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D+1484 2018. 3.25. (일)
ㆍ 귀국 길에 오른 뒤에는 또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가장 중요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은 홍보대사의 후임을 뽑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단체를 알릴 수 있는 많은 기회에 참여해야 했다. 때 맞춰 만들어낸 포스터를 캠퍼스 곳곳에 부착했고, 신입생 OT에 참석하여 잠시 시간 양해를 구한 다음에 우리 홍보대사를 알리기도 하고, 학교 행사인 동아리 박람회의 부스에 들려 우리 단체를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동아리 박람회 행사로 인해서 홍보대사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약간의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동아리 박람회 행사를 하면서 동시에 본관에서 서류를 같이 받았는데, 캠퍼스에서는 누군가 박람회 부스를 지키고, 또 누군가는 본관에서 서류를 접수해야 했다. 이 박람회가 오전 9시부터 시작되어 누군가는 일찍 학교에 와야 했는데 솔직히 아침부터 오기는 귀찮았지만 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나와 동규가 자진해서 아침 일찍 등교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는 부스에 가면 세팅이 다 되어있고, 그냥 참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는데, 부스의 세팅이 하나도 되지 않았고, 크기가 도저히 혼자서 설치를 할 수 있는 크기와 무게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부스 설치를 하느라 본관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어떤 지원자가 서류를 내러 본관에 찾아왔었나 보다. 우리가 서류 제출 가능 하다고 게시한 시간이지만 사람이 아무도 없자, 왜 아무도 없냐고 회장인 수민이에게 문의했고 다시 서류를 제출하러 오겠다고 문자를 보냈나 보다.
수민이는 이 문자를 보고 왜 아침에 본관에 아무도 없었냐면서 우리를 질책했고, 우리는 아침에 있었던 사정을 이야기했다. 부스 설치를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양이었기 때문에, 돕다가 조금 늦었다고 사정을 설명했는데 도저히 납득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며 더 크게 질책하기 시작했다. 그때 정말 가슴 깊은 곳부터 서운함이 몰려왔다. 학교에서 멀리 사는 친구들을 위해서 편의를 봐주기 위해 자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학교에 왔더니 그런 것들은 싹 다 무시하고, 그냥 결과적으로 잘못되었으니까 질책하는 모습에 너무 속이 상했고 홧김에 자리를 떴다.
그때부터 홍보대사들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떠난 다음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이후로는 서로 정말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서운한 마음에 그날 밤 정길성 선생님을 찾아가, 여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이 따로 또 조율을 해주시려고 하다가 내기 말한 것들을 회장과 공유하면서 결론적으로는 내부 폭로를 하게 된 꼴이 되었다. 그 이후로 왜 선생님한테까지 폭로하냐며 더욱 거센 비난이 일었다.
정말 그때부터는 홍보대사의 흥미와 의욕이 모두 떨어졌고, 여태 궂은일이 있을 때 항상 동기들의 편의를 위해서 자원했던 나지만, 결국 ‘누가 편의 봐달라고 했냐’라고 되물어보는 한 동기의 말에 완전히 석이 나가, 홍보대사에 대한 애정이 완전 식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완전히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여태 홍보대사 일에 쏟았던 노력과 애정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그저 이 단체를 탈퇴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근데 임기가 거의 다 지나, 이제 후임만 뽑으면 되는 상황인데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사실 그 언제보다 힘을 합쳐야 하는 순간인데, 나조차도 이렇게 진이 빠지고 일이 지지부진되니 되는 일도 없었다.
사실 여태까지 남자 단원들이 힘쓰는 일을 다 도맡아 했다. 그런데 결국 ‘배려를 바란 것도 아닌데,’라는 한 단원의 말을 듣고, 이제부터는 힘쓰는 일조차도 배려해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정말 머리에 가득 차 버렸다. 그래서 여태까지 힘쓰는 일이 남자 단원들이 도맡아 했으니, 이번에는 면접장 세팅을 여자 단원들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굉장히 많은 양의 책걸상을 치워야 했기에 도저히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없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다 정리를 했다고 하기에 리허설을 하러 갔는데, 책걸상 몇 개만 뒤로 치워져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했기에, 그 이상의 감정 교류는 없이 정말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했던 것 같다.
여초 단체에서 여단원과 갈등이 생기다 보니 확실히 지형 자체가 불리한 게 많았다. 결국 남단원과 여단원의 구도로 갈라져서 갈등이 지속되었는데, 아무래도 여자들의 수가 많고, 갈등에 있어서 결집력이 강했기에 한치의 물러섬이 없음이 느껴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했던 행동과 말, 그간 쌓아왔던 관계 등 다양한 부분에서 사유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최대한 여자들과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가 있어도 내가 뒤집어쓰고 빨리 해결해 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런 감정 상태가 유지된 상태에서 홍보대사 면접날이 다가왔다. 면접은 천마아트센터에서 진행되었고, 아침 일찍부터 일정은 시작되었다.
후배들은 마치 입사 면접이라도 보는 양 다들 한 껏 멋을 부리고선 행사장에 왔고, 우리가 준비한 일정을 진행했다. 크게 6개의 팀으로 나누어 학교를 홍보하는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고, 발표하는 것으로 전체적인 일정을 짰다. 팀 회의를 하는 중간에 우리가 가서 지원자들의 매너나 태도에 대해서 평가하면 되었다. 다만, 다들 처음 본 자리에서 당연히 꾸민 모습을 보여주려 할 텐데, 그것을 보고 정량적으로 점수를 매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전체 다 5점을 주고, 다른 이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사실 우리는 태도를 보려고 한 것이지,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발표 시간에 결과물의 내용이 겹칠 때면 초조해하는 지원자들의 모습을 보니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점심시간 이후, 이어지는 본 면접에서는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등의 임원진과 입학처, 비서홍보팀 선생님들이 오셔서 직접 참관하여 인터뷰를 진행했고, 일반 단원들은 대기실을 지키거나 돌아가며 잠깐씩 면접을 참관하곤 했다.
그렇게, 홍보대사 면접도 끝이 났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ㆍ 최근 동규와 같이 2룸 집을 구해서 살고 있다. 워낙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고,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그냥 같이 방을 잡아버렸다. 방은 학교 근처의 한 빌라에 잡았고, 월세가 40만 원이라 20만 원씩 서로 내면서 살고 있다. 방 자체가 분리되어 있어서 서로 생활에는 별로 터치할 게 없는 것이 좋긴 하다. 동규도 나름 개인 공간이 생긴 것에 대해서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동규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같이 하는 것도 많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International Study Club이라며 일정 시간 학생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수당을 받는 프로그램도 같이 신청했고, 새마을 세계화 재단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청년 새마을지도자’ 역시도 지원했다. 글로벌 청년 새마을지도자 프로그램은 경상북도 청에서 해외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인데 2년간 해외에서 장기로 주재하며 국제개발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파견하는 국가는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베트남 등이 있었다. 어느 날 이 공고를 발견하고 동규에게 공유했더니 언제 아프리카에 살아보겠냐며 한 번 지원해 보자고 했다. 그래 뭐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도전해 보기로 가벼운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금방 자기소개서를 써서 제출해 버렸다.
입학) D+1488 2018. 3.29. (목)
ㆍ 영대사랑 23기 후배들의 최종 결정이 마무리되었다. 약 10명 내외의 합격자 중 6명 정도는 학생들과 선생님의 의견이 같았고, 4명 정도는 약간의 의견이 갈렸는데 그 4명의 멤버는 거의 선생님들의 의견을 따라 결정되었다.
회의 시간에 최종 결정 났고, 이제 발표만 하면 되는데 재현이가 재밌게 발표를 하자며 전화를 할 때 ‘입대 영장이 나왔다’라고 이야기하자며 웃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며 극구 반대했지만 재현이는 아이디어가 재미있었는지 신입 여학우들에게도 ‘입대 영장이 나왔다’며 우스갯소리로 합격 소식을 전했다. 지금부터는 다음 기수의 단원들이 활동을 잘할 수 있게 잘 물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ㆍ 교외 활동으로는 푸르덴셜 사회공헌재단에서 진행하는 ‘푸르덴셜 착한 프로젝트 공모전’에 지원했다. 내용으로는 ‘조혈모세포 기증’을 홍보하는 방안이었는데, 나와 동규는 조혈모세포 기증하는 데 있어서 사람과의 일치가 필요한 모습이 우리 젊은이들의 연애 시장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의로 캠퍼스의 남녀들에게 조혈모 세포의 모양의 물건을 나눠주고, 서로의 짝을 찾아서 오면 홍보와 함께 상품을 주는 방향으로 주제를 잡아서 공모전을 준비했다. 동규가 서류를 깔끔하게 만들어 줘서 서류 심사는 문제없이 통과했고, 발표를 하러 서울까지 올라갔다. 발표는 내가 맡았는데, 이런 식의 발표는 해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자신 없었다.
지원서 자체에 홍보대사임을 적었기 때문에 홍보대사 단복을 입고 서울로 올라갔고, 소신 있게 발표를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떨어졌다. 그래도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발표를 끝내고 대구에 내려왔는데 마침 영대사랑 후배들 대면식을 하고 있다기에 참석했다. 아침부터 서울까지 가서 발표까지 하고 다시 내려오느라 너무 힘들고 정신이 없었는데, 대면식에서 내 앞에 앉은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너희들끼리 이야기하라고 하고선 그냥 묵묵히 고기만 구워 먹었다.
내일 드디어 나나를 만나러 후쿠오카로 떠난다.
입학) D+1496 2018. 4. 6. (금)
ㆍ 우리 학교 국제교류처에서 주관하는 ISC에 참가하게 되었다. ISC는 International Study Club의 줄임말로, 한국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이 짝이 되어 외국인 학생의 한국 적응을 돕고, 한국인 학생은 소정의 장학금을 얻는 사업이다. 나는 동규와 함께 ISC에 신청했고, 중국인 친구 두 명과 짝이 되었다.
별안간 ISC의 첫 만남을 가졌다. 처음 사귀는 중국인 친구라, 조금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학교 정문 쪽에 위치한 국제교류센터에서 만났다. 첫 만남을 가지고 우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한국인 구성원들은 현재 영남대학교 학생 홍보대사 ‘영대사랑’에 소속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또, 우리가 앞으로 같이 활동할 친구들은 모두 중국에서 왔으며 둘 다 국어국문학과에 재학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름은 각각 ‘진혁군’, ‘요명열’이었다. 둘 다 중국 길림성 지역에서 왔으며 한국의 전북대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에서 유학을 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그저 한국에 대해 “끌리는” 감정이 컸다고 이야기했다. 통 성명을 마치고 국제교류센터에서 지원해 주는 도서를 구매하러 영남대 구내서적으로 갔다. 한국에서 오래 지냈던 구성원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구성원도 있어서 최대한 간단한 단어가 쓰이고 그림이 많은 책들을 고르기로 했다. 상의를 통해서 책을 골랐는데 나는 그림책과 글귀 책을 골랐고, 다른 사람들도 추후에 돌려가며 같이 읽어 볼 수 있게 최대한 간단한 책을 골랐다. 특히 동규는 나중에 중국인 친구들과 같이 요리를 해보고 싶어서 요리책을 골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첫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를 했고 다음 주에 같이 캠퍼스를 돌아다녀 보기로 약속했다.
ㆍ 오랜만에 나나를 만났다. 마침 벚꽃이 피는 시기라, 일본의 벚꽃도 구경하고 나나가 같이 꽃놀이를 가자고 해서 같이 시간을 맞춰 일본에 들렸다. 일본에 도착한 날 나나는 나와 함께 먹을 도시락을 싸들고 나를 맞이하러 나왔고, 오호리 공원에서 우리는 함께 일본의 벚꽃을 구경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 아래서 벚꽃을 맞으며 나나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애정이 가득한 식사. 이 도시락을 만들겠다며 전 날부터 어머니와 같이 준비하며 만들었다는 나나의 말에 감동도 가득했다. 정말, 정말 좋았다.
데이트를 하면서 한식도 같이 먹고, 요즘 일본에서 유행 중인 설빙 빙수도 함께 먹으며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마침 일본의 축제 기간이라 밤이 되면 커다랗게 불꽃놀이를 했는데, 밤의 공원에서 커다란 불꽃을 구경하고, 나나가 좋아하는 딸기 사탕을 같이 먹고 하니 함께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언제나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입학) D+1501 2018. 4.11. (수)
ㆍ ISC 친구들과 같이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녀 보았다. 학교를 돌아다녀 보기 앞서서 한국인 멤버들이 현재 ‘학생 홍보대사’에 소속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학생홍보대사 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과 더불어 ‘학생 홍보대사실’을 조금 소개해 주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간식을 먹으며 일주일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학생 홍보대사실에 피아노, 기타 등 악기가 있는 것을 소개해주고 같이 연주해 보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악기 연주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게 되었고 중국에서는 여가시간에 어땠는지, 한국 학생들은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선 학교 본관 주변에 있는 민속촌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전에 민속촌이 왜 생겼는지 등에 대해서 조사했었고, 민속촌을 탐방하며 학교에 민속촌이 생기게 된 유래 등을 설명해 주었다. 안동댐을 지으면서 수몰될 뻔했던 건물들을 이곳에 옮겨 놓았다는 설명을 곁들이니 이해를 더 쉽게 하는 것 같았다. 민속촌 안에는 커다란 그네와 우물, 투호 놀이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같이 해보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를 같이 돌아다니면서 우리 학교와 한국 문화에 대해서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ㆍ 본격적으로 홍보대사 후임 교육이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우리가 받았던 방식에 불만이 많은 편이었기에 수직적인 교육 방식을 바꿔 보자고 의견을 냈는데, 결국 기존에 진행하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나는 그 일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에 회의 시간에는 후배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고 그 시간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날이 많았다. 대체로 남자 단원들은 회의 시간에 다른 일을 하고 그저 회의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가 그러했듯이 그저 발표만 시켰는데, 발표 준비가 덜 되어 당황한 후배들은 이따금씩 발표 도중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홍보대사가 되기 위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참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회의 시간에는 잠자코 있다가 회의가 끝난 다음에 따로 후배들을 불러 다독여주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Mentor-Mentee 시간이라고 해서, 선배와 후배가 따로 짝지어 회의 후에 식사를 하며 보내는 공식적인 시간이 있다. 그때 최대한 후배들의 말을 듣고, 그냥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영대사랑은 곧 막바지에 다다르고 앞으로 나는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전공 공부는 상상이상으로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토록 원했던 학생홍보대사 활동은 내게 선물처럼 안겨준 것도 많지만, 가슴에 상처도 많이 남은 활동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많은 성장을 안겨 주었는데 솔직히 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고 다시 하라면 또 할 것 같기는 하다.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애증의 단체이다.
입학) D+1506 2018. 4.16. (월)
ㆍISC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주변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험 기간 준비를 도왔다. 학교 주변에 있는 ‘C’est la vie’라는 식당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그곳에서 최근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험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중국인 학생들이 재학 중인 학과가 ‘국어국문학과’라서 그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들과 어려워하는 부분을 같이 보았고 내가 아는 국어 지식을 조금 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국문학과 전공과목은 중세국어의 문법과 같이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하나도 알려주지 못했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고 학교 주변에 있는 찻집에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찻집에는 각종 Board Game이 구비되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Splendor’나, 중국인 친구들이 좋아하는 중국 전통 보드게임 Tichu, 거기에 윷놀이 등 한국 전통 놀이도 있어서 한참이나 같이 놀았다. 중국 친구들은 처음 해보는 게임 방식이라 한국 전통놀이를 조금 어려워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같이 즐겼다. 놀이를 통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ㆍ조만간 시험기간이 시작된다. 근데 나는 시험 준비보다는 조만간 치르는 ‘무대 예술 전문인’ 시험을 더 중점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무대 예술 전문인’ 3급 자격증이 있으면, 공식적인 직함으로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홍승백 감독님의 지도 아래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전공 시험공부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더 재미있다. 나중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입학) D+1516 2018. 4.26. (목)
ㆍ ISC 친구들과 시험 기간에 남매지에서 잠시 만나 같이 야식을 시켜 먹었다. 일단 이번 시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험 끝나고 무엇을 해 보고 싶은 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평소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직관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동규는 같이 leisure sports를 즐겨보고 싶다고 했다. 또한 명열이는 곧 여름이 다가오기 때문에 같이 공포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혁군이는 대구에 있는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 네 개의 의견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야기 나누었는데, 그중에 ‘Paragliding’과 같은 leisure를 대구 ‘E-World’에서 할 수 있을 것이고, ‘E-World’에 Bungee jump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시험이 끝난 다음에 날씨가 좋다면 같이 놀이공원에 가자는 약속을 했다. 야식으로 같이 통닭을 먹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닭 취향만 보아도 평소 중국인 친구들이 즐기는 입맛 취향을 알 수 있었다. 중국에는 ‘차(茶)’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채소 종류를 거리낌 없이 잘 먹을 줄 알았는데, 깻잎이나 상추와 같은 한국인이 즐겨 먹는 채소는 잘 못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다. 닭요리도 가능하면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Fried chicken을 즐겨 먹는다는 것을 듣고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이렇게 밤에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다음 주에 야구장을 가기로 약속했다.
ㆍ 시험 기간이 끝났다. 그리고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일전에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었던 ‘글로벌 청년 새마을 지도자’의 서류를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정말 놀라웠다. 나에게는 아무런 스펙이 없었다. 경력 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대학 졸업장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나도 서류에 합격했다니 정말 놀랐다. 다음 주 초에 온라인으로 적합도 검사를 하고, 이후에 면접 일정까지 잡혔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정말, 이렇게 해외 생활의 길이 열리는 것일까? 궁금하다.
입학) D+1529 2018. 5. 9. (수)
ㆍISC 친구들과 같이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관람했다. 미리 예매를 하고 5월 2일 날 만나 대구 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에 위치한 Samsung Lions Park로 갔다. 한국인들은 야구를 직관한 적이 많았지만, 중국인 친구들은 그렇게 ‘야구‘라는 스포츠가 중국 내에서 유명하지 않아서 야구를 보는 것이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한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를 위해서 직접 야구 규칙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고 야구장에서의 예의, 각종 응원법들을 알려 주기도 했다. 야구 경기를 보러 가면 경기 시작 전에 국민의례로 야구장에 설치되어 있는 ‘국기에 향한 경례’ 등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을 처음 겪게 된 중국인 친구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같이 응원하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응원하는 팀이 큰 점수 차이로 지기는 했지만, 중국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ㆍ 다시 나나를 만나러 후쿠오카로 떠났다. 한참 봄이 지나고 있어서 날씨도 따뜻하고, 꽃도 정말 흐드러지게 폈다. 날씨도 너무 좋고 해서 돗자리와 도시락을 들고 Uminonakamich 쪽에서 피크닉을 했다. 예쁜 꽃들 사이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맛있는 도시락을 먹으니 너무나도 좋았다. 그런데 나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장난을 쳤는데 약간 심술이 났는지, 내가 끼고 있던 안경을 꽃밭으로 던져버렸다. 순간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당황했고, 다시 안경을 찾는데 한참의 시간이다 버둥댔다. 나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한참이나 깔깔대며 웃었다.
이번 여행에는 나나와 함께 후쿠오카 시내를 돌아다니며 지역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카페도 가보고, 커피도 마시고 맛집도 돌아다녀보는 등 정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나 덕분에 일본어 구사 능력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내게 생겼는데, 이 능력을 잘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중에 후쿠오카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 일본 땅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나를 만나러 일본에 엄청 자주 오고 있지만, 아직 살아본 적은 없는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어떨까. 생각이 많이 든다.
만약 일본에서 산다고 한다면 최소한 사전에 경험은 해보고 싶다. 그래서 후쿠오카로 올 수 있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 학교에서는 후쿠오카로 보내주는 교환학교가 없는 것 같다. 이것저것 생각이 점점 많아진다. 이곳에서 취업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
입학) D+1533 2018. 5.13. (일)
ㆍ 오늘 '글로벌 청년 새마을 지도자'의 면접을 보았다.
오늘을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숨죽여 보내왔던가. 어느 날엔가 문득 눈에 띈 학교 홈페이지의 한 부분 때문에, 어느덧 국제 개발로 향하는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정신없이 대학교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 소식란에 ‘글로벌 청년 새마을 지도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평소 국제 개발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나 KOICA를 통해 국제 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공고문을 보자마자 무언가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좋은 기회를 발견했다는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렸지만, 사실 엄청나게 막연했다. 이력서를 작성하는데 내겐 ‘이력’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관련 경험이나 자격증은 전무했고, 심지어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대학교 졸업 증명서도 한 장 없었다.
비록 이력서는 빈 종이였지만 자기소개서에 국제 개발을 경험하고 싶다는 나의 솔직한 심정을 담아내어 적었고, 아주 운이 좋게도 서류 심사에 합격해서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룸메이트인 동규에게 같이 ‘글로벌 청년 새마을 지도자’에 지원해 보자고 권유해서 같이 서류 심사에 합격하였다.
ㆍ 뜬금없이, 왜 국제 개발이냐 묻는다면 사실 나는 고교 시절부터 국제 개발에 힘을 보태보고 싶었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본인의 모든 것을 희생한 '울지 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님'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제 개발에 대해서 대중화와 이슈화를 해 낸 '한비야'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졸업 이후에, KOICA 봉사단을 통해서 국제 개발 분야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기에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ㆍ 면접은 구미시에 있는 '새마을 세계화 재단'에서 실시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면접 날, 나와 동규는 정장을 입고 아침 일찍 구미역으로 향했다. 내 접수번호는 103번, 동규의 접수번호가 114번. 번호의 차이가 꽤 나기도 하고 둘이 동시에 서류에 합격했기에 지원자 전부를 서류 합격시키고 1분 내외의 인스턴트 면접을 볼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면접장에 도착해 보니 나의 바로 다음 면접 순서가 동규였다. 그 말은, 서류 전형 경쟁률이 꽤 높았고 우리는 그걸 통과하여 면접을 보러 왔다는 의미였다. 면접하기 전부터, 깜짝 놀랐다.
ㆍ 예상 면접 시작 시간보다 약 10분 늦게 면접이 시작됐다. 면접관 4: 지원자 6 면접이었는데, 우리 면접 조에는 2명이 불참하여, 실질적으로 4:4 면접이 진행되었다. 면접 대기실에 운동복 차림으로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우리 조에 속해 있었다. '반사효과'라는 게 있어서, 그분과 같이 면접을 본다면 조금 더 전문성이나 성실성이 돋보이지 않겠나 생각했었는데 같은 조로 배정이 되었다.
면접 질문은
1. 새마을 운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마을 리더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2. 지원하게 된 계기
3. 지원서에 1 지망으로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를 적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4. 본인의 장점 / 단점
5. 자기소개서에 서술했던 경상북도 칠곡군 SNS 홍보대사는 무엇을 하는 활동인지
6. 파견이 끝난 이후에 하고 싶은 것
등에 관해서 여쭈어보셨다.
새마을의 모토는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인데, 나는 그중에 내가 근면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여태까지 작성했던 일기장을 들고 면접장에 들어갔고 면접관들에게 나의 일기장들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 성실함이 호소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 질문이 예상 질문 내에서 해 주셔서 면접은 잘 보았다고 생각한다.
입학) D+1543 2018. 5.23. (수)
ㆍISC 친구인 혁군이가 운영하는 YU INTERNATIONAL EXPO에 참가해서 혁군이의 편입 이전 학교에 대해서 설명을 듣게 되었다. 혁군이를 만나기 전에 이런 행사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이번에 같이 활동하는 친구가 이 행사에 봉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한 번 설명을 들으러 행사를 찾아갔다. INTERNATIONAL EXPO는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 하는 재학생들을 위한 설명회였다.
혁군이에게 이 행사에 왜 참여하였냐고 물어보니 순전히 봉사라고 했다. 혁군이가 운영하는 공간에서 자신이 이전에 다녔던 학교에 대해 사진과 함께 설명을 들었다. 그 학교의 분위기는 우리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중국의 물가 수준을 보고 가장 크게 놀랐다. 버스비가 통상 100원이라고 했고 학생 식당도 거의 1,000원이면 식사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기숙사비나 수업비 같은 경우에도 중국의 사립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국립 대학교 수준 밖에 되지 않아 놀라웠다. 이에 더불어 학교에 있는 상징이나 동상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친구가 자라왔던 환경에 대해서 조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시간을 오래 쓰지는 않았지만, 같이 활동하는 친구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ㆍ 요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퍼스 투어를 자주 실시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근교의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 학교를 구경시켜 주고, 우리가 진행하는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한다.
학교 곳곳의 명소를 학생들이랑 같이 구경하기도 하고, 그 공간에 숨겨진 이야기를 얘기해주곤 한다.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것은 늘 재밌다.
특히 매번 학생들과 토크콘서트를 진행하는데, 궁금한 것들을 종이에 적어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무대 위로 던지면 입학사정관 선생님께서 몇 개를 집어서 읽어보시고 답변을 해주신다. 입시와 관련된 질문이던, 사적인 질문이던 상관없이 진행하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음악을 틀어주고 가끔씩 무대에 학생들을 불러서 춤을 추게도 하는데, 아주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줄 때마다 정말 깜짝깜짝 놀란다. 끝나고 학교의 홍보 물품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일정은 끝난다. 매번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너무 좋다.
ㆍISC 친구들과 같이 학교 축제인 ‘대동제’를 관람하고 수료식사를 했다. 이번 축제에는 가수 ‘Psy’가 왔는데, ‘Psy’의 파급력은 중국에서도 정말 크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인 친구들도 꼭 무대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같이 공연을 보러 갔다. 우리 모두 Psy의 노래를 알고 있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공연을 보며 약 한 시간가량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하며 같이 축제의 분위기를 즐겼다. 공연을 다 보고 난 뒤에는 유학생 지원팀에서 제공하는 ‘수료 식사’를 했다. 고깃집에서 같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한 학기 동안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한국인 친구들이 중국인 멤버들에게 크게 도움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꼭 한 주에 한 번씩은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낸 것이 자신들의 학교생활에 많은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뿌듯했다.
이번 방학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도 잠시 나누었는데, 중국인 친구들은 방학을 하자마자 자신의 고향으로 가거나 해외여행을 할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인 친구들도 방학을 하고 바로 해외에 나갈 계획을 하고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날도 많이 남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WINDOW TO THE KOREA 활동을 통해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을 마무리했다.
입학) D+1553 2018. 6. 2. (토) ~ 3. (일)
ㆍ ISC 친구들과 같이 WINDOW TO THE KOREA라는 행사에 참여해 같이 함께 부산에 다녀왔다.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지를 정하는 것부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네 명 다 바다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산’이나 ‘거제’ 등 바다로 유명한 관광지를 가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대학생이 되면 꼭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 보아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매칭을 시켜 주었기 때문에 소중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사실 한국인 친구와 같이 외국 여행을 나가본 적은 있지만, 외국인 친구와 한국 여행을 해 본 것은 사실 처음이었다. 그저 한국 친구와 국내 여행이나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은 있어도, 내가 여행의 리더가 되어 우리나라를 외국인에게 소개해 주는 경우가 처음이었기에 약간의 부담은 있었다.
어디를 가고 싶은지 세네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일단 모두의 관심사가 ‘바다’ 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는 바다가 있는 ‘거제’나 ‘부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목적지는 부산으로 정해졌지만, 어떻게 하면 한국의 멋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고 아무래도 한국의 전통시장을 보여주면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친구들도 시간을 내어서 우리와 함께 여행을 왔고, 또 언제까지나 한국에 있을 수 없는 입장이기에 한국인 친구와 여행을 할 수 있는 몇 번 없는 기회라고 생각을 해서 좀 더 신중하게 여행 루트를 정한 것 같다. 일단 내가 원했던 것은 ‘한국의 전통시장’을 보여주는 것과 ‘부산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두 개로 주제를 잡았다. 중국인 친구도 ‘광안리’라는 곳을 TV에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기에 부산 바다에 대한 로망이 커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부산 광안리의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수영’ 역 주변에 위치한 ‘팔도 전통시장’에 갔다. 전통시장 안에서 무언가 먹어보고 싶었지만 딱히 구미가 당기는 음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곤란에 빠지기도 했었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와서, 또 다른 시장으로 이동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중국인 친구가 부산 돼지 국밥이 유명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먼저 돼지국밥 집으로 들어가기에 놀라기도 했다. 예상외의 음식을 먹고 싶어 했기 때문에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음식이니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그곳에서 중국에는 없다는 꼬막이라는 음식도 같이 먹어 보았다. 중국인 친구들은 꼬막을 먹어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같이 꼬막을 먹으면서 한국 음식에 대한 폭을 조금 더 넓힌 것 같다.
부산 광안리 바다를 최대한 즐겨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면 좋을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Face book에서 저렴한 가격에 요트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길로 요트 예약을 알아보았는데 마침 30분 후에 승선 가능한 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트를 타게 되었다. 나도 난생처음으로 요트를 탔기 때문에 어떤 느낌일까 잘 몰랐었지만, 타고나니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나 풍경이 좋았었다. 요트를 타며 부산 바다를 보고 나니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덕분에, 나도 행복했었다.
저녁으로는 고기를 구워서 먹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밤에 조금 더 놀다가 자려고 했지만 다들 신나게 부산을 돌아다녔기에 단잠에 빠졌다. 다음날, 숙소 주변이 BIFF 광장 거리라서 BIFF 광장을 돌아보고, 가수 이승기 덕분에 유명해진 씨앗호떡 등을 먹으며 우리의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ISC 친구들 덕분에 정말 행복한 하루, 행복한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었다.
ㆍ글로벌 청년 새마을 지도자 과정에 최종 합격해서 이제 국내 교육을 받으러 입교하고, 이후에 파견지로 나가게 된다. 아직 어떤 국가에 파견되는지 결정되지 않았다.
교육 입교를 앞두고, 마침 시험기간이 겹쳤기 때문에 교수님들께 미리 돌아다니며, 당분간 수업이나 시험을 응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절반 정도의 교수님들은 내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셨고, 또 절반 정도의 교수님은 왜 이 좋은 시기에 그 고생을 하러 가냐고 되물으셨다. 이것저것 교수님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내 판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고 있다.
대체로 결혼한 선배님들은 인생에 한 번 있을 이 경험을 아주 잘 즐기고 오라고 말씀해 주신다. 대체로 ‘부럽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홍보대사실의 비서 홍보팀에도 당분간의 해외 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리니 아주 좋게 봐주셨다. 이제 학교와는 또다시 잠시 이별할 일이 남았다. 차차, 준비 잘해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