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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May 03. 2024

#20.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나는 건넸고, 그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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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사무실로 숙취 해소제를 무려 50개나 배송받았다. 이유인즉슨, 이전에 한 음료 회사에서 직장인을 위해 숙취해소제를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그 행사에 당첨되어 우리 사무실로 커다란 음료 상자를 하나 배송받게 되었다. 상자는 커다랬고, 성인 남자가 들기에도 꽤 무거운 무게였다.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숙취를 해소해 준다는 음료가 가득했다. 파아란 병에 담긴 숙취해소제는 ‘당류 Zero’라고 커다랗게 써져 있었다. 하지만 커다랗게 써진 글씨와는 다르게 한 상자 가득 찰랑이는 유리병들은 ‘0’이라는 상징성과 굉장히 대조적으로 비쳤다. 여태 살면서 마셔왔던 모든 숙취 해소제의 수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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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물건이 생겨 꽤나 기뻤지만, 사실 나는 숙취 해소제를 들이켤 만큼 음주를 하지 못하는 체질이다. 공짜로 받아낸 이것들을 어떻게 소비해 내느냐가 또 다른 난제로 남았다. 결국 한아름 선물 받은 이 물건들을 다시 타인에게 선물로 건네는 것밖에 정답이 없었다.
 가장 먼저 나와 친한 동료 무리에게 한 통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도 잔뜩 나누어주었다. 그럼에도 아직 두 상자나 더 남게 되었다. 그때 문득 우리 회사의 수장인 센터장님의 얼굴이 내 눈가에 번득였다. 지체 없이 나는 센터장님께도 이 선물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취 해소제이기 때문에 어르신들께도 드리기 무난한 물건이었고, 협찬을 받은 물건이라고 잘 말씀드리면 무난한 선물이 될 수 있으시라 생각했다. 이것을 드리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 직장의 최고 어르신이라 드리는 것이었다. 좋은 것이 있다면 윗사람을 생각하라, 자라오며 늘 머릿속에 박힌 가치관이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찰랑거리는 유리병 한 통을 당당하게 들고 의기양양하게 센터장 실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와 독대했다.
 

“센터장님, 제가 이것을 협찬받게 되어 한 박스 나눠드리려 방문했습니다.”
 
 센터장은 파릇파릇한 신입 직원이 아무 말도 없이 자기를 찾아온 것에 대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내게 되물었다.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나는 건넸고, 그는 답했다.

사실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나의 호의에 ‘왜’라는 의문을 던질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심히 당황한 나는 ‘협찬을 받아서 드리는 것이고, 유용하게 쓰실 것 같아서’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센터장은 잠시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알겠다.’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자리에 돌아와 이내 나는 오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내 호의에 ‘왜’라니.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아무 뜻 없는 호의에도 ‘왜’라는 의문을 ‘왜’ 가지는지.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아무 뜻 없는 호의에도 역시 상대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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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돌아보면 나의 호의도 이따금씩 상대방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졌던 경우가 많았었다. 나는 나름 친해지자는 생각으로 격식 없게 대한 것을 어떤 이는 무례함으로 받아들여진 경우도 있었지. 이성 관계에 있어서는 나의 호의 내지는 호감 표현을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꽤 많았었다. 한 소녀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밥을 사겠다며, 커피를 사겠다며 소녀에게 다가간 적이 있었는데 그 소녀는 아무 이유 없이 본인에게 왜 밥과 커피를 사느냐며 나를 멀리하기도 했다. 충분히 내 호의가 남에게는 다른 의미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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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의문점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무서워서 나의 호의와 사랑을 함부로 베풀면 안 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아니라는 결론이 섰다. 하늘이 내려준, 무조건의 사랑인 부모의 사랑조차도 자식에게 가끔은 왜곡되어 전달될 때가 있다. 하지만 해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식을 계속 사랑하는 수밖에.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지 않듯이, 오해 살까 두려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결코 옳지 않은 명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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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공짜로 받은 물건이었음 이에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사랑인 것이다. 그래, 나는 그저 센터장에게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센터장이 내게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리.


 “단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던, 나는 이렇게도 사랑을 표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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