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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Mar 30. 2024

#18. 물속 세계와 인간 세상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도 미끼를 수없이 던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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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척이요!"

 TV 속에서 한 어부가 낚싯배에서 쌀쌀한 칼바람을 맞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낚싯대와 씨름하고 있다. 한 마리의 대어를 낚기 위해 낚시꾼은 온 힘과 정신을 낚싯대에 집중한다. 때로는 힘을 빼기도, 또 강하게 주기도 하면서 혼신을 다해 대어를 상대한다. 끝끝내 어부는 제 몸만 한 성어를 낚아 올리고, 힘이 빠진 물고기는 몸부림을 치며 어선 위로 끌려온다. 어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돗돔을 펼치고선 이 녀석이 몇 척(尺)이나 되는지 부지런히 살핀다.
 
 “이 커다란 돗돔을 잡기 위해서 싱싱한 붕장어를 미끼로 썼어요.”
 
 어부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돗돔의 무게만큼 더 무거워진 어선을 이끌고 행복한 마음을 가득 담아 항구로 입항한다. 물론 어부에게는 커다란 대어를 잡지 못하는 날도 많지만 오늘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하루이다. 뿌듯함이 가득한 하루의 석양이 진다. 조금씩,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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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빅!'
 TV를 끄고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 물고기는 자연 상태에서는 언제나 승리하는 포식자의 삶을 살았겠지만, 결국 인간에게는 단 한 번 패배했다. 돗돔이 패배한 이유는 다른 아닌 눈앞에 나타난 붕장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패배의 대가는 죽임을 당하여 다른 이의 먹잇감이 돼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은 괜찮았다. 패배하면 모든 것을 내어 주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니까. 

 그리고 대어를 잡기 위해 커다란 먹이를 주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사실이었다. 작은 물고기를 잡을 때는 당연히 그들의 구미가 당길만한 작은 미끼를 쓰고, 큰 물고기 역시 당연히 큰 미끼를 써야 할 것이다. 돗돔을 잡는다며 멸치를 미끼로 내놓는다면 아마 몇 년이 지나도 돗돔은 눈길 한 번 안 줄 것이다. 

 어부는 커다란 미끼를 던지면서, 동시에 커다란 결과를 바란다. 즉 바닷속에 레버리지 투자를 하는 셈이다. 한 번 돗돔을 낚아 올리고 나면 그 돗돔을 팔아 붕장어를 몇 십 개를 더 사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게 될 것이니 말이다. 승자와 패자 그리고 유인과 결과가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 사회가 바로 물속 세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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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무언가를 써서 다른 무언가를 낚아내는 것이 순전히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다. 다양한 매체에서 마주한 낚시하는 장면을 보며, 당장 눈앞의 미끼를 탐하느라 제 몸이 엮여 버리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가끔은 정말 바보 같고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그저 자연의 법칙이고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법칙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그 자연의 법칙은 인간 세계에서도 충분히 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내 주위에도 눈앞에 달콤해 보이는 미끼가 가득하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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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최근 상영 중인 공연 표 2매를 추첨해서 준다는 광고를 보았고 정말 별생각 없이 내 정보를 넣어 지원했다. 그 광고에서 요구하는 사항 몇 개를 순식간에 입력하고 잠들었기에 내가 그 광고에 응모했다는 사실조차 사실 잊고 있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이 걸려 왔다. 별생각 없이 받았더니 대뜸 그 행사에 당첨이 되었다며 수 십만 원을 호가하는 표를 두 장을 주겠다고 했다.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이후에 조건을 하나 제시했는데, 더해서 내게 매달 고가의 공연 표를 지원할 예정이니 매달 최소한의 문화 이용료 2만 8천 원 정도를 2년간 납부하라고 요청했다. 수 십만 원을 호가하는 공연을, 저렴한 비용으로 매달 누군가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전화기 넘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달콤한 말에 홀려 나는 전화를 받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모르는 이에게 나의 카드 번호를 말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게 전화한 업체 역시도 속도가 생명인 듯 내게 잠시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선 바로 결제를 재촉했다. 카드 번호를 알려주려 카드를 꺼내든 순간, 내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순간 기시감이 들었다. 지금 내 정보를 주려 하는 상대는 그저 5분 전에 내게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며 진실인지 모르는 소식을 전해준 생면부지의 상대였다. 전혀 소비할 계획에도 없었던 곳에 온갖 감언이설에 속아 나는 충동적으로 내 앞에 놓인 미끼를 향해 급속도로 다가가고 있었다. 달콤하고 탐스러운 미끼를 물기 전, 내 이성이 순간 제동을 걸어주었다.  1분만이라도 더 늦게 이성을 차렸더라면, 나는 원하지도 않은 소비에 현재까지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TV 속에 보았던 그 어부처럼 내가 눈앞의 욕심을 못 이겨 순간 미끼를 물었더라면 힘이 빠진 물고기처럼 누군가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을 것이고, 배를 채운 그 어부는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섰겠지.  


 가까스의 기지로 미끼를 입에 물었다가 다시 퉤 뱉어내었다.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어떤 것이 더 저렴한 지 몇 번을 확인하는 나지만, 굴러 들어온 미끼에는 이성을 잃고 정신없이 발려드는 내 보습을 보며 나 역시도 참 모순적인 사람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 차가운 이성이 뜨거운 욕심을 충분히 식혀 줄 만큼 시간이 지나 마음이 차분해졌을 때 나는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인간 세상에서도 미끼와 물질이 당연히 존재한다는 것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물속의 세계는, 인간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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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비슷한 경험을 이미 한 번 더 겪은 적이 있다. 갈비 가게에서 얼마 이상의 음식을 먹고 나면 2박 3일의 무료 제주도 여행권을 주었었는데, 표를 발권하는데 최소한의 발권 이용료가 든다며 십 몇만 원을 요구했다. 무료로 여행하는데, 십 몇만 원이 대수인가 싶어 일단 입금을 하였지만 도저히 여행 일자가 내 일정과 맞지 않아서 절반 가까이나 되는 수수료를 내면서 취소를 했어야 했다. 돌아보니 무료 여행권에 이미 금액을 지불하는 자체가 모순이었는데, ‘80만 원 상당의 여행권이 무료’라는 문구에 속아 한 번 일을 그르친 적이 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나는 같은 수법에 또 당할 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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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쏟아지는 상업 광고를 보면 실소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 광고에서는 어느 음식점에서 얼마의 금액을 내면 음식점 내의 모든 음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사실 일정 금액을 지불한 순간 더 이상 유료화가 되어 버리고 마는데 이것을 무료의 가면으로 대중에게 광고하는 것을 보고 저런 허접한 수법에 걸려드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의 심리와 여론이라는 것이 이렇게 단순한 논리로 작동하는 것인가 싶었다. 어떤 이가 보기에는 아주 뻔한 수법일지라도, 또 어떤 이에게는 엄청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이 경우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LASIK 수술을 하기 전 다양한 안과에 정보를 문의하며 알아보고 있었는데 어느 한 병원에서는 내가 누군지 묻지도 않고선 정가에서 10만 원을 할인해서 시술해 주겠다고 했다. 물론 가볍게 생각하면 정가보다 10만 원 더 저렴하게 시술받을 수 있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적용되는 할인이라면 그것이 과연 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안과의 입장에서는 이미 할인을 해주었기 때문에 추가 할인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을 논리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제부터 조금씩 이 세상의 시장 논리는 누군가의 설계로 이루어져 있고, 나는 그 설계에 말려드는 소비자가 되는지 아닌 지를 결정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가령 편의점에 2개의 물건을 사면 하나를 더 주는 물건을 볼 때에도 그럼 기본적으로 1개의 물건을 살 때는 내가 사지 않을 물건의 가격까지 더해져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껴져서 나는 되도록이면 그 물건을 고르지 않는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1.3개의 값을 치르게 만드는 설계에 빠져 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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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달콤한 미끼와 유인책이 존재한다. 그 수법에 말려들어 갈지 말 지는 우리의 욕심과 이성이 정한다. 좋은 것은 결코 제 발로 찾아가는 일이 없으니, 정말 탐나는 재물과 빛나 보이는 기회가 눈앞에 보이더라도 한 번은 더 차분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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