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를 믿은 사람이 제도의 적이 되었다

정부가 권장한 임대등록, 지금 그 믿음은 어디 있습니까?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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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속을 따라 걸은 사람들의 도착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1961)에는 이름 없는 대령이 나온다. 그는 15년 동안 매주 우체국으로 간다. 콜롬비아 내전에서 국가를 위해 싸운 군인들에게 약속된 연금 통보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그는 규정을 어긴 일이 없다. 기한을 어긴 일도 없다. 그러나 편지는 오지 않는다. 마르케스가 담은 것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제도의 약속을 끝까지 믿은 사람이 그 약속의 구조 밖에 홀로 서게 되는 방식이었다.


2026년 초, 한국 주택임대 시장에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2017년 정부의 권장에 따라 임대주택을 등록하고, 임대료를 연 5퍼센트 이내로 묶고, 세입자 계약 갱신을 8년 동안 보장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약속된 의무를 이행해왔다. 그런데 지금, 의무 이행의 종착점에 서 있는 이 시점에, 새로운 조건이 그 위에 얹히고 있다.


매주 우체국으로 향했던 그 대령처럼, 8년 동안 규정을 지킨 사람들도 같은 물음 앞에 서 있다. 약속은 애초에 끝까지 유효한 것이었는가.


2. 세 번의 전환이 남긴 것


2017년 12월 13일, 국토교통부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김현미 장관은 민간 임대사업자 등록을 적극 권장했다. 등록 사업자에게는 구체적인 혜택이 따라왔다. 장기(8년) 의무임대기간 동안 임대료 인상을 연 5퍼센트 이내로 유지하면, 보유 기간 중 종합부동산세 합산이 배제되고, 매각 시 양도소득세 중과도 면제된다는 구조였다. 의무와 보상이 명확히 짝지어진 교환이었다.


첫 번째 전환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왔다. 2018년 9월 13일 부동산 안정화 대책에서 정부는 조정대상지역 내 신규 취득 주택에 대해 임대사업자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세제 혜택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등록한 사람들에게는 경과 규정이 적용됐지만, 제도의 조건이 바뀐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두 번째 전환은 2020년 7월 10일에 왔다. 단기(4년) 임대 유형과 아파트 장기 매입임대(8년) 유형이 폐지됐다. 기존 등록자는 자동 말소 처리됐고, 신규 등록의 의무임대기간은 10년으로 늘었다. 제도에 이미 진입해 있던 사람들에게 조건 변경을 통보한 셈이었다.


2026년 초, 세 번째 전환이 가시화되고 있다. 2017년에 장기(8년)로 등록한 임대사업자들이 의무임대기간을 마쳐가는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2월 SNS를 통해 "의무임대기간 종료 후 등록임대주택의 세제혜택을 일반 임대주택과 동일하게 해야 공평하다"고 밝혔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는 2026년 5월 9일 종료되며 재연장은 없다는 입장도 확인됐다. 서울 아파트 기준으로만 4만 2,500가구에 달하는 등록임대주택이 이 변화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다.


세 번의 전환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제도가 사람의 선택에 개입했다가, 조건을 바꿔 그 선택을 무력화하는 패턴이다.


3. 제도 설계가 말하지 않은 전제


2017년의 임대등록 제도는 단순한 세제 혜택이 아니었다. 민간 임대 공급을 늘리기 위한 국가의 요청이었다. 세입자에게는 장기 주거 안정을, 임대인에게는 의무 이행에 상응하는 세제 보상을 주겠다는 공식적 교환 구조였다. 등록 사업자는 계약갱신 보장, 임대료 상한 준수, 임대기간 유지라는 세 가지 의무를 졌다. 이 의무들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제도에 진입하는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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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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