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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an 20. 2024

개발자의 카메라

Ep2.  뛰지마 다친다

2023년 5월 31일.

오랜만에 회사에서 퇴근을 하는 길,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내가 다니는 회사는 팬데믹 이후에 여느 회사들처럼 재택근무를 했다. 팬데믹이 끝나고 하나 둘,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와 출근을 하기 시작하는 회사가 많아졌다.


그중에서 현재 내가 재직 중인 회사는 근무 방식을 스스로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나는 반려견 두 마리와 동일하게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 있기에 재택근무를 선택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 출근할 일이 잘 없지만, 팀원들과의 교류를 위해 한 달에 1~2번 정도 정도 오피스로 출근을 한다.


배부른 소리지만, 오피스 출근 전 날은 아침에 일어나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걸어서 회사에 출근할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출근 길이 너무 설레었다. 새 카메라를 장만하고 처음으로 출근하는 날이라 그런지 다양한 사람들과 풍경을 담을 생각에 전 날부터 설레더라. 참 오랜만에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마치 중학교 3학년 소풍 전 날에 커다란 DSLR 카메라의 배터리 2개를 충전해 두고, 카메라 가방에 잊은 게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던 그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던 것 같다. 출근길에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순간을, 또는 어떤 풍경들이 내 눈 길을 사로잡을지 설레는 마음이었다. 나에게는 소풍이든 출근길이든 카메라가 있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출근길은 잡혀있는 회의로 발걸음이 급해져서 5시쯤 일찍 퇴근을 하고 여유롭게 카메라를 한 손에 쥐고 퇴근길에 나섰다. 찍은 많은 사진 중에 이 사진은 회사 바로 앞 큰 사거리에 위치한 횡단보도에서 찍은 순간이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 그리고 미세먼지 하나도 없던 5월 말.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켜지자, 어른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2명의 초등학생 친구들이 뭐가 그리 바쁜지 쌩-하니 뛰어가길래 순간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속으로는 "아이고.. 저렇게 뛰다가 다치면 어쩌려고.."라고 생각이 들고 말았는데, 집에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많은 사진 중에 이 사진에 눈길이 갔다.


학교 끝나고 이 두 명의 친구는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 특별한 어딘가를 가는 건 아닐 텐데, 설레는 마음에 신호등 불이 바뀌자마자 전력 질주하는 아이들이 담긴 사진을 보며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10년 전 고등학생 때만 해도 뛸 일이 참 많았다.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점심시간을 앞둔 4교시가 끝날 시간만 되면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있지도 못했다. 종소리가 들리면 바로 뛰었어야 하니까. 또 학교 매점에서 좋아했던 주먹밥 재고가 다 떨어질까 봐 친구랑 뛰었던 일. 참 이때는 먹기 위해 뛸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것마저 추억이다.


주말 밤늦게 친구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부모님 몰래 집을 나와 친구들과 친구 집으로 뛰어갔던 날들, 방학 때 만화방에서 좋아하는 책들을 빌려 빨리 보고 싶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인 친구 집으로 책을 다 흘리면서 뛰어갔던 날들, 더 어렸을 때는 놀이터에서 친구랑 장난치다가 친구가 화가 나서 쫓아오는 걸 도망쳤던 날들..


사소한 일들인데 그때는 뭐가 그렇게 설레고 마음이 급했는지. 그때는 뛰면서 웃었던 날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사진 속의 아이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뛰었을까. 싶어 눈길이 계속 갔던 사진이다.


- 바쁘게 뛰어가면 어른들이 '뛰지마 다친다!'라고 들었던 어렸던 내가 생각났던 날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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