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의 역설이 시작되다
폴 발레리는 1919년 저서 ‘정신의 위기’에서 문명의 취약함을 경고하며, 사유의 기계화가 가져올 인간 가치의 혼란을 예견했다. 그는 지성이 도구화될 때 우리가 쌓아온 질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통찰했다. 이러한 통찰은 100년이 지난 오늘,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AI 에이전트’가 마케팅, 법률, 여행 등 견고했던 에이전시의 영역을 잠식하는 현장에서 생생하게 재현된다.
최근 실리콘밸리발 뉴스들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인간이 구축한 ‘대행 시스템’ 자체의 해체를 목격하게 한다. 사용자의 컴퓨터를 직접 조작하는 에이전트의 등장은 더 이상 중간 관리자나 대행 업무를 수행할 조직이 필요치 않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전문성이 집약되었던 에이전시의 시대가 저물고, 자율적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찰나에 우리는 서 있다.
과거의 문학적 경고가 오늘날의 현실적 위기로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믿었던 ‘대행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기술 시장의 화두는 단순한 생성형 AI를 넘어, 실행 권한을 가진 ‘AI 에이전트’로 급속히 이동 중이다. 오픈AI의 ‘오퍼레이터(Operator)’나 앤스로픽의 ‘컴퓨터 유즈(Computer Use)’ 기술은 AI가 인간처럼 브라우저를 열고 결제하며 업무를 완결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기존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어 매뉴얼과 체계로 유지해 온 에이전시의 핵심 수익 모델을 정면으로 타격한다.
전통적인 에이전시들은 정보의 비대칭성과 복잡한 절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그 존재 이유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마케팅 자동화 에이전트가 데이터 분석부터 집행까지 1초 만에 끝내는 환경에서, 인간이 구축한 ‘절차의 미학’은 비용과 지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미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들은 2026년까지 단순 대행 성격의 업무 중 30% 이상이 자율형 에이전트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제 시장은 ‘누가 더 체계적인 조직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완결성 있는 에이전트를 보유했는가’의 판 위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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