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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May 21. 2024

#24. 보내는 이와, 받는 이

- 국제개발원조를 바라보는 단상(斷想)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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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비극은 상대가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일 뿐, 상대방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의 생각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은 있지만 결코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날 사랑해?”라며 끊임없이 상대에게 묻고 또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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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의 의중을 알 수 없기에 우리 사회는 복잡하다. 나 역시도 이따금 그런 상황을 맞이한다. 나는 이전에 커피 한 잔을 잘못 마신 날 심장이 급속도로 뛰어 하루 종일 헛구역질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날의 경험 때문에 가능하면 커피는 안 마시는 대신 차 종류를 마시게 되었다. 단체로 음료 대접을 받을 때, 누군가 나를 위해 차를 사줄 때면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맙다.  이 사람이 나를 더 생각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것을 더욱 느낀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다 내 마음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사무실에 근무하는 날이 많다 보니 음료 선물을 받을 때가 많은데, 내 식성을 아는 사람이면 의례 차 종류를 사 왔겠지만 사실 대부분 커피 선물을 받는다. 커피를 안 마시는 나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선물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먹지 못하는 음식을 수중에 지니고 있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그런 물건이 손에 들어온다면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내 손에서 한시라도 빨리 치워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애초에 가지지 못할 물건을 받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나를 위해 준비했을 이 물건을 받지 않는 것은 되려 그것대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일단은 웃는 얼굴로 받아 든다. 겉으로는 웃고 있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커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나의 웃는 모습만 보았던 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대개 그 커피는 카페인이 필요한 이에게 줘버리고 말지만.

이런 일은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 첫째로 물건 하나로 두 개의 행복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선물을 받아 기분이 좋고, 또 다른 분께 행복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각물유주(各物有主)라며 물건이 제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하나의 물건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다만 나쁘게 본다면 상대는 내게 아무 쓸모없는 선물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상대방은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효용을 느끼지 못했다. 원하는 것을 서로 얻지 못함으로 제일 효율성이 좋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비용을 써서 좋은 마음에서 본인에게 이로운 것을 주었을지 몰라도, 받는 이에겐 바로 버려버리고 싶은 물건을 억지로 받아 드는 완전히 동상이몽의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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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간의 선물도 이러하듯이, 국제 사회의 경제적 원조도 가끔 비슷한 결을 보인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사업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을에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단 하나, 마음에서는 식수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식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약 1시간 30분 거리의 이웃 마을로 걸어가 무거운 물을 머리에 지고 와야 했다.  그 일은 동네의 모든 아낙네들의 몫이었다. 전문가의 시선에서 이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 식수였다. 수원지를 찾아 마음에 우물을 만들 수 있다면 아낙네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열심히 수맥을 찾아 나섰다. 선진국에서 들여온 훌륭한 기계와 기술로 우리는 곧 물길을 찾아내었고, 우물 건설은 그 물길을 따라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우물의 구멍은 무서운 속도로 땅 아래로 파져 들어갔고, 이내 그곳에서 차가운 지하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성공적이었다. 아마 우리는 그들에게 구원자처럼 비쳤을 것이다. 우물에 물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서 이 마을에 축복이 찾아왔음을 선포하는 날인 우물 개수식의 날이 되었다. 마을 이장의 축사를 시작으로 차가운 우물의 지하수가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날씨는 화창했고, 그곳의 모든 이는 웃음이 가득했다. 개수식은 성공적이었다. 한바탕 떠들썩한 행사가 끝난 뒤 VIP를 모신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그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치적을 치하하는 또 하나의 행사이자 앞으로의 협력을 약속하는 자리였다. 우물 앞에 ‘영광’, ‘무한한 감사’, ‘동행’ 등 무거운 단어들이 연회장을 맴돌았고, 서로의 우정을 과시하며 연회도 성공적으로 이어졌다. 더할 나위 없었다. 이대로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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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개월 뒤, 현장 상황을 살피기 위해 다시 그 우물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당연히 잘 보존되고 있을 것이라 믿었던 그 우물은 제 역할을 못할 만큼 산산이 부수어져 있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밤에 산짐승이 내려와 우물을 헤쳤을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수많은 의문을 가진 채 우물이 부수어진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의외에 범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물을 부순 이들은 다름 아닌 직접적인 수혜자였던 마을의 아녀자들이었다. 우물을 부신 이유를 듣고선 더욱 놀랐다. 밝혀진 사 실로는 하루 왕복 3시간씩 물을 뜨러 다니는 그 시간. 우리의 눈에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시간이 사실은 그녀들에겐 유일하게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는 여가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시간을 이용해 친구를 만나 수다도 떨고, 남편 흉도 보면서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었는데, 마을에 우물이 생기면서 그들의 소중한 시간이 박탈되어 버렸다고 대답했다. 

주었던 이와 받는 이의 시선이 완전히 달랐던,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완전히 다른 상상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원했던 것은 낡아버린 물지게를 새것으로 바꾸는 것일 뿐, 마을에 우물이 생기는 것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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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은 이렇게도 다르다. 내 눈에 좋은 것이 남 눈에도 과연 좋은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과연 타인에게도 행복이 맞는 것일까. 


 당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으므로 우리는 늘 비극 속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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