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D-47 2018. 6.22. (일)
ㆍ 글로벌 청년 새마을 지도자 국내 교육이 끝이 났다. 이제 2년간의 스리랑카 생활 중 첫걸음마를 뗀 셈이다.
ㆍ 발대식은 구미 금오산 호텔에서 이루어졌고 선서와 포부를 다지는 것으로 교육은 마무리되었다. 출국은 8월 8일로 확정이 났고 이제 슬슬 한국 생활을 정리할 때가 오고 있다. 아직도 많이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활동에 관한 확신은 점점 생기고 있기도 하다.
파견) D-24 2018. 7.15. (일)
ㆍ스리랑카로의 파견을 3주 앞둔 오늘, 오랜만에 외출에 카페에서 펜을 든다.
나나에게 일단 현재 상황을 이야기했다. 말을 하는 도중, 눈물이 주르륵 났다. 내가 정말 이 아이를 사랑하긴 하는구나. 오늘 한 번 더 느낀다. 2년 동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기다려 줄 생각인 것 같다. 한 없이 감사하다.
ㆍ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빈둥거렸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심지어 밥도 잘 안 먹었다. 잘 안 들어간다. 그냥 집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런 의욕이 들지 않는다. 시간은 보내야 하기에 그저 컴퓨터 오락만 하고 있다. 내가 진짜 해외 살이를 하러 가는 것이 맞는 걸까.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지 않고, 앞으로는 또 어떤 삶이 펼쳐질 것일까에 대해서 아무런 감이 잡히지 않기에 그저 시간이 붕 떠 있는 것만 같다.
생각보다 빨리 짐을 빼야 했기에 동규와 같이 살던 집을 빨리 부동산에 맡겼고, 짐을 빼서 나는 본가로 들어왔다. 이제, 슬슬 출국 준비를 해야지.
파견 D-DAY 2018. 8. 8. (수)
ㆍ 어느덧, 그날이 다가왔다. 1년 반 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옆의 동규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하느라 바쁘다. 심경이 복잡하다. 진짜. 못 해 준 것만 생각이 난다더니, 정말 그랬다.
여태 있었던 일 중 잘못된 것만 생각난다. 마음을 조금 더 예쁘게 쓸걸. 나는 왜 이렇게 나밖에 몰랐었나. 내가 죽을 때 기쁘게 나를 배웅해 줄 사람은 얼마 정도 있을까.
ㆍ 사랑하는 사람은 찾았지만, 아직 나는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아직 부족하고 욕심 많은 나 자신. 언제든 남에게 이기려고 했던 이 마음가짐, 많은 감정을 남겨두고 나는 대한민국을 떠난다. 당장 몸이 스리랑카로 간다고 해서 별로 변하는 것은 없겠지만, 누군가에겐 참으로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후회는 이까지 접어두고 새로운 날갯짓을 시작하자. 자 이제 비상이다. 안녕.
현지 적응교육) D+1 2018. 8. 9. (수)
ㆍ 오늘 드디어 스리랑카에 도착했다. 한참이나 멀어 보이던 그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가족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 그렇지 못했던 친구, 모든 감정이 한데 모여 참 복잡했다. 스리랑카에 간다는 긴장감도 조금 서려 있고. 정신 차리면 이 순간이 올 것 같았으니, 밤 11시 50분이 되어 스리랑카 콜롬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를 배웅해 주시러 재단 김정현 부장님이 직접 공항까지 와주셨다.
약 8시간을 비행기로 날아가 도착한 스리랑카의 행정수도 콜롬보. 새벽 4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Harti라는 숙소에 체크인했다. 앞으로 업무를 같이 진행할 Co-ordinator분들을 만나고 입국 서류 정리를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바로 이민청으로 향했다.
ㆍ 너무나 피곤한 하루이다. 하지만 난생처음으로 손으로 음식을 먹는 현지인을 보았고, 또 그를 따라 나도 한 번 해 보았다. 스리랑카 현지에서는 주식으로 카레를 먹는데, 어설프게 손으로 음식을 집는 나는 아직은 서툴고 미숙한 것투성이다. 잘 버텨낼 수 있겠지?
현지 적응교육) D+2 2018. 8.10. (금)
ㆍ 일단 이번 주까지는 준비와 대기 기간인가 보다. 계속 방에 누워 빈둥빈둥하고 있다. 먹고 쉬고 조금 걷다가, 또 먹고 쉬고. 참 여유로운 하루이다. 아직은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들지는 않는다. 무척이나 무료하지만 나름 좋다.
ㆍ 어제 우리의 코디네이터 '자나끄' 교관을 만났다. 예사 그렇듯 덩치와 눈매는 매서웠지만, 눈망울이 참 선하다고 느껴졌다. 자나끄 교관과도 꽤 친해졌다. 자나끄 교관은 한평생 스리랑카에서 살아온 현지인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 몇 마디를 나누어보니 무섭다는 감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생활하며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재미있어진다.
ㆍ 오늘의 일정은 새마을 사무소 방문. 방문하기 전 스리랑카의 국민 스포츠인 '크리켓(Critket)' 경기가 이번 주말에 있는데, 표를 잠시 사러 매표소로 들렀다. 크리켓은 약 7~8시간 동안 진행하는 스포츠 경기라고 했다. 2,000루피를 주고 표를 샀는데 어떻게 될지, 재미는 있는지 잘 모르겠다. 빨리 경기장에 가 보고 싶다.
ㆍ 처음으로 새마을 사무소 건물로 가 보았다. 생각보다 정말 정갈한 건물. 깔끔했다. 소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여태 진행한 프로젝트 등의 설명을 들으며 제공해 주신 밀크티를 한 잔 마셨다. 실론은 밀크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던데, 정말인 듯싶었다. 적당히 달고, 엄청 부드러웠다. 티 한 잔을 곁들이며 소장님과 간단한 면담을 한 후 오늘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리랑카 중심부에 있는 커다란 공원인 Indepence Square에 잠시 들렀다. 넓게 펼쳐진 공원이었는데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에 날씨가 정말 쾌적하고 좋았다.
ㆍ 내일은 도심 여행을 할 예정이다. 일정이 끝나고 숙소 방에 들어와 쉬는데, 노곤하고 편안하고 정말 좋다. 내일이 살짝 기대되는 밤이다.
현지 적응교육) D+3 2018. 8.11. (토)
ㆍ 스리랑카에서 맞는 첫 주말이다. 토요일에는 소장님과 자나끄 교관이 직접 시내 탐방을 해 주기로 했고, 일요일에는 크리켓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시내로 나갔다. Cinnamon Grand Hotel을 시작으로 투어가 시작되었다. 스리랑카에 왔으니 스리랑카 물가를 알아야 한다면서 마트 구경부터 시켜주셨다. 물가는 정말 살인적이었다. 스리랑카의 월 소득은 3만 ~ 4만 루피 [약 20~30만 원] 정도의 나라에서 콜라가 약 3,000원 가까이했다.
이런 공산품을 시작으로 온갖 물건을 다 보았다. 특히 새로이 보는 과일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애플 수박, 망고스틴, 두리안 등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ㆍ 상점을 한번 쭉 보고 스리랑카 콜롬보 해안가에 있는 Galle Face를 잠시 들렀다. 콜롬보 주변에 있는 해변이었는데, 꽤 시원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인도양을 보았다. 가슴 한편이, 아찔했다.
ㆍ 다음으로는 콜롬보에 있는 Gangarayama 사원에 들렀다. 맨발로 들어가서 부처님께 절 한 번, 보리수나무에 절 한 번, 절 안에 있는 탑에 절 한번 하면 된다고 자나끄 교관이 알려주었다. 향내가 물씬 풍기는 절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스리랑카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 정말 중요한 날이다. 불교에는 보름달이 뜬 날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하시던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스리랑카는 국교가 불교이다. 그만큼 이 보름달이 뜨는 날은 성스럽게 보내야 하고, 그날만큼은 온 국민이 음주도 삼가며 본인의 삶을 반성하는 하루를 보낸다. 스리랑카에서는 보름달이 뜨는 날을 ‘Poya Day’라고 부르는데, 앞으로 Poya Day가 되면 가끔 절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ㆍ 점심을 숙소에서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신 후에 다시 길을 떠났다. 스리랑카 대형 유통인 Arpico에 들러서 우리가 지금 필요한 세제 / 밤에 먹을 간식 등을 사고 Dutch Hospital에 들렀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때 있었던 건물이었는데 최근 관광지도 바꾼 장소라고 말씀해 주셨다. Dutch Hospital 안에 있는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 Spa Ceylon 등을 구경하고, 맥주 한 잔씩 소장님께서 사주셨다. 맥주 4잔에 4,000루피 [30,000원 정도]가 조금 넘었다. 우리는 가끔 기분 내면 마실 수 있지만, 현지 일반인들은 절대 올 수 없는 곳이라 하셨다. 씁쓸했다.
ㆍ 마지막으로 수제 직물 가게인 Barefoot이라는 곳과 Majestic city라는 건물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투어를 끝냈다.
ㆍ 방에서 쉬다가 처음으로 주변 카페에 다녀왔다. 가격도 저렴하고 좋았다. 찾는 데까지 꽤 애먹었지만, 커피 맛이 좋았다. 앞으로 자주 이용하게 될 듯하다.
현지 적응교육) D+4 2018. 8.12. (일)
ㆍ 스리랑카에서 맞는 첫 일요일이다. 오늘은 자나끄 교관과 같이 크리켓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크리켓은 이곳의 국민 스포츠로, 엄청난 인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세계 1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경기가 있었고, 5 연속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였다. 야구는 본 적 있지만, 크리켓은 단연 처음이었다. 크리켓 경기 관람이 처음이기도 하고 자나끄 교관님과 어디를 가는 것도 처음이라 많이 기대되고 설렜다.
경기를 보러 가기 전 자나끄 교관이 규칙에 대해 대충 설명해 주셨는데 사실 이해를 잘하지 못했었다.
현장에서 직접 보며 이해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은 숙소에서 툭툭이로 250루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들어가기 전 노점에서 크리켓 응원복과 페이스 페인팅을 사서 했다. 2,000루피나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자리도 시원하고 전광판도 잘 보였다. 경기장 뒤쪽으로 커다란 전광판이 있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모두 수작업으로 경기 현황을 갱신하고 있었다.
경기는 11명의 수비수와 2명의 공격수로 이루어져 진행했는데, 선수들은 넓디넓은 운동장에서 맨손으로 공을 잡아내고 있었다. 오늘은 50 Over Game이었는데, 1 Over에 6개의 공을 던지며 타자가 공을 쳐서 펜스 바깥으로 공을 넘기면 6점. 한 번 이상 바운드 되고 공을 넘기면 4점. 야구처럼 안타를 쳐서 공격수 두 명이 서로 위치를 바꾸면 1점을 득점하는 식으로 참으로 단순하고 호흡이 긴 스포츠였다. 게다가 아웃시키는 방법이 참 어려워서 한 타자가 올라와 몇 시간씩 득점을 내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스리랑카 선수들이 4점이나 6점을 내면 온 경기장에 함성과 스리랑카 국기가 펄럭였다. 정말 장관이었다.
경기를 보면서 자나끄 교관의 설명을 듣고, 인터넷에 규칙을 찾아가며 경기를 보니 빠르고 재미있게 이해가 잘 되었다. 맥주도 마시고 핫도그도 먹으며 경기를 보니 어느새 1이닝이 끝나 있었다. 스리랑카의 공격이 모두 끝나니 딱 4시간이 지나 있었다. 점수는 299점으로 마무리되었다.
약 30분의 휴식 시간 동안 자나끄 교관의 친구들을 만났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지만, 우리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마 우리가 스리랑카 응원복을 입고 있어서 그랬나 보다.
ㆍ 밤 8시 30분이 되어 남아공의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첫 번째 타자가 단 1점도 내지 못하고 아웃을 당해 버렸다. 경기장은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그걸 시작으로 세계 1위의 남아공은 우수수 무너졌다. 공격에서 0점을 기록하는 Duck이 2명이나 나왔고, 결과적으로 2시간도 채 안 되어 남아공의 공격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경기장 분위기는 완전히 축제였지만, 우리는 혹여 사람이 몰릴까 부리나케 경기장을 벗어나 트리 휠을 타고 콜롬보 시내로 향했다.
ㆍ 집에 가기 전 음식점에 들려 현지식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맛있었다. 한국에서 자주 먹던 볶음밥 맛이었는데, 양이 정말 많았다. 맛있게 잘 먹었지만 반도 채 못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들어와 푹 쉬려고 했는데, 어제 사놓은 우유 한 통이 방에 터져 있었다. 아마 방 온도가 뜨거워서 터졌나 보다
급히 수습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현지 적응교육) D+5 2018. 8.13. (월)
ㆍ 어젯밤에 너무 못 잤다. 숙소 안에는 모기장이 있는데, 그냥 펼치고만 잤더니 모기가 밑으로 다 들어와서 너무 많이 물렸다. 자나끄 교관이 모기장을 침대 밑으로 다 넣고 자라고 하신다. 안 그러면 모기에게 다 물린단다. 내일부터는 꼭 그렇게 해야겠다.
ㆍ 아침에 소장님의 짧은 특강이 있었다. 국제 개발 협력의 이해라는 수업이었는데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잘 설명을 해주셨다. 앞으로 매일 10시 30분 즈음에 차 마시는 시간을 가진다고 말씀해 주셨다. 오늘 처음으로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는데, 맛이 참 좋았다. 케이크도 하나 곁들여 먹었는데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소장님이 강의를 이어주셨다. 우리가 하는 사업에 개괄적 설명을 해 주셨다. 전임자 중 Hewadiwela 마을에서 일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일을 많이 꼬아놓았나 보다. 허위 문서 작성에, 공금 횡령까지. 그분 이야기를 하면서 눈빛이 확 변하셨는데, 엄청 무서워지셨다. 첫인상처럼, 소장님은 보통 분이 아닌 듯하다.
ㆍ 오후에는 자나끄 교관과 'Ape gama'라는 민속촌에 다녀왔다. 우리나라 옛날 민속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옛날에 먹던 간식 같은 것을 팔기도 하고 뱀을 가져다 놓고 각종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일단 눈에 들어온 것은 구석기시대의 느낌이 나는 건물들이 보였다. 그곳에서 사는 듯한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고. 자나끄 교관이 이런저런 설명들도 많이 곁들어 주셔서 너무 좋았다. 가다가 어느 집 앞에서 과자를 팔고 있는 아이를 보았는데 손에 반죽을 잔뜩 묻혀가며 무언갈 만드는 모습이 예쁘기도 했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소녀가 조그마한 손으로 조물조물 만들고 있는 저 음식의 맛은 어떠할까 해서 하나 사 먹어 보았다. 1개 30루피 정도 해서 100루피를 주고 과자를 사 먹었는데, 바삭바삭 약과같이 맛이 좋았다. 아이는 내가 가져간 곰 인형을 빤히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에도 만약 이 곰 인형을 건넨다면 더러워지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저 세탁하면 그만인 것을. 옆에 동그란 땡전 같은 'Wadi'라는 음식도 팔길래 10루피씩 주고 사 먹었는데, 상태가 안 좋았나 보다. 먹고 구역질이 나서 구토를 했는데 가래가 같이 올라왔다. 마을 안에는 뱀 쇼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500루피를 내면 뱀을 목에 감거나 만질 수 있었는데, 꿈틀거리는 뱀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피리 소리에 맞추어 가만가만 춤추는 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나가다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도 보았다. 방학이라 여기서 각종 교육을 한단다. 우리의 곰 인형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낸다. 악기를 되는대로 막 두드리는 줄 알았지만, 나름의 리듬이 있었다. 선생님이 와서 이것저것 지도하니, 리듬이 딱딱 맞다. 신기했다.
마지막 코스는 쇼핑. 판화 그림이 하나 마음에 들어서 샀다. 사는 김에 자나끄, 새마을 사무소, 선물도 하나씩 샀다. 다음으로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한다는 'Laksala'라는 상점도 들렀는데 그곳은 많이 비쌌다. 자나끄 교관이 이것저것 상세히 잘 설명해 주어서 행복하게 잘 투어를 마쳤다.
ㆍ 저녁 식사를 하고 낮에 소장님이 주신 자료를 한 번 읽어보고 주변 카페로 향했다. 엄청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페인데, 물가가 있다 보니 겨우 3~4천 원밖에 안 했다. 저렴한 가격에 높은 질의 음식을 즐길 수 있으니 너무 좋다.
ㆍ 내일부터는 현지어 수업이 시작된다.
현지 적응교육) + 6 ~ 7 2018. 8.14. (화) ~ 15. (수)
ㆍ 어제오늘 양일에 걸쳐 처음으로 스리랑카 현지어 (싱할라어) 수업을 들었다. 우리들의 선생님은 '차머리'라는 선생님으로 대학교에서 언어학 (한국어, 일본어)를 배우셨다고 하셨다. KOICA에서 신규 단원에게 싱할라어를 가르치고 있으시다고 하셨다. 만약 내가 싱할라어를 조금 하게 된다면 선생님과 같이 4개 국어를 하게 되겠지.
ㆍ 수업은 අ ඉ උ එ ඔ (A I U E O)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장부터 들어갔다. 나는 사전에 공부를 조금 하고 가서 더듬더듬 문장을 읽긴 했는데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동규는 안전 정신이 나가버린 표정이었다.
ㆍ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채 차 마시는 시간이 찾아왔고, 우리는 정말 정신을 못 차린 채 수업이 끝났다. 무엇을 배운지도 모르겠다. 정말 큰일 났다, 싶었다. 그래서 수업 끝나고 바로 카페로 가서 자습하고 밥 먹고 카페로 가서 또 자습했다. 앞으로 요 며칠간은 싱할라어에 푹 빠져야겠다.
ㆍ 방에 엄청나게 큰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동규가 그랬다. 너무 겁나서 침대 주변으로 치약을 쭉 - 짰다. 보진 못했지만, 말로만 들어도 너무 징그럽다.
현지 적응교육 D+8 2018. 8.16. (목)
ㆍ 오늘은 현지어 교육이 아니라 아침에 자나끄 교관이 음식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오후에는 직접 현지 음식을 먹어 보는 활동을 한다. 오전에는 자나끄 교관이 직접 PPT로 현지 음식에 대해 강의를 해 주셨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같이 들었는데, 음식의 이름도 생소하고 생김새도 익숙지 않아서 눈과 귀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점심은 Curry Pot이라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종업원에게 처음으로 싱할라어를 사용해 보았다. 말이 대충 통해서 신기했다. 이곳 사람들은 손이 참 큰 것 같다. 동규와 둘이서 한 그릇만 시켰는데도 다 먹지 못했다.
ㆍ 밥을 먹고 잠시 인도양 구경을 했다. 철도길 뒤로 펼쳐진 바다는 참 인상적이었다. 바다를 보고 주변에 있는 콜롬보 시내에 있는 전통 시장인 Kolupiya라는 시장에 들렀다. 들어가자마자 까마귀 특유의 지독한 냄새 때문에 코가 아팠는데, 그 까마귀들이 정육점의 고기를 쪼아 먹는 것을 보고 토할 뻔했다. 너무 역겨웠다. 솔직히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컸다. 옆에서는 과일 가게가 많았는데 시큼한 두리안 냄새까지 맡으니 머리가 너무 어질어질했다. 진짜 개발도상국에 왔구나, 우리나라와 확실히 다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시장을 탐방한 뒤, 한국 식료품점인 '하나 마트'라는 곳을 들렀다. 된장, 고추장 등이 있었지만 너무 비쌌다. 삼겹살도 팔던데 언젠가는 사 먹을 일이 있겠지.
ㆍ 오후에는 식당 탐방을 잠시 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사를 만드는 조리대를 잠시 보았는데 단연 눈에 띈 것은 파리 떼였다. 파리 떼들이 음식에 앉았다 날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식당 안은 무지하게 더웠고, 구릿한 냄새가 났으며 전체적으로 불결한 느낌이 강했다. 작은 식당 속에서 성인 남자 4명이 열심히 요리하고 있었다. 자나끄 교관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었는데도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도 그 속에서 우리를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고 계신 주방장님을 봐서라도 절대 불편한 내색은 못 했다. 식당 옆쪽에는 작은 식당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곳이 차를 만드는 곳인 듯했다. 그곳에 들어가니 카피 1잔과 케이크를 건네주신다. 한 분은 많이 부끄러우신 듯 눈도 잘 못 마주치신다. 이런 것들을 보면 랑카 사람들이 참 친절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현지 적응교육) D+9 2018. 8.17. (금)
ㆍ 오늘은 아침부터 Dehiwala 동물원로 향했다. 가기 전에 자나끄 교관이 여권을 꼭 챙기라고 했다. 거주 비자가 있으면 입장료가 훨씬 저렴해진다고 했다. 한 50% 정도 저렴해지겠지 생각했는데, 무려 96%나 입장료가 줄어들었다. 동물원에 들어가려면 외국인은 2,500루피[약 17,500원]를 내야 했지만, 현지인은 100루피[약 700원]만 내면 되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가격 차이가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ㆍ 들어가자마자 수족관으로 향했고, 바로 충격을 받았다. 수질이 너무 안 좋았다. 과연 이것이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전시 유리 상태가 엉망인 것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료가 저렴하고 지금이 학생들 방학 기간이라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동물원이 엄청나게 넓었다. 규모에 대해선 큰 기대를 안 했는데, 한 40분 정도 훑어보았지만, 아직 20%도 못 본 상태였다.
ㆍ 자나끄 교관을 우리에게 동물원 탐방 중간중간 미션으로 현지인들에게 싱할라어로 인터뷰를 시켰다. 참 여기 사람들 순수하다. 말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말을 걸면 너무 좋아하고 싱할라어로 '공부하고 있어요~'라고 얘기하면 눈이 두 배가 된다. 그리고 사진 찍는 것도 참 좋아한다. 한 마디라도 말을 나누면 무조건 사진을 찍자고 먼저 얘기한다. 대화를 나누고 미리 챙겨 간 사탕을 드리면 '스투티이(감사해요)'하며 받는다.
ㆍ 지나가는 길에 50루피짜리 딸기 솜사탕을 샀다. 솜사탕 가게 앞으로 녹조가 잔뜩인 강가에 거위 몇 마리가 보였는데 참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솜사탕은 엄청나게 빨리 녹았고, 엄청나게 끈적였다. 또 충격적인 것은 악취도 엄청 심했다. 동물원 바로 옆에 쓰레기장이 있었다. 정말로 지독했다.
ㆍ 곰을 보러 갔는데, 보자마자 갑자기 쭈그려 앉더니 대변을 보기 시작한다. 한낱 짐승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 용변을 보는 저 곰의 느낌은 어떨까.
ㆍ 한참 관광하다가 한국어로 말을 거는 사람을 만났다. 스리랑카 남부 쪽에서 한국어 과외를 하고 계신다는데, 한국말을 참 잘하시더라. 그 사람의 아이들도 만났는데 눈빛이 초롱초롱 참 예뻤다. 같이 사진도 찍었는데 그 아이의 초롱거리는 눈빛에 한참이나 취해있었다. 우리와 꽤 오랜 시간같이 동물원을 둘러보았다.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는데 그걸 본 원숭이가 박수를 짝! 치더니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철창 밖으로 손을 내민다. 어찌해야 하나 자나끄 교관에게 묻자, 자나끄 교관은 외부 음식을 동물에게 주면 벌금을 내야 한단다. 줄 듯 말 듯 원숭이에게 장난쳤는데, 결국 주지 않자 뾰로통한 얼굴로 다시 나무에 돌아가 앉는다.
ㆍ 숙소로 돌아가 스리랑카라는 나라에 관해서 설명을 들었다. 사회 / 종교 / 문화에 대해서 다양한 정보를 들었는데, 참 좋은 시간이었다. 점점 스리랑카에 대해서 깊숙이 알아가게 되는 듯하다.
ㆍ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위라지 매니저님이 교실에 계셨다. 스리랑카 생활은 할 만한가 물으신다. 벌레가 많은 것, 바퀴벌레가 무척 큰 것 빼고는 괜찮다고 하니 배시시 웃는다
현지 적응교육) D+10 2018. 8.18. (토)
ㆍ 스리랑카에 온 지 10일이 지난날. 나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일까.
ㆍ 아침에는 다음에 가게 될 문화 탐방에 대비해 자료를 만들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나끄 교관님이 내게 두꺼운 책을 줬는데 그 책에는 정말 다양한 자료들이 많았다. 입국 비자부터 각종 관광지와 싱할라 문법까지, 온갖 자료가 망라되어 있었다.
ㆍ 오전 / 오후 과업을 마무리하고 잠시 Indepence Square에 산책을 하려고 했다. 산책을 가려는 찰나, KOICA 봉사단분들이 잠시 숙소에 들린다고 했다. 오셔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홈 스테이니 OJT니 이런 이야기를 직접 해주셨다. 인터넷에서나 보고 듣던 KOICA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재미있었다. KOICA는 OJT를 2주 정도하고 국내에서 현지어 교육을 약 40시간 정도 받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 한인 교회에 오느냐고 물어보셨다. 교회에 오면 각종 혜택이나 정보가 많다고. 자신도 기독교 신자는 아닌데 나간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일단 내일 나가보기로 했다.
현지 적응교육) D+11 2018. 8.19. (일)
ㆍ KOICA 봉사단 집사님이 같이 교회에 가자고 데리러 오셨다. 11시에 오신다더니 10시 40분도 채 안 되어 도착하셨다. 준비하고 있다가 더 급하게 준비하고 나갔다.
ㆍ Galle Face 앞으로 교회가 있었다. 이름도 Korean church였다. 안에서는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고, 여기저기 다 한글이었다. 참 이국적인 느낌. 예배는 엄청 지루했다. 끝나고 한식을 제공해 주셨는데, 오늘은 한국식 카레라이스란다. 딱 한국 카레, 그 맛 좋았다.
ㆍ 원래는 예배가 끝나고 오늘 있을 연날리기 대회를 보러 가려고 했는데, 예배가 끝나고 갑자기 누구 송별회를 한다며 같이 카페를 가자고 하신다. 멀리 보이는 연을 두고 우리는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 또래들을 몇 명 만났는데, KOICA뿐 아니라 다른 NGO에서 온 분도 있었다. 그분들 얘기를 듣다 보니 우리의 대우가 상당히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KOICA나 다른 단체보다 생활비는 1.5배가 많았고, 퇴직금은 무려 2.2배가 더 많았다. 깜짝 놀랐다. 귀국 정착금 없이 그냥 생활비 500달러로 끝나는 단체도 있었다. 겪어 보니 알았다. 우리가 정말 좋은 조건에 살고 있다는 것을.
현지 적응교육) D+12 2018. 8.20. (월)
ㆍ 현지어 교육은 슬슬 적응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아직 멀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점은 언어가 '문자'로 안 다가오고 '그림'으로 다가온다는 점. 그래서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선생님께서는 내일 Independence Square로 가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한다고 말씀하셨다.
ㆍ 점심을 먹고 수업을 시작하러 가는데, 동규가 창백해진 얼굴로 수업에 들어왔다. 오늘 먹은 것을 모두 게워 냈단다. 계속 역한 물고기 향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식이 자기에게 안 맞는다고 하던데. 하루 종일 속이 안 좋아 누워 있는 동규를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현지 적응교육) D+13 2018. 8.21. (화)
ㆍ 동규가 아픈 것을 소장님이 들으시곤 아침부터 약을 사서 Harti 숙소로 오셨다.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오늘 점심은 특별히 스리랑카에 있는 한식당인 '서울식당'에서 한식을 사주시기로 했다. 점심 즈음 되어 서울식당으로 가서 오랜만에 한식을 먹었다. 깐풍기와 감자탕을 시켜주셨는데 정말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깐풍기가 정말 맛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니 서울식당은 한국인들로 가득했다. 주스리랑카 대한민국 대사님부터 KOICA 직원, 우리까지. 이야기를 나누어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도 한국인이 많다는 것을 대충 알 수 있었다.
ㆍ 오후 실습으로 Indepence Square의 Arcade로 향했다. 그곳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알아 오라는데, 당황스러웠다. 부산스럽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남성 두 분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싱할라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두 분은 웃으면서 우리에게 응대해 주셨지만, 내 이마에는 땀이 뻘뻘 났다. 연락처도 선뜻 건네주신다. 이분들뿐 아니라 여성분 두 분에게도 말을 걸었다. 타밀 사람인 듯 보였다. 이것저것 설명해 드리고, 미리 준비해 온 선물을 꺼내니 How much?라고 묻는다. Free라고 하니 활짝 웃으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다른 공원도 들렀다. 그곳에서 대학생들이 시위하고 있다고 했고 구급차가 막 다니고 있었다.
ㆍ싱할라어를 배운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국어나 일본어와 닮은 표현들이 참 많았다.
특히 '-해 보다'라는 구문은 일본어로 실제로 눈으로 보는 뜻인 ~(見) みる인데 싱할라어로 보다는 බලනවා인데 한국어와 똑같은 구문을 적용하면 똑같은 뜻이 나온다. 참 신기하다.
ㆍ 숙소로 돌아가 뉴스를 틀었는데 오늘의 시위에 대해 보도를 해 주더라. 뉴스에서 학생들이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최루탄을 쏘고 오물을 뿌리고 하는 모든 것들이 송출되더라. 적잖이 충격이었다. 이렇게 언론 자유도가 높다니.
ㆍ 스리랑카는 홍차가 참 유명하다. 이전에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였는데, 당시 플랜테이션 농업을 스리랑카에서 하면서 스리랑카 고산지 부근에 홍차 농업을 시작하였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차종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차가 Golden Tip이고, 그다음이 Silver Tip이다. 숙소 주변에 있는 유명카페에 가서 처음 silver tip을 마셔 보았다. 무척 깨끗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내게 맞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차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던 한 잔이었다.
현지 적응교육) D+14 2018. 8.22. (수)
ㆍ 오늘은 소장님과 마을을 한 번 둘러보러 가기로 했다. 어떤 곳일까. 설렘 반, 두려움 반. 벤을 빌려서 갔는데, 중간에 차는 마시는 공간에 갈 때까지 계속 졸았다. 소장님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다는데, 거의 기억이 안 난다. 한 시간 반쯤 움직여 차를 마시고 조금 더 달리니 말로만 듣던 'Rambukkana' 지역으로 들어왔다. 예상했듯 큰 도시는 아니었다. 기차역부터 대충 둘러보았는데 뭔가 순탄할 것 같지는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ㆍ 첫 번째로 우리가 근무하게 될 Walpola 마을로 향했다. 임시 사무실 건물 한 채와 앞으로 새마을 유치원 하나가 보였다. 아직 공사도 마무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찌 될지 참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Hewadiwela 마을로 갔다. 현재 활동 중이신 선생님을 찾아뵙고 일장 연설을 들었다. 주 내용은 ‘소장님을 잘 모시자’였다. 버섯 재배 현장도 보여주셨는데 습한 냄새가 약간 역하긴 했지만 그래도 최신화된 버섯 시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열심히 버섯을 포장하고 있는 주민들과도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이후 Pitiyegama라는 마을도 들렀다. 그곳에는 두 분의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들과 식사도 같이 했다. 현지에서 같이 사업을 하는 동료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라는 것을 강조해 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Sleek Hotel'이라는 곳에서 밥을 먹었다. 걱정이 무엇이냐 물으시더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ㆍ 다시 콜롬보로 약 3시간에 걸쳐 돌아왔다. 오는 길에도 새삼 느끼는 거지만 여기 사람들은 운전을 정말 위험하게 한다. 역주행이 '기본'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왜 이렇게 목숨을 걸면서까지 운전을 할까. 소장님 같은 경우 매주 마을로 운행을 오시는데 한 달에 한 번은 꼭 거리에서 시신을 본다고 하신다.
ㆍ자나끄 교관의 아내가 임신 중인데 혈압이 올라가서 잠시 친정에 다녀오셨다. 식당에서는 우리에게 주말이라 Pizza hut 피자를 시켜주셨다.
현지 적응교육) D+16 2018. 8.24. (금)
ㆍ 오늘 수업이 끝나고 'Lady J'라는 곳에 현지 전통 복장인 'Sarong'을 사러 갔다. 미적 감각이 부족한 나는 그냥 현지인이 추천해 주는 것을 사고 싶었고 그래서 그냥 차머리 선생님이 추천해 주시는 물건을 샀다. 디자인이 맘에 쏙 들진 않지만, 추천해 주신 물건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는듯하다.
ㆍ 오는 길에 'Jalanka'라는 일본 식품점에 들렀다. 사실 김치를 사려고 들렀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살 엄두가 안 났다. 김치 컵라면 3개를 집었는데 2,000루피 (약 15,000원) 정도가 나온다.
현지 적응교육) D+17 2018. 8.25. (토)
ㆍ 오늘 일정은 Poya Day를 맞아 Kelaniya 사원에 들르는 것이었다. 사원에 도착하니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자나끄 교관이 사준 꽃 몇 송이를 들고 사원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사원으로 향했다. 주인 없는 신발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더라. 이 또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저번에 배운 대로 탑에 기도 한 번, 보리수나무에 기도 한 번을 했다. 스리랑카 생활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길어서 기다릴까 말까 고민하는 찰나 어느 스님이 유일한 외국인인 우릴 보시고 먼저 들여보내 주셨다. 감사했다. 원래 Poya Day는 '당살'이라고 해서 신도들에게 보시하는데 콜롬보 지역은 사람들이 너무 방문해서 ‘당살’이 따로 없다고 했다. 궁금했는데, 아쉬웠다.
ㆍ 오는 길에 자나끄 교관의 모교인 Kelaniya 대학도 들렀다. 한국의 연세 / 고려 대학교 수준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허름했다. 그중에 자나끄 교관이 한국어 교육을 받는 기관을 둘러보았고, 그곳에 계신 한국인 교수님도 만났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다시 뵙기로 했다.
현지 적응교육) D+18 2018. 8.25. (일)
ㆍ 오늘 일정은 박물관에 가는 것이다. 아침부터 트리 휠을 타고 국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침이라 피곤하기도 하고 사실 별 흥미도 없기에 별로 관심 있게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신기한 점은 옆에서 자나끄 교관이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해 줬는데 어떻게 이걸 다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지식의 폭이 넓은 사람인 듯하다. 마지막에 보았던 바다 고래 뼈를 그대로 전시해 놓은 것이 기억에 가장 선명하다.
오늘 박물관을 둘러볼 때도 그냥 갔다면 1,500루피[약 10,000원], Residence Visa가 있으면 100루피[700월]. 정말 가격이 천지 차이라는 게 실감 난다. 심지어 현지인은 외국인을 데려왔다는 이유로 자나끄 교관은 무료였다.
ㆍ 낮에는 푹 자고 저녁에 동규와 ODEL이라는 백화점에 다녀왔다. 현지인들에게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었다. 이것저것 둘러보고 ODEL 앞에 있는 MINISO로 가서 사고 싶은 물건도 샀다. 현지 물건들이 많이 조악해서 일본산이나 미국산 물건이 인기라고 한다.
현지 적응교육) D+19 2018. 8.26. (월)
ㆍ 오늘은 하루 종일 특강이 있는 날이다. 아침에 주택 임차 교육부터 시작하여 새마을 운동, 건강 관리까지 재미있는 특강이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ㆍ 아침에는 자나끄 교관이 직접 주택 임차에 대해 강의를 해 주셨다. 주택 임차에는 한국과 다른 점이 엄청 많았다. 한국에서는 집을 빌려 쓰다가 물건이 고장 나면 집주인이 고쳐 주지만 여기서는 세입자가 그래야 한단다. 그래서 한국 원으로 50,000원 이하의 기물들은 자가 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계약에서는 변호사가 공증을 서고 세입자와 집주인이 변호사 비용을 각자 반씩 부담한다고 했다. 변호사비는 통상 1달 월세 정도였다. 또한, Seal 비용이라고 도장을 찍고 지급하는 비용이 따로 있었다.
ㆍ 선배 단원과의 만남 시간도 가졌다. 우리와 대화를 가지러 3시간 정도를 걸려 Pitiyegama 선배 단원들이 와주셨다. 많은 내용을 알려 주셨는데 일단은 아무 걱정을 말라고 하신다. 일단, 싱할라어 공부에만 집중하라며 당부하셨다.
오후에는 KOICA 전경식 부소장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소장님은 KOICA가 하는 일, 우리나라에서 하는 역할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주셨다. '참, 우리가 의미 있고 뿌듯한 일을 선택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남을 섬기는 일이 숭고하고 참 가슴이 뛰는 일이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KOICA의 윤기승 간호 봉사단원에게 안전에 관한 강의도 받았다. 찰과상 / 자상까지 우리 주위에는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일단 안전이 우선이다.
현지 적응교육) D+22 2018. 8.29. (목)
ㆍ KOICA에 신입 기수가 들어와서 여태껏 우리를 챙겨 주시던 자나끄 교관이 KOICA 사무실로 옮겨 가게 되었다. 내일부터는 현재 우리가 파견될 'Walpola' 마을에 살고 계시는 '기한' 선생님이 우리를 인솔해 주시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자나끄 교관이 우리에게 스리랑카에 대해 참 좋은 인상을 많이 안겨 주었는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만난 지 3주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는 꽤 오랫동안,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꽤 많은 것들을 함께 했었다. 그런 자나끄 교관도 우리가 꽤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자나끄 교관은 작별 인사로 우리에게 버블티를 한 잔 사주시겠다고 했다. 원래 가기로 했던 버블티 가게가 문을 닫는 바람에 멀리 Indepence Square의 Arcade까지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것으로 마지막을 기념했다. 고마웠다. 스리랑카에서 처음 마음을 열게 된 사람. 참으로 상냥했던 사람. 자나끄 교관이었다. 자나끄 교관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교관님도 같이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6년 정도 생활을 하셨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한국어를 구사하시는 편이었다. Walpola에 가서도 통역 겸 코디네이터가 될 듯한데,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현지 적응교육) D+23 2018. 8.30. (금)
ㆍ 오늘은 차머리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다. 짧은 날들이었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정이 꽤 많이 들었다. 오랜 기간이 지나지는 못했지만 우리들의 싱할라를 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신 차머리 선생님께 감사 말씀드린다. 오늘 1차 테스트를 했다. 여태 매일 쳐왔던 받아쓰기 시험에 자필 시험과 말하기 시험을 포함 100점 만점이었고 과락은 60점이라고 공지해 주셨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시험은 아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성실히 준비했다. 동규는 전날 아주 밤을 새울 듯 열심이었다.
ㆍ 아침에 차를 한 잔 마신 후 시험에 응했다. 단어 시험이 중간에 나왔는데 모르는 단어 옆에 모두 '수박'을 적었는데 하나 얻어걸려 맞추었다. 필기시험은 90점 만점에 78점을 획득하였고, 말하기 시험을 모두 포함해 88점을 획득했다. 동규는 89점을 획득했다. 아주 준수한 성적이라고 하시며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우리 수업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쫑파티를 하러 한국 음식점인 '한국관'으로 향했다. 원래는 선생님과 우리 학생 둘 이렇게 가게에 가려고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소장님도 같이 참여해 주셨다. 고기를 드시지 않는 선생님께는 떡볶이, 고기를 뺀 비빔밥 등을 주문해 드렸고 우리는 낙지볶음, 치킨을 먹었다. 끝에 선생님이 우리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주셨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딸기 모양이 그려진 작은 컵이었다.
ㆍ 오후에는 전에 조사했었던 Sigiriya, Dambulla, Kandy 도시 등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고 그 후에는 규정에 관한 강의를 듣기도 했다. 사실 '규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소장님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ㆍ 밤에 자나끄 교관이 찾아왔다. 케이크 3개를 주시고 새로 오신 기한 교관님과 나누어 먹었다.
기한 교관님은 김치를 만들 줄 안다며 선물로 하나 만들어 가져오셨던데,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현지 적응교육) D+24 2018. 9.1. (토)
ㆍ 오늘은 회계 교육을 받는 날이다. 아침밥을 먹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아침 일찍 사무실로 향했다.
소장님을 만나 아침에 교육자료를 준비하는데 꽤 애를 많이 먹었다. 회계에 대해서 기초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귀찮고 손이 많이 갈 만한 것이 많아 보였다.
ㆍ 점심으로는 어제 산 신라면에 오늘 산 달걀.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햇반까지. 딱 한식이었다. 너무 좋았다. 후식으로 과일에 과자까지 푸짐하게 먹었다. 오늘은 소장님과 잡담에 별 시답잖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현지 적응교육) D+25 2018. 9. 2. (일)
ㆍ 오늘은 소장님 가족과 함께 Colombo에서 쇼핑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아침 일찍 Colombo로 도착한 소장님의 가족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Arpico'로 향했다. 아침에 마트를 한 번 쫙 돌아보며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정리했다.
ㆍ 점심을 먹고 조금 쉬다가 오늘은 일식이 먹고 싶어서 길을 나섰다. Uber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침에 왔던 'Arpico' 마트에 와 있는 게 아닌가. 그곳 1층 푸드코트에 일식집이 조그맣게 있었다. 끈적끈적한 오야코동을 생각하며 주문했는데 별로 끈적이지 않는 계란과 닭고기 볶음밥이 나왔다.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맛있게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니 바로 또 저녁을 주더라. 저녁을 먹고 늘 들리는 TEA Avenue로 가서 내일을 위한 공부를 약간 했다.
현지 적응교육) D+26 2018. 9. 3. (월)
ㆍ 오늘 처음으로 새로운 싱할라 선생님인 '두라니'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차머리 선생님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 에너지가 넘치시고 다 좋은데, 아직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대학교와 학과를 물어보시길래 '캐스터네츠 학과'라고 장난을 쳤더니 고대로 믿으신다. 수업 끝 즈음에 장난이라고 하니 배시시 웃으신다.
ㆍ 오늘은 왠지 엄청나게 무기력하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새롭게 시작하자.
현지 적응교육) D+27 ~ 28 2018. 9. 4. (화) ~ 5.(수)
ㆍ 두라니 선생님에게 오전에 수업을 듣고 오후에 카페로 가서 공부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우리가 여기 온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일본어를 배울 땐 한 달 정도 배우니 웬만한 소통은 거의 다 가능했었는데, Input과 비교해 Output이 너무 부실해서 너무 속상하다.
ㆍ 화요일 오후에는 '이기수' 사범님이라는 분이 Harti로 오셔서 안전에 대해 강의를 해 주셨다. 지금 나의 나이인 24살쯤 처음으로 스리랑카로 건너와서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기서 생활을 하고 있노라 말씀해 주셨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머물 정도로 어떤 매력이 있는가 여쭤보니, 언젠가 침대 위에서 생각했었던 바로 그것. '경쟁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태권도 사범으로 이곳에 있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많았는데, 한 번은 현지 드라마에 무술 사범으로 출연하여 인기 스타가 되셨다 하시며 배시시 웃으신다.
ㆍ 수요일에는 Colombo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정치적 문제라며 전국 약 10만 명이 넘는 인원들이 Colombo로 모여 시위를 펼쳤다. Colombo의 곳곳 Galle face Intersection이나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시위가 일어났는데 Harti가 전 대통령 사저 주변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도 당연히 통행금지 명령을 받았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렸냐고 물어보니 '선거' 때문이란다. 현재 정부의 실권자인 여당 측에서, 지지율이 야당과 비교해 많이 낮은 상황이라고 했다. 선거에 나서면 패배할 것이 분명하기에 의도적으로 선거를 차일피일 지연시키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가벼이 보고 있으니 작금의 형태를 잘못된 것이 아닐까.
현지 적응교육) D+29 2018. 9. 6. (목)
ㆍ두라니 선생님과의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차머리 선생님을 뵈었다. 저번 주에 같이 Bubble tea를 마시자고 약속을 했기에 오늘 겨우 만날 수 있었다. KOICA 124기 단원들은 다 열심히 하고 좋은데 서로 아직 잘 친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ㆍ 버블티 가게 앞에서 KOICA '김수구' 단원 선생님도 뵈었다. 저번에 차머리 선생님과 같이 'London House Coffee'에 갔을 때도 동행해 주셨는데. 처음 나를 보았을 때 첫인사보다, "이 친구도 교회 오자!"라고 말씀해 주셔서 덕분에 한인 교회도 한 번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기한 교관님까지 5명이 같이 버블티 가게로 들어갔다. 거기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수구 선생님은 서울 서라벌 중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셨고 퇴직 이후에 KOICA 한국어 교육 단원으로 파견되셔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하고 계시는 듯했다. 선생님의 연세가 환갑이신데, 30년은 학교에서 보내고 30년은 제자들을 가르쳤으니 남은 30년은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일, '봉사'를 하며 지내고 싶다고 하셨다. 특히 오지나 소수 민족의 삶은 직접적으로 조망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공무원을 '안전의 상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은퇴 이후 매달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을 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맞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뒤로 젖혀두시고 이렇게 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ㆍ차머리 선생님은 평생 눈(雪)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찌 보면 스리랑카에는 눈을 한 번도 못 보고 눈을 감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평생 보았던 눈이라고는 콜롬보에 있는 얼음 테마파크인 'ICE Land'에 있는 작은 얼음 조각이 끝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직 내가 오로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듯, 아마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ㆍ 저녁에는 한국 분식을 판매하는 가게로 가기로 했다. 원래 차머리 선생님과 동행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집에 돌아가셔야 해서 귀가하셨다. 식탁이 2개 정도 있는 자그마한 가게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놀랐다. 커다란 TV에는 시종일관 K-POP 뮤직비디오를 틀고 있었고, 차도르를 덮어쓴 외국인들이 어설픈 한국어를 흉내 내고 있었다. 엄청 이국적이고 신기했다. 정말 K-POP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 사람만 보아도 좋은가 보다. 이왕 이렇게 외국에 나왔으니 이 이점을 최대한 살려 보아야지.
ㆍ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Galle Face를 들렀다. 밤의 바다 내음, 예쁘게 빛나는 인도양에 비친 불빛을 보니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인제야 '내가 스리랑카에 왔구나. 진짜 외국 생활이 시작되는구나'하는 것들이 물씬 느껴졌다. 그래도 내가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해외여행이나, 이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오랜만에 조국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여러 국가를 경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나라에 1년씩만 살아 보아도 전 세계의 반도 못 보겠지? 다음으로 어느 나라로 가 보고 싶냐고 동규가 넌지시 물어본다. 글쎄, 굳이 가 보자면 중동 / 아프리카 / 남미 정도.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북유럽 쪽으로 가서 오로라도 한번 보고 싶다.
현지 적응교육) D+31 2018. 9. 8. (토)
ㆍ 오늘은 사무실에서 보고서 작성 요령을 배웠다. 저번에 회계 교육을 받으며 얼핏 본 것들이 있기에 이해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정말 꼼꼼함을 많이 요구하는 듯하다.
ㆍ 음식이 정말 입에 맞지 않는다. 여기 와서 한 2주까지는 음식이 신기하기도 해서 별 거부감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입에 음식이 배면서 물리기 시작하더니 딱 한 달이 지나면서 별로 '먹기 싫은' 수준까지 이르렀다. 특히 우리나라의 김치처럼 항상 식탁에 오르는 파릿푸(렌틸콩)라는 음식이 참 힘들다. 현지 파릿푸는 특유의 향이 있는데 문득문득 그런 향이 올라올 때 완전히 입맛이 가시는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먹다 보면 점점 익어 가지 않을까 싶다.
ㆍ '싱할라어'를 배우면서 참 힘든 점은 언어가 규칙성이 별로 없다는 점. 그리고 글자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일본어를 배울 때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무게나 뉘앙스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배우기 수월했다는 것을 이 언어를 배우며 확실히 느낀다. 진척이 힘들다. 아직은 현지인과 대화할 기회가 부족했을뿐더러 동규와 24시간을 붙어 있어서 현지어로 대화할 순간에 동규가 항상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가 버린다. 가끔은 이런 상황이 답답하다. 언어의 숙련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힘든 부분 중 하나이다.
현지 적응교육) D+32 2018. 9. 9. (일)
ㆍ 오늘은 동규와 같이 교회에 갔다가 일식집을 들르거나 Galle Face 주변에 있는 Miniso에 들러볼까 생각했다. 생각을 곧 그렇게 했었지만, 막상 예배 시간이 다가올 때는 잠에 빠져들어서 예배가 다 끝날 때쯤에야 일어나 씻고 출발했다.
ㆍ 동규와 교회 근처에 있는 일식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손님이 딱 두 명 앉아 있었다. 일본인 한 명, 현지인 한 명 앉아 있었는데 우리를 딱 보더니 "일본인입니까?"하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어떻게 일본 말을 하냐며 우리 보고 빅뱅의 승리나 지드래곤 씨처럼 연예인이 아니냐고 물으신다.
아니라고 하니까 계속 '어떻게 일본어를 하지?' 하며 혼잣말을 하신다. 초밥이 먹고 싶어서 일식집에 갔는데 메뉴 중에 초밥이 없어서 'Dutch Hospital'로 자리를 옮겼다. 도착해서 일식집에 들어가니 짭조름한 향이 퍼진다. 우리 왼쪽으로는 일본인, 오른쪽으로는 현지인이 앉아 있었다.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두 줄로 앉아 밥을 먹다니, 이 또한 이국적이었다. 동규는 오랜만에 동양식이라 먹고 싶은 것을 잔뜩 시켰단다. 카츠동, 데리야끼 치킨, 모둠 튀김, 롤, 초밥 세트, 1개를 주문했다. 하나하나 차려지는 음식을 보니 정말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내 입에 잘 맞는다는 게 너무 좋았다. 한참이나 맛있게 먹고 영수증을 받았는데 무려 9천 루피 [약 50,000원] 정도가 찍혀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금액은 7천 루피 정도였는데 세금과 봉사비가 무려 2천 루피였다. 현지 물가로 따지면 현지인 일당의 10일 치 일급을 한 번에 먹어버린 꼴이 되었다. 다 먹은 후에도 포장해 갈 정도로 넉넉히 담아 먹고 왔다.
ㆍ 오는 길에 당연히 Uber를 타고 오려고 했는데 동규가 앞에 서 있는 트리 휠 기사와 서투른 싱할라로 몇 마디 대화하더니 트리 휠을 타자고 한다. 영 미심쩍었지만 일단 탔다. 미터기를 안 켜고 가길래 키라고 했는데, 기사는 'Happy money!'라는 답변을 하면서 미터기를 안 켜는 것이었다. 순간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이 운전기사가 얼마나 요구할까 생각했다. 300-400루피가 적당한 가격이었는데 혹여나 1,000루피 이상을 요구하면 어쩌나. 싶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생각 외로 350루피만 달라고 하길래 안심했다.
현지 적응교육) D+33 2018. 9.10. (월)
ㆍ 교육 기간인데 여기도 월요병이 있다. 뭔가 우울하고 맥이 빠진다. 왠지 무언가 감성적으로 되는 느낌. 수업도 집중이 잘 안 된다.
ㆍ 밤에는 자나끄 교관을 만나러 'Slida'라는 곳에 다녀왔다. Slida에는 식당 안에 매점이 있고 방 안에는 냉장고에 WIFI까지 빵빵했다. 정말 부러움이 나오는 시설이었다. 자나끄 교관의 방을 구경하고 그까지 간 김에 KOICA 신규 단원들도 잠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왜 그렇게 잘 챙겨 주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가져오신 컵밥, 라면, 마일로 등 다양한 음식들을 대접해 주셨다. 감사했다. 다음 기회를 기리며 오늘은 좋게 마무리했다.
현지 적응교육) D+34 2018. 9.11. (화)
ㆍ두라니 선생님과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한국 분식을 파는 Cafe Alfredo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혼잡한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는 정말 낡았고 보기가 싫다. 버스만 올라타면 불쾌지수가 무척 올라간다. 북적이는 버스에 한참이나 서서 목적지에 다다랐다. 가는 길에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여기 와서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진 것들.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이 무척이나 좋고 높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회 불평등을 이유로, 부의 불평등을 이유로 사회에 만연한 수많은 차별로 그 사회를 정말 싫어했는데, 나는 국적을 얻기까지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선진국에서 태어났기에 이렇게 남을 도우러 스리랑카라는 나라에도 올 수 있었다. 사실 여기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ㆍ 기한, 두라니 선생님과 분식을 먹고 나서 주변 Gallery Cafe에 잠시 들렸다. Gallary Cafe는 스리랑카가 낳은 건축의 거장 Geoffrey Bawa가 살았었던 곳이다. Geoffery Bawa는 햇볕이 드는 곳에 잉어를 키우는 것을 참 좋아한 듯하다. 우리 숙소인 Harti도 그가 설계했는데, 그와 유사하게 Gallery Cafe도 그와 유사하게 하늘에 창을 내놓고 그 밑에 잉어를 둔 것을 알 수 있었다.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ㆍ 그리고 선생님과 '정부 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정부 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 6년이나 공부했고 학 / 석사까지 취득하셨는데, 이렇게 좋은 제도가 있는지 몰랐다. 학비도 받고 생활비도 받고 학위도 받을 수 있는 좋은 제도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스나 유럽 쪽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업에 대해서 자연스레 욕심이 생긴다.
ㆍ 미뤄놓고 있었던 JLPT / JPT 점수도 취득하고 ODA 자격증에도 도전해 보고 2년간 수학했던 싱할라어를 바탕으로 '통역'과 같은 공적인 일도 해 보고 싶다.
현지 적응교육) D+35 2018. 9.12. (수)
ㆍ두라니 선생님과의 수업을 마치고 오늘은 KOICA 사무실에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실 우리는 KOICA와 아무 연관 관계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의 연관이 있는 두라니 선생님이 동행해 주셨다. Harti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KOICA는 한국 수출입은행(EXIM)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고, 건물 한 채를 전부 사용하고 있었다. 벽화가 그려진 계단을 따라 건물 1층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강당에 무언갈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도서관을 이용하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음료수를 손에 하나씩 들려주신다. 여기서는 곧 KOICA 124기 단원들의 교육이 있는듯했다. 찬찬히 건물을 둘러보니 아주 멋있고 운치 있었다. 풍경이 멋진 것이 아니라, '국제 원조'나 '봉사'를 하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이 풍기는 내음, '멋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런 단체에 소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사무소의 구석구석 깊은 곳이 아니라 그저 건물의 외관이나 옥상 밖에 올라가 보지 못했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저, 멋있고 매력 있다. KOICA도 충분히 큰 꿈이지만, 나의 최종 목적지는 UN이 되는 것인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계속 내 능력을 가꾸어야겠다. 이 땅에서 한국 책을 찾는 것 자체가 참 힘든 일인데, 도서관 가득히 책이 잔뜩 꽂혀 있었다. 책이 사방면을 가득 채운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곳에는 KOICA 직원, 단원들이 직접 편집 / 제작했다는 'Ceylon Zine'부터 시작해서 KOICA 단원들의 활동 수기집, 소설책, 여행 안내서 등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겸 'Ceylon Zine'을 읽기도 하고 여행 안내서를 읽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송이 코디네이터님이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1시간이 지나도록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집에 갈 때 즈음이 되어서 겨우 얼굴을 뵈었는데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저번에 추천해 주신 책 '꼬호머더 스리랑카?'라는 책을 빌려주셨다. 소중히, 잘 읽겠습니다.
현지 적응교육) D+36 2018. 9.13. (목)
ㆍ 내일은 시험이 있는 날이다. 두라니 선생님이 시험을 어렵게 내실 거라고 겁을 주신다. 교육 커리큘럼에는 현지어 시험이 총 3번 있는데 평균 60점 이상을 취득해야 과락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 받은 '꼬호머더 스리랑카? (어때요 스리랑카?)'라는 책을 완독 했다. 사실 이 책은 활동 수기집이라기보다 개인 일기장을 옮겨다 쓴 느낌이 났다. 업무에 관한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소수였고, 스리랑카에서 겪은 경험 / 여행 / 생각 등을 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둔 듯하다.
2년간 활동을 마치고 이렇게 의미 있는 자료를 남기는 것도 참 좋은 일인 듯하다. 나도 2년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이렇게 '무엇을 했고, 무엇을 생각했다.'라는 자료를 꼭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든 김에 내가 두 달 안 되는 기간 동안 스리랑카에서 알게 된 것에 대해 항목별로 적어 보았다. 대학 / 교통 / 사회 / 문화 등등. 난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 현재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작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는 것들이 A4용지 두 장이 채 안 돼 보였다. 2년 후에는 꽤 많은 지식을 습득한 지역 전문가가 되어있기를.
현지 적응교육) D+37 2018. 9.14. (금)
ㆍ 아침부터 현지어 시험을 응시했다. 사실 동규에 비해 그렇게 큰 공을 들이지는 않았다. 일단 필기시험을 쳤는데 문제를 그래도 쉬운 범위 내에서 내주신 듯 보인다. 문제 푸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스리랑카 문법에서 -를 원한다는 표현을 할 때 한국어의 '를'에 해당되는 'ට'라는 조사를 꼭 붙여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동규가 전부 실수를 해 버렸다. 전체 성적은 내가 46/50 동규가 43/50을 획득하였다. 말하기 시험도 쳤는데 나는 최대한 실수를 안 하려고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동규는 반대로 틀리더라도 어려운 단어를 말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92점, 동규는 90점으로 서로 준수한 점수를 획득했다. 끝나고 선생님이 차를 한 잔 사주셨다.
ㆍ 오후에는 새마을 조직 소개와 현재 업무를 보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모두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는 간담회 시간도 가졌다. 선생님들도 사실 부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그곳에서 자리를 점점 잡아가고 있으신 것 같았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여태까지 겪으신 고충을 하나하나 다 말씀해 주셨다. ‘쉽지 않은 길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주민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조금 해 보았다. 나는 기꺼이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처럼 그들의 삶에 빠져 보아야지.
현지 적응교육) D+38 2018. 9.15. (토)
ㆍ 오늘은 소장님 가족분들과 시내 여행을 해 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소장님을 만나서 바로 Dehiwala 동물원으로 향했다. 동물원에서 저번에 보았던 동물들을 다시 한번 만났다. 넓디넓은 동물원을 한 번 돌고 다시 'Barefoot' 매장으로 향했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그렇게 눈에 잘 안 들어왔는데 한 번 더 자세히 살피니 정말 모든 물건이 다 예뻐 보였다. 원색적 색감에 거친 촉감. 보는 것만으로도 피부 끝에 직물이 닿는 듯 까끌까끌했다.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공책 한 권을 덥석 집었다. 스리랑카에서는 공책을 많이 사게 되는 듯하다. ‘Barefoot cafe’에서 점심을 사 주셨다. 치킨과 흑돼지 카레를 주문했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 음료수로 파파야 주스를 시켰는데 받다가 실수로 물이 가득 담긴 컵을 소장님 쪽으로 엎질러 버렸다. 밥을 먹고 잠시 Gallery Cafe에 들렀다. 커피 한잔했는데 맛이 좋았다. Geoffery Bawa의 사무실로도 쓰였던 공간임을 알았는데, 안 마당에 길쭉이 솟아 있는 보리수나무를 보며 업무를 한 기분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ㆍ 마지막 순서로 Arpico에 들렀다. 사야 하는 모든 물건을 다 샀다. 총금액 3만 7천 루피. 거의 30만 원가량을 모두 써버렸다. 살면서 이렇게 많이 무언가를 산 적은 처음인 듯하다. 물건을 가득 안고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은 밥이 따로 없단다. 그래서 Slida로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 양껏 먹고 간식도 잔뜩 챙겨 주신다. Slida의 생활도 마냥 좋은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침대가 너무 작고 딱딱하고 온수가 안 나온단다. 그래, 각자 장단점이 있는듯했다. 숙소에 돌아갈 때 즈음에는 배은석 선생님이 나중에 먹으라며 한국 음식도 잔뜩 챙겨 주셨다. 감사합니다.
현지 적응교육) D+39 2018. 9.16. (일)
ㆍ 아침에 일어나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 가면서 ‘이제 콜롬보 생활은 끝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는데 평소 잘 귀에 들어오지 않던 설교 말씀이지만 오늘은 잘 들어오기에 한 번 들어보았다. 목사님은 라면을 끓일 때 라면 봉지 뒤쪽에 적힌 설명 그대로, 정확히 끓인다고 하셨다. 적힌 그대로 계량기 컵을 사용하고 타이머도 사용하신단다. 그래서 항상 최고의 라면 맛을 유지한다고 하신다. 이처럼 성경 말씀처럼 적힌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셨다. 비단 성경뿐 아니라 재단에서 정하는 규정에 잘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ㆍ 점심으로 육개장이 나왔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다 모여 있는데 KOICA 선생님이 불쑥 나타나셔서 소장님께 우리가 약이 없다고 좀 챙겨 주라고 하셨다. 저번에 다 끝난 이야기이고, 선생님께 그런 말을 전해달라고 말씀드린 적 없는데 당황스러웠다.
ㆍ 목이 아프다는 동규 때문에 약을 받으러 소장님 댁에 잠시 들렀다. Cinnamon Grand 옆에 딸린 아파트로 보였는데 복도도 흡사 호텔처럼, 거실도 널찍하고 방도 몇 개씩 딸려 있어서 생각보다 너무 좋기에 깜짝 놀랐다. 동규의 약을 받고 Cinnamon Grand Hotel 옆 Crescat 마켓의 Keels 매장도 잠시 들렀다. 처음 스리랑카 물가를 알아보던 그곳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소금을 샀다.
ㆍ 동규가 피곤하다기에 방에 들어가 오늘은 푹 쉬었다. 에어컨 바람이 동규 목에 쥐약이기에 밖에 따로 나가지 않고 그냥 방에서 열심히 현지어 단어를 외웠다.
현지 적응교육) D+40 ~ 42 2018. 9.17. (월) ~ 19. (수)
ㆍ 이제 월, 화요일만 지나면 모든 교육도 수료이다. 마을로 파견이라니.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 조금은 섬뜩하다. 두껍게만 느껴졌던 싱할라어 책 한 권을 다 뗐다. 계속 익히고 다져 나가는 것은 내 몫이겠지. 이제 내일의 시험만 끝나면 두라니 선생님과도 마지막이다. 아직 만난 지 겨우 2주밖에 안 되었는데, 생각보다 우리도 정이 많이 들었구나. 그만큼 우리도 ‘이 삶에 점점 스며들어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ㆍ 말하기 시험, 일기 시험순으로 시험이 진행되었다. 말하기 시험은 '스리랑카 생활에 대해서 자유롭게 싱할라어로 말씀하시오'였고 교육 / 교통 / 식문화 / 의복 문화 등 다양한 범위에 걸쳐 열심히 말했다. 그래도 그동안 싱할라어가 많이 늘었나 보다. 혼자 거의 5분을 떠들었다. 쓰기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게 나왔다. 총 82점의 득점을 했다. 총득점은 89 / 92 / 82점, 총 평균 86.7점으로 우리의 성적을 마무리했다. 우연하게도 동규와 최종 평균 점수가 똑같다. 참 신기한 일이다.
ㆍ 오늘은 최종 시험을 끝낸 기념으로 '서울식당'으로 가서 한국 음식을 먹었다. 마지막이라 기한 교관이 사주신단다. '서울식당'으로 가서 불고기를 주문했다. 동규는 돼지국밥을, 기한 선생님은 김치찌개를, 두라니 선생님은 비빔밥을 시켰다. 두라니 선생님은 돼지고기를 안 드신다. 그런데 비빔밥에 돼지고기가 같이 나오자 전부 나에게 털어버린다. 서울식당 음식은 맛있었고 남은 불고기와 잡채 등은 다시 포장해서 Harti로 싸 왔다.
ㆍ 밥을 먹고 기간이 다 되어가는 여권 연장을 하러 대사관에 다녀왔다. 방명록을 쓰고 대사관에 들어가니 스리랑카 사람이 한가득했다. 외려 한국인은 나 혼자뿐이더라. 카운터에 용무를 말씀드리고 잠시 자리에 앉자마자 다들 시선이 내게로 쏠리며 말을 건다. 여태 배운 싱할라어를 조금씩 섞어 말하니까 다들 조금씩 놀라는 눈치였다. 10년 만기로 신청을 하고 8천 루피 정도 지불했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업무가 빨리 끝난 것인지는 몰라도 30분 이내에 모든 작업을 하고 대사관을 나왔다.
Uber를 기다리는 동안 대사관 앞에 있는 기념품점에 들어갔다. 미리 들어가 있는 일본인이 있었는데 나에게 친구냐고 묻는다. 그 점원과 일본어, 영어, 싱할라어를 섞어서 이야기했다. 4개 국어가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 노력해야지,
ㆍ 사무실에 들어가 최종 발표 준비를 했다. 내일 PPT를 만들어 발표해야 하는 것과,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 그 두 개를 바로 전날 말씀해 주셨다. 덕분에 시험이 끝났지만 쉬지도 못하고 밤새 PPT, 대본, 보고서를 만들었다. 밤에 자나끄 교관이 KOICA 단원들과 숙소로 놀러 온다 했지만, 우리 일이 바쁜 관계로 결국 만나지는 못했다.
현지 적응교육) D+43 2018. 9.20. (목)
ㆍ 아침 일찍 일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못 보던 얼굴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기한' 선생님이 Walpola 통역을 맡아줄 줄 알았는데, '차릿'이라는 사람이 와서 앞으로 Walpola의 통역을 맡아 주신다고 했다. 아침에 그분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발표 준비를 했다.
ㆍ 달달 외울 만큼 준비했지만 사실 분위기도 많이 어수선했고 별로 집중되는 분위기가 아니기에 대본을 슬쩍 보며 발표했다. 내 소개, 소감, 다짐, 느낀 것, 해 보고 싶은 것들 등 다양하게 발표했다. 나와 동규의 발표를 끝으로 우리의 교육은 진짜 끝이 났다. 그래도 교육의 성과가 나름 있었나 보다. 다들 희망적인 말씀을 해 주셨고, 이제는 실전만 남았다.
ㆍ 오늘도 서울식당에 가서 한식을 먹었다. 감자탕에 깐풍기까지. 사실 오늘을 위해 가지고 있던 1,000루피 쿠폰이 있었는데 어제 홀랑 써버렸다. 그 사실을 듣고 소장님이 엄청 황당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소장님 특유의 웃으면서 하는 잔소리를 잔뜩 들었다. 하지만 깐풍기는 맛있었다.
ㆍ 방에서 쉬다가 오늘은 사모님께서 직접 요리를 해 주신다고 하셔서 저녁 시간 즈음 되어 Crescat Residence로 향했다. 조금 있는 여유를 이용해 마카롱을 한 상자 샀다. 소장님을 만나고 소장님 댁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정성스레 요리해 주신 된장 새우, 치킨을 맛있게 먹었다. 밀크티도 대접해 주시고 신맛으로 유명한 패션후르츠도 먹어 보았다. 꽤 늦은 시간까지 같이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ㆍ Harti에서의 마지막 밤으로, 그래도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맥주를 4캔 사서 도착했다. 그곳에는 마지막 밤을 같이 기억해 주기 위해 온 자나끄 교관, 식당 요리사가 있었다. 그들은 먼저 위스키를 한잔한 상태에서 우리가 합류했다. 요리사 형은 숙소가 따로 없어 식당 바닥에서 잔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그렇구나. 자나끄 교관은 아마 내일 아빠가 된다고 하셨다. 많이 떨린단다. 같이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채 재미있게 놀다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파했다.
정말 힘들고 길었던 하루이다. 내일은 그래도 푹 잘 수 있었으면.
문화 탐방) 1일 차 2018. 9.21. (금)
ㆍ 정말 기절하듯 잤다. 아침도 못 먹고 한 열한 시 정도까지 깨지 않고 내리 잤다. 오늘은 교육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현지 문화 탐방을 떠난다.
Sigiriya / Dambulla / Kandy로 이어지는 2박 3일의 여행. 일정이 끝나면 1주일간 Hewadiwela 마을에서 OJT를 받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ㆍ 6주간 썼던, 또 나중에 쓰려고 쟁여 놓았던 물건들을 모두 정리해서 차에 넣었다. 상자만 무려 5개. 캐리어, 배낭, 손가방까지 정말 많았다. 짐을 차 안 가득 실은 후에 잠시나마 정들었던 Harti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우리 방을 예쁘게 청소해 주는 아저씨, 항상 엄마 같은 미소로 말을 걸어 주시던 사무실 이모, 항상 맛있게 음식을 해 주시던 형님까지. 다 인사하고 차에 탔다. 소장님을 태우러 사무실에 갔는데 추석 위문 물품이라며 쌀, 고추장, 사골곰탕 등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감사했다. 그렇게 소장님, 나, 동규, 위라지 매니저, 기한 교관까지 5명이 Kandy로 떠났다.
ㆍ 금요일이기도 하고 다음 주 월요일 Poya Day가 겹쳐 있어서 이른 시간부터 교통 체증이 정말 심각했다. 콜롬보를 벗어나는데 만 한참이나 걸렸고 예상 도착 시각이었던 4시간이 걸려서 절반 정도 도착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총 7~8시간을 내리 달려서 'Kandy'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첫 끼니는 위라지가 추천해 준 'Bamboo Restaurant'로 갔다. 멋진 경치와 시원한 바람이 우릴 반겨주었고 외국인이 가득한 이 장소에서 누군가 노래하고 있었다. 조금 춥긴 했지만 아무렴, 좋았다. 메뉴는 Fried Rice, Kettle fish chip, kankung, kottu라는 것을 주문했다. 처음에는 kettle fish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오징어인 squid를 여기서는 이렇게 부르는 듯했다. 짧은 여독을 풀기 위해 맥주도 한 잔 곁들였다.
정말 맛있고 좋았다. 스리랑카 속 외국으로 온 느낌. 맥주 두 잔을 금세 들이켜고,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ㆍ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나와 동규 한 방, 위라지와 기한 한 방, 소장님 독방. 이렇게 나눠서 썼다. 웰컴 드링크는 맛이 썼다. 침대는 생각보다 좁았고 주변에 군견 훈련장이 있나 보다 밤새도록 개가 짖어댔다. 내일은 Sigiriya로 간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한다니 일단 지금은 푹 쉬자.
문화 탐방) 2일 차 2018. 9.22. (토)
ㆍ 아침에 조금 늦잠을 잤다. 식사를 6시 30분에 하는 줄 알았는데, 6시에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늦게 아침을 먹으러 출발했다. 아침은 서양식이 나왔는데, 계란 프라이에 식빵, 과일 등 맛있게 먹고 Sigiriya로 출발했다.
ㆍ 전체적인 코스는 문화 / 역사를 조사한 장소와 비슷했다. Sigiriya, Dambulla, Kandy, Peradeniya 순으로 코스가 정해진 듯했다. 아침 일찍, 약 7시쯤 Sigiriya로 향했다. 한참 자고 일어나니 Sigiriya에 도착해 있었다. Sigiriya는 '카샤파'라는 왕이 커다란 바위 위에 지은 왕궁이었다. 왜 커다란 바위 위에 왕궁을 지었냐면, 카샤파의 왕은 '다투세나'라는 분이었는데 왕위에 앉았던 시절에 항상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청렴하게 살았다고 했다. 다투세나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적자에 '목갈레나'가 있었고 서자에 '카샤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갈레나가 카샤파의 왕위 다툼이 일어났는데, 어느 날 카샤파는 다투세나 왕이 목갈레나에게 재산을 모두 주며 왕위를 계승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다투세나 왕을 찾아가 재산을 모두 내놓으라고 얘기한다. 그 얘기를 들은 다투세나 왕은 카샤파를 한 호수에 데려가고, 다투세나 왕의 재산은 백성들의 농사를 위해 지은 이 호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얘기를 듣고 분노한 카샤파는 다투세나 왕을 죽이고 본인이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 모습을 본 목갈레나는 분노에 찼지만, 후일을 도모하며 인도로 피신을 떠난다. 카샤파는 왕위를 차지했지만, 언제 목갈레나가 본인의 왕위를 빼앗으러 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언제든지 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큰
요새를 원했고, 결국 커다란 바위 위에 본인의 왕궁을 짓게 된다. 11년 뒤 목갈레나는 카샤파의 왕위를 빼앗으러 스리랑카로 들어오고 Sigiriya Rock에서 카샤파 군대에 승리한 뒤 왕위를 되찾는다.
전쟁에서 패배한 카샤파는 혼자 남게 되자 결국 자결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는, 슬프면서도 절실한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ㆍ 입장료는 무려 5,060루피. Residence Visa가 있건 말건 소용이 없었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데 더욱더 놀라웠던 사실은 현지인은 50루피라는 것. 외국인과 현지인의 가격 차이가 무려 100배 이상이 났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ㆍ 본격적으로 올라가기 전 박물관을 잠시 들렀다. 위에 어떤 구조물들이 있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Sigiriya는 원숭이들이 참 많았는데, 사람이 별로 두렵지 않나 보다. 기한 교관이 자그마한 간식을 사서 봉지에 담아 왔는데 그걸 보고 와선 봉지를 강하게 자기 쪽으로 당겨 버린다. 나는 무척 당황했고 기한 교관이 능숙하게 원숭이를 쫓아낸다. 아마 나였다면 벌써 음식을 뺏겼을 거다. 게다가 원숭이들은 광견병도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ㆍ Sigiriya는 무척이나 경사가 깊은 바위산이었다. 당시에 어떻게 이 길을 올라갔을까 싶은 정도로 경사가 가팔랐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Sigiriya 정상에 카샤파의 집이 있었는데 '그곳까지 어떻게 물을 끌어올렸을까'다. 당시엔 당연히 모터가 없었을 텐데, 산 정상에서 물을 썼다고 하니 신기한 노릇이다.
5분 정도 올라가니 열기에 경사까지 숨이 차도록 힘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외국인인 것을 본 사람들이 계속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시키지도 않는 설명을 막 해주더라. '필요 없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외치며 올라갔다.
경사가 꽤 깊다 보니 조금만 올라가도 경치가 확 달라졌다. 조금 경치를 감상하고 있으면 벌써 소장님은 앞에 올라가고 계신다. 정말 강철 체력이시다.
Sigiriya에 올라가다 보니 각종 언어가 다 들린다. 영어 / 싱할라어 / 중국어 / 일본어 / 프랑스어 / 독일어 / 러시아어. 드문드문 한국어도 들린다. 생각보다 Sigiriya는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더라.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걸음걸음마다 돌에 작은 홈이 파여 있다. 아마 옛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 걸음 따라 길을 올랐겠지. 그리고 곳곳마다 카샤파의 '두려움'을 엿볼 수 있었다. 강하게 밀어버리면 당장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한 커다란 돌덩이가 곳곳에 있었다. 카샤파는 어찌 보면 ‘치밀하면서도 항상 불안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중턱에 있는 미인도는 생각보다 큰 감흥이 없었다. 책에서 본 사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자 왕의 입구는 정말 웅장했다. 사자의 발톱이 그려진 석상 너머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시기리야는 싱하(사자) + 기리야(목구멍)의 합성어라고 하는데, 딱 그 모양이었다. 사자의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정상의 풍경은 정말 멋졌다. 사방이 시원하게 뚫려 있고 경치가 기막히게 좋았다. 왕궁을 둘러싼 푸른 산림을 보니 가슴이 서늘해지고 여태 올라온 피로도 싹 가시는 듯했다. 국기를 휘날리며 사진 찍는 사람과 각각 저마다의 Sigiriya의 정상을 즐기고 있었다. 카샤파란 사람은 어떻게 이곳에 터를 잡았고, 물건과 음식과 물은 대체 어떻게 수급하며 살았을까. 의문이 참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올라가는 길은 한참이나 걸렸지만 내려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중간중간에 강당이나 방어선 같은 것을 설치해 놓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ㆍ 내려와서 첫 끼니를 먹었다. 재단의 영수증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인지 식당을 무려 3번이나 옮긴 다음에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밥을 먹고 Dambulla로 향했다. 석굴 사원에 들어가 엄청나게 큰 부처님의 와상을 보았다. 와상을 볼 때 부처님의 발바닥이 일직선으로 놓여 있으면 임종한 것이고, 사선으로 놓여 있으면 돌아가시기 직전이라는 설명도 해 주셨다. 부처님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불도를 설파하셨다고 하셨고 그때엔 열반에 다다랐기에 부처님이 사람의 소리를 내더라도 동물이 모두 알아듣고 이해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와상 주변에는 새나 짐승들이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석굴 사원을 다 보고 황금 사원으로 가는 길에 원숭이도 잔뜩 보고 가판대에서 망고도 사 먹었다. 신기하게 망고에 고춧가루를 뿌려준다.
기한 교관이 내게 하나 건넸지만, 위생상 좋지 않아 보이기에 먹는 척하며 원숭이에게 줬다. 황금 사원은 정말 거대한 불상이었고, 부처님 귀 쪽에 어마 큰 말벌집이 있었다. 부처님 말씀을 잘 안 들으면 쓴맛을 본다는 뜻일까. 황금 사원 안쪽을 보진 못했고 겉모습만 본 뒤, 차에 다시 올랐다.
ㆍ 저녁은 Pizza hut에서 먹었다. Kandy에는 Domino Pizza, Pizza hut, KFC 등 다국적 기업이 가득했다. 피자 두 판에 2L 콜라까지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방에 들어와서 씻고 소장님 컴퓨터에 프로그램 몇 개를 설치해 드린 뒤 다 같이 모여 맥주 한 잔씩을 했다. 맥주에 보드카, 오믈렛까지, 달콤했다.
내일은 불치사로 떠난다. 취기가 약간 올라 일찍 잤다.
문화 탐방) 3일 차 2018. 9.23. (일)
ㆍ 아침 먹고 조금 여유를 가진 뒤 부처님의 치아가 모셔져 있는 불치사로 떠났다. 내일은 Poya Day이기에 불교의 성지인 이곳에 사람이 정말 많이 몰린다고 했다. 불치사에 도착해서 입장권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Residence Visa가 있으면 또 무료란다. 하지만 증빙을 남겨야 해서 일부러 표를 샀다.
불교의 성지라 그런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매일 3번 불치가 있는 방을 개방하는데 그 방에서 기도하기 위해 불신도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예전에 타밀 해방군이 여기서 폭탄 테러를 자행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검열도 철저했다. 다들 꽃송이를 들고선 탑에, 그리고 불치 앞에 하나씩 꽃을 바쳤다. 여느 때와 같이 안전한 스리랑카 생활에 대해서 기원했다. 불치사에서 나와 고고학 박물관을 조금 돌아보고 옛 왕궁터를 잠시 본 뒤 나왔다. 점심은 새로 생긴 Kandy City center에서 먹었다. 이탈리안 음식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Kandy City Center 안에 오락실이 있어서 같이 게임을 했다. 농구 게임, 레이싱 게임 등을 하고 놀았다. 한참이나 재미있게 놀고 옛 왕비의 정원으로 쓰였다는 'Botanic Royal Garden'으로 향했다. 이곳의 입장료 역시도 1,000루피를 호가했고 60루피인 현지인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다.
사실 덥기도 하고 많이 지쳐서 별생각 없었는데 걷다 보니 바람도 꽤 시원하고 푸르게 녹지가 눈이 시릴 만큼 광활하고 평평히 뻗어 있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 느낌이 청량했다. 넓디넓은 평야를 보며 참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공원은 꽤 넓었고 산책하기 좋게 길이 예쁘게 잘 나 있었다. 예쁜 분위기 탓인지 데이트하러 온 부부나 연인들이 많았고, 가족끼리 소풍 와서 돗자리 깔고 앉아 있는 분도 많았다. 한 외국인 친구들은 연못 근처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구름다리를 탔는데 너무 출렁해서 무서웠다. 다른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이 다리가 스리랑카에 있는 거라 안전한지 의문이었다.
ㆍ 오늘의 식사는 중국 레스토랑에서. 밥, 탕수육, 똠얌꿍, 물고기 튀김 등을 시켰지만 양이 적어 아쉬웠다. 문화 탐방을 마무리하는 오늘 밤을 기념하며 술을 한 잔씩 했는데 브랜디를 한 컵 원샷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와 오늘도 취기에 잠에 빠져든다.
OJT) D+0 2018. 9.24. (월)
ㆍ 오늘은 Poya Day이다. 오늘 하루는 Pinnawala 주변의 Elephant Hotel에서 묵고 내일부터 현장 실습 시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3일간 풀었던 짐을 다 싸고 우리 마을 소재지인 Rambukkana 군으로 향했다.
ㆍ 이제는 진짜 실전이구나. 실습 기간 동안 Home stay를 할 집에 들어가기 위해 사업지로 들어오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포장이 안 된 도로에, 어딜 보아도 나무숲에, 나무뿌리가 드러난 채 도로가에 늘어져 있는 흙벽을 보며, 과연 이렇게 정말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잘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푸르른 숲길에서 가슴은 외려 답답했다. 나의 전원생활은 과연 어떨까.
ㆍ 동규가 먼저 Home Stay 집에 내리고 다음은 내 차례인데, 정말 마을의 끝까지 들어왔다. 내가 배정받은 집은 90대 노부부가 살고 계신 집이었다. 생각보다는 집의 상태는 괜찮았다. 집주인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가 묵을 방을 봤는데, 벽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환기를 위해 저렇게 뚫어 놓았다는데, 모기는 어떻게 하고 벌레는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침대 위에 있는 얇은 모기장 하나가 모든 모기를 버텨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ㆍ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압박감과 경험해 보지 못한 시골 생활의 시발점이라 생각하니 혼이 쏙 나가듯 긴장이 되었다. 결국, 내 정신력은 산산조각이 난 후에 다시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나왔다. 소장님이 현장 실습 때 그래도 잘 챙겨 먹으라며 마트에서 음식을 가득 사 주셨다. 감사했다. 당연히, 현지식은 입맛에 더 안 맞을 것이란다.
ㆍ 마지막으로 Elephant Bay 호텔에 체크인하고 오늘의 일정을 끝냈다. 체크인할 때 비가 억수같이 내렸는데, 비를 맞으며 목욕하는 코끼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코끼리가 잘 보이는 창가에 방을 배정받으면서 최종 준비를 마쳤다.
ㆍ 최후의 식사로는 '일식'을 먹었다. Kegalle 지역에 있는 유일한 일식집이었는데, 일식이라 하기도 뭐 한 게 메뉴판에 가능한 일식은 '오코노미야키' 밖에 없었다. 그래도 밥, 오코노미야키, 해산물 등 다양하게 음식을 즐겼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호텔에 들어오고 소장님과 위라지 매니저는 콜롬보로 떠났다. 며칠간 피로가 쌓여서 몇 시간을 푹 잤다. 저녁 즈음이 되어서 기한 교관이 아내분과 같이 호텔에 놀러 왔다. 영상 전화로는 본 적이 있는 분인데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사모님은 11월에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만삭이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Rotti를 먹는 동안 기한 교관의 내외는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사모님이 배고프다고 하셔서 우리는 같이 기한 교관의 집으로 갔다. 기한 교관의 집은 Walpola에서 조금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있었다. 7년 동안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3년 동안 정성스레 지은 집이라고 했다. 그렇데, 집이 정말 좋았다. 이층 집에 방은 무려 5개나 되고, 엄청 넓었다. 커다란 TV에 스테레오 스피커에 심지어 기한 본인의 사무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집의 상태가 좋았다.
내가 '시골'에 대한 무자비한 편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리랑카의 농촌이라 하면 당연히 초가집 같은 건물에 피죽만 먹고살 것처럼 생각했다.
기한 교관에게는 '딜샤니'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우리 또래로 보였다. 마을에도 우리 또래의 친구들이 있구나. 어찌 되었든 기한 교관의 집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널찍하고 쾌적했다. 재미있게 놀고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즐겼다.
OJT D+1 2018. 9.25. (화)
ㆍ 아침 일찍 '차릿'이 Elephant Bay 호텔로 우리를 배웅 차 왔다. 출근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어서 차릿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Hewadiwela 마을로 첫 출근을 했다. 8시 30분 즈음이 되니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한다. ‘주용식’ 팀장님부터 회계 담당 ‘차투리카’, 통역 담당 ‘프라사드’, 트리 휠 담당 ‘쌈빳’, 농업 전문가 ‘소말’까지. 이렇게 5명이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ㆍ 출근 첫날부터 정전이었다. 정전이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단다. 행정 작업, 특히 컴퓨터로 문서를 만드는 일이 대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출근하자마자 정전이므로 간담회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용식 팀장님이 많은 조언을 해 주셨는데, 사실 지금 Hewadewela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듯했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듯 같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단추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심해서 끼우라고 하셨다. 휘둘리지 말며 중심을 잡고, 올곧게.
그래도 주용식 팀장님이 주변에서 열심히 도움 준다고 하신다. 매우 든든했다.
간담회 내용과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① 아직 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각적 자료가 부족.
- 그리하여 지금부터 사례집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하자. 성공 사례는 어떻게 성공했는지, 실패 사례는 왜 실패했는지 냉정하고 철저하게 분석하여 기록으로 남기자.
② 모든 일은 일장일단(一長一短).
- 지금까지는 군대식 명령, 빠른 일 처리의 요구 등을 ‘Catch Prize’로 설정하여, 겉으로는 잘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새마을 지도자만’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사무실을 운영할지 같이 고민을 해 보자.
③ Conference Hall의 부재.
- 이야기를 나누는데 딱히 공간이 없다. 그래서 그냥 아무 곳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④ 강단을 지켜야 함의 중요성.
- ‘돈’이라는 파이를 쉽게 키우면 사람들이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기 쉽다. 계약서에 명시한 그대로 이행을 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⑤ 정전되었을 때 할 수 있는 것.
- 수기로 작성 가능한 보고서 작성, 현장 시찰, 각종 데이터 산출, 현지어 공부 등이 있다. 슬기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⑥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
- 아직은 매주 목요일에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것 빼고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다. 마을 부녀회가 정기적으로 활동을 하거나 주변 ‘ST.ANTONIO’ 고아원의 아이들, 일찍 학교를 끝낸 아이들과 같이 교육이나 영화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⑦ 아직은 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
- 매주 특정 요일을 정해 조합원들끼리 같이 차 마시는 시간,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을 정해 조합원들과 같이 무언가를 하며 회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ㆍ 우기가 다가오고 있단다. 처음으로 Home stay 집에 들어갔다. 90대 노부부가 있었고 할아버지는 식민지 영어를 조금 구사하셨다. 소통은 눈먼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드문드문 이루어졌다.
노부부와 통하지 않는 대화를 잠시 나누고 차를 한 잔 대접받았다. 역시 설탕을 한 움큼 집어넣었는지 무척이나, 정말 달다. 손님이라 비스킷도 하나 내어 주신다.
ㆍ 몸을 씻으려고 하는데 할머님이 머리 위로는 씻지 말라고 하신다. 이유는 모르겠다. 바가지 물로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왔다. '우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또 비가 쏟아진다. 전기는 들어올 생각이 없다. 전기가 없어서 오늘 밤은 아무것도 못 하겠구나 하는 순간 전기가 들어왔다.
ㆍ 첫 끼니를 먹었는데 풀, 감자, 카레, 소시지를 주신다. 솔직히 정말 맛은 없었다. 모든 음식에서 기름에 절인 파릿푸(렌틸콩) 향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밥 먹는 도중에 전기가 또 나가 버렸다. 정말 깜깜했다. 천장 사이로 간헐적으로 빗물도 한 방울씩 스며들어왔고, 말로만 듣던 거대하고 날아다니는 바퀴벌레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두움과 공포에 덜덜 떨면서 몇 분이 흘렀을까 할머님이 휴대용 전등을 들고 오셨다. 전등 불빛에 밥을 먹는데 왠지 로맨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벌레가 무자비하게 달려드는 전등 불빛에 의지한 채 파파야를 후식으로 첫 끼니를 마쳤다. 오늘의 식사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6끼의 저녁 식사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OJT) D+2 2018. 9.26. (수)
ㆍ 오늘은 조합의 차를 타고 직접 버섯 납품을 해 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조합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진행하는 걸 보았고 작업을 해서 만든 물품들을 직접 가게에 납품하는 방식이었다. 오늘은 조합의 차를 타고 직접 버섯 납품을 나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조합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았고 작업을 해서 만든 물품들을 직접 가게에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열 팔레트 정도를 차에 실었다. 차의 공간에 비하면 많은 양은 아니었다. 오늘의 일정은 Kurunegala, Kandy까지 배달하는 일정이었다. ‘두미두’ 운전사와 같이 운행을 나가면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① 납품지가 너무 띄엄띄엄 있는 상태.
- 차를 타고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 달려 조금씩 버섯을 납품했다.
현재 위치한 ‘Hewadewela’ 마을에서 최종 납품지인 ‘Kandy Keels Market’까지 총 2시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중간에 들린 납품지가 로컬 마켓 2군데, Keels 마켓 2군데 총 4군데 밖에 없었다. 납품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② 물건을 팔리지 않았을 경우 대처법.
- 버섯은 유통기한이 짧아서 팔리지 않았을 경우 금방 제품에 물이 생기고 곧 물품이 반품되어 들어온다. 현재는 버섯을 ‘말려서’ 판매를 하고 있지만, 아직 스리랑카에는 말린 버섯을 이용한 요리가 많지 않다. 다른 방법이 있는지 강구할 필요성이 있다.
③ 동선의 효율성.
- 현재 납품 냉동차는 이틀에 한 번씩 3,000루피 정도의 기름을 충전한다. 어떻게 효율성 있게 납품 냉동차를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아야 한다.
- 장거리 운행을 했을 때 최대 100km의 운전을 하게 된다. 현재 납품하는 장소는 Keels super 2곳과 로컬 마켓이다. 현지 대형 유통인 ‘ARPICO’나 ‘CO-OP CITY’ 등 납품지를 만들어 가면 소득 증대 효과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ㆍ 오늘은 운행을 다녀온 것으로 하루가 끝났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집에 돌아가서 밥을 먹었는데 정말 입에 안 맞았다. 정말,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OJT) D+3 2018. 9.27. (목)
ㆍ 오늘은 조합의 체계에 대해 직접 관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에 주민들이 모여 버섯 PACKET을 만든다. 보일러로 소독을 하고 24시간 동안 버섯 배지를 식힌다. PACKET을 식힌 후 종균을 주사하고 DARK ROOM에 넣는다. 주민들이 PACKET이 필요하면 이 DARK ROOM에 있는 배지를 Rs.25에 구매한다. 주민들이 집에서 버섯을 재배하면 매일 아침에 포장해서 조합에 납품한다.
A급 제품은 200g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Keels Market’ 같은 대형상점에 납품한다. Rs.90에 판매되면 Keels에서 Rs.35의 이익금을 가져가고 Rs.55를 정산받는다. Rs.40는 판매비로 주민에게 돌아가고 남은 Rs.15 중 Rs.12는 ‘Profit Account’로, Rs.3은 ‘Fund 1 Account’로 입금된다. B급 제품은 200g 비닐봉지에 담아 ‘Local Market’에 납품한다. Rs.60에 판매되면 Local Market에서 Rs.10의 이익금을 가져가고 Rs.50을 정산받는다. Rs.40는 판매비로 주민에게 돌아가고 남은 Rs.10 중 Rs.7은 ‘Profit Account’로, Rs.3은 ‘Fund 1 Account’로 입금된다.
ㆍ Hewadiwela 사무실 주변에 있는 ‘ST.ANTONIO BOYS HOME’으로 가서 고아원의 현황을 보았다. 아이들이 지내는 시설, 생활환경, 주로 먹는 것들 전부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열이 나서 오늘 학교에 못 간 2명의 학생도 보았다. 시설을 운영하는 신부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셨고 기존 컴퓨터 9대를 지원하는 것에 더해서 ‘직접 버섯을 키워 보는 건 어떤가’ 제안을 해 드렸다. 월 300,000루피로 모든 시설을 운영한다고 했는데 많이 막막한 실정인 듯했다.
고아원에도 직접 들어가 보았는데, 정말 가난한 곳에서 만난 고아들의 시설은 눈물 나도록 짠했다. 열이 나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이들이 지내는 시설, 생활환경, 주로 먹는 것을 전부 천천히 다 살펴볼 수 있었다. 정말 낮고 힘든 처지에 처한 이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늘은 정말 한 층 더 성장하고 보는 눈이 넓어진 하루인 듯하다.
ㆍ 매주 목요일 날은 Hewadiwela 사무실에서 한국어 교실이 이루어진다. 15:00~16:00까지 진행된다. 강사는 통역 담당인 ‘프라사드’와 회계 담당인 ‘차투리카’가 맡고 있었고 교육을 시작한 것은 2달 정도 지난 상태였다. 일주일에 1회를 진행하는데 그때는 ‘강사’로서 일을 하게 되고 ‘강사료’를 따로 지급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새롭게 한국어 교실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싱할라어로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서투른 싱할라어로 한글을 가르쳐 주었는데 곧잘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했다.
ㆍ Home Stay에 들어온 지 3일 차. 싱할라어는 정말 기초적인 수준밖에 되지 않는데, 3일 정도 현지인과 살을 부대끼며 살다 보니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겠다. 그리고 대부분은 느낌대로 알아들은 질문에 느낌대로 대답을 하면 또 얼추 맞는 대답인 것 같다. 신기하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느낌이나 행동을 보면 '나를 참 많이 생각해 주시는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가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데 눈빛만 보아도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만날 확률은 정말 몇 퍼센트나 될까.
OJT) D+4 2018. 9.28. (금)
ㆍ 오늘은 Walpola 사무실에 가 보았다. 이전에 서호현 팀장님이 사용하셨던 곳으로, 동규와 내가 2년간 사용하게 될 듯하다. 앞으로 2개의 건물을 더 지어야 했고 사전에 이행해야 할 것들도 꽤 많아 보였다.
사무실 주변에 있는 나무를 자르기 위해서는 주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추천서가 필요한 듯했다. 애초에 사무실 터가 주변 초등학교의 소속으로 되어있고 스리랑카 보호 품종인 ‘JACK FRUIT’라는 나무를 자르려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다. 교장 선생님의 추천서를 받으면 ‘RAMBUKKANA A.G.A. Office’로 가서 ‘SECRETARY’에게 보고를 하고 나무를 자를 수 있다고 했다. 차릿과 함께 어떤 품종이 있는지, 어떤 나무를 잘라야 하는지 확인을 하고 추천서를 받으러 학교로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과 만나 인사를 드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서도 느낀 것은, 역시 ‘고위층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A.G.A. Office’로 가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지에 대해서 미리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사전에 마을의 이장님들이랑 같이 상의를 하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웬만한 일은 이렇게 차례를 지키는 편이 좋다고 차릿이 조언해 주었다.
학교 시설을 한 번 둘러보며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점심 식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흰밥에 ‘파릿푸(렌틸콩)’만 먹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영양 상태가 괜찮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처럼 급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도시락을 싸 와서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유일한 동양인이라 신기해서 그런지 몰래 숨어서 나를 보다가 도망가곤 했다.
도망가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잠시 같이 뛰어놀았다.
‘차릿’의 소개로 Walpola 마을의 경계를 한 번 돌아보고 새마을에서 지었다는 ‘몬테소리 학교’도 한 번 들러보았다. 3~4살 아이들이 그려내는 그림을 한참이나 지켜보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ㆍ 식사한 뒤 오후에는 주 팀장님께 회계 교육을 받았고, 주 팀장님을 도와 직접 2018년 9월 회계를 도와드리는 실습을 하기도 했다.
OJT) D+5 2018. 9.29. (토)
ㆍ 주말이라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낮에 소장님 가족분이 Hewadiwela 사무실에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사무실에서 소장님 가족을 만났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Pinnawala에 있는 코끼리 고아원으로 향했다. 외국인이면 2,500루피[약 17,500원]를 내야 하지만 Residence Visa가 있어서 100루피를 주고 표를 샀다. 저번에 한 번 본 적 있는 코끼리 샤워를 보고, 코끼리가 풀, 나무를 먹는 것도 보았다.
이까지 온 김에 올해 4월에 개장했다는 동물원도 들렀는데, 깔끔한 외관과 달리 동물 품종이 몇 없었고, 아직 동물들이 동물원에 적응을 못 했는지 머리를 계속 빙빙 돌리고 있는 등 약간 정신병 증상도 보였다. 아직은 짓다가 만 느낌이 강했다.
ㆍ 저녁으로는 버거를 먹었다. 물가와 비교해 터무니없이 비쌌지만, 이곳에서 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일반 가게보다 청결한 게 좋았다.
ㆍ 밥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야 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할머니께 연락을 드리고 동규네 숙소에서 묵었다. 동규는 Home Stay 가족들과 정말 친가족처럼 지내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 아빠, 할머니께 조잘조잘 얘기하고 계속해서 가족들에게 말을 걸어 이야기하는 등 가족 안에 활발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확실히 90대 부부가 사는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심지어 매일 출근할 때 알아주고 출근한단다. 대단한 친화력이다.
OJT) D+6 2018. 8.30. (일)
ㆍ 아침부터 밴을 타고 'Elephant Bay'로 향했다. 소장님을 만나 Countryside Tracking을 떠났다. 그냥 시골길 걷기였는데, 각종 과일나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망고, 킹코코넛, 레이디스 핑거, 커피나무 등등. 그냥 시골길을 걷는 느낌. 그래도 중간중간 열매도 따 먹고 킹코코넛도 마시고 했다.
ㆍ 다시 호텔 쪽으로 돌아와서 이어진 프로그램은 '코끼리 타기'. 코끼리를 타고 강가 주변을 한 번 돌아보는 체험이었다. 한 번에 3명까지 동시에 탈 수 있었는데 나, 동규, 정현이, 사모님 순으로 탔다. 코끼리 등의 높이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그리고 맨 앞자리는 코끼리 끈을 잡아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끈과 쇠가 같이 묶여 있어서 손에 압력이 가해질 때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손이 너무 아팠다. 맨 앞자리는 또 코끼리 귀 주변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귀로 내 다리를 찰싹찰싹 때리기도 했다. 코끼리 등에서 떨어질까 봐 꽤 무서웠지만, 뭔가 황제가 된 느낌이었다. 옛날 왕의 느낌이 이랬겠구나. 상상했다.
코끼리 타기가 끝난 후 코끼리에게 수박을 주고 몸을 씻기는 것도 했다. 보는 것과 달리 피부가 정말 질겼다.
ㆍ 점심으로 소장님이 사주시는 뷔페를 먹었다. 호텔 안에는 중국인, 일본인이 가득했다. 뷔페의 맛은 그저 그랬다. 그래도 맛있게 먹은 후 소장님 가족은 다시 콜롬보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잠시 Hewadiwela 트리 휠 기사 쌈빳 집에 들러 차를 한 잔 대접받았다.
ㆍ 집에 도착하여 KOICA에서 발행한 'Ceylon Zine'을 한참 읽다가 밥을 먹고 잠들었다.
OJT) D+7 2018.10. 1. (월)
ㆍ 오늘 밤을 보내면 OJT가 끝난다. 내일부터는 정식 단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ㆍ 오늘은 Kegalle로 가서 통장 발급을 받았다. Hewadiwela 마을에서 DFCC 은행이 있는 Kegalle 시내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 통장을 발급받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결국 12시가 다다라서 발급을 받을 수 있었다. 예치금을 넣으라기에 1,000루피를 넣었다.
ㆍ 통장을 발급받은 후 Pitiyegama 사무실로 가서 ‘태양광 발전기’에 대해 설명을 잠시 들었다.
그리고 조만간 있을 ‘태양광 발전기’ 입찰 일정도 공유했고, 입찰 방식은 어떻게 하는지, 입찰 공고는 어떻게 했고 입찰 공고를 낼 때 주요 항목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20일 날 Pitiyegama 마을에서 체육대회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Hewadiwela 마을로 들어왔다.
OJT의 마지막 날이므로 주용식 팀장님과 1주일간의 일정에 대해 공유를 한 뒤 현지 적응 교육이 마무리되었다.
ㆍ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는 관계로 빨리 집에 들어갔다. 할머니가 주시는 밀크티 한 잔을 마시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차를 드시는 할아버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차를 마실 때 할머님이 계속 다과를 건네주신다. 배부르게 먹고 오늘은 방에서 쉬었다. 한국에서 받아 온 영화를 두 편이나 보고 늦은 밤이 되어 잠들었다.
ㆍ Home Stay를 하는 동안 음식이 정말 입에 안 맞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즉석요리 식품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견뎠다. 오늘이면 이것도 마지막이구나. 내일부터는 음식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먹어야 하는구나.
OJT D+8 2018.10. 2. (화)
ㆍ 그래도 1주간 정들었던 집을 떠날 준비를 하며 조금은 씁쓸한 아침을 보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둘밖에 남지 않는다고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새 정이 드셨는지 조금 눈물을 글썽이신다. 고마운 마음과 손에 쥐여주시는 바나나를 한 움큼 안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침에 보고서를 하나 작성하고 점심을 먹은 후 새집으로 출발했다. 새집으로 갈 때 마지막으로 스리랑카식 인사를 할아버지, 할머니께 했을 때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계속 생각난다.
현지인의 집에서 ‘지내보는 것’에서 벗어나 ‘문화를 체험해 본다는 것’은 아주 뜻깊은 경험이었다. 또한, 앞으로 이 마을에서 계속 지내야 할 수도 있는데 오래 있어야 할 이 마을에 ‘같이 생활한 친구’를 얻었다는 생각에 좋기도 했다. 꽤 힘든 시간이긴 했지만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ㆍ 새집은 아주 크고 넓었다. 이곳저곳 고장 난 것들도 많았는데 1층 방들 상태가 그런대로 제일 괜찮았다. 집기류 확인을 하느라 1, 2층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했고 짐을 조금 푼 다음에 집주인과 조금 얘기를 했다. 생각보다 아주 멋진 형이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왔고 1억 원을 벌어 이 빌라를 지었단다.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서 살고 싶어서 지금 이탈리아 여성분과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은 이탈리아 비자를 기다리고 있고, 비자가 나오면 하루라도 빨리 이탈리아로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때까지 이 빌라를 운영하다가, 그 이후 출국하면 집은 알아서 하라고 한다.
얘기를 잠시 한 후 같이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고 집 정리를 대충 한 뒤 첫날밤을 쉬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G.R. Vi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