생님 그리고 많이 많이 사랑해요.     


  때로는 틀린 맞춤법으로 쓴 편지에서 오히려 큰 감동이 느껴지곤 합니다. 글씨와 씨름하면서도 마음을 다하는 ‘열심’이 느껴져서일까요. 맞춤법의 세계에서 사투 중인 3학년 민하의 응원 쪽지 덕분에 아침부터 마음 날씨는 매우 맑음이었습니다. 어제는 빨개진 이마를 보고 걱정스럽게 한마디를 건네더니 오늘 이렇게 편지까지 써온 거였지요.


  며칠 전 주방에서 기름이 튀어 이마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빨갛게 변한 피부가 걱정되긴 했지만, 대충 가려지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줄 알고 연고만 바르며 버텼거든요. 그런데 상처가 점점 심해지더니 아이들의 눈에도 띌 정도가 된 것입니다. 진작에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안일하게 대처했던 제 실수였지요.


  “선생님, 아프겠다요. 그러니까 빨리 병원에 가지요.”

  상처를 제일 먼저 눈치챈 잔소리쟁이 민하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야된대요. 아픈 거 참으면 병 키우는 거래요. 그러면 주사도 더 큰 거 맞아야 된다요.”


  시어머니 말씀보다도 더 맞고, 더 무서운 민하의 잔소리에 혼쭐이 나고 말았습니다. 맞아, 민하야. 선생님이 무조건 잘못한 게 맞네. 참견도 많이 하고 쓴소리도 많이 하는 민하지만 잘 들어보면 언제나 맞는 말밖에 없어서 딱히 반박하기도 힘듭니다.


  가끔은 선생님에게 이렇게 돌직구를 날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한 아이라는 걸 알고 있지요. 그런 민하의 걱정과 쪽지 덕분에 아침부터 제 마음은 따뜻한 봄비를 만난 것처럼 촉촉했어요. 특별한 날도 아닌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마음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선생님이라서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원래가 마음이 따뜻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 따뜻함을 혼자 품고 지내기가 너무 뜨거워서 입 밖으로 자꾸 내뱉는 게 아닐까요. 민하의 말대로 저는 병을 키웠던 게 맞아요. 괜한 늑장 때문에 며칠이면 끝났을 치료가 몇 주나 길어지게 됐으니까요.


 상처뿐 아니라 내 몸을 아끼고 챙기는 일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두 다를 잃게 된다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문장이 아니던가요.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된 대단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눈치 보는 일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제 기준으로 말하자면, 몸의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 곧 현명한 사람입니다. 쉬어야 한다고 조금씩 신호를 주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무리한 계획과 고된 일과를 그대로 좇다 보면 곧이어 가혹한 응징이 찾아오고 말지요.


  나이가 들수록 그 응징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지는 느낌이에요. 고통을 맞닥뜨린 뒤 어쩔 수 없이 이불과 한 몸이 되고 나서야, 눈치를 제때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맙니다.


  내가 아프면 우리 집이 무너진다는 사실은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다 되어가도록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엄마라는 이름은 늘 무겁게 느껴집니다. 엄마가 된 후 저는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다는 사실이 되게 서러웠어요. 반찬 하나 변변히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남편은 제가 아픈 날이면 라면만 끓였지요.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기도 힘든 체력의 소유자인 저로서는 육아와 학교생활을 병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할 만큼 아팠고, 우리 집 살림의 주도권은 그때부터 남편 몫이 되었습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껏 버텨오지 못했을 거예요. 제가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음에도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에게는 늘 고맙습니다.


  크게 아프고 난 이후로 저는 오히려 더 건강해졌어요. 몸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기 때문이지요. 퇴근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잠시 누울라치면, 조용히 문을 닫아주고는 ‘엄마가 피곤하신가 보다. 쉬게 해드리자.’ 하며 두 아이를 다독여 목소리를 낮춰주는 남편이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그런 남편을 이제는 아이들이 따라 하기 시작해요. 엄마가 쉬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면 조용히 문을 닫아주는 속 깊은 아이들입니다. 제가 차려주지 않으면 라면만 끓이던 남편은 이제 요리도, 살림도 저보다 한 수 위가 되었고요. 지난주에도 집으로 새로운 요리책이 배달되었기에 지금 할 줄 아는 요리로도 충분하다며 웃은 건 저였습니다.     


  첫 학교에 발령받고 객지에 나와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출근한 지 며칠 만에 몸이 신호를 보내왔어요. 아무래도 몸살 기운 같았습니다. 1인 가구로 살림을 꾸리는 일부터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까지, 한꺼번에 많은 일이 몰아닥치니 몸에 무리가 갔을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나가지도 않은 학교에 아프다고 말하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제 수업을 대신 해야 할 다른 선생님들께도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그대로 출근을 감행했어요. 간신히 오전을 버텼지만 열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으슬으슬 떨려오는 몸은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점심을 먹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 눈가가 그렁그렁해지고 말았지요. 그걸 우연히 보신 건 급식실의 조리사님이었어요.

  “아이고, 슨생님, 괜찮나? 와 이라노? 어디가 아파서 그러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제 등을 살살 문질러주시면서, 많이 아프냐,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 게 힘들어서 더 그럴 거다, 우리 딸이랑 나이도 비슷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눈치 보지 말고 얼른 밥 먹고 병원부터 가보라고. 몸이 제일 우선인데 일이 뭐가 중요하다고 이렇게 참고 고생하고 있냐고. 저를 토닥여주시던 그 손길에 눈물방울은 눈치 없이 더 굵어졌습니다. 아픔과 서러움과 고마움이 뒤섞인 눈물이었습니다.


  그 길로 조퇴하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은 뒤 약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푹 쉬었어요. 다음 날 다행히도 멀쩡해진 몸으로 출근했고(젊었을 때라 몸의 회복력이 확실히 좋았어요) 점심시간에 조리사님을 만나면 씩씩하게 인사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자기 몸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은 암만 공부 많이 해도 헛똑똑인기라. 아프면 아프다카고 쉴 줄도 알아야제. 알았나, 슨생님.”


  또 한 번 눈물샘이 고장 날 뻔한 잔소리 몇 마디를 실어주시면서, 조리사님은 제 손에 작은 종이가방을 쥐여주셨습니다. 집에서 먹던 대로 대충 한 거라서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맛없다고 욕하지 말라고 챙겨주셨던 반찬 몇 가지. 그 종이 가방을 받아 든 저는 목이 메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힘들 때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 밥 꼭 챙겨 먹으라는 말 한마디, 그냥 넘기지 말고 꼭 병원에 가보라는 당부. 아플 때 건네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는 오랜 시간 떠나지 않고 마음속에 머물러있습니다. 아플 때 나를 챙기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따뜻함도 함께 배워가는 거겠지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게 아픔을 숨기지 않아요.  ‘선생님, 여기 간지러워요’ ‘긁어서 아파요’ ‘여기 빨개졌어요. 봐주세요’ ‘어지러운 것 같아요’. 오히려 하루에도 몇 번씩 아픔을 호소하려 선생님을 부릅니다. 정말로 몸이 아픈 아이들도 있지만 교실에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더 많습니다. 교사의 관심을 원하는 마음이 ‘아파요’라는 표현으로 나타날 때가 많거든요.


  학교생활이 신나고 즐거운 아이들은 아픔을 느낄 새도 잘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아픔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자세히 보면 교우관계가 원활하지 않거나 학교생활이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아프다고 선생님을 찾을 때마다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세요. 아이들이 원하는 건 치료만이 아닐 거예요. 그보다는 ‘많이 아프니, 무슨 일 있니, 힘들면 좀 쉬어도 괜찮아’ 이런 따뜻한 관심의 말이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랬던 아이들도 커가면서 조금씩 아픔을 숨기는 법을 배워가겠지요. 감정을 숨길 줄 알게 된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일 테니까요. 그러다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내색하지 못해 혼자 끙끙대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아이들이 조금은 부러워요. 눈치 보지 않고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제일 부럽고요. 제 아픔에 대한 타인의 관심과 위로를 요구하는 당당함도 부럽습니다. 그게 몸이든 마음이든 말이지요. 만약 조리사님이 보셨다면, 자기를 챙길 줄 아는 면에서는 저보다 똑똑한 아이들이라고 칭찬하지 않으셨을까요.


  아이다움을 잃어가는 순간, 우리는 철이 든다고 말합니다.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도 하고요. 저도 그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소중한 것들을 배워 가면서, 우리는 그렇게 다른 이들을 보듬으며 함께 살아갑니다.


  오늘 아침 민하가 건넨 쪽지 덕분에 저는 어제보다 한 뼘은 더 큰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콩콩팥팥 국어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