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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Apr 11. 2024

#19. 친구가 되기 어렵겠어요.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신 계급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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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히 학창 시절 사회과 수업시간에 현대 사회의 계급은 완전히 철폐되었다고 교육받았다. 한반도에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가 명시적으로 폐지되었고, 현대사회에 들어 국가의 수장을 뽑을 때 보통 선거로 명시된 1 인 1 선거권 제도를 도입하며 완전히 계급이 철폐된 평등적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시장의 성공으로 사회 곳곳에는 자금력과 정보력, 그리고 권력으로 위시된 권력자들이 존재하지만 현재 사회에는 투표권을 통해 권력에 대항해서 권력가들을 견제할 수 있다는 보편적 믿음이 형성되어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스스로 계급이 철폐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따금씩 자본과 권력에서 나오는 불합리함을 삶의 곳곳에서 느꼈지만, 평등을 위한 사회적인 장치들이 있었기에 불합리하면서도 평등한 사회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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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처해있는 위치도 사실은 굉장히 불합리적이라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20대에 유럽, 미국, 일본, 홍콩 등 여행을 이곳저곳 꽤 많이 다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선진국 반열에 든 국가들을 주로 여행했다. 늘 외국을 방문할 때면 깨끗하고 정돈된 숙소에서 묵으며 최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현지인을 만나 소통했다. 관리된 관광지와 나름 고급진 음식을 먹으며 타국을 여행할 때에는 나도 자본가가 된 듯 행동했고, 그들의 발전된 문화를 겪으며 나도 몰래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심이 생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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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국내에서도 내 처지에 만날 수 있는 외국인 역시 대다수가 선진국 출신이거나 개발도상국의 부유층 자제인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대학 생활을 하며 마주치는 외국인들은 대개 같이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는 학생들이었으며, 본가에서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이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기에 선진국 출신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만나기 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을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서야 알게 되었다. 전 세계에는 나와 같은 대학생이 수백, 수천 만 명이 있지만, 대학시절 해외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견문을 넓힐 수 있게 허락된 학생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국민들이 여행은커녕 가계 저축을 일정 수준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되는 국가 자체가 전 세계의 절반도 채 안되었고, 국내 여행조차 원할 때 갈 수 있는 국가조차도 몇 되지 않았다. 해외, 특히 개발도상국을 돌아다니며 현대적 의미의 계급 질서가 존재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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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며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린 소녀들과 중년의 여성들을 여행을 다니며 꽤 많이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국으로의 관광비자조차 신청하기 버거운 환경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았고, 한국행 비행기를 구매하는데만 석 달치 봉급 이상을 고스란히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비행기 표라는 것이 마치 옛 조선시대의 마패(馬牌)를 보는 듯하였다. 누군가는 한양 땅을 밟기 위해 말을 몇 마리나 데리고서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누군가는 볏짚을 끊어가며 발을 부르트게 걸어 목적지에 도달하는 모습과 같아 보인다. 똑같은 인간이 같은 땅을 밟기 위해 걸리는 길이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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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 2년간 주재원으로 파견되면서 나는 막연히 생각했었다. 2년간 타국에 몸을 담을 것이니, 현지인 친구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하지만 현지인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냉정하게도 매우 어려웠다. 아무리 물가가 저렴한 개발도상국이라도, 기존에 내가 누리던 문화생활을 영위하려면 기존과 똑같은 값어치를 내야 했다. 단적으로 현지에서 프랜차이즈 커피를 한 잔 마시기 위해서는 5$를 내야 했다. 사실상 그 물가에 익숙한 나는 크게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지만, 한 달에 약 300$을 채 못 버는 현지인의 입장에서는 커피 한 잔의 가격으로는 엄청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렇다. 현지인과 함께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나도 현지인처럼 0.5$의 값싼 차를 마시거나, 상대에게 매번 5$의 커피를 매 번 대접해야 했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주머니에 지폐가 있음에도 굳이 타인과 어울리겠다며 설탕만 들어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았고, 비겁하게도 친구에게 매 번 음료와 음식을 사줄 용기도 없었다. 입에 맞지 않는 음료를 억지로 입에 털어 넣기도 싫었고, 본심도 모르는 타인에게 매번 무언가를 사주기도 싫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것은 고립이다. 그런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오늘 내 삶을 잘 누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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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이 다르다는 것은 꽤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같은 숨을 쉬고, 같은 땅을 밟으며 살아가는 우리 사이에 채울 수 없는 간극이 있는 이유는 단지 서로 국가의 경제력 차이가 있다는 것, 단지 그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친구가 되기 힘든 이유였다. 국가 간의 힘의 논리, 국가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는 또 다른 의미의 계급 사회를 낳고 있었다. 전통적 의미의 명시적인 계급이 완전히 사라진 우리 사이에서, 우리가 어울릴 수 없는 것은 국가의 경제력이라는 현대적 의미의 계급이 완전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재벌가의 물려받은 재물을 막연히 부러워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도 물려받은 국가의 경제력을 막연히 부러워 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평범한 서민인 나는, 어떤 사회에서는 재력가보다 더욱 커다란 계급을 가진 것처럼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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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친구가 되기 어렵겠어요.” 이렇게 얘기하고 나는 누군갈 떠나갔다. 우리는 친구가 되지 않은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친구가 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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