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D+1279 2017. 9. 1. (금)
ㆍ 방학을 맞이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방학기간 중에 계속해서 이어진 입시 설명회와 천마아트 센터 출근으로 인해 방학 때도 매일매일 학교에 출근을 했고, 개강을 막 앞두고 있는 방학 끝물에서야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부모님은 호주로, 친누나는 유럽으로 떠났고 얼마 전 천마아트센터로부터 약간의 수당을 받은 것이 있어서 30만 원 남짓한 그 돈 하나만 믿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저번에도 그랬듯 이번 여행도 완전 무계획이다. 몇 시에 출발할지도 정하지 않아서 그냥 자고 일어나는 대로 집을 나섰고, 내일로의 꽃인 발권역 혜택을 귀찮아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출발했다. 여행을 철저히 준비해서 간 것은 아니고, 오후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다가 대강 준비해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여행 코스도 그냥 '강원도 쪽에나 가야지'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ㆍ 동대구역에서 기차표를 발권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여행을 하고 싶은 도시에서 발권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단다. 그래야 혜택이 많단다. 사실 혜택이라 해봐야 얼마나 많은 혜택이 있을까. 그냥 동대구역 여행센터에서 물이랑 목베개, 치약 칫솔 세트 같은 것들을 챙겨 주시길래 물건을 한 아름 안고 역을 나왔다.
목적지는 그저 '강원도'라는 추상적인 것이어서 그냥 강원도로 가는 기차 아무거나 타고 가기로 했다. 마침 정동진으로 향하는 무궁화호가 약 20분 후에 출발하길래 그냥 그것을 탔다. 내일로 여행이 끝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학교에 출근을 또다시 해야 했기에 5일권을 끊었다. 저번에 탔을 때는 가격이 5만 원대 중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격이 올랐나 보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창가에 앉아서, 자리에 앉을 때 까지도 몰랐지만 장장 6시간의 시간을 걸쳐서 강원도로 출발했다. 미리 집에서 학교 교지를 챙겨가서 가는 내내 읽었는데, 4시간에 걸쳐 한 권을 정독으로 독파하고 나서도 도착역까지 시간이 무려 2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낮에 한참이나 자고 출발을 했기에 기차에서도 별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냥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들에 마음을 맡기고 편안하게 기차를 타고 계속해서 강원도로 나아갔다.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첫 번째 목적지인 묵호역에 도착했다. 내가 묵으려는 게스트 하우스는 매일 밤마다 파티를 한다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을 해서 파티도 이미 다 끝나있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허기를 채우고 바로 숙소에 들어와서 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수강 신청을 하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 주변에 있는 PC방에서 아침시간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점심 즈음이 되어서 다시 숙소 부근으로 돌아왔는데, 내일로 이틀차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강원도의 날씨는 1주일 연속으로 약한 비가 내리고 있기도 했다. 상황적으로는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 강원도까지 왔으니 비를 맞으면서 숙소 주변에 위치한 '논골담길'로 향했다. 논골담길은 그냥 평범한 골목 이름이지만 속에는 아주 예쁜 벽화들을 많이 담고 있는 골목이었다. 논골담길은 1길, 2길, 3길로 나누어져 있는데 사실 어느 코스를 밟든 간에 최종 목적지는 '묵호 등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님의 추천을 받아 논골 3길로 향했다.
비가 살살 나리는 가운데 걸었던 논골담길은 너무나도 좋았다. 부산 감천 문화마을, 대구 김광석 거리를 포함해 꽤 많은 벽화 골목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상업적이지 않고 순수한 느낌의 벽화 골목은 정말 처음 받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곳에 살고 계시는 주민들을 '위해서' 이 골목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조용하고 한적해서 관광지가 아닌 사람 사는 동네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점이 너무나도 좋았다. 구불구불 가면서 논골 3길도 걸었다가, 2길도 걸었다가 하다 보니 논골담길의 하이라이트, 묵호 등대가 나타났다. 하지만 사실상 일주일째 계속 비가 나리고 있어서 안전상의 문제로 묵호 등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묵호 등대로 찾아가는 길, 그 과정에 담겨 있는 수많은 스토리들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한라산을 갔을 때 백록담 한 번 보겠다고 꿋꿋하게 올라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남는다. 묵호 등대에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이렇게 출렁다리가 나온다. 하지만 그저 꿀렁일 뿐 출렁인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대충 묵호 등대 주변을 돌고 나니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역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님이 추천해 주신 물횟집을 가기로 했다. 사실 묵호가 물회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내가 들렀던 '오부자 횟집'은 물회만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였다. 메뉴가 메뉴이고,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대부분 손님들이 가족단위였고, 젊은이 혼자서 물회 하나를 시키는 테이블은 오직 내 자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물회는 맛있었다. 정말 좋았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 테트라포트 앞으로 수변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지만 파고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높지 않고 잔잔한 파도, 좋았다. 숙소에 잠시 들렀다가. '천곡 동굴'로 향했다. 천곡 동굴은 전국 유일하게 도심 한가운데 있는 동굴이란다. 사실 동굴에서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냥 동굴 바로 앞에 여고가 있었고, 동굴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동해 시내가 보이는. 지리적으로 독특한 지역에 위치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동굴 자체의 천장이 너무 낮아 동굴을 걷는 내내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했고, 최근 동해시에 계속 비가 내렸기 때문에 침수된 장소도 꽤나 많았다. 저승굴이라는 공간도 있었는데, 정말 저승굴이라는 이름이 어울렸다. 굴의 길이가 꽤나 길었는데 굴의 높이가 내 어깨 즈음 밖에 안 돼서 구경은 잘 못하고 그냥 허리만 주무르다가 나왔다. 그래도 천곡동굴을 돌고 나니 날씨도 꽤나 시원해지고 비도 어느 정도 그쳐 있었다. 사실 이후의 별다른 계획은 없었는데,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추암해변'이라는 곳이 있다고 했던 것이 인터넷 저 구석에서 본 기억이 나서 그냥 추암해변으로 출발했다.
추암 해변은 대중교통으로는 도착하기 매우 힘든 장소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추암 입구에 내렸지만 해변까지 가려면 30분이나 뚜벅뚜벅 걸어야 했다. 30분이나 걸어서 나간 거리에 예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번 여름에 바다는 한 번이나 볼 수 있으려나 했지만, 이렇게 우연히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맡는 바다 짠내가 너무 좋았다. 날이 꽤나 추웠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신나게 파도와 친구가 되고 있었다. 추암해변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나 있었는데 산책로를 올라가면, 추암 해변의 랜드마크인 촛대바위가 나온다. 촛대 바위는 전 국민에게 익숙한 바위로 유명하다.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면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장면이, 이 촛대바위라서. 맑은 해변가를 걷다 보니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좋았다. 어느샌가 비도 그치고 있었는데 마침 우산도 꼭 하고 부러져 버렸다. 두 손을 가볍게, 한참이나 해변가를 산책했다. 동해시에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한참 루프탑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루프탑 파티란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그날의 게스트들이 모여서 같이 고기를 구워 먹고 술자리를 가지는 파티였다. 반짝이는 미러볼 뒤로 게스트들과 같이 여독을 푸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참여자는 남자 7명 여자 1명으로 완전 남초였는데, 덕분에 파티에 참여한 누나는 완전 공주대접을 받았다. 게스트들과 좋은 시간을 나누고, 작은 폭죽을 터뜨리는 것으로 오늘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다들 파티의 아쉬움이 남았는지 주변에 있는 바다로 가서 맥주 한 잔씩 더 마시는 것으로 오늘하루는 마무리되었다.
사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다음 목적지는 강릉으로 향하려고 했다. 강릉에는 저번에 한 번 갔었던 상상 Univ의 최상선 팀장님도 계시고,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던 삼양목장도 강릉에서 조금 떨어진 대관령에 있기 때문이다.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고 출발하려면 일찍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서 새벽같이 묵호역으로 갔다.
하지만 그냥, 갑자기 마음이 그래서 완전히 다른 목적지로 향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강릉과 정 반대로 떨어진 원주. 원주가 어디가 있는 곳인지도, 무엇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그냥 기차를 타고 원주로 와버렸다. 묵호에서 원주까지는 무궁화호를 타고 4~5시간 즈음이 걸린 것 같다. 기차에서 쿨쿨 자고 있다가 다른 손님이 자리를 비켜달라는 소리에 깼는데 그 역이 원주역이어서 부리나케 내렸다. 급하게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짐을 푼 뒤 점심을 먹으러 원주 중앙시장으로 갔다.
나는 지역의 시장을 돌아보는 것을 좋아해서 식당을 정할 때 가장 1순위는 항상 바로 지역 시장으로 정한다. 사실 원주 전통시장의 초입에는 별 다를 것 없는 시장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정말이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원주의 시장은 전통 시장, 자유 시장, 미로예술 중앙시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시장마다 특색이 뚜렷했는데, 시장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 원주 시장에 유명한 로컬 맛집으로 보이는 분식집으로 향했다.
원주 자유시장 신혼부부는 꽤 유명한 맛집이었는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줄을 쭉 서고 있었다. 가격도 꽤나 착하고 가게 안의 환경도 쾌적했다. 이곳에서 김치볶음밥과 돈가스가 유명하다고 했는데, 나는 돈가스를 주문했다. 돈가스 소스에서 약간 양념 치킨맛이 났는데, 딱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금방 한 그릇 금방 비웠다. 미로 예술 시장에는 청년몰이 잘 발달되어 있었는데, 그중 마카롱을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와서 그 가게에 들어갔다.
맛있어 보이는 마카롱이 많았지만 그중에 녹차 마카롱을 주문했다. 마카롱을 먹으면서 사장님에게 몇 가지를 여쭈어봤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이곳의 사업들이 고용부에서 진행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청년몰들이 전국에 활성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마카롱이 그렇게 달기만 한 후식은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났다. 마카롱을 사장님이 직접 만든다고 하셨는데, 너무 맛있었고 좋았다. 또한 인형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도 있었고, 최근 인상 깊게 본 '빨간 머리 앤'을 자수를 떠서 전시를 한 가게도 있었다. 정말 만화 영화 안의 앤이 겹쳐지면서 한참이나 앤의 그림을 보면서 서 있었다. 정말 인상 깊었던 공간이다. 또한, 이 시장 만을 위한 미술관도 있었다. 그리고 덕질장려를 모토로 삼는 토이샵까지 정말 개성이 넘치는 청년몰들이 많았다. 아직 원주의 시장 중 일부만 돌아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행복했다. 다음 목적지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님이 추천해 주신 '뮤지엄 산'이라는 곳이었는데 셔틀버스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주변에 있는 감영도 잠시 들렀다. 강원 감영을 빼꼼 들여다보았다.
사실 큰 볼거리는 없었지만 도심 속에 이런 감영이 위치한 것도 너무 좋았다. 강원 감영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셔틀버스를 타고 오크밸리 주변에 있는 '뮤지엄 산'으로 향했다. 셔틀버스에서는 관광사님이 이런저런 설명도 해주셨는데, 그런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그냥 나는 주변 경치를 것으로 만족했다. 뮤지엄 산은 정말 그림 같은 곳에 숨어있었다. 사실 무슨 이런 골프장 안에 미술관이 있나 싶을 정도로 산속에 숨어있기도 했다. 표를 끊고 입장을 했는데, 일반 미술관보다는 확연히 가격이 비싸기도 했다. 일반 전시존과 체험존이 있었는데, 둘 다 이용을 하려면 약 30,000원가량을 지불해야 했다. 대학생은 20% 할인이라, 난 2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지불하고 미술관으로 들어왔다.
뮤지엄 입구에서 전시장까지 거리가 꽤 길었다. 하지만 탁 트여 있는 풍경에, 이곳저곳 예쁘게 방긋 웃고 있는 꽃망울을 보니 절로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이런 공간에 미술관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또한, 동전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주머니에 있는 백 원짜리 동전을 휙 하고 던져 버렸다. 가운데 구멍으로 넣은 사람에게 작은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운 좋게도 한 번에 바로 동전을 넣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동전을 넣었다는 사실을 까먹어서 상품을 받지는 못했다. 양 옆으로 펼쳐진 작은 호수 사이로 높게 뻗어있는 빨간 조형물을 보고 감명받아 한참이나 입구에서 서성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뮤지엄 산은 종이 지(紙)를 주제로 4개의 전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종이의 역사부터 해서 활용, 체험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큐레이터분이 뮤지엄 산을 방문한 자신의 친구들에게 이번 주제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것을 살짝 엿들었는데, 얼핏 봐도 내 또래로 보이는 큐레이터 분이 종이에 대해서 심도 깊게 얘기해 주시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어느 순간, 나도 우리 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문화유산 해설 전공'의 수업을 들어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시물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뮤지엄 산에는 James Turrell 작가가 지은 일종의 체험 공간이 있었다. 입장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시간대 별로 나뉘어 들어가야 했는데, 나는 미술관에 입장한 후 1시간 30분 후의 표를 끊었었다. 1시간 30분이란 시간이 무척이나 짧아 보였는데, 한참이나 종이의 세계에 빠져서 이런저런 전시물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James Turrell 전시관은 체험 공간으로서,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뮤지엄 산'의 특성을 이용하여 미술 작품과 자연의 조화를 알 수 있는 체험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착시 현상을 이용한 작품들이 많아서 특히 눈과 각종 감각이 재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그저, 하얀 방이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프로젝터를 쏜 것처럼 평평한 공간인 줄 알았지만 새삼 공간이 엄청나게 넓은 곳이었다는 것을 보며 많은 신비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 창문을 액자처럼 만들어 자연환경을 미술 작품처럼 표현해 놓은 것도 인상 깊었다.
James Turrell 전시관을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까 미처 다 보지 못한 전시관을 돌고 있는데, 큐레이터 한 분이 대구에서 왔다는 청년의 말을 듣고 뮤지엄 산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사실 도슨트 시간이 끝나서 원래는 미술 작품을 보는 것 만으로 만족을 했어야 했는데, 큐레이터 분이 직접 내 곁에 따라다니면서 작품 하나하나를 다 설명을 해 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감동을 받았다.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어가고 있었고, 나는 다시 원주시내로 돌아왔다.
원주에서의 저녁은 지역에서 꽤 유명하다는 불고기 집으로 향했다. 메뉴는 불고기와 밥, 불고기와 막국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고기와 막국수의 조합은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고기와 국수의 조합으로 주문했다.
밥을 먹으면서 고기와 국수는 그렇게 찰떡궁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릉 여타 다른 불고기들과 달리 단맛이 되게 강했는데 아마 물엿 향이 많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앞으로 고기를 먹을 때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교훈도 깨달았다. 맛은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카페 골목에 들러서 커피를 한 잔 하고 갈까 생각을 했지만 날씨가 계속해서 흐렸고 시내버스가 곧 끊길 시간이라 그냥 바로 숙소에 들어와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은 영대사랑 동기인 동규와 청주에서 아침 일찍 만나기로 했다. 동규와 일찍 만나려면, 일찍 잠에 빠져 들어야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동규를 만나러 청주로 향해야 했다. 아침 일찍 기차가 있어서 새벽같이 일어났었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분이 벌써 일어나 계셨다. 청주로 출발한다고 말씀드리니, 직접 원주역까지 태워주셨다. 원주역까지 가는 길에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없다고 말씀드리니 내 나이 때 여자친구가 없으면 패배자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다. 젊을 때 열심히 만나고 사랑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청주로 도착해서,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충북대학교' 주변에서 동규를 만나기로 했다. 충북대학교에서 동규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멀리서 동규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규와 만나서 주변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하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숙소가 충북대 주변이라 대학가에 무엇이 유명한지 찾아보았는데, 'Varnish Burger'라는 수제버거 가게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쪽으로 향했다. Varnish Burger에 들어와서 일단 동규와 대화를 조금 나누었다. 사실 이번 내일로도 동규와 같이 오기로 했었는데, 동규의 입시 설명회 일정이 조금 꼬이는 바람에 이렇게 중간에 합류하게 되었다. 동규를 만나서 이번 여행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동규는 특히 원주에서 갔었던 '뮤지엄 산'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주문한 햄버거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빵과 같이 먹는다기보다, 빵을 곁들여서 먹는 느낌이었다. 맛은 있었지만 보이다시피 소스의 향이 강해서 많이 자극적인 음식이었다. 그래도 한 끼 맛있게 먹고 본격적인 청주 탐방을 시작했다. 일단 주변에 위치한 충북대학교를 한 번 구경해 보고 관광지로 넘어가기로 했다. 학교의 생김새가 우리 학교와 참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 도로를 사이에 끼고, 양 옆으로 자연대와 인문대가 나뉘어 있었다. 충북대학교를 잠시 둘러보고, 청주에 유명한 관광지인 '수암골'로 향했다.
수암골도 청주에 위치한 벽화마을이라고 했다. 묵호에서 보았던 논골담길도 참 좋았어서 수암골도 한 번 돌아보고 싶었다. 수암골에 도착해서 알았는데, 예전에 KBS에서 방송했던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가 여기 청주의 수암골이라고 했다. 실제로 방송에 나왔었던 빵집을 아직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까, 수암골을 잠시 둘러보고 한 번 들어와 보기로 했다. 방명록을 작성하니, 수암골의 지도를 나누어주셨다. 수암골은 이것저것 재미있는 그림들이 많았다. 지도에 '아이스크림 가게'라는 곳이 있길래 찾아갔는데,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던 황당한 일도 있었다. 또 중간즈음 '제빵왕 김탁구'에 나왔던 배우들의 핸드프린팅이 있었다.
이렇게 이것저것 구경해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산도 없고 일단 비를 피해야 했기에 주변에 있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기로 했다. ‘풀문’이라는 카페에 들어왔는데, 이곳이 치즈빙수 1호점이라고 했다. 그만큼 치즈빙수를 전적으로 밀고 있기에 치즈 빙수를 하나 주문했다. 치즈 빙수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테이블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 렌즈가 떨어져 버렸다. 엄청나게 당황해서 엘리베이터 바닥을 싹싹 뒤졌는데도 없었다. 절망하면서 얼굴에 손을 갖다 댔는데, 떨어진 렌즈가 얼굴에 붙어있었다. 다행이었다. 급하게 렌즈를 빼고 빙수를 먹으려 앉았다. 평소 느끼한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치즈'가 들어간 것들은 웬만하면 피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이왕 치즈빙수를 시켰으니 한 번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느끼하고 달달하는 맛이 딱 이맛이구나 싶었다. 여성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맛이겠구나 싶었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는 기미가 보이자 나가서 수암골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수암골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바로 '연탄아트'이다. 사용한 연탄 위에 그림을 그려 놓았던데, 연탄에 그림을 그렸다는 발상이나 소재 자체가 엄청 특이했고, 깜짝 놀랄 정도로 그림의 퀄리티도 높아서 한참이나 연탄 앞에 서서 바라보기도 했다. 연탄에 예쁜 그림을 그린 것들도 인상 깊었지만, 거리 곳곳에 이렇게 연탄 일기라고 해서 예쁜 글귀를 많이 써 놓았더라. 마음에 와닿는 글들이 많아서 수암골에 적혀 있는 모든 연탄 일기를 읽어 보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을 한 구석에는 이렇게 아이들이 그려 놓은 벽화도 있었다. 귀여운 그림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보았다. 수암골을 다 돌아보고 '제빵왕 김탁구'에 나왔었다는 빵집에 들어갔다. 당시 방송에서 나왔던 '보리밥 빵'을 팔고 있길래 동규랑 나랑 하나씩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만든 빵이라서 조금 의아했는데, 그다지 별로 맛은 없었다.
허기를 조금 채웠다고 생각하고, 청주 시내로 향했다. 청주에는 육거리 시장이라는 곳이 있다기에, 그곳으로 향했다. 전통 시장에 벽화 마을까지, 청주는 하루정도 여행하고 떠나기 참 좋은 도시인 것 같다. 청주 육거리 시장에는 이렇게 새우만두를 팔고 있었다. 난생처음 본 비주얼에 신기해서 하나 사 먹어 보았다. 이것도 참 익숙한 맛 두 개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전혀 새로운 맛이 나길래 참 신기했다. 꼭 먹어보았으면 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이곳에 들린다면 한 번쯤은 먹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괜찮았다. 동규랑 청주 시내를 돌아다녔다.
청주 시내는 생각보다 크고 꽤 길었다. 대구 동성로처럼 커다란 건물이 줄지어 서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상점가가 끝없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참 놀라웠다. 그중에 '삼겹살 거리'가 있다고 하기에 그쪽으로 향했다. 삼겹살 거리에도 삼겹살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느 가게이든지 사람이 많아서 그냥 동규가 들어가자고 하는 가게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 가게에서는 삼겹살을 구울 때 연탄이나 번개탄을 안 쓰고, 위에 보이듯이 편백나무를 태워서 굽는다고 했다. 가게에 들어가서 삼겹살을 시키니 문어도 한 마리 주셨다. 삼겹살과 문어를 같이 먹는 것은 정말 살면서 처음이었다. 문어를 굽는 방법도 잘 모르고 이렇게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사장님께 계속 어떻게 먹냐고 물어보았다. 용기 내서 문어 머리도 먹어 보았다. 생김새와 달리 고소하고 맛있었다. 밤에는 그냥 잠에 빠져들기 그래서 청주에 있는 클럽에 다녀왔다.
ㆍ 다음 날은 늑장 부리며 일어나서 천안역으로 향했다. 다음날 영대사랑 졸업 페스티벌을 준비해야 해서, 아쉽지만 오늘 꼭 내려가야 했다. 비가 슬슬 온다는 소식이 있었기에 무언가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전부터 동규가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엄청 보고 싶어 했는데, 오늘 비도 오고 천안아산역 주변에서 그 영화를 상영한다기에 천안아산역 주변으로 향했다. 영대사랑 선배인 체현이에게 영화 소개를 받았다는데, 엄청 기대하고 있더라. 영화를 보는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늦은 점심이라도 먹을 겸 영화관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도쿄에 갔었을 때 먹었던 '멘야 무샤시'라는 내 인생 맛집과 이름이 비슷한 '멘무샤'라는 일본 라멘집을 선택했다. 정말 맛있는 라멘을 그곳에서 맛보았기 때문에, 사실 라멘에 관한 입맛은 엄청 까다로워지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여느 라멘집과 다르지 않게 면발도 얇고, 차슈도 얇고, 계란도 퍽퍽했다. 이후에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체현이는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데, 사실 나는 그만큼 감정이 벅차지는 않았다. 적적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를 한 편 잘 본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바로 대구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동규가 꼭 주변에 있는 미술관에 가고 싶다고 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는데 비 맞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동규가 꼭 미술관에 들리자고 하길래 일단 가 보았다.
미술관 이름은 '아라리오 갤러리'란다. 지역 작가의 전시물이 게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네온사인으로 전시를 해 놓았던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냥 떠오르는 시상이나 단어들에 빛과 색깔을 입히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뚜렷한 미래와 불확실한 미래를 표현한 듯싶었다. 순간 떠오르는 색상들을 파스텔에 담아내는, 인상주의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듯했다. 기차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서 천안 시내도 잠시 돌아다녔다. 그중 '토마토 빙수'를 파는 가게를 발견해서 그쪽으로 들어갔다. 처음 먹어본 토마토 빙수였는데, 둘은 별로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것 같다. 빙수가 단맛보다 신맛이 나니까 물려서 많이 먹지는 못하겠더라. 시간을 맞춰서 기차를 타고 다시 경산으로 떠났다.
5일간의 여행이, 내 1주일간의 노동이 끝나가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담아보았던 사월교는 부쩍 시원해진 게 느껴졌다. 그냥 바로 집에 가려고 했는데, 동규가 아쉽다고 해서 순댓국으로 마무리를 했다. 이번 여행도 사실 무언가 크게 바란 것도 아니고, 사실 무언가 크게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냥 무작정 걸어보고, 현지에 가서 무언가 알아보고 하는 것도 그만큼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방학도 슬슬 끝나간다. 어떤 2학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입학) D+1306 2017. 9.28. (목)
ㆍ 방학이 금세 끝났다. 이번 방학은 학교에서 활동을 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린 것 같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입시 설명회 일정에, 중간에 내일로 기차 여행도 다녀왔고, 개강한 이후에는 홍보대사 동기들과 MT도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 2학기는 기숙사에 입소했다. 매달 나가는 월세값이 아깝기도 했고, 우리 학교에 ‘향토관’이라는 기숙사에 공실이 있다고 해서 별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그렇게 다시 룸메이트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나와 동갑이지만 서울에 있는 학교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합격하면 곧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편입 공부에 매일 아주 열정적이다.
ㆍ 입시 설명회를 다녀오면 대구 시내 지역은 3만 원, 시외 지역은 5만 원씩, 홍보대사 학생들에게도 수당을 준다. 2달 동안 꾸준히 입시 설명회에 다녀오니 약 60 만원의 수당이 입금되었다. 홍보대사 활동에 필요한 회비를 납부하고도 꽤 많은 액수의 금액이 남아 이 돈을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유럽 여행에서 만난 승현이가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 준 것이 기억나, 조금 검색을 해보곤 동규와 같이 일본 후쿠오카행 표를 바로 발권해 버렸다. 동규는 일본이 처음이라고 하고 나도 일전에 누나와 갔던 게 마지막이다.
일본에 갈 때까지 일본어 공부를 조금 해 놓으려 한다.
ㆍ 이번 학기 수업 중 ‘사랑학 개론’이라는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수강 정정기간에 교양 수업 공석이 하나 남아, 수강해 보게 되었다. 수업의 이름부터 대체 무엇을 배우는 강의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생각과는 다른 OT가 시작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첫 수업에 강의실에 앉아있는 모든 학생들을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시켰다. 모든 학생들은 당황한 티를 감추지 못했지만, 한 명씩 차례차례 짧고 간결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대부분 이름, 학과, 학번 등의 상투적인 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그냥 홍보대사 인사를 해버렸다. 그러자 교수님 눈이 동그래지시더니 나를 연단으로 부르셨다. 그리고선 대뜸 지금부터 학교 홍보를 1분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한창 입시설명회에 다니고 있을 때라 그런지, 발표 연습은 충분히 되어 있어서 즉석으로 시킨 홍보였지만, 나름 잘 해내었다. 그러더니 교수님이 다음 수업에는 홍보대사 단복을 입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맞는 걸까, 수업 초반부터 엄청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는 수업을 같이 듣는 어떤 학생이 찾아와서 자기도 홍보대사에 관심이 있다며, 이것저것 정보를 좀 공유해 줄 수 있냐고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친구가 되기도 하는구나.
입학) D+1315 2017.10. 7. (토)
ㆍ 일본으로 향하는 쾌속선을 예약하고, 환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출국날을 기다렸다. 한국의 연휴는 30일 토요일부터 시작이지만, 우리는 금요일 공강이기 때문에 조금 더 빠른 시간에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으로 뜨기로 했다. 남들보다 하루빨리, 우리의 연휴가 시작되었다. 미처 못 먹은 아침을 먹으며, 아침 일찍 부산역으로 향했다. 부산항 국제 여객선 터미널은 부산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후쿠오카였는데, 하카타는 후쿠오카의 다른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국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배를 타고 해외를 나간다는 생각을 하니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실 멀미가 조금 있는 편이라, 뱃멀미를 할까 싶어서 살짝 걱정이 되었었는데 거의 흔들림이 없다시피 운항해서 깜짝 놀랐다.
쾌속선에 오른 후 약 세 시간이 지나니 어느덧 일본 땅에 도착해 있었다.
일본 여행을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도 대충 동선은 짜 놓았었다. 동선에 맞추어서 사전에 숙소 예약은 하고 갔기 때문에 일단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로 향했다. 원래 체크인이 4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입실을 하러 숙소 앞에 갔는데 분위기가 엄청 음산하고 무서웠다. 심지어 4시 10분이 지났음에도, 주인장님이 안 계셨다. 여기에 묵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을 하고 있는 와중에 동규가 여기 숙소가 너무 무섭다고 했다. 그러더니 텐진 쪽에 위치한 다른 숙소를 잡고, 그쪽으로 이동하자고 그랬다. 사실 나는 조금 황당한 부분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의 숙소는 그렇게 급하게 텐진(天神, Tenjin)으로 바뀌었다.
원래 예상했던 숙박비의 2배가 나왔지만 방이 너무 깨끗하고 청결해서 좋았다. 입실을 했는 것이 저녁 6시 부근이었는데, 그전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일단 주린 배를 채우러 나왔다 일본에 왔으니 일단 초밥부터 먹고 싶어서 주변의 회전초밥 가게에 들르기로 했다.
숙소 근처의 초밥 가게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학생들이 우리를 붙잡았다. 뭔가 해서 봤더니 얘들이 우리랑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일단 같이 찍자고 해서 찍기는 했는데, 왜 사진을 찍자고 했는지 참 궁금했다. 사진을 다 찍고 같이 사진 찍은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서 그 친구들에게 카카오톡 ID를 받았다.
초밥 가게에 도착해서 왜 우리랑 사진을 찍었냐고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너무 멋있어서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답장이 왔다. 일본땅에 오자마자 너무 감동받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밥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아직 안 먹었다기에 같이 먹자고 그랬다. 돈이 부족하단다. 괜찮다고, 우리가 사겠다고 해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불렀다. 일단 만나긴 만났는데, 내가 일본어가 그렇게 유창한 것도 아니라, 참 난감했다. 심지어 이 친구들은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고 일본사람 특유의 영어 발음은 참 알아듣기 힘들었다. 라면 가게에 들어갔는데 참 이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소개팅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이랑 식사를 하는 자리라니. 겨우내 통성명을 했는데 이 친구들의 이름은 카사하라 나나(笠原 菜那), 나가이 유우키(永井 友季)라고 했다.
ㆍ 나는 그 상황에서 기억나는 일본어를 다 끄집어내서 이야기를 했다. 결국 서로 소통이 힘들어서 번역기만 계속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통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온 곳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과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다. 정말 맛있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라멘을 먹고 이 친구들이랑 같이 커피 한 잔 마시러 가기로 했다. 커피를 한 잔 하러 가는 길에 너무 길을 많이 헤매었다. 겨우내 경양식집에 들어갔는데 학생들 입장에서 커피가 너무 비싸서, 그냥 주변에 Starbucks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인지 Starbucks가 조금 비싸고 고급 브랜드로 인식되어 있는데 일본에서는 저렴한 곳으로 인식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기들이 자주 찾는다는 곳으로 향했다.
Starbucks에서도 겨우겨우 대화를 이어 갔다. 사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긴 했는데,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구마모토 현에 있는 '아소 산(阿曾山, Aso Yama)'이라는 곳인데, 그것 말고는 별다른 목적지도 없었고 마지막 하루는 일정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날 다시 한번 더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이 아이들과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계는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쿠오카의 지하철도 대구 지하철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막차 시간이 열두 시 부근이었는데, 열 한시쯤 되어서 각자 집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후에 딱히 일정이 없었는데, 카사하라 나나의 집이 후쿠오카의 명소인 '후쿠오카 타워(福岡タワー, Fukuoka tower)' 주변이라고 해서 나나를 데려다 줄 겸 후쿠오카 타워도 볼 겸 후쿠오카 타워가 주변에 있는 '니시진 역(西新)'으로 향했다. 니시진 역에서 나나를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입버릇인지 모르겠는데 나나는 말하는 중간중간마다 '에? 에?'라고 추임새를 넣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이 엄청 귀여워서 동규랑 나랑 엄청 따라 했다.
사실 우리가 나나의 집까지만 데려다주려고 했지만 나나가 우리를 후쿠오카 타워까지 안내를 해주었다. 이렇게 마지막 사진을 찍고 나나를 집으로 보냈다.
ㆍ 나나를 집으로 보내고 우리는 잠시 후쿠오카 타워를 둘러보았다. 멀리서 본 후쿠오카 타워는 꽤나 아름다웠다. 생각했던 것보다 풍경이 예뻐서 좋았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있는 중간에 영업시간이 끝났는지 불이 다 꺼져버렸다. 원래 후쿠오카에서는 마리존과 모모치 해변을 관광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후쿠오카 바로 뒤에 모모치 해변이 있다기에 잠시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해가 져버린 밤이라 풍경이 어떠한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후쿠오카라는 도시는 참 살기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공간이었다. 관광객이 다 빠져나간 이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으니 너무 행복했다.
모모치 해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우리 숙소가 있는 텐진역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주변 포장마차에 들려서 동규와 맥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여기서 동규랑 이것저것 주문해서 맥주를 마셨는데 정말 시원하고 달았다. 동규와 별말 안 하고 그냥 한 잔 마시며 주변 한 번 보고, 또 한 잔 마시며 주변 한 번 보고 하는데 그냥 그게 너무 좋았다.
여기서도 처음 보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주셨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고 후쿠오카에 처음 왔다고 말을 했는데 일본어를 꽤 잘한다고 하시면서 술을 따라주셨다. 그 아저씨들과 계속 건배를 했는데 그 아저씨가 주변의 자기 지인들에게 모두 우리를 소개해 주셨다. 결국 포장마차에서도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랑 다 술 받아서 마시고 건배하면서 돌아다녔다.
그중에 '야요이'라는 여성분이 있었는데 우리에게 꽤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다. 그 자리가 파하고 우리 숙소로 돌아가는 동선이 비슷해서 같이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요이 씨는 직장이 홋카이도에 있었는데, 가을 방학을 맞아 고향인 후쿠오카로 돌아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편의점에 들러 자기가 평소에 좋아하는 과자를 우리에게 선물로 하나 사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결국 아요이 씨도 택시 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동규와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잠시 편의점에 들러 먹을 것들을 사서 들어와 맥주 한 캔 씩 나누어 마시고, 내일을 기약하며 잠에 빠져 들었다.
ㆍ 다음날 아침 열 시 즈음 일어나, 원래 일정을 소화하려 구마모토로 향했다. 하카타 버스 터미널에서 구마모토로 이동했는데 구마모토로 출발하는 버스 승차 게이트를 몰라서 한참이나 헤매기도 했다. 겨우내 들어간 버스 안에서, 어제 야요이상이 사주었던 과자를 먹었다. 과자의 이름은 '죽순의 마을'이었다. 맛과 느낌은 우리나라의 초코송이와 비슷했는데, 확실히 초콜릿 부분이 코 끝이 찡할 정도로 달았다.
구마모토에 도착할 때까지 이 죽순의 마을 과자 하나로 버티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미리 예약해 놓은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빠르게 짐을 가져다 놓고, 어제 못 먹은 초밥을 먹으러 바로 구마모토 시내로 향했다.
사실 초밥이라 하면 개인적으로 나의 소울푸드라 생각한다. 외식을 떠올릴 때면 언젠가부터 항상 '초밥'부터 떠올랐으니까. 하지만 초밥의 본 고장인 일본에서 제대로 된 초밥은 먹은 적이 없었다. 도쿄의 츠키지 시장에서 먹었던 덮밥도 초밥의 일부였지만, 사실 그렇게 인상 깊지는 않았었다. 일본에서 먹었던 초밥은 우오베이에서 먹어본 100엔 초밥뿐이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초밥 전문점에 가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이 딱 그 기회인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가성비 좋다는 초밥 가게를 동규와 바로 찾아갔다.
마침 시간도 점심시간이라 점심 정식을 주문했다. 이곳의 고추냉이는 향이 꽤 강하다기에 고추냉이는 빼고 주문을 했다. 약 열두 점의 초밥이 나왔다. 한참이나 사진을 찍고 하나를 먹어 봤는데.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정말 초밥이 혀에서 녹아버렸다.
뭔가 입에서 신선함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느낌. 점심을 먹으며 이렇게 행복한 적은 처음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꼈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동시에 이런 맛을 느끼고 나니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학식을 먹을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정말로 행복한 한 끼였다. 배가 불렀지만 그래도 일본에 왔으니, 제대로 된 맛 하나는 느껴보고 가고 싶어서 가게에서 가장 비싼 초밥인 참치 뱃살 대(大) 자를 주문했다. 생김새부터 기름이 좔좔 흐르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맛이 궁금했다. 사진을 한참 찍고 한 입 먹어 봤는데 거짓말 안치고 입에 넣자마자 없어졌다. 딱 목구멍에 기름칠을 하고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느낌이 신기했다. 남은 하나도 음미하면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씹자마자 부드럽게 다 녹아버렸다. 정말 행복한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일본 구마모토에서 인생 맛집 하나 알고 가는 것 같다. 너무 맛있고 행복한 초밥이었다.
초밥 가게를 뒤로하고 구마모토의 명소인 구마모토 성(熊本城)으로 향했다.
최근 구마모토성 주변에 큰 지진이 있었다고 했다. 보수공사 관계로 상당수 입장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구마모토성의 초입에서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나와 일본에 같이 간 동규는 평소 녹차를 못 먹는다. 항상 녹차를 향이 이상해서 못 먹겠다고 하는 동규인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이상한 호기가 생긴 것 같았다. 메뉴 중에 녹차잎을 볶아서 만든 라떼가 있었는데 동규는 그것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호기롭게 주문했지만 한 입 먹고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하더라. 사실 볶은 녹차잎의 맛은 색깔만 달랐지 일반 녹차와 큰 차이가 없기는 했다. 볶은 녹차의 씁쓸한 맛을 보고 구마모토 성으로 올라갔다.
마침 구마모토 성에는 행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천막이 설치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일본에서 전통 행사를 직접 보는 것이 희망 사항 중 하나였는데 사실 전통 행사보다는 이 들판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더욱 시선이 갔다. 들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할머니로 보이는 분들이 와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주셨다. 한국에서 왔고 구마모토에 처음 왔다고 말씀드리니 이것저것 알려 주시곤 아이들에게 주려고 했던 과자를 우리에게 건네주셨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잠시 돌아다니고 있는데 주변에서 엄청 소음이 났다. 뭔가 해서 가 보았더니 노래방 기계 회사에서 판촉 행사가 나왔나 보다. 그냥 즉석 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노래방 기기를 하나 설치해 놓았더라. 일본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동규가 한참 듣더니 우리도 한 곡 하자고 이야기를 하더라. 동규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 동규는 소심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일본까지 와서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일단 나는 항상 이런 것들이 좋았으므로 신청을 했다.
사실 동규랑 나랑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부르려고 했는데 곡이 없어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불렀다. 그마저도 동규가 가사를 잘 몰라서 혼자서 부르듯 했다. 사실 관객이 한 다섯 명, 그마저도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였는데 일본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을 하니 괜스레 두근두근 엄청 떨렸다.
그래도 한국어로 노래를 하니까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주긴 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 박수도 쳐주셨다. 감사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구마모토 성 부근을 잠시 관광하고 다시 잠시 짐을 풀러 숙소로 되돌아갔다. 보수공사 때문에 어떤 건물에도 들어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일본의 참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더라는 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더라. 깨끗한 도로에서 씽씽 달리는 느낌은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한 후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사실 구마모토는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니라 점심을 먹은 초밥 가게 주변에 위치한 돈가스 가게로 들어갔다. 돈가스 가게를 선택한 이유도 그저 돈가스가 일본 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은 가게는 현지인이 자주 찾는 가게였는데 확실히 일본 본토에서 먹는 돈가스의 맛과 한국에서 먹는 돈가스의 맛은 달랐다. 바삭하고 부드럽고. 정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맛있었다. 좋았다. 소스를 만드는 방법도 약간 특이했는데, 일본식 소스와 매운 소스가 나뉘어 있어서 기호에 따라먹을 수 있게 해 놓았더라.
오늘 밤도 역시 생맥주로 하루를 달랬다. 호프집에 들어와서 별 이야기 안 하고 그냥 맥주 한 번 마시고 주변 한 번 보고. 또 한 번 마시고 주변 한 번 보고 그랬다. 그러던 중 한 분의 손님이 생일이었나 보다. 종업원 분이 과일에 초를 폭죽을 꽂아서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매장 분위기 자체가 많이 화기애애 해진 것이 느껴졌다.
내일은 아소산에 올라가야 하니까 오늘의 일정은 끝내고 쉬려고 했으나, 밤에 숙소에 들어오니 또 출출해져서 밖으로 나갔다. 주변의 편의점이 없어서 무작정 걷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편의점 어디 있냐고 말을 걸었는데 그것이 또 인연이 되어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은 시내에서 자기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거리가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가 되는 거리였다. 꽤 먼 거리였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랑 손발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으셨나 보다. 우리도 편의점 몇 개를 지나쳐가면서 까지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의 이름은 '에이코' 씨였고, 주변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이라고 했다. 우리도 한국의 대구라는 곳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하면서 이런저런 통성명을 나누었다.
약 30분 동안 별 얘기를 다 나누었는데, 헤어지기 전에 아쉬워서 에이코 씨와 사진 한 컷 같이 찍고 헤어졌다. 에이코와 헤어진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맥주 한 잔 마시고 내일의 아소산을 기약했다. 또 밤늦게 잠에 빠져 들었다.
ㆍ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고 원래 향하려고 했던 아소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아소산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 옆에 앉아 계신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주셨다.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하셨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같이 대화를 하면서 일일 손자가 되어 드렸다. 심지어 진짜로 우리에게 손자라고 불러 주시기도 했다.
이렇게 할머니와 대화하며 버스를 한참이나 기다리고 있는데도 버스가 안 오더라. 우리 앞을 지나 간 버스는 많은데, 이 버스가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어버버 하는 동안 몇 개의 버스가 우리 앞을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버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우리가 그 버스를 놓친 것 같았다. 우리 여행의 유일한 목표이자 테마가 오늘 가려고 하는 아소산이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는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심지어 아소산으로 가는 다음 버스는 5시간 이후에나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찾기에는 아소산으로 이동하다가 시간을 다 쓰게 될 것 같았다. 살짝 고민에 빠졌지만 빠르게 주변의 숙소를 검색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아예 틀어버렸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구마모토의 한참 북쪽에 위치한 '야나가와(柳川, Yanagawa)'라는 곳이었다. 동쪽에서 북쪽으로, 급히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중간에 오무타(大牟田, Omuta)역에서 환승을 해서 갔었어야 했는데 오무타라는 도시도 궁금증이 생겨서 잠시 시간을 내어 둘러보았다. 공원 같은 곳에 잠시 들어갔지만 별 볼 것은 없었다. 캐리어를 끌고 한참이나 서성이다가 다시 원래 목적지로 향했다. 원래 목적지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 도착했다.
니시테츠 야나가와 역에 내려서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야나가와 역에 도착했을 때, 벌써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먹은 것이 아까 할머니가 조금 나누어 주신 빵 몇 조각이 전부였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일단 주변에 위치해 있다는 우동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고기 우동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감칠맛도 많이 돌고 좋았다. 약간은 심심하면서도 조금씩 짠맛이 올라오는, 일본 특유의 맛이 났었다. 가격대비 가성비는 엄청 뛰어났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가게가 될 듯하다. 밥을 먹고 야나가와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여기가 워낙 작은 도시라서 정말 할 게 없었다. 버스를 타고 조금 나가면 공원 같은 장소가 있기에 산보라도 할 겸 일단 버스를 탔다. 그런데 사실 버스 종착지를 잘못 보고 타서, 이상한 곳으로 막 가길래 그냥 동규랑 같이 아무대서나 내려버렸다.
우리가 내린 곳이 저곳 부근이었다. 내리자마자 번쩍번쩍하면서 커다란 건물이 하나가 보였는데, 그곳이 빠칭코장이었다. 신기해 보여서 잠시 파칭코 장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건물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그 건물 내부에는 사행성 오락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건물 안에는 귀가 찢어질 것처럼 소음이 가득했고,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사람부터 담배를 꼬나물고 게임을 하고 있는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빠칭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대충 보았을 때는 약간 윈도우 기본 게임인 Pin ball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힘 조절을 해서 공을 쏘아 어느 구멍에 넣는 것이 게임의 방법인 듯했다. 구슬 하나하나가 이용료로 보였는데, 뒤편에 구슬들을 몇 박스나 세워 놓고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꺼림칙한 느낌이 훨씬 컸기 때문에 그냥 잠시만 둘러보다가 나왔다.
빠칭코장을 나와도 워낙 허허벌판이라 갈 곳이 없었는데 주변에 옷 가게가 하나 있기에 옷 구경이나 잠시 하기로 했다. 한참이나 옷 구경을 하고 있는데, 옷가게 사장님이 말을 걸어 주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어떻게 우리 가게를 알게 되었냐면서 깜짝 놀라셨다. 하긴 원체 허허벌판에 매장이 있다 보니 대부분의 손님들이 매장에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데, 이런 공간에 외국인이 찾아오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고 하셨다.
사장님의 성함은 '아키'라고 하셨는데, 처음 대화를 나누었을 때 영어를 너무 유창하게 하시길래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유학을 하셨다고 했다. 젊은 분이 사장으로 계셔서 놀랐는데, 집안 가업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옷 구경 반, 아키 사장님과 대화 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길을 잃은 것을 알고 계시니, 우리가 묵는 호텔까지 태워주신단다. 친절함에 또 놀랐다. 차를 타고 호텔로 데려다주시는 길에, 야나가와는 우나기(민물 장어)와 뱃놀이가 유명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민물 장어 맛집과, 뱃놀이를 어디서 할 수 있는지 알려 주셨다.
아키 사장님과의 즐거웠던 시간을 보내고, 다음을 기약했다. 사실 다음 날은 야나가와에 비 소식이 예보되어 있었고, 또 딱히 일정도 없었기에 아키 사장님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같이 식사라도 하고 싶었다.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주변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역시 외국에서 마시는 생맥주는 항상 옳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실 때마다 느낌과 감회가 새롭다. 너무 좋았다.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 오늘까지 별로 관광을 한 것이 없다. 그냥 사람들에게 말 걸고, 만나보고 했던 것들이 전부인데 이렇게 행복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 잠시동안 맥주 한잔에 사색에 잠겼다. 그냥 행복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쓰타야(ツタヤ, Tsutaya)'라는 도서 대여점이 보이기에 잠시 구경했다. 영화, 게임,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을 대여해 주는 매장이었는데 일본, 한국, 중국, 미국을 비롯 전 세계의 문화 콘텐츠들을 종류별로 대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음악을 듣다가 잠시 K-POP도 들었는데, 자체적으로 Remix를 해서 대여하고 있는 음반들도 많아서 신기한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들어 보았다. 일본 음반이라 일본어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냥 한국어가 나오더라.
어쨌든 이 매장에서도 한참이나 구경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ㆍ 야나가와에서 하룻밤을 푹 쉬고 일어나니 비가 정말 무겁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긴 하지만 뱃놀이를 하는 데는 그렇게 큰 지장이 없어 보였다. 우비를 입어가면서 사람들이 뱃놀이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 맑았다면 뱃놀이를 했을 텐데 우비를 입고 비를 맞으며 굳이 뱃놀이를 하기는 싫었다. 우리도 뱃놀이를 할까 잠시 생각했었지만 동규가 워낙 비 맞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왕 야나가와에 왔으니 야나가와에서 유명한 우장어를 먹고 후쿠오카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어제 행거 사장님인 아키 씨가 추천해 준 가게가 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까지 가기는 힘들었고 우리가 향한 곳은 어제 먹었던 우동 가게 바로 옆에 위치한 '히노데야(日の出屋)'라는 곳이었다. 우나기는 한 대접에 2,300엔 정도 했다. 기본 단품 음식을 시켰는데 정말로 맛있었다.
살면서 장어 덮밥을 먹어본 적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다. 일단 밥이 약밥처럼 간이 배겨있고, 약초 향이 조금 났는데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그리고 장어도 꼬들해서 정말 맛있었다. 장어 위에 올려진 계란 지단 덕분에 요리 자체가 확실히 부드러웠다. 대접 밑에는 약밥같이 밑간이 되어 있는 밥이 깔려 있었고, 돈(丼)처럼 우나기가 밥 위에 덮여 있었다. 확실히 일본 전통 느낌이 났다. 정말 맛있었다. 일본에는 확실히 짜고 향이 강한 음식이 많았는데, 그래도 여태 먹어본 음식 중에는 가장 담백한 맛이 느껴졌다. 엄청 만족스러웠다. 민물장어 덮밥,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 될 듯하다.
맛있는 한 끼를 먹고, 일어나려고 하니 사장님이 어디로 가냐고 여쭤 보셨다. 후쿠오카로 향한다고 말씀드리니, 지금 비가 오고 있으니까 역까지 직접 태워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감사하게 차를 얻어서 타고 역까지 가서, 다시 첫 날 만났던 유우키와 나나를 만나러 후쿠오카행 기차표를 샀다.
나리는 비를 맞는 기차를 타고 우리는 다시 후쿠오카로 향했다. 후쿠오카에서 동규는 잠에 빠져 들었지만, 나는 잠들지 못하겠더라. 괜히 센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시간을 내리 달리니 금방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로인 라커에 짐을 맡기고 동규가 미리 찾아놓은 전자상가로 갔다. 전자상가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오락실이 있다는 4층으로 올라갔다. 4층에서도 역시 어제 보았던 파칭코는 물론 많은 오락기들이 있었다. 일본은 참 신기한 게 사람을 현혹하는 물건들이 정말로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장 거의 웬만한 것들이 '딸 수 있을 것 같이' 설계를 해 놓았더라. 그래서 그런지 동규도 과자를 뽑겠다고 순식간에 200엔을 써버렸다. 과자가 봉 끝에 달랑달랑 달려 있는 오락기였는데 진짜 딱 한 번만 하면 딸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긴 했다. 이후에는 오락실 옆에 붙어있는 ‘우오베이(魚べい, Uobei)’라는 초밥 가게에 가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명분은 100엔 초밥 가게이지만 100엔보다는 나름 고급 초밥들을 많이 먹었다. 한 개에 240엔을 호가하는 대게 초밥도 먹어보고, 낫토 초밥도 먹어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스페셜 푸딩도 먹어 보았다.
아이들과 텐진역 주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이들과 만나기 전 잠시 텐진역 주변을 돌아보며 한국에 돌아가서 지인들에게 줄 선물들을 골랐다. 그 주위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유키와 나나를 만나는 길로 향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주변에 있는 100엔 상점에 들렀지만 사고 싶은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100엔 가게 주변에서 홍승백 감독님 드릴 아이코스 담배를 사고, 아이들을 다시 만나러 텐진역으로 향했다. 텐진역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을 샀다.
그리고 드디어 유우키와 나나를 만났다. 유우키랑 나나는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눈도 잘 못 보고 심지어 인사도 잘 못하더라. 나나는 안경을 끼고 왔는데 안경 낀 그 모습도 정말 예뻤다. 3일 만에 다시 보았는데 부끄러운지 얼굴도 잘 못 쳐다보더라. 아이들을 만나서 바로 저번에 같이 찍기로 했던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갔다. 사진을 찍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니 아이들도 어느덧 마음을 열고 있었다.
우리는 행선지도 모르고 아이들을 따라갔는데, 바로 스티커 사진부터 찍으러 갔다. 가격은 300엔이었는데, 한 명을 제하자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내가 이겼는데 각자 100엔짜리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바로 사진부터 찍었는데 스티커 사진기가 너무할 정도로 보정이 많이 되었다. 스티커 사진을 다 찍고 그 위에 글씨를 쓰라 했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겨우내 글씨를 쓰고 사진을 받았다. 모든 사진들이 하나같이 귀여웠다. 사진을 찍고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얘들이 돈을 뽑는단다. 얼마 뽑나 보니까 무려 4천 엔을 뽑더라. 학생들에게 무슨 4천 엔인가. 마음이 정말 예쁜 게 느껴졌지만 이미 우리가 모두 계산하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저녁을 '몬자야키(もんじゃ焼, Monjya Yaki)'라는 음식을 먹으러 가려고 했어서, 아이들이 미리 알아 놓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이들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그런지 길을 한참이나 헤매며 갔다. 그런데 도착한 곳이 백화점 상층부에 위치해 있었다. 학생 입장에서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 나올 것 같았다. 일단 들어가기는 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바로 나왔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물어봤었는데, 우리는 너희가 평소에 가는 음식점을 가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말하니 오므라이스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그래서 파르코 백화점 안에 위치한 'OMS'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후쿠오카는 하카타 라멘과 더불어서 명란젓이 유명한데, 메뉴 중에 명란젓 오므라이스가 있길래 궁금해서 한 번 주문해서 먹어보았다. 나와 유키는 명란젓 오므라이스를, 나나는 크림 오므라이스를, 동규는 햄버거 오므라이스를 주문해서 먹었다. 후쿠오카가 명란젓으로 유명한 도시라고 해서 명란을 먹었는데 한국에서 먹었던 명란젓 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맛은 그냥 엄청 짰다. 특히 나나는 크림 오므라이스를 먹었는데 보기만 해도 느끼했다.
대화도 잘 안돼 가지고 이번도 계속 번역기를 주고받으면서 겨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일본어 공부를 안 한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줄 몰랐다. 가게를 나갈 때 우리가 계산을 했다고 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동규가 느닷없이 한국 돈 위에 편지를 써서 주자고 했다. 꽤나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주변에 문구점으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밤이 살짝 늦었기에 모든 문구점은 다 닫혀있었다. 원래는 돈 위에 하얀 펜으로 써 주려고 했지만 아쉬운 대로 검은색 펜으로 써 주기로 했다. 주변에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 싹 주문하고, 열심히 편지를 써주었다. 일부러 한글로 글씨를 썼다. 한국어 공부하고 해석하라는 의미였다. 유우키는 바로 우리에게 답장을 써 주었고 나나는 한참이나 부끄러워하더니 다음에 다 써서 우리 학교로 우편을 써서 보내 주겠단다. 그렇게 주소랑 핸드폰 번호도 교환을 했다. 애초에 저녁에 만났고 서로에게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서 밥 먹고 편지 쓴 게 고작인데 벌써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편지에 주소까지 교환을 하고 나니 어느덧 밤 열한 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제야 너무너무 오늘의 여행이 아쉬웠고, 진짜 이번 여행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 났다. 아이들과 자리를 같이 일어났는데, 우리 코인 로커 마감 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서 애들을 여유롭게 배웅할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찾아 간 장소도 다른 곳이라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내 캐리어를 찾을 수 있었다. 캐리어를 찾고, 유우키를 꼭 안아주고 다음을 기약했다. 나나도 지하철까지는 같이 갔지만 플랫폼 앞에서 꼭 안아주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진짜 너무 슬펐다.
코인 로커에 짐을 맡겨 놓았는데 어느덧 코인 로커가 잠겨버리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급하게 코인 로커로 향해서 집을 찾고, 또 순식간에 유우키가 집으로 가버렸다. 홀로 남은 나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고 했는데, 나나는 그래도 여유가 조금 되어서 같이 사진이라도 남길 수 있었다.
나나와 이렇게 사진을 남기고 나나를 떠나보냈다. 너무 슬펐다. 이번 3일을 위해서 2달을 준비했었는데, 어느덧 끝나가는 게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의 여행이 아직까지는 끝나지 않아서, 우리가 원래 향하려던 숙소 '만요노유 온천(万余の湯温泉, Manyonoyu Onsen)'으로 향했다. 만요노유 온천은 한국에서 미리 표를 예매하고 갔었는데, 이 이용권은 알고 보니 새벽 4시까지 사용할 수 있는 이용권이었다. 원래 우리 목표는 새벽 6시쯤에 온천에서 나와 배를 타러 가기로 했는데 차질이 생겼다. 새벽 4시가 넘어갈 때까지 온천에 머무르게 되면 인당 약 2,000엔 가까이 더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새벽 4시까지 여기 있고 6시까지는 주변에 있는 24시간 카페에 들어가 있자고 하고 온천으로 들어갔다. 온천에 들어가서 노천욕을 하는데, 바람은 시원하고 물은 따끈해서 너무 좋았다. 온천탕에 들어가서 동규와 정말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학교 생활에서부터 이번 여행까지, 탕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약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결과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4시에 온천에서 나와, 주변에 있는 24시간 음식점을 들어갔다.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소고기 덮밥이었다. 마지막 식사를 하고 한참이나 사색에 빠졌다. 해가 점점 동이 틀 때쯤, 택시를 타고 하카타 항으로 향했다. 하카타 항에 도착하자마자 부슬비가 점점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인 여덟 시 즈음에는 비가 슬슬 그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참 많은 것들을 내게 안겨 주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여름방학을 보상해 주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의미하는 여행이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결국 정말 인연이란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소울시티 후쿠오카, 다시 돌아올게.
입학) D+1323 2017.10.15. (일)
ㆍ 일본에 다녀온 이후로도 일본 친구들과 우리의 연락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고, 나는 그중에 '나나'라는 친구와 연락을 더 깊게 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상대방을 알고 싶었지만, 한국에 와서 연락을 할수록 그런 감정이 점점 호감의 감정으로 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2017년 10월 8일 저녁. 나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녀의 승낙으로 우리는 국제 연애 커플이 되었다. 사실 그녀에게 "나랑 사귀어 주세요"라고 덜컥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정말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제일 큰 문제인 게 언어였다. 그녀는 한국어를 아예 하나도 할 줄 몰랐고, 나도 회화책 겨우 하나 마무리 지은 정도의 일본 유아 수준의 어학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녀와 대화를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해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많이 기울였었다. 예를 들어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일단 하고 싶은 말을 노트에 한국어로 쭉 적어놓고 번역 app을 통해 이용해 모두 일본어로 번역을 한 후 하나하나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또 그녀가 대답을 하면 일단 들리는 대로 그녀의 대답을 노트에 적어놓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뜻을 이해했다. 매일매일 하루 대여섯 시간씩 그녀와 통화하며 일본어 회화에만 공을 들이고 있으니 귀가 트이는 건 정말 빨리 트였다. 그녀와 매일 전화한 뒤 약 2주 만에 그녀가 하는 말의 80% 이상은 이해가 되었다.
ㆍ 군대에서 그냥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기 싫어 '한자 3급' 자격증을 따 놓았는데 이게 그렇게 큰 쓰임이 될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 단어 중 80% 이상이 한자이듯 일본도 그러했는데, 심지어 발음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휘력이 하루가 다르게 정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제일 좋았던 부분은 우리나라 말과 표현이 정말 유사하다는 것을 많이 느낄 때였다. 예를 들어, "해 보고 싶다."는 말을 일본어로 하고 싶을 때는 "やって(하다) み(보다) たい(~하고 싶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래서 머릿속에 말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그것을 그대로 일본어 어휘만 딱딱 맞춰주면 내가 표현하고 싶은 문장이 딱 완성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관용적인 표현도 비슷한 것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누군가가 해고되었을 때, '목이 날아간다.'는 말을 쓴다. 그런데 일본도 그렇게 표현을 하면 이해를 하더라. '首が飛んでいく。'라는 말은 의미 그대로 해석하면 '목이 날아간다'는 의미인데, 똑같이 '해고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언어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이렇게 노력을 기하면 되었지만, 사실 정말 문제 되는 부분은 물리적인 문제였다. 나 역시도 아직 정식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아니라 그냥 아주 평범한 대학생이다. 여태까지는 그냥 아버지가 주시는 용돈으로 그냥저냥 생활했었다. 그런데 덜컥, 일본 현지에 여자친구가 생겨버렸고, 또 그녀를 만나려면 지금 받는 용돈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주말에 하던 술 약속이나 종교 활동을 일체 포기하고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알바를 하면 약 60만 원 정도가 벌렸는데, 내가 살고 있는 대구 지역과 그녀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 지역은 그렇게 멀지는 않아서 왕복 20만 원 언저리에 교통비는 해결되었고 숙박은 공유 주택을 이용하면 4박 정도에 10만 원이면 충분했다. 나머지 30만 원으로 wifi 도시락과 그녀에게 줄 갖가지 한국 물건들, 그녀와 데이트를 할 때 쓸 용돈 등으로 사용할 생각을 했다.
매달 이렇게만 하면 한 달에 한 번 얼굴은 볼 수 있겠지, 매달 일본어 회화 과외비를 낸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합리적인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를 위해 한 달 동안 모든 사치를 줄이고 남는 시간을 일본어 회화 공부만을 하면서 그녀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입학) D+1341 2017.11. 2. (목)
ㆍ 한 달 동안 모든 사치를 덜어내고, 일본어 회화만 공부하면서 지냈다. 알바를 하면서 보낸 한 달이 지나 급여를 받자마자 바로 일본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마침 시간도 가능했던 게, 10월 말이 중간고사 기간이라 중간고사가 마치는 월요일부터, 영대사랑 회의가 있는 목요일까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이번 첫 번째 데이트에서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진짜 우리가 사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월요일 오전에 '기업 회계의 이해'라는 과목의 시험을 빠르게 쳐버리고, 바로 대구 공항으로 달려갔다. 대구 공항에서 약 50분 정도를 날아 일본 본토로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일단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공유 주택을 써보는 것이 처음이라서 체크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호스트님의 도움으로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일본에 가서 다 카드 쓰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환전을 5,000엔 정도만 바꾸어서 갔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에 도착해서 주머니를 보니까 4,000엔밖에 없었다. 일단 4,000엔을 들고 숙소 주변으로 나섰다. 나나의 하교를 기다리며, 주변 커피집에서 라떼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때울 셈으로 나나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편지를 쓰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나나가 카페 주변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만나자마자 손을 덥석 잡아버렸다. 가슴이 두근거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 한 달 동안 그만큼 연습했던 일본어 회화인데, 그녀의 앞에 서니 머리의 아무 사고 회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그냥 한국말로 이야기를 계속 건넸다. 그녀는 정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두근대는 심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원래 한국에서 첫 식사로는 초밥을 먹자며 초밥집을 찾아보고 갔었지만, 알고 보니 그곳이 식사하면서 담배를 태우고 그런 장소라 우리가 들어가기는 조금 그랬다. 일단 텐진으로 가자는 나나의 말을 따라, 텐진으로 향했다. 텐진에 도착해서 어딜 갈까 한참을 서성이다가,
"Eggs n Things"라는 평소에 그녀가 가끔씩 들린다는 오믈렛 가게로 향했다. 처음으로 내 일본인 여자친구와 대면해서 밥을 먹는 시간. 너무너무 긴장해서 무엇을 주문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 갔을 때 일본 여자들이 패션 센스도 좋고 외모적으로도 귀여운 분들이 많으셔서 언젠가는 일본인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그 꿈이 이렇게나 빨리 또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 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니 긴장이 조금 풀려, 그때부터는 생각했던 것들을 일본어로 말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나나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볼 때 나나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 만일 내가, 외국인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사귀자'라고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과연 수락할 수 있었을까? 나를 되돌아본다면, 분명 '안 돼!'라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떻게 '나'라는 사람을 믿고 그러한 요구를 승낙을 했을까. '외국인'이라는 존재가 두렵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나나와 매일 통화하면서 궁금했었다.
그 질문에 대해 나나는 "怖くない。(무섭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일단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내가 했던 행동들이 거짓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고 말했고, 위험한 것은 오히려 일본 남자 쪽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국 남자들과 중국인은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도 한국 남자의 이미지는 '상냥함'이 있어서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를 배웠다.
그리고 언제나 한국에서 그렇듯, 밥을 먹고 커피나 다른 디저트를 먹으러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나나는 방금 밥을 먹고 바로 디저트를 먹냐고 반문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다고 하니, "에에에"하고 놀란다. 다시 디저트를 한 번 더 권했지만 디저트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텐진역에서 꽤나 걸으니 '오호리 공원(大濠公園, Oohori Koen)'이라는 곳이 나왔다. 공원 호수에서는 물이 일렁이고 있었고, 공원 주위로 사람들이 뛰거나 걷고 있었다. 우리도 그 사이에 끼여 천천히 조금씩 걷다가 눈에 보이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 벤치에 앉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라던가, 지금 여기에 니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라던가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몰래 그녀의 볼에 '쪽'하고 뽀뽀를 했다. 그녀도 나도, 귀까지 새빨개졌다. 그렇게 우리는 첫 추억을 만들었다.
다음날, 나나가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났다. 새벽 대 여섯 시부터 씻고 준비하기 시작해서 아침 일찍부터 나나를 만났다. 나나는 일본 영화에서나 보던 옷을 입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나를 비롯 등교하는 학생들이 꽤나 있었는데 신기했던 것은 들고 가는 가방도 똑같은 것을 메고 있더라. 아마 학교에서 공동 구매를 해 주는 듯했다. 나나는 자전거를 끌고 왔는데, 나는 빈 손이라 가방이라도 들어주려고 잡았는데 무게가 생각보다 너무 무거웠다. 평소에도 이렇게 무겁게 들고 다니는가 했더니 교재가 잔뜩 들어있었다.
학교로 같이 손잡고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전날 잠시 앉았던 공원에 도착했다. 거기서 가방의 내용물을 조금 보여주었는데 신기하게도 학교에서 마실 차(茶)도 집에서 가지고 다니더라.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니 학교에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단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문화적 차이를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벤치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고, 하교 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와 쿨쿨 잤다. 점심 늦게 즈음에야 일어나 늦은 점심을 먹으러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던 중 나나의 대학교가 집 주변에 있는 '세이난 가쿠인(西南 大學校, Seinann Gakuin)'이라는 것이 기억났고, 거리도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냥 찾아갔다. 세이난 가쿠인 대학을 한 번 둘러보고, 이왕 학교로 온 김에 학식도 한 번 먹어 보았다. 학식은 뭐 그럭저럭, 가성비는 괜찮은 편이다. 학교를 잠시 둘러보고 조금 더 나아가 모모치 해변으로 향했다. 모모치 해변에 앉아서 해변가에 뛰노는 아이들을 보기도 하며 한참이나 걸어서 옛날 이대호 선수가 뛰었던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 후쿠오카 야후 돔까지, 한참이나 걷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여섯 시가 되었다.
나나의 하교 시간에 맞추어 우리는 다시 니시진 역에서 만났고 저녁을 먹으러 또다시 텐진으로 향했다. 오늘의 저녁은 , 야끼니꾸(焼肉). 한국식 고기구이를 먹고 싶다고 해서 고깃집으로 향했다. 나나가 평소에 친구들이랑 들린다는 고깃집에 갔는데, 무한 리필 고깃집을 들어갔다. 물가가 비싼 일본에도 '무한 리필'이라는 것이 있어서 신기했다. 처음부터 자기가 고기를 굽겠다고 하더니 끝까지 자기가 구우려고 하더라.
이것저것 주문하라고는 하는데 메뉴가 전부 한자로 적혀 있어서, 뭐가 뭔지 몰라 그냥 지레짐작으로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었다. 무한리필 고깃집에는 정확히 2시간 시간 제약이 있었는데 시간이 끝나면 바로 계산을 하고 나가야 했다. 그래서 2시간 꽉 채워서 같이 식사를 했다. 그런데 도중에 나나의 친구가 내 얼굴을 보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올 때 나나에게 주려고 한국 과자를 몇 개 사갔었는데 그 과자들이 맛있었다며 내게 선물을 하나 주었다. '스미레'라는 컵 만두였는데 그것을 주면서 자신의 이름이 '스미레'라고,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너무 기뻤다. 좋은 선물을 받고 자리를 일어났다. 저녁에 만났기에 뭔가 다른 것은 할 수가 없었고 나나를 데려다주는 길에 잠시 바다에 들르기로 했다. 아까 갔었던 모모치 해변에 다시 들려 꼭 안으며 같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급하게 온 일본 여행이라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못했다. 2박 3일의 짧은 첫 데이트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우리는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볼 수 있지만, 조만간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러 찾아올 것을 약속했다. 다음 데이트는 한 달 후,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ㆍ 내가 본격적으로 나나와 사귀기 전에 일본의 이미지는 '기술력'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탄탄한 중소기업에서 만드는 각종 전자제품들, 예를 들면 닌텐도 게임기, 소니 전자사전, 파나소닉 mp3 등 뭔가 기계적이고 첨단적인 느낌. 그래서 일본인의 이미지는 'Early Adoptor'의 이미지가 강했고, 지금 한국에서 쓰는 각종 첨단 기구 등은 일본을 거쳐서 왔겠거니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나를 만나면서 이러한 생각이 조금 편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나와 전화를 하다가 나온 이야기인데, 문화 콘텐츠를 대여하는 가게인 'TSUTAYA'에서 DVD를 빌려 집에서 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DVD 사업이라면 2000년대 후반쯤 반짝 유행했던 사업이고, 지금은 정말 사장되어가고 있는 사업 중 하나인데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이러한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의 쪽이 더 ‘Early Adoptor’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영화를 볼 때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고 대부분 컴퓨터로 다운로드하여서 보는데 컴퓨터로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본다니 이것도 '에에에~'하고 놀란다. 생각보다 일본인들은 컴퓨터와는 가깝지 않았다. 자기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지 컴퓨터로 무엇을 하는 경우는 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또한 최근에 화이트 데이가 있었다. 나도 이 날 때 고마운 사람들에게 사탕을 카카오톡 기프티콘으로 보내곤 했는데, 나나는 최근 들어서야 이 '기프티콘'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자기의 말로는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면대면으로 무언가를 선물하는 것이 대부분이지 소포나 편지가 아닌 한 비대면으로 무언가를 건네주는 일은 잘 없다고 한다. 이미 모바일 청첩장에도 익숙해져 버린 나보다 오히려 더 아날로그 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도 그런 게 일본인들은 무언가 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국민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미국의 편리함을 받아들여 전국 어디서나 신용카드,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등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지만, 일본은 거의 80% 이상의 가게에서는 아직 현금 밖에 받지 않는다. 심지어 전 세계에 매장을 가지고 있는 '맥도널드' 일본 지부에서도 2018년 지금 들어서야 카드 단말기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게다가 원래는 통신사가 다르면 문자 전송이 안 되어서 일반적으로 상대에게 연락처를 받을 때 전화번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한국의 '카카오톡'이나 '라인'이 이런 아날로그적인 불편함을 모두 해소했기에 일본 사람들은 모두 이 기능에 열광했고 대부분 일본 사람들의 국민 app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조류에 대항하기 위해 DOCOMO, SOFTBANK 등 통신사들이 낸 아이디어가 이제 고작 '통신사 간 문자 가능'이라는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만큼, 생각보다 변화에 둔감했다. 일본이라는 곳은. 또한, 전체적인 국민성이나 생활양식에도 차이가 있지만 나나를 만나게 되면서 정말 깜짝 놀란 것 문화 차이가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게 거의 대부분의 일본인이 매일 탕에 들어가서 목욕을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일본인의 집을 자세히 살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를 딱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바로 히노끼탕이었다.
매일 나무로 된 욕조에서 목욕을 하냐고 물으니 그게 아니라, 한국의 가정에도 흔히 있는 플라스틱 욕조에서 반신욕을 한다고 대답을 해 주었다. 왜 매일 탕에 들어가냐고 물으니, 탕에 들어가면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라고 대답을 해 주더라. 아주 좋은 문화인 것 같지만 샤워하기도 정신없는 내게는 조금 힘든 문화 양식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교복에 대해서도 신기한 점이 많다. 나는 해군을 나와서 해군 정복이 어떻게 생긴 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근데 일본 여고생들의 '세일러(Sailer) 복'은 진짜 해군복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또 특이했던 점 중 하나가 한국의 교복은 학교마다 디자인이 많이 달라서 교복의 외형만 딱 보았을 때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 수 있는데, 일본 중 / 고등학생의 교복을 학교별로 구별하라고 했을 때 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모르겠더라. 나나는 척 보고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잘 구별을 했지만 아마 그들의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식문화, 일단 우리와 같은 젓가락을 쓴다는 점에서는 편한 점이 많다. 하지만 나나가 가르쳐 준 것들 중 한국인이라면 알지 못하는 것들도 꽤나 있었다. 나쁜 젓가락질(嫌い箸, Warui bashi)라고 해서 꼭 해서는 식사 중에 꼭 해서는 안 될 것들을 몇 개 배웠는데 일단 젓가락에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건네주는 행위는 절대 금지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죽었을 때 화장을 하고 남은 뼛가루를 정리할 때 사용하는 젓가락질이라고 해서 일상 식사할 때는 절대 사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음식을 젓가락으로 쿡 찔러서 먹는 것도 실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덧 붙여 주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밥그릇을 식탁에 놓고 먹는 것은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일반적인 가정식을 먹을 때 그렇게 먹으면 아마 가정교육을 잘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언젠가는 나나의 부모님과도 식사하는 자리가 생길 수도 있겠지. 미리 이런 생활 문화들은 알고 익혀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ㆍ 대학 신입생 시절 잠시 활동했었던 연극 동아리 ‘천마 극단’의 단장 선배와 다시 연락이 이어졌다. 선배는 졸업 후 본가인 전라도 광주로 돌아갔는데, 다시 대구 쪽에 일자리가 생겨서 대구 쪽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선배는 작은 예술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내가 음향 쪽에서 일한다는 것을 듣고, 나에게 따로 연락을 취해 왔다. 자기 단체에서 진행하는 축제가 있는데 음향 감독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크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기에,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 3일간의 생활 예술축제 음향 담당을 맡아 활동했다. 작은 기술이라도 생기니, 이런 기회가 생기는구나 싶었다.
ㆍ 홍보대사에는 ‘Home coming day’가 있다. 홍보대사를 수료한 선배님들을 모시는 자리를 한 번 만드는 자리인데 여태까지는 교내로 선배님들을 초청해서 각종 공연이나 행사를 준비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홍보대사 담당 팀장님이 획기적인 것을 하자고 해서, 그냥 교내 행사보다는 선배들과 함께 봉사활동이나 좀 의미 있는 행사를 진행하자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행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 보았는데,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하는 선배님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아서, 연극 관람 후 회식을 하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막상 선배님들은 이렇게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듯 보였다.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체계를 지켰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우리도 담당 팀장님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서 진행한 행사인데, 중간에 끼여 많이 난감했다.
나는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준비한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선배님들은 아니었나 보다.
입학) D+1388 2017.12.19. (화)
ㆍ 일상은 엄청 단조롭다. 평일에는 학교 생활을 하고, 주말이 되면 알바를 하고, 이따금씩 입시 설명회 일정이 잡히면 입시 설명회를 다녀온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한다. 일본어 공부도 꽤나 많은 공을 들인 결과 이제는 대충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ㆍ 그나저나 이번 학기도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학교 생활과, 일본인 여자친구를 만나서면서 일본어, 일본 문화를 공부하는데 모든 시간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번 학기를 지내면서 습득하게 된 특별한 기술이 생긴 것 같아 아주 뿌듯한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뭔가를 확실히 얻었다는 느낌은 처음인 것 같다.
더해서, 이번학기 수업 중 단연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야구 수업이다. 학교에 ‘생활 체육’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야구 수업이 개강돼서 수강하게 되었다. 야구는 그저 관람만 하는 게 다였는데, 실제로 야구의 이론을 배우고 실제로 경기를 해보기도 했다. 지금 스크린 야구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틈틈이 타격 연습은 했었지만 정식 연습이나 경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가령 ‘수비 연습’ 수업을 듣는 날에는 멀리서 날아오는 야구공을 직접 잡아보기도 하고, 실제로 날아오는 땅볼을 잡아 주자를 Out 시키는 연습도 해봤다. 역시, 실제로 경기를 해보니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야구공을 잡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Fly ball은 어디로 떨어질 지도 감을 잡지 못해, 수업 내내 공만 쫓아 뛰어간 날도 있었다.
과제 역시도 내가 타격하는 모습을 동영상을 찍어서 제출하는 등 실전적인 수업이 많았고, 최종 시험 역시도 교수님이 날려주시는 공을 잡고 실제로 base를 밟아 out 시키는 등의 활동이었다. 참 기억에 남는다.
ㆍ 이번 2018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평가를 대비해서 우리 영남대학교 홍보대사 단원들도 수험 현장에 가서 응원과 함께, 수험생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했었다. 그래서 같은 동기 단원들과 함께 시간과 일정을 모두 맞추어, 시험 날짜인 11월 16일을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 하지만 시험 전날 11월 15일, 포항에 지진이 생기면서 시험일을 전체적으로 일주일 연기하게 되어 우리가 준비한 행사는 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 있었는데 이게 식품류라 1주일 이후에 다시 준비할 수가 없어, 학교 도서관에 응원 booth를 하나 설치하고, 수험생을 위한 응원 문구를 쓰는 것으로 행사를 대체하였다. 우리도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만큼 실망감이 컸는데, 당사자들의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ㆍ 또한 우리 기수 들어서 우리 비서홍보실 팀장님이 ‘사진’에 관련해서 이것저것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비서 홍보실에 드론 카메라, 360도 카메라 등 다양한 장비를 들이셨는데, 이것을 사용해서 학교 곳곳을 홍보하는 사진을 찍어보라고 권유해 주셨다. 그 덕에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360도 카메라를 사용해보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각종 촬영 장비를 사용해 보는 재미도 확실히 있긴 하다.
입학) D+1400 2017.12.31. (일)
ㆍ 2017년도 이제 끝나간다.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 내 모습이 꽤 만족스럽다. 학교 생활을 하며 막연히 하고 싶었던 활동들을 대부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다만, 아직도 약간의 공허함은 남아있다.
ㆍ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나나를 만나러 다시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에 도착한 첫날은 나나의 친구들을 만났다. 나나의 친구들과 함께 몬쟈야키(もんじゃ焼, Monjya Yaki)라는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종업원이 가져다주는 재료를 철판에다가 구워서 먹는 음식이었는데, 맛은 나쁘지 않았다. 나나의 친구들은 막 대면한 나에게 낯을 가리는 건지, 부끄럼이 많은 건지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고 그저 웃고 있기만 했다. 밥을 먹고 이후에는 노래방으로 갔는데, 일본의 노래방에서는 음료를 하나 시키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어차피 노래를 부를 때는 목이 마를 테니 음료를 시키는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음료를 꼭 시켜야 하는 문화가 좀 특이하기는 했다.
이튿날에는 나나와 같이 후쿠오카 시내를 돌아다녔다. 나나와 맛있는 우동을 먹고,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후쿠오카 시내에 위치한 백금다방(白金茶房)에 갔는데, 놀랐던 것은 사실 우리 빼고는 손님이 전부 한국 사람이었다. 여기가 일본인지, 강남 시내일지 모를 정도로 카페 안은 한국말로 가득했다. 그런 탓인지, 종업원도 어느 정도 한국말을 구사할 줄 아는 분이 서빙을 해주셨다. 일본 땅에서 한국어를 가득 들으니 참 기분이 이상했다.
다음 날에는 벳푸에 다녀오기로 했다. 처음 큐슈지역을 알려준 승현이가 벳부 쪽에 살고 있다고 해서, 여행도 할 겸 승현이도 볼 겸, 나나와 함께 벳부 쪽으로 향했다. 벳부는 ‘7 지옥 순례’라고, 7개의 온천을 돌아보는 것이 유명한 관광코스이다. 나나는 벳부에 갈 때부터 각종 지옥을 볼 생각에 신나 있었다. 나는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좋으니 나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기대되었다. 벳부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바다 지옥’이라는 온천을 잠시 관광하고, 나나와 함께 승현이를 만났다. 승현이는 벳부의 리츠메이칸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근처에서 간단하게 초밥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최근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승현이가 소개해준 여행지인 벳부 타워와 유메 타운 근처를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나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유메타운 안을 잠시 둘러보고 있는 사이 나나는 화장실에 간다고 하곤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찾은 나나의 모습은 구석에서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자기는 나와 지옥 온천을 구경하는 생각으로 벳부에 왔는데 왜 지금 쇼핑 타운에서 쇼핑을 하고 있냐고 되물었다. 나는 큰 의미 없이 그냥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뿐인데, 나나는 그 속에서 서운함을 많이 느꼈나 보다. 승현이 와도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었지만, 나나가 서운한 티를 엄청 내어서 승현이에게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급하게 하고선 나나와 자리를 떠났다. 내 욕심이었을까, 승현이와 나나 모두에게 너무 미안했다.
ㆍ 이후에 나나와는 ‘우미타마고 수족관(うみたまご 水族館, Umitamago Suijokukan)’이라고, 벳부 지역의 수족관을 다녀왔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를 보고, 수족관에서 보여주는 물개, 돌고래 공연을 보고 있으니 나나의 기분은 금방 풀려 보이는 듯했다. 수족관에서 나와 벳부의 바다를 잠시 둘러보고 후쿠오카로 돌아갔다. 후쿠오카는 연말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 역 근처로 Illumination 장식이 어딜 가든 눈에 띄었고, 시내에는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커플이 가득했다. 나나와 살짝 부딪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성탄절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입학) D+1416 2018. 1.26. (금)
ㆍ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뀐다고 별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홍보대사에 새해를 맞아 새해를 보는 영상을 같이 찍자고 해서 2017년 마지막 날 뜨는 새해를 보러 대구의 디아크 문화관에서 새해 첫날 첫 차를 타고 만나기로 했다. 나와 동규, 채은, 효진은 아침에 일어날 자신이 없다며 차라리 밤을 새우자고 했다. 그래서 같이 모여 밥을 먹고, 밤새도록 노래방에 있자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웠다. 밥을 먹고 눈에 보이는 아무 노래방이나 들어갔는데, 노래방 사장님이 ‘영대사랑’ 아니냐며 먼저 알아보셨다. 알고 보니 우리 홍보대사 선배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사업장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딱한 눈으로, 원하는 만큼 있다가 가도 된다고 하셨다. 죄송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배려해 주시는 만큼 새벽 늦게까지 있다가 거의 첫차를 타고 디아크로 향했다. 다행히도 우리 홍보대사 친구들이 모두 와 주었고, 정말 추운 날씨를 뒤로 하고 첫 해를 보았다. 정말 고생길이었다. 영상 하나를 찍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우리가 신기했다.
ㆍ 가족과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가족과 일본 여행을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가능하면 나나도 보고 싶기도 했다. 후쿠오카에서 대단한 것을 계획하진 않았다. 가족들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온천도 가보는 식으로.
그리고, 이번 기회에 우리 가족과 나나가 만났다. 아버지는 그저 웃으셨고, 웬만한 소통은 내가 통역을 해주면서 소통했다. 하카타 역 근처의 한 백화점에서 만나 같이 밥을 먹었는데 외국인 여자친구를 만나는 아들을 굉장히 신기해하셨다.
하루는 후쿠오카에서 묵고, 다른 하루는 온천이 유명한 관광지에서 묵었는데 나나가 학교 끝나고 내가 있는 온천까지 또 찾아와서 관광지에서도 가족보다는 여자친구와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다. 나나를 봐서 좋기도 했지만, 가족과 여자친구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것이 좀 힘들기도 했다.
입학) D+1450 2018. 2.19. (월) ~ 28. (수)
ㆍ 이번 방학은 입시 설명회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경산 시내의 한 스크린 야구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매장 오픈을 맡고 있는데, 출근해서 시재 정산을 하고, 판매하는 물건을 채워놓고, 매장 전반적으로 청소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면 되었다. 아무래도 낮 시간에 근무하다 보니 내가 근무하는 시간대에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고, 저녁 근무자가 할 수 없는 청소가 나의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출근해서는 늘 기계 점검을 하고, 매장에 청소기를 돌리고 전체적으로 매장에 부족한 물건 혹은 필요한 물건 등을 사장님께 요청하면 되었다.
일의 난이도는 확실히 그렇게 높지는 않다. 매장 청소를 하는 것만 제외하면 대개 카운터에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가 할만하다. 청소를 할 때도 이어폰을 끼고 일본어 단어를 외우고 있으면 시간이 또 금방 가버린다.
더해서, 나는 사실 기계 쪽은 완전히 감이 없지만 매일 기계를 보고 만지고 하다 보니 기계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더해서, 대체적으로 스크린 야구장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게임 비용이 30,000원이 넘기 때문에 손님의 객단가가 높다. 성인 몇 분이 오셔서 한 2시간 게임하면서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하면 100,000원의 매출은 쉽게 넘어간다.
<Window to the world>
ㆍ Window to the world라는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땅을 밟아보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Window To The World'라는 프로그램이 매 학기 진행되고 있다. 'Window To The World'는 줄여서 WTW라고 부르는데, 이 프로그램은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해외를 탐방할 수 있게 일정 금액을 지원해 주는 '해외 자유 배낭여행' 프로그램이다. 원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해야 하지만, 나는 학교 홍보대사이므로 학교 '홍보예산'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처음 학교 홍보대사가 되어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어디를 갈지 정말 고민 많이 했었다.
재미있게도,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지원 금액이 다르다. 여행은 최소 7일 이상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이 돈을 받고 조금 더 해서 아프리카로 날아갈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라는 대륙을 여행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돈이 너무 적어서 일단 최대한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미주' 지역이나 '유럽' 지역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같은 홍보대사 동기인 채은이와 효진이도 지금 '미주' 지역을 생각하고 있는데, 시간을 맞춰서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한국에서도 지겹도록 보는 우리지만, 미국에서도 같이 지내게 되었다. 설 연휴를 마치고,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다시 만났다.
이왕 인천으로 가는 김에 인천에 살고 있는 군대 후임인 요셉이를 잠시 만나서 밥을 먹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16시 비행기였고 내가 도착했을 때가 14시 30분이었는데, 같이 미국으로 가는 홍보대사 동기들은 미리 도착해서 준비를 모두 다 해놓았더라. 나도 수속부터 유심, 환전까지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홍보대사 동기들과 같이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까지 도착하는데 한 나절 이상이 걸렸다. 비행기는 United 항공을 탔다. 가격은 왕복 70만 원 정도였다.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비행기는 유럽 갈 때 탄 Amirate, 미국 갈 때 탄 United 딱 두 번 타 보았는데 체감상 Amirate 항공사보다 United 항공사의 좌석이 더 비좁게 느껴졌다. 그 좁은 장소에서 열 몇 시간을 앉아있으니 정말 힘들긴 했다. 그래도 미국으로 날아가는 길에 'Inside out'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살짝 눈물이 고일만큼 먹먹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시간가량 경유했는데 여기서 우리 동기들이 무려 '포켓 와이파이'를 잃어버렸다. 그 뜻은 앞으로 10일 동안 여행을 할 건데, 인터넷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두 시간가량을 부지런히 포켓 와이파이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여행 시작부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약 두 시간을 더 달려, 그렇게 우리는 LA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와 미국 공기를 한 번 들이마신 후 거리를 찬찬히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꽤나 쌀쌀했다. 3월의 미국은 따뜻하다는 말을 듣고 홍보대사 동기들은 긴 옷을 별로 가져오지 않았던데, 그와 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패딩까지 입고 갔었다. 패딩을 입고 온 것이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워낙 영어로 된 간판이 많아서 그런가 이질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네모 반듯하게 나 있는 거리를 한 번 훑어보고 공항 앞에 서 있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우리의 첫 숙소로 향했다.
미국에서 처음 대화를 나눈 사람은 택시 기사분이셨는데, 가는 길에 산타모니카 해변 주변에 맛있는 음식점이 있냐고 여쭤보았다. 택시 기사님이 미국에 왔으면 '스테이크 하우스'를 꼭 가보라고 하셨는데 기사님이 추천해 주신 가게가 우리 숙소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미리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하고 미국에서의 첫 식사를 하러 'BOA Steakhouse'로 들어갔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이곳이 LA 3대 스테이크 가게 중 하나라고 했다. 사실 나는 가격 보고 놀랐다. 스테이크 한 개가 51달러부터 시작했다. 아무리 첫 끼라 하지만 5만 원이 넘는 돈은 좀 세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는데, 미국에 왔으니 무조건 첫 끼는 스테이크를 먹여야 한다는 채은이의 지론에 같이 들어갔다. 외부가 너무 어두컴컴해서 처음에는 가게를 닫은 줄 알았지만, 구석에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가게로 들어갔다. 점원분에게 추천을 해 달라고 말씀드리니, 'NEW YORK STRIP'을 추천해 주셨다. 추천해 주시는 메뉴로 3개를 고르고 식전빵을 먹고 있으니 이내 고기가 나왔다.
정말 큼직한 고기가 한 덩이 나왔는데, 별 다른 샐러드나 사이드 없이 그냥 고기랑 소스만 덜렁 나왔다. 처음 한 입을 먹었을 때는 그냥 먹을 만했지만, 아무래도 큼지막한 스테이크만 먹기에는 많이 힘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깊은 풍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게 미국의 맛이구나, 생각보다 심심하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샘솟았다. 어찌어찌 첫 끼를 해결하고, 게스트 하우스 앞에 펼쳐진 'Santa monica' 해변으로 향했다. Santa monica 해변은 정말 길고 광활하게 쭉 펼쳐져 있었다. Santa monica 해변은 파도의 크기부터 남 달랐다. 커다란 파도가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철썩이고 있었다. 해변의 크기에 한 번, 파도의 크기에 한 번. 연신 놀라면서 해변가를 한 번 쭉 돌아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정말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는데 이따금씩 별똥별이 떨어지기도 했다. 난생 별똥별을 처음 본 우리는 신기해서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쌀쌀한 날씨에 추운지는 않을는지, 해변가에 누워서 자고 있는 사람도 보여 깜짝 놀라기도 했다. 별과 물을 관찰하며 한참이나 걷고 있노라니 벌써 시간은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미국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우리끼리 놀다가 시간이 너무나도 늦어버렸다. 눈에 담고 싶은, 예쁜 장소들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서둘러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다. 채은이와 효진이는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미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ㆍ 다음날 아침 일찍 뒤척이며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으러 내려갔다. 생각보다 아침밥의 질이 너무 좋았다. 미국의 음식들은 막연히 짜고 달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모든 음식들의 간이 심심했다. 아침밥을 그리 즐겨 먹지 않는 나도 어느샌가 두 그릇을 비워냈다. 아침밥을 먹고 한참이나 빈둥거리다 어제 전부 다 담지 못 했던 산타모니카 해변을 다시 만나러 길을 나섰다.
Santa monica 해변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즐비 해 있었다.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나온 커플이나 학생들이 꽤나 많이 보였다. 특히 이곳을 함께 걷는 커플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Santa monica에서 데이트를 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무엇보다 해변가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1달러 정도를 드리고 한참이나 듣고 있노라니, 가수 분께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여쭤보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 Youtube 채널이 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댓글을 많이 단다고 말씀해 주셨다. 개중에 'Sweet Tuesday'라는 노래를 불러 주셨는데 멜로디가 너무나도 좋아서 한 두어 번 더 불러달라고 말씀드렸다. 오는 길에 동규는 CD도 하나 샀다. 오늘 LA에서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조금 일찍 해변가를 떠났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UCLA', 캘리포니아 대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교비를 지원받아 여행을 떠나는 만큼, 여행지에서 간단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현지 대학생들을 만나 인터뷰를 따 오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었다. 세계 명문으로 유명한 UCLA의 분위기를 느껴보려 UCLA행 버스를 탔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파란 옷을 입은 홍보대사로 보이는 학생들이 고등학생들을 투어 시켜주고 있었다. 자신의 학교가 자랑스러운지 파란색의 'UCLA'라는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학교의 첫 느낌은 정말 정갈하다는 것이었다. 전경 자체가 진짜 아름다웠다.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도서관도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도서관에서 각국의 언어를 이용해 컴퓨터로 자료를 찾고 있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개중에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공부하는 분위기가 정말 무거워 보였다. 나의 대학생활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도서관을 돌아다니는 내내 우와-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식당 앞에서 볕을 쬐고 있는 'Gabriela'라는 친구에게 가서 인터뷰를 요청해 보았다. 'Gabriela'라는 친구는 미국 동부 쪽에서 왔다고 했다. 왜 굳이 서부까지 학교를 찾아왔냐고 물어보니 학교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있는 지역은 보수적인 사람이 많아서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정치 색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진보적인 사람이 많은 서부 쪽으로 오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정치색으로 학교를 결정할 만큼 영향력이 크나 보다. 사실 나와 Gabriela는 이제 이야길 나눈 지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느덧 정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도 신기했다. Gabriela와 20분 정도 꽤나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학교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UCLA에서 인터뷰를 따는 미션을 수행했지만, 아직 채은이랑 효진이는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친구들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우리는 캠퍼스를 조금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보니, 학교 곳곳에 볕을 쬐며 누워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잔디밭에 누워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벤치에 가만히 누워서 책을 읽거나 Mac book을 만지고 있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잔디밭에 들어가 보고 싶어, 가만히 들어가서 침대처럼 누워서 잠시 낮잠을 잤다. 따뜻한 온도와 상쾌한 바람, 너무 좋았다.
40분쯤 자니까 채은이 목소리가 주변에서 들렸다. 채은이네도 인터뷰를 어느 정도 끝낸 것 같아 다시 우리 숙소로 이동했다. 오늘은 미리 효진이가 예약해 둔 곳으로 숙소를 옮겼다. 효진이가 미국 파티 느낌을 경험해보고 싶었다고 했는데, 찾아낸 장소가 이곳이다. Hollywood walk fame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혼성 도미토리였는데 각국 언어로 되어 있는 안내판이 있고, 한국어로 된 것도 있어서 이용 수칙을 이해하기 좋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매일 무료로 투어도 시켜줬는데 다음 날에 'LA Downtown tour'가 있기에 동규랑 같이 신청했다.
호텔에서 나와 늦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채은이랑 효진이가 미국 버거에 대해서 그렇게 칭찬을 많이 했었는데, 마침 주변에 나도 몇 번 들어 본 'In and out burger'가 있기에 그쪽으로 향했다. 밤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 붐볐다. 그냥 저녁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과, 우리 같은 한국인, 일본인, 유럽계 관광객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이 모여있었다. 일반 매장에 줄이 길게 선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자리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서 자리 잡는 것도 꽤나 애먹었다. 이곳에 들리면 꼭 치즈 감자튀김을 먹어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메뉴판에 치즈 감자튀김이라는 것이 따로 없길래 그냥 '알아서 주는 건가보다'하고 주문했는데, 그냥 일반 감자튀김이 나왔다. 알고 보니 'Animal style'로 주문해야지 치즈 감자튀김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감자튀김 먹었다.
미국의 버거는 생각보다 너무 짰다. 미국 요리를 몇 개 먹어보진 않았지만 여태 먹었던 것들은 너무 간이 강한 경향이 있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기도 했지만 주변에 웨이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찍 일어나야 했다. 시간이 그렇게 늦지는 않아서, 내가 엄청 가고 싶어 했었던 Lala land의 촬영지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로 향했다.
천문대까지는 버스를 타고 움직였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정말 함성이 터져 나왔다. LA라는 도시의 전경이 아주 선명하게 모두 다 보였다. 낮에 오면 Hollywood sign도 볼 수 있다는데, 우리는 밤에 와서 Hollywood sign은 보지 못했다. 풍경이 너무 예뻤다. 우리가 천문대에 도착 한 시간이 밤 9시를 넘어가고 있었는데,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간간히 이 장소로 들어오곤 했다.
아쉽게도, Lala land의 실제 촬영지는 시간이 늦었기에 둘러볼 수 없었는데 내부에 행성 관측계나 망원경 등 천체를 즐길 수 있는 재밌는 것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야경이 정말 너무나도 예뻤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LA의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데 '미국의 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한층 더 실감이 났다. 수평선이 보일 만큼 넓게 펼쳐진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행복했다. 한참이나 풍경을 바라보다, 10시 폐장시간이 거의 다 되어 내려왔다. 아무래도 천문대가 산 중턱에 있다 보니 대부분 자차를 가지고 왔던데, 시간이 늦어서 버스가 아직 다니는지는 잘 모르겠고 유일하게 서 있는 택시는 통상 요금의 두 배 정도를 요구했다. 두 배의 값을 주더라도 집에 못 가는 것보다는 나아서 택시를 타고 다시 Hollywood fame으로 나섰다. Hollywood fame은 그냥 바닥에 할리우드 스타의 손도장이 찍혀 있는 거리였는데, 사실 내가 할리우드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라서 어떤 배우들인지 어떤 감독들인지 잘 몰랐다. 그냥 분위기만 느낄 겸 30분 정도 산책하다 밤이 깊었다.
ㆍ 다음날 아침부터는 우리가 묵는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LA 시내투어를 나섰다. 미국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만큼, 당연히 모든 설명은 영어로 이루어졌다. 아침 조식을 먹고 늦은 아침이 된 10시쯤에 투어 집합하는 곳에 모였다. 오늘의 가이드 'NICOLE'의 인솔로 약 8명 정도의 인원과 함께 같이 LA 시내관광을 했다. 오늘 우리가 갈 곳에 대해서 대충 설명을 듣고, 첫 번째 장소에 다다르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LA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버스 카드를 이용하고 있었고 비용도 1.75달러 수준으로 우리나라보다 500원 정도 더 비싼 수준이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Union' 역이었는데 'Union' 역의 지하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서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캐나다에서 온 누나, 모로코에서 온 형, 미국 동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형, 그리고 영어가 서툰 한국에서 온 우리들 등 간단한 소개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자기소개도 유창하게 못 하는 수준이구나, 다시 영어 회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LA 지하철의 느낌은 내가 느끼기에 흠칫한 부분이 많았다. 현지인들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했고 구석에서 레게머리를 한 흑인 형이 빤히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그 분위기가 무척 섬뜩하게 느껴져서 그나마 의지 할 수 있는 우리의 가이드인 'NICOLE' 옆에 착 붙어있었다.
처음으로 들렀던 장소는 El pueblo라는 장소였는데 LA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집이라고 했다. 집은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았고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세시대의 집 느낌이 물씬 났다. El pueblo 앞에는 멕시칸 물건을 파는 골목이 있었는데 거기도 재미있게 구경을 했다. 다음으로는 LA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 LA 시청으로 향했다. LA 시청으로 가는 길에 같이 가이드를 받는 참여자들과도 안면이 조금 트여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미국에 왜 왔냐고 묻길래 한국 대학생들에게 미국 분위기나 문화를 보여주고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왔다니까 "That's cool"이라고 리액션을 해 주셨다. 아직 영어 회화는 짧아서 현지인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LA 시청에 들어와서 방문 승인을 받고 바로 전망대를 올라가 LA 시내에서 바라보는 전경을 감상했다. 어제와는
달리 저 멀리 Hollywood sign이 보이긴 했다. 확실히 낮의 미국과 밤의 미국은 물씬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LA 시내는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차가 많이는 지나다니고 있지 않았고, 느린 걸음으로 걷거나 공원에서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 모습에서 미국의 따뜻한 점을 조금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LA 시청 투어를 마치고 주변에 위치한 시장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일단 오늘의 투어는 마무리되었다. Egg slot이라는 가게를 가이드 NICOLE의 추천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했다. 오늘 NICOLE의 가이드와 설명 덕분에 정말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NICOLE에게 자그마한 팁과, 한국 돈 1,000원짜리를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 놓은 Overwatch 경기를 보러 길을 나섰다.
Blizzard Arena에 도착해서 우리가 기대한 Overwatch 게임을 관전했다. Overwatch league는 전 세계에서 동시에 리그가 펼쳐지는데, 서울 Dynasty라는 팀도 있어서, 우리는 서울 팀을 응원했다. 현장에서 보는 경기는 몰입감이 확실히 달랐다. 하루에 4개 정도의 경기가 이루어졌는데, 한 3경기 정도가 지나니 집중력이 떨어져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미에는 졸며, 경기를 보며 하며 시간을 겨우 보냈다.
경기를 보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채은, 효진이는 LA의 디즈니랜드에 간다며 아침 일찍 나섰는데 Pocket Wifi를 잃어버렸기에 우리와 통신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저녁 8시 즈음부터 채은이와 효진이를 기다리며 저녁을 먹었는데 친구들이 시간이 점점 지나도 숙소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이 10시가 넘어가자, 조금씩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잘 오고 있는 것일까, 차는 탔을까? 혹시 오는 길에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11시까지 숙소에 들어오지 않으면 택시를 타고 디즈니랜드에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하는 순간 다행히도 채은, 효진이가 숙소로 들어왔다. 통신이 안되니 나와 동규가 자기네들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진이 확 빠지긴 했으나, 그래도 무사히 귀가해서 다행이었다.
ㆍ 다음 날은 Las Vegas로 향하는 날이었다. 원래 탑승 예정이었던 기차는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급하게 시외버스를 타고 Las Vegas로 이동했다. 차내에서 작게 기침을 했는데, 옆에 탄 승객이 ‘Bless you’라고 해주시는 바람에 거기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Las Vegas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서로 떠들었다. Las Vegas에서 갈만한 장소들을 몇 곳 추천받기도 했다.
Las Vegas에서는 크게 2~3개의 목적지를 정했다. 첫 번째로는 O-show라는 서커스를 볼 생각이었다. 홍콩에서 보았던 Dancing Water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서 비슷한 공연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동규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Sky diving도 미리 예약을 해놓았었다.
Las Vegas에 도착해서 우리가 미리 예매한 호텔에 갔는데, 분명히 우리를 2개의 객실을 예약했음에도 예약이 1개 객실에 2개의 킹 침대로 배정되어 있었다.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여자 애들의 동의하게 어쩔 수 없이 우리 4명은 한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첫날은 Las Vegas의 시내를 좀 돌아보기로 했다. 효진, 채은은 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러 간다고 했고, 나와 동규는 일식집을 찾아서 오랜만에 쌀밥을 먹었다. 이후에 우리는 O-show를 관람하러 갔었는데 이어지는 일정에 너무 피곤했는지 공연을 보면서도 계속 잠이 쏟아졌다. 그리고 좌석도 무대에서 꽤 먼 2층이었기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못 볼 무대에 집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근데 Dancing water 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숙소에 들어와 기절하듯 자버렸다.
다음 날은 Grand canyon을 보는 투어를 떠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픽업 장소에 도착해 길을 나섰다. Las Vegas에서 Grand canyon까지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당일치기라도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투어 가이드 분을 만나서, 여정을 떠났다.
가이드분은 나이가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었는데, 친절하시긴 했지만 사담이 정말 많은 분이었다. 따로 묻지 않았어도, 자신이 어떻게 미국에 건너왔는지, 어떻게 Visa를 얻었는지 등을 줄줄 이야기해 주셨다. 공교롭게도 내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어른이 옆에서 계속 말씀하시는데 잠에 빠져들 수가 없어서 이야기를 듣는 둥 하면서 계속 경치만 감상했다. 오늘의 일정은 Hoover Dam과 Route 66 그리고 Grand canyon의 South Rim을 관광하는 것이었다. 고속도로의 한 아시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천천히 관광지들을 둘러보았다.
Hoover Dam은 미국의 Bloc economy를 상징할 만큼 커다랬다. 얼마나 깊고 크게 지었는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그때 발랐던 시멘트가 다 마르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만큼 광활하고 컸다. 생수의 물을 한 모금 떨어뜨린다고 해도, 바닥에 닿을 때까지 정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광활한 댐을 구경하고, 이후에는 미국에서 최초로 생긴 국도라는 66번 국도(Route 33)로 향했다. 사실 이런 곳이 관광지로 찾아온다니, 아무래도 역사가 짧다 보니 관광지로 보여주는 곳이 도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66번 국도가 생길 때부터 운영했었다는 barber shop이나 소품 가게를 몇 군데 들리고, 최종 목적지인 Grand canyon으로 향했다. 처음 Tour를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나쁘지 않았지만, 점점 흐려지더니 싸라기눈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마침 두꺼운 옷을 입고 온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Grand canyon의 South Rim에 도착했다.
정말 수평선까지 보이는 광활한 기암절벽에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시야에 가득 차오르는 절벽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경치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깨끗했었던 광활한 절벽들이 새하얀 옷을 입기 시작했고, 완전히 달라진 색감의 South Rim도 아주 아름다웠다. 하지만 눈이 내리면서 하나 문제가 생겼다. Grand canyon은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지역이라, 눈 덮인 절벽을 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기적이었는데, 그만큼 도로가 미끄러워져서 움직이기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래서 눈이 그치고 도로가 녹을 때까지 움직이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자 센터에서 잠시나마 몸을 녹이고 예상보다 1~2시간 늦은 시간에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다시 Las vegas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도 몸이 피곤했는지 정말 세상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중간에 휴식 겸 In & Out에서 간식도 먹을 겸 쉬어간다고 했는데, 나는 밥 생각도 잊은 채 그냥 잠만 잤다. 한참이나 달리고서야 Las vegas에 도착했고. 숙소에 들어와서도 무엇을 할 수도 없이 그냥 쉬기만 했다.
ㆍ 다음 날은 동규가 그렇게도 바랐던 Sky diving을 하는 날이었다. 동규의 주장이 너무 완강했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같이 예약했다. Sky diving 업체에서 Shuttle bus를 운영한다고 했는데, 무슨 생각인지 동규는 승강장이 어딘지도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예약을 비롯해 모든 것들을 동규가 다 준비했기에, 그냥 그 날 만큼은 동규를 따라가려고 했었는데 수송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도 모르는 동규의 모습에 실망스럽고 진이 빠졌다. 우리가 예약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에 Shuttle bus는 타지 못했고, 급하게 택시를 타고 업체로 향했다. 동규는 많이 미안한 눈치였는지, 자기가 택시 요금을 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Sky diving 장소로 이동했다. 업체는 아무래도 시내가 아닌 도시 바깥쪽에 위치해 있었다. 도착하여 옷을 갈아입고, 간단한 안전 교육을 받은 뒤 바로 실습이 진행되었다. 하늘은 맑았고, 경비행기는 금세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차피 내 바로 뒤에 조교도 같이 탔기에 안전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 걱정이 없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이 잠시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사이 동규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차례를 기다리며 동규가 어디 있는지 찾고 있었는데 조교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내 친구가 지금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어느샌가 동규는 하늘에 올라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동규가 낙하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구경하고선 무사히 base camp로 도착했는데,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오더니 하늘에서 주변의 경치를 즐겨보라고 했다.
그리고선 내 차례가 다가왔다. 긴장된 마음을 안고 경비행기에 올랐다. 고도는 약 13,000~14,000ft(약 4,000m)에서 떨어진다고 했다. 3명이서 탔는데, 내가 마지막 순서였다. 걱정하지 말고 뛰어내리기 전에 1,2,3을 세고 뛰어내리면 된다고 했다. 약 10분 정도 비행하니 고도계가 13,000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앞의 사람들이 한 명씩 뛴다고 했다. 숫자를 셀 때 나도 뒤에서 같이 세 주었다. 문틀에 앉아 One, Two까지 세었는데 정말 갑자기 순식간에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순간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그러더니 다음 분도 태연하게 문 틀에 앉더니 One, Two까지만 세고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곧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내 조교는 숫자를 하나하나 세라고 했는데, One, Two를 세는 순간 뛰어내려 한 바퀴를 구르더니 이내 낙하가 시작되었다. 깜짝 놀란 상황에 소리를 질렀는데, 거짓 없이 소리를 지르면 내 목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렸다. 입을 열고 있으니 온 바람이 입안으로 들어가 입도 금방 말라버렸다. 무서우면서도 굉장히 짜릿했다. 낙하하는 시간 자체가 정해져 있으니, 그 순간이 아쉬워 무서워도 주변의 경치를 보려고 노력했다. 멀리 Las vegas의 모습과 풍경이 보였다.
낙하 중에는 몸을 살짝 우측으로 돌면 방향이 우측으로 돌았고, 좌측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두려움에 떨며 낙하를 이어가고 있을 때 조교가 낙하산을 펼쳤다. 그래도 낙하산이 잘 펼쳐져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면서 나보고 낙하산을 직접 조종해 보라며 끈을 넘겨줬는데, 역시 우측 끈을 당기면 우측으로 방향이 돌았고, 좌측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내가 끈을 놓쳐버릴까 봐 긴장을 풀지 않고 그 줄을 꽉 붙들어 매고 있었다. 낙하산이 떨어질 즈음에는 풍경이 아주 예쁘긴 했지만, 빨리 지상에 착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의 조교의 도움을 받아서 안전하게 착지했다. 좋았지만, 다시 할까 싶은 경험이다. 동규는 무척이나 만족해 보인다.
이후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업체에서 마련해 준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다. 우리가 예약했던 숙소는 옥상에 놀이기구가 있었고, 효진이가 모든 기구를 한 번 타볼 거라고 했다. 이왕 나도 오게 된 김에 효진이와 모든 기구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놀이기구는 신기하게 건물 옥상에 있었는데, 옥상 밖의 바닥이 안 보이는 공중에서 기구가 돌아가는 기구를 타기도 하고, 건물 바깥쪽으로 나있는 짧은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옥상 맨 위에는 전망대처럼 더 올라갈 수 있는 기구도 있었는데 하늘 끝에서 바라본 Vegas의 풍경은 아찔했다. 약간 멀미 기운이 올라와서 이제는 그만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딱 그만두었다. Las Vegas의 여행이 끝나간다. 정말 다 좋았는데, 이 향락의 도시에 와서도 간단한 gamble 한 번 못한 것은 정말 아쉬웠다.
이후에 퇴실하고 주변의 영국의 유명 요리사 Gordon ramsay가 운영한다는 hell’s kitchen에 들렸다. Vegas에 가면 저렴한 가격에 Gordon ramsay 요리사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시간 내어 들렀다. 이후의 일정은 San diego였는데, Las Vegas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야 했는데,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오고 있지만 종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 엄청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래도 식당에서 먹은 후에 이동할 시간은 되지 않아 음식도 겨우 포장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Gordon ramsay hell’s kitchen은 역시 사람들이 많아서 햄버거를 하나 포장하는데도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 급하게 음식을 포장해서 공항으로 향했는데, 창구에서는 웬일인지 내가 구매한 표의 검색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도 거의 맞춰서 도착했는데, 내 표가 검색이 되지 않는다니. 한참이나 찾고 찾다가 정말 접수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어 표가 검색되어 공항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물건 검사대에 섰는데, 나는 식품류 반입이 안 되는 줄 알고, 보안 검색대에서 아까 사 온 버거를 급하게 먹다가 목에 걸려버렸다. 한참을 헥헥대다가 겨우 버거 조각을 뱉어내었다. 나는 갑자기 숨이 안 쉬어져서 살짝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같이 갔던 친구들은 그 장면이 재미있었는지 한참이나 깔깔대며 웃었다. 그나마 내 앞에 있는 외국인이 내 상황을 보고 하인리히법을 해주려고 내 곁으로 왔는데 그 사이에 버거 조각이 입에서 나와서 다행히도 괜찮아졌다. 알고 보니 검색대로 식품을 반입해도 상관없긴 했다.
그래서 겨우내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San diego로 넘어갔다. 도착한 다음 숙소로 넘어갔는데, 무슨 일인지 또 객실이 하나 밖에 예약이 되어 있지 않다며 같은 방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동규는 정말 또다시 동기들과 같은 방을 써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는지, 그냥 우리끼리 다른 숙소의 방을 잡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며, 바로 다른 숙소를 예약하고 정말 아예 다른 곳에서 우리는 떨어져서 마지막 도시를 지내기로 했다. 다만 효진, 채은이 와이파이 기계를 공항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에게 통신이 잘 되지는 않았다.
새로 잡은 숙소 근처에는 한식 BBQ 식당이 있었고 또 Walmart가 있었다. 그래서 숙소에 입실하고, 근처의 Walmart에 들려보았다. 그리고 정말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세상에 그렇게 큰 super mart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깥 물가에 비교해서 물건들이 엄청 저렴했다. 규모의 경제를 가장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이 이 Walmart가 아닐까 싶다. 한참이나 물건을 둘러보고, 오랜만에 한국 컵라면 몇 개와 간식을 고르고 귀가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 먹는 간식은 정말 맛있었고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ㆍ 다음 날은 Coronado Beach을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한참이나 쉬다가 약속장소로 나갔다. Coronado Beach는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눈부신 햇살을 끼고 있는 해변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름다운 풍경,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너무나도 좋았다. 친구들과 같이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고선, 저녁으로는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파스타를 사 먹었다. 이후 시내로 돌아와 지인들에게 줄 선물 등을 샀다. 현지에서 유명한 'Ghirardelli' 초콜릿을 잔뜩 사고, 저녁에 먹을 Sandwich를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먹는 현지 Sandwich는 그 나름 맛이 뛰어났다. 그렇게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여정으로는 La jolla cove였다. 바닷길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서 미 서부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해변을 걸으며 꽤 많은 시간을 보냈고, 또 그곳에서 일몰을 감상했다. 해변 중간중간에 물개들이 엄청 많았는데, 일몰 하는 순간에 맞춰, 어떤 어미 물개가 새끼를 출산하는 모습을 보기도 해서 참 환상적인 모습에 인상이 깊게 남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주변에 까마귀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새끼 물개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달려들어 새끼에게 붙어있는 양막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엄청 생경했고, 굉장히 인상이 깊었다. 저녁으로는 숙소 바로 앞에 있는 BBQ 식당에서 오랜만에 한국식 고기를 잔뜩 먹었다. 숙소 앞을 지날 때마다 풍겨오는 한식의 향에, 이번 여행 중에 저 식당은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식의 맛이라 너무나도 행복했다. 식당의 종업원 역시도 한국인이었는데, 이렇게 어린 한국 손님들이 많지는 않은지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해주셨다. 오랜만에 이렇게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미국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ㆍ 다음날 오전에는 효진, 채은이가 물건을 사는 것을 잠시 같이 구경하고는 계속해서 귀가 여정에 올랐다. 귀국 항공편은 Los Angeles 공항에서 타면 되었는데, 밤늦은 시간의 기차를 타고 Los Angeles 공항에 도착하여, 새벽 비행기를 타고 San Francisco로, 또 San Francisco에서 환승하여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중교통 행렬에 귀국 길에만 약 20시간이 소요되었고,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우리의 집이 있는 경산으로 가야했기에 4시간 정도의 버스를 타고 경산 터미널에 도착했다. 밤늦게야 경산에 도착할 수 있었고, 경산에서는 택시를 타고 또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기차, 비행기, 버스, 택시까지 이어지는 귀가 길에 정말 몸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