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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Oct 23. 2024

[대학 일지] #31. 4학년 2학기, 교환 학생 일기

 유학) D-100 2021.12.22. (수)


<유학 전 마지막 여행>


ㆍ 나는 지금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와 내 친구 동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저 멀리 아이슬란드로 날아갈 것이다.


ㆍ 그새 어떻게 지냈는지 정말 모르겠다. ‘청도 희열’ 프로그램을 마치고, 4-H 중앙경진대회를 거쳐, ‘한일 주니어 포럼’에 참석하고, 옥천 여행을 한 뒤, 시험 기간이라며 한동안 또 정신없었다. 물론 여느 때처럼 시험공부를 엄청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다가오는 여행 준비에 울렁대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었다.


ㆍ 현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오미크론’으로 변이 하여 다시금 지구촌을 아프게 하고 있다. 현 상황에만 비추어 보았을 때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크게 달갑지 않은 상황이지만, 마냥 모든 것을 놓고서 시간을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결국 칼을 빼 들었다. 동규는 강력하게 아이슬란드 여행을 추진했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는 나는 그저 응했다. 준비할 것도 크게는 없었다. 비행기 표를 사고, 입국할 국가의 오미크론 상황을 침착히 살피는 수밖에 없었다. 살인적인 물가라는 말을 듣고 현지에서 먹을 한국 음식을 잔뜩 사고 PCR 검사를 받은 뒤 여자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부리나케 비행기에 올랐다. PCR 검사를 받고 결과를 받는데,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출국 날 전날에 한 번 더 PCR 검사를 받고 아침에 겨우내 PCR 검사지를 들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던 웃지 못할 사건도 생겼다.


ㆍ 내가 혼자 아이슬란드로 간다고 생각했었다면 과연 내가 이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을까.

처음 아이슬란드 여행 이야기가 나온 것은 거의 2년 전 즈음 스리랑카에서 단원들과 북유럽 여행을 꼭 해보자는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처럼 오로라를 보는 것에 대한 큰 욕심이 없었고, 당시에는 스리랑카 생활이 끝나가며 일본 교환 유학 생활이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아이슬란드 여행 자체는 크게 안중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 못 한 코로나의 현 상황이 다가오자 꿩 대신 닭이라며 어디든 떠나고 싶기는 했다. 더불어 쉽게 떠날 수 없는 여행지인 아이슬란드 여행은 내 구미를 당기기 충분했다. 젊을 때 가 볼 수 있는 최상의 여행지라는 것을 공감하며,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ㆍ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일본행은 가능할 듯 보이면서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누구보다도 빠르고 신속하게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갔고, 일본 비자 취득은 물론이거니와 외국인은 전면 입국 금지 조치를 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온라인으로 개강을 할 수도 있다고 시사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과연 교환학생의 의미가 있긴 할까 싶기도 하다.




유학) D-25 2022. 3. 7. (월)


<안녕, 2022년>


ㆍ 2022년이 밝았다. 사실 2022년이 된 지 벌써 2달이 지난 시점이다. 여행을 잘 다녀왔다. 정말 행복했었다.

아이슬란드는 참 좋았지만, 무척이나 힘들었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오전 11시 즈음이 되어서 해가 뜨고, 오후 4시 즈음이 되면 다시 해가 져버리고 만다. 해가 짧아서 서둘러서 움직여야 하고, 그 와중에 세끼의 끼니는 꼭 챙겨 먹으려 노력했고 또 매일 움직이는 시간이 길다 보니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극한의 추위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음의 땅’이라는 명성과 같이 강한 추위는 계속되었고, 살인적인 물가와 참으로 만나기 힘들었던 오로라도 있었기에 전체적으로는 힘든 여정이었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기 전 Air bnb를 통해 숙소를 예약했었는데 주인장이 같이 성탄절 식사를 하자고 했다. 덕분에 유럽에서 보내는 성탄절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주인장은 필리핀에서 아이슬란드로 귀화한 필리핀 사람이었는데, 영어를 아주 잘했다. 성탄절 식사에서는 북유럽식 고기를 대접해 주었고, 우리는 한국에서 사 온 떡볶이를 만들어 나누어 먹었다. 유럽에서 보내는 성탄절의 느낌, 아이슬란드의 시작이 너무 좋았다. 내친김에 주변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보려고 했으나, 미사 전에 현지 PCR 테스트를 받았어야 했던 것을 모르고 미사를 보지는 못했다. 이후 오로라를 찾으러 떠났지만, 오로라도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펼쳐질 여행에 기대감이 많이 들었다.


ㆍ 아이슬란드에 오게 된 것도 동규가 본 ‘꽃보다 청춘’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기에, 그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장소들을 들러보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살며 처음 보는 간헐천과 툰드라의 자태.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노상 온천까지. 단순하지만 특이하고 매력 있는 풍경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운전 길이 험하고, 생각보다 오로라는 참 보기 힘들었다. 오로라가 발생하는 여부도 중요했지만, 내가 위치한 곳에 구름이 있는지 없는지도 정말 중요했다. 여행이 2주 정도가 지난 이후에야 처음으로 오로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로라는 내 기대만큼 감동적이진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참 신기하긴 했다. 하늘에 일렁이는 형광빛을 보며 참으로 신비로운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 중간에는 불어대는 강풍에 차 문이 부수어져 버린 일도 있었고, 잔뜩 쌓인 눈에 차바퀴가 빠져버린 적도 있으며, 도로가 얼거나 내리는 싸라기눈에 시야가 막혀 시속 20km의 속도로 한참을 운전해서 나아가야 했던 적도 있다. 애초에는 캠핑카를 빌려 다 번의 캠핑을 하려 계획했지만, 날씨도 날씨이거니와 겨울이라 현재 운영 중인 캠프장이 몇 없어서 캠핑카를 빌리고도 거의 숙소를 예약해서 여행했다.


ㆍ 원래의 계획은 아이슬란드 여행을 마치고 동규와 같이 스페인으로 넘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일도 다가오고 있고, 이 겨울에 먼 순례길을 걸었다가는 너무 고생길이 험할 것 같아 나는 중간에 터키로 목적지를 바꾸고자 했다. 동규는 꽤 실망스러운 눈치였지만, 결국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2022학년도 1학기의 교환학생 결과가 발표되어 일본 정부에서만 준비가 된다면 마지막 학기는 일본에서 수학해도 된다는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참 좋았지만, 정말 고생길이었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여행지로 남을 듯하다.


ㆍ 이후에는 터키로 향했다. 언어 교환 프로그램으로 만난 터키인들이 터키 여행을 선뜻 도와준다고 했고, 실제로 이스탄불, 데니즐리, 이즈미르 등은 현지인이 동행해 주어 이곳저곳을 같이 다니기도 했다. 터키의 물가와 풍경도 물론 좋았지만, 사람들이 너무 좋았기에 참 좋은 여행으로 남게 되었다. 일단 피부로 느껴지는 친근감이 참 좋았다. 난생처음 본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관광을 도와주거나 맛집을 소개해 주거나 하는 것을 기꺼이 해 주었다. 참 많은 도움을 받아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가득한 여행길을 뒤로하고 겨우내 한국으로 들어왔다.


ㆍ 터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목구멍이 슬슬 간지럽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안 좋았고, 피로감이 엄청났다. 코로나 검사는 전날 받았기에 음성 확인서를 가지고 있었지만 약간 걱정이 되었다.


겨우내 한국으로 입국하여 방역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어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오미크론과 증상이 아예 같아졌다. 기침이 났고, 밤에 잠을 잘 때면 땀을 흘렸으며 가래가 계속해서 나왔다. 격리 기간 7일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만 꼬박 잤고, 격리 기간 7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몸 상태가 도저히 낫지를 않아서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도 참 힘들었다. 몸이 어느 정도 나았다는 생각이 들 때 보건소로 가서 PCR 검사를 받았는데 그제야 양성 반응이 나와 그날부터 또 7일간 격리를 해야만 했다. 격리하는 사이 마지막 학기 일본행은 거의 확실해졌다. 비자를 발급해 주겠다고 연락이 왔고, 가능하면 4월 학기가 시작하기 전 일본으로 입국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3월 마지막 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던 나는 급히 수강 취소를 하고 급작스럽게 일본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ㆍ 모든 미련을 뒤로한 채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보고자 한다. 한 달 뒤 나는 일본 ‘후쿠이 시’에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나의 하루하루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유학) D+4 2022. 4. 5. (화)


<드디어, 일본>


ㆍ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러갔다. 4월 2일로 출국 날짜는 정해졌고, 다른 이들은 개강에 취업에 출근에 모두 바빠 보이는데 나는 곧 또 출국할 예정이라 남들만큼 그리 바쁘지는 않았다. 격리가 끝나고선 꽤 오랫동안 못 보게 될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여행사를 통해 비자 취득을 했고, 여태 만나지 못한 몇 명의 친구들, 선배들을 보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일본으로 떠난다고 하니 다들 부럽다는 말을 건네주더라.


ㆍ 약간 독특한 일이 있었다면, 새마을 봉사단 창립총회에서 나는 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무슨 직급인지 무슨 역할을 하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 머리 위에 감투 하나가 쓰였다.


또한, 수연 누나의 출장을 따라 3일간 강원도도 다녀왔다. 목적지는 정선이었는데, 태백의 명물인 바람의 언덕과 정선 강원랜드를 방문했다. 바람의 언덕은 너무나도 추웠고, 말 그대로 바람이 엄청나게 많이 불었다. 강원랜드는 걱정과는 달리 입장료만 내면 쉽게 입장할 수 있었다. 규칙을 알고 있는 게임도 몇 없어서 한참이나 사람들 주변에 서서 다른 분들이 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자리가 비어있는 딜러에게 가서 게임 규칙을 묻곤 했다. 그저 체험하러 온 우리기에 딱 10,000원씩만 바꾸어 바카라, 룰렛, 슬롯머신 게임을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본전이었고, 수연 누나는 딱 한 번 돌린 슬롯머신에서 대박이 터져 약 13,000원의 이득을 남기고 강원랜드를 떠났다. 쓴 돈은 고작 10,000원이었어도 색다른 환경에 재미는 있었지만, 왠지 또 방문하기는 싫은 묘한 곳이었다. 도박장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생각보다는 사람들 얼굴에 생기가 있었고, 100,000원 베팅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을 보며 놀라웠고 참 인상적이었다.


ㆍ 그리고 겨우내 일본 학생비자를 취득하고 PCR 검사를 받은 뒤 일본으로 출국했다. PCR 검사를 받는 날 공교롭게도 목감기 증상이 보여 혹시 코로나바이러스에 재감염된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마음을 졸였지만, 결국은 음성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ㆍ 출국 전날 한국사학진흥재단의 국지은, 정동기 선생님을 만나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에서 후쿠이 대학에서 실시하는 일본어 수준 시험을 응시한 뒤 인천의 승열이 집에 올라가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여유롭게 일어나 준비를 하고, 승열이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공항에서 14시 30분 즈음 일본으로 출국하게 되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오미크론 확산세 때문에 일본은 국경을 꽉 닫아놓은 상태였는데, 유학생과 사업자만 문호를 개방하였고 그중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만 맞은 사람들은 일본 정부가 지정해 주는 호텔에서 3일간 격리해야 했다. 일본 정부에서 비용을 전액 제공하는 무료 호텔이라기에 자그마한 일반 비즈니스호텔을 예상했지만, 1박에 무려 14,000엔(약 14만 원)이 넘는 공항 호텔 트윈룸을 배정받게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밥도 삼시 세끼 모두 도시락으로 제공해 주었고 맛이 정말 뛰어났다. 방 앞에는 관리인이 항상 지키고 있어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고, 하루에 세 번씩 방문을 두들겨주면 문만 빼꼼 열어 식사와 음료를 받으면 되었다. 이외에는 완전히 자유였다. 방 안에서 일본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반신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호텔에서 격리하는 3일 동안 잘 먹고 푹 쉬기도 쉬었지만, 이 격리 기간 동안 다음 1학기 동안 배울 시간표를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을 썼다. 사실상 푹 잔 이후에 수강 신청을 마무리하니 격리가 끝나있었다. 창밖으로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을 바라보며 작은방에 머물러야 하는 생활이 조금은 힘들었지만, 격리 생활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ㆍ 지금은 격리가 끝나고 후쿠이로 향하는 길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어떤 하루하루가 펼쳐질지 정말 기대가 된다.




유학) D+8 2022. 4. 9. (토)


<처음 만난 후쿠이>


ㆍ 격리가 끝나고 대략 여섯 시간을 써서 간사이 공항에서 후쿠이역으로 오게 되었다. 저녁에 도착하면 기숙사 입소가 안 된다고 하기에 나와 같이 후쿠이에 도착한 혜진이는 후쿠이역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에 있는 Toyoko inn에 수속하였고, 주변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쉬었다.


ㆍ 누구에게 묻든 간에 후쿠이현은 정말 시골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일본의 시마네현, 돗토리현과 함께 3대 시골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쿠이역 근처에는 백화점도 있었고 커다란 건물도 꽤 많았다. 그런데 음산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지역과 도시 사이 어중간한 곳에 서 있는 미묘한 곳 같았다.


ㆍ 호텔에서 나온 다음 날 내 튜터와 혜진이의 튜터가 우리를 데리러 호텔로 와 주었다. 후쿠이는 예상대로 지하철은 없었다. 대신 시내에는 전차와 트램, 버스가 다닌다고 했다. 혹시 몰라 오사카역에서 IC 카드 충전을 했었지만, 이곳에서 사용은 안 된다고 했다.


전철을 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 학교였다. 후쿠이 대학은 국립대학이고, 지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진학한다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국제과에 방문하여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서류 작성을 하고, 국민 건강보험 가입 및 주민등록, 연금 신청을 하러 동사무소로 향했다. 예사 그러하듯 행정이 정말 늦었다. 특유의 일본식 문화처럼 하나하나 꼼꼼히 서류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고, 각 항목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들으며 주민등록 및 보험 가입을 마쳤다. 다음날 역시 튜터의 도움으로 통장과 현금카드를 받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온종일 걸렸다. 귀국할 때 이 모든 해약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데 벌써 막막하다. 그래도 나름은 익숙한 문화라 그렇게 낯설지도 않으면서 또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왔기에 아주 어려운 부분은 없었지만 역시나 번거로운 일은 많았다.


ㆍ 마침 후쿠이에는 벚꽃이 펴 있는 시기라, 도착하자마자 튜터가 벚꽃을 보러 갈 것을 제안해 주었다. 아스와 강(足羽川, Asuwa-gawa)이라고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배경으로 쓰이기도 한 곳을 방문하였다. 벚꽃은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그제야 내가 일본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벚꽃길 아래에서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정말 황홀했다.


이어 주변의 포장마차 가게도 살펴보았는데, 문어 빵, 소면부터 시작해서 각종 먹거리가 많았다. 간혹 가다 한국식 핫도그와 크레이프를 파는 곳도 있었다. 개중에 카스텔라 가게도 있었는데, 내 튜터가 한국에도 카스텔라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질문을 듣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외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나 보다. 참고로 내 튜터인 Karin은 일본과 러시아의 혼혈이라고 했다. 일본어는 구사할 수 있지만, 러시아어는 하나도 할 줄 모른단다. 생김새는 완전 서양인이지만, 성격과 말투는 완전한 일본인이다. 앞으로 얼마나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ㆍ 기숙사로 입소했다. 내가 살게 될 곳은 ‘마키시마 하우스(牧島ハウス)’,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신축 건물이다. 후쿠이 대학에는 마키시마 하우스, 유학생 회관, 교류 학생 기숙사 총 3개의 기숙사가 있다. 마키시마 하우스는 학교 교정 내에 있으며, 유학생들만 사용할 수 있다. 유학생 회관과 교류 학생 기숙사는 학교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유학생 회관은 유학생만, 교류 학생 기숙사는 일본인과 유학생이 섞여서 산다. 유학생 회관과 교류 학생 기숙사는 한 달에 방값이 1만 엔도 안 할 만큼 무척이나 저렴하지만, 샤워할 때마다 100엔을 내야 한다고 했다. 마키시마 하우스는 한 달 방세는 14,000엔이지만, 아직은 신축이라 깨끗하고 물세는 한 달마다 두 달에 한 번씩 3,300엔 정도를 내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통행금지 시간이나 관리인은 따로 없고, 일주일에 한 번 기숙사를 관리하는 직원이 와서 강당과 복도, 공용 화장실을 청소하는 정도뿐 다른 생활에 대해서는 간섭이 없었다.


1인 1실에 딱 한국의 자그마한 원룸 크기의 방이었다. 기본적으로 침대와 책상, 옷걸이와 탁자 스탠드가 있었고 냉장고와 조리를 할 수 있는 인덕션이 구비되어 있었다. 다 좋았는데 무언가를 수납할 공간이 부족했다. 침대 및 작은 캐비닛 3개가 수납공간 전부였다. 그리고 분명히 청소되어 있다고 했는데 방 상태는 그리 깨끗하지는 않아, 입주하자마자 거의 청소를 다시 하였다.


참 좋았던 것은 공용 창고에 이전에 기숙사에 살았던 사생들이 두고 간 물건들이 엄청 많았다. 누구든지 가져갈 수 있다고 적혀 있는 그 공간에는 헤어드라이어, 고데기, 밥솥, 각종 조리도구 등은 수없이 많았고 전자레인지, 앉은뱅이책상도 있었으며, 개중에는 1엔, 5엔, 10엔이 가득 찬 동전 다발이 들어 있는 통도 발견했다. 대충 세어보니 1,500엔 정도가 들어 있었다. 이렇게 생활 기반 물품들을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공용 창고에서 물건을 막 찾고 있는데 갑자기 학생 두 명이 벌컥 들어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한 친구는 대만 친구인 Yucheng, 한 친구는 루마니아에서 온 Isabella. 각종 물건을 찾는 와중에 인사를 건네 조금 놀랐지만 짧게나마 인사를 하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같은 층에 사는 대만 친구 Yucheng과 맥주 한잔했다. 지금까지는 Yucheng과 내 튜터와 조금 친해졌다. 아직은 무료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ㆍ 수강 신청은 거의 마무리되었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오리엔테이션을 필두로 본격적인 학기가 시작된다. 약간 걱정인 것은 월화수목 각각 2과목씩 수강하게 되었는데, 아침 8시 45분부터 시작되는 1교시 수업이 일주일에 무려 3개나 있고, 나머지 하나마저도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한다. 아침 수업이 너무나도 싫어서 야간 수업을 골라 듣거나, Internship으로 학점을 때우는 게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이었지만 교환학생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수업만 무사히 통과한다면 한국에서는 전공 5학점을 인정받아 이제는 정말 졸업만 남게 된다.


ㆍ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나 보다. 지난 몇 년간 꽤 많은 수의 학생을 일본 기업 혹은 지역 기업에 취직시킨 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나도 일본 항공에 취직할 수 있는지 한번 물어보아야겠다. 더불어 이곳에서는 운동 겸 아르바이트로 자전거를 이용해 배달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후쿠이 현 내 시내에서 이러한 서비스가 없는 듯 보인다.


ㆍ 일본은 참 특이한 점 중 하나가 JASSO 장학금이라고, 일본 학생지원 기금이라는 단체에서 일본을 방문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무려 1달에 8만 엔. 지원받는 학생의 숫자가 많지도 않고, JASSO를 받을 수 있는 학교 자체가 많지 않다 보니 장학금 받기가 쉬운 편은 아닌데, 다행히도 후쿠이 대학에서는 JASSO 지원 가능 대학으로 선정되어 나도 신청 대상에 선정되었다. 장학금을 받게 되면 그야말로 생활비 걱정은 정말 덜게 된다. 어떻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꼭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ㆍ 후쿠이는 교통이 참 불편하다. 그래서 웬만한 학생들이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신입생들도 자가용을 가지고 등하교를 한다. 사실 자동차 없이 주변 관광지는 절대 돌아다닐 수 없다. 앞으로 일본인 친구를 사귀면 친구의 자가용을 탈 일도 많은 듯하다.




유학) D+11 2022. 4.12. (화)


<1학기 개강>


ㆍ 한국 대학의 1학기는 대개 3월에 시작해서 7월 즈음 학기가 끝이 나는데, 일본의 대학은 4월이 되어서야 슬슬 오리엔테이션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 한국의 대학은 벌써 신학기의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여긴 아직도 정식 개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이번 봄이 길게만 느껴진다.


ㆍ 나는 이번 학기에 8개의 수업을 신청했다. 일본은 한 수업에 90분 수업이 기본이고, 기본이 3학점인 한국과는 달리 수업 하나에 2학점을 부여한다. 한국에서 애매하게 전공 3학점을 남기고 들어온 탓도 있고, 기본적으로 이곳에서는 한 수업당 2학점을 부여하기 때문에 후쿠이 대학에서 전공 관련 수업을 최소 2개 이상을 수강해야 하였고, 대학 측에서도 최소 14학점 이상 취득을 권장하였기에, 나는 4학년의 마지막 학기임에도 불구하고 16학점을 수강하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교양 수업 3개, 전공 수업 5개를 수강한다. 교양 수업 중 하나는 스포츠, 하나는 영어 회화, 다른 하나는 학생들과 토의 및 교류를 하는 수업이다. 영남대학교에서는 3개의 수업을 전공 학점으로 인정해 준다고 하였고, 교환학생 생활 중 성적을 모두 받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그제야 졸업을 하게 된다. 멀기도 멀었던 졸업이 이제야 정말 성큼 다가왔다. 이번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면 내 20대가 거의 마무리됨과 동시에 참으로 별일이 많았던 대학 생활을 드디어 끝낼 예정이다. 마지막 대학 생활을 알차게 보내야겠다.


ㆍ 첫 수업은 스포츠에 관련된 수업이었다. 분명히 오리엔테이션이 있다고 했는데, 간단히 교수와 학생 자기소개를 마치고 첫 수업부터 바로 운동장에서 실습하였다. 그래도 나에게는 이 수업이 일본에서의 첫 수업이라 잔뜩 멋도 내고, 머리도 올리고, 구두도 신고 갔는데 그런 것 없이 바로 운동장에서 스포츠 실습을 하였다. 수업 도중에 내가 한국 출신인 것을 교수님이 알고선 수업 중간에 내게 다가와 ‘갯마을 차차차’라는 드라마를 보았다며 말을 걸어오셨다. 관심을 가져주셔 참 감사했지만, 수업 시간 중에 갑자기 나에게만 말을 걸어 당황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ㆍ 여러 행정 작업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보험금 지급에 가스, 수도, 공익비용 등 각종 세금의 자동이체 신청을 직접 찾아가 하나하나 등록하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스리랑카에서는 행정이 행정체계의 부재로 참 느렸었지만, 여기는 체계가 너무 촘촘하면서도 보수적이라 느리다. 다른 느낌의 불쾌감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외국어인 일본어와 영어 수업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하루에 쌓이는 피로감이 더 큰 듯하다.


ㆍ 주말에는 어디라도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Rina라는 친구가 간단히 후쿠이를 구경시켜 준다고 했다. 한국어도 할 수 있고, 한국에 관심이 많은 학생처럼 보였다. 그 친구와 같이 도진보(東尋坊, Tōjinbō)를 구경하고, 아스와 강에서 벚꽃 구경을 같이 한 뒤 회전 초밥 가게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토진보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주상절리 명소로, 학교에서 거리가 꽤 멀어 구경하러 가기가 힘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덕분에 쉽게 여행을 하고 왔다.




유학) D+13 2022. 4.14. (목)


ㆍ 학교의 대략적인 설명회는 끝났다. 국제과에서 캠퍼스 투어를 해 주었고, 이에 더해 JASSO 합격을 알려주셨다. 이달부터 나는 매달 약 8만 엔의 장학금을 받게 된다. 정말 감사했다.


ㆍ 학교 취업센터에 방문했다. 혹시나 해 후쿠이 대학에서 항공 회사로의 취직 여부를 물어봤는데, 아쉽게도 이곳에서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께서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주변 안경 공장에 통역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선해 주셨다. 일단은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해보고자 한다.


ㆍ 일본은 참 신기하다. 약국에서 화장품, 식품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우체국에서 음료수를 판매하기도 한다. 우체국에서 파는 음료수라 신기해서 하나 사 먹어보았는데 정말 맛도 좋았다.


그리고 일본의 마감 에누리는 정말 파격적이다. 초밥의 본 고장답게 동네 마트에만 가도 생선의 질이 정말 좋은데, 마감 에누리를 받으면 맛있는 초밥 한 접시를 무려 2,000원 언저리에 사 먹을 수 있다. 언젠가 질리겠지만, 많이 먹어 두어야지. 그리고 후쿠이는 ‘소스 돈가스 덮밥’이라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소스를 버무린 돈가스를 덮밥처럼 먹는 음식인데, 특히 일본 음식은 짠맛이 강한 것들이 많아 조금은 긴장하고 먹어보았는데, 생각보다는 간이 심심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ㆍ 일본의 동아리 문화는 어떨까 참 궁금해서, 한 동아리의 설명회를 다녀오게 되었다. 내가 점찍어 둔 동아리는 봉사 동아리, 사진부, 다도부, 궁도부 등이 있었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가두 모집은 보지 못하고 개별 동아리 설명회를 다녀오기로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낡은 학생회관 건물에서 간단히 설명회를 진행했다. 봉사 동아리는 선배가 4명 정도, 신입생이 4명 정도 있었는데, 발표하는 선배의 후쿠이 사투리가 너무 심해 사실 거의 못 알아들었다. 그리고선 신입생이 왔을 때는 선배가 사는 것이 문화라며 학교 주변 식당인 Gasto에 데려가더니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먹으라고 하였다. 딴에는 동아리 선배라면서 네다섯 살 어린 동생들이 한턱내겠다고 하는데 참 고맙기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결국, 동아리는 다도부에 들어갔다. 처음 설명회를 갔는데, 중년의 다도 선생님 두 분이 정숙하게 학생들에게 도(道)를 가르치고 있었고 그 모습이 정말 멋졌다. 그러면서 말차 한 잔과 선생님께서 직접 만드신 다과를 먹었는데 너무나도 맛있어 단번에 입부를 신청하게 되었다. 나도 차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조금 더 배워보고 싶다.


유학) D+18 2022. 4.19. (화)


ㆍ 일본 생활에 나름의 적응을 잘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교정의 풍경은 한국의 대학교와 크게 다른 것은 없는 듯하고, 여태까지 했던 경험들과 크게 이질감이 들지는 않는다.


ㆍ 대학생의 신분을 무려 8년이나 유지하면서 사실 대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해보았다. 학생 홍보대사부터 시작해서 연극 동아리, 다도 동아리, 종교 동아리를 거쳤고 학교 공연장 staff, Internship, 대외활동, 사업단, 공모전, 국제 교류 프로그램인 해외 자율 배낭여행(WTW), 국내 자율 배낭여행(WTK)과 같이 정말 많은 대외활동을 경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교환학생을 오게 되었다. 교환학생을 왜 대학 생활의 꽃이라고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비록 나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로 오게 되었지만, 나름 이곳만의 정취와 운치가 있다. 이렇게 작은 시골마을에도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학생들이 많고, 자연스레 나에게 관심을 두는 친구들도 많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가장 좋은 점은 내가 국제 학생들과 한 단체에 자연스레 묶인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국제 학생들과 교류하기 위해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아야 국제 학생들과 대화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나도 국제 학생이니 다른 국제 학생들과의 접근이 아주 쉽다. 아직은 조금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영미권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ㆍ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과 더듬더듬 대화를 나눌 때면 나 역시도 엄청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영미권의 영화나 드라마에 익숙한 나는 모든 영미권 사람들이 모든 행동에 무심할 줄 알았다. 열린 마음으로 관계 맺음이 쉽고 가벼이 여기며, 질투 따위는 없는 사람들이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들 생각 역시 대한민국 사람과 한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도 질투하고, 집착하고, 구속하는 등 우리의 문화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첫 번째로 느낄 수 있었다.


ㆍ 주변에 유흥거리가 많이 없다 보니 친해지려고 노래방에 자주 가곤 한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저녁을 사러 주변 마트에 들렀는데, 혜진이의 튜터 Juno라는 친구가 유학생 몇 명을 모아 노래방에 간다며 나에게 초대해 줘서 식자재를 사다 말고 갑자기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가서 인도네시아 친구인 Abdi, 중국 친구 An, 프랑스 친구 Julia, 일본 친구 Koshiro를 만나게 되었다. 별다른 것 없이 몇 시간가량 일본 노래와 한국 노래, 팝송을 섞어 불렀다. 이렇게 외국 친구를 처음 사귀었다.


ㆍ 또한, 주말이 되면 학생들이 유학생 회관 강당에 모여 음식과 술을 잔뜩 사다 놓고선 가끔 잔치를 여나 보다. 한번 초대받아 갔는데 각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간단한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거기 모인 모든 이가 한 명씩 돌아가며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며 신고식을 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첫 번째 학생이었는데, 마땅히 기억나는 게 없어 정말 예전에 연습했었던 슈퍼주니어 노래에 맞춰 간단히 춤을 췄다. 그곳에서 루마니아, 말레이시아, 콩고, 나미비아,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일본어만 가능한 학생, 영어만 가능한 학생이 극명히 갈려 있었는데, 모두 언어가 통하는 무리에서만 소통하였기에 전체적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칸 계 한 무리, 아시아계 한 무리로 나뉘어 대부분 시간을 보낸 것은 참 아쉬웠다.


ㆍ 처음 마키시마 하우스에 입주했을 때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어느 정도 학생들이 거의 다 도착했을 때 한 번 모두가 모여 식사를 하고 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번에 마키시마 하우스로 새로 입주한 한국인 유정이와 태순이를 만났다. 학교 주변 레스토랑인 Gasto에서 식사를 마치고, 후쿠이 역 주변에 있는 노래방에서 3시간 이용을 했는데, 일본 노래방은 인당 요금을 받아서 주말 저녁 약 10명이 3시간 이용하는데 거의 20만 원 가까이 냈다. 가격은 비쌌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았다. 그리고 엄청나게 길 것 같았던 3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역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루마니아 친구인 Isabella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루마니아의 연애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를 조금 나눌 수 있었다. Isa는 학부생이 아니라 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이었는데 영어를 정말 능숙하게 잘했고, 나와 수업이 하나 겹쳐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사이가 될 것 같다.




유학) D+24 2022. 4.25. (월)


ㆍ 일본 생활을 시작한 지 거의 3주가 지나간다. 전혀 모르는 곳에 도착하여 아무것도 없는 한가한 생활을 보낼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고 바쁘다. 크고 작은 일들이 정말 끊임없이 생긴다. 잘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사실 감도 잘 안 온다.


ㆍ 일본인 친구들과도 조금 더 안면을 트게 되었다. 혜진이의 튜터인 Juno가 자기 친구인 Nanami와 Yukino를 소개해 주었다. 조금 친해져서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고, 하루는 같이 고깃집에서 고기를 잔뜩 먹고선 노래방에 가 한참을 놀기도 했다. 다들 정말 순하고 착하다. 작은 장난을 쳐도 반응을 재미있게 잘해준다. 앞으로 더 친해지고 싶다.


ㆍ 그리고 루마니아에서 온 학생 Isabella와 정말 많이 친해졌다. 사실 영어로 대화를 시작해서 꽤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이 친구가 처음이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우리는 친해지기가 정말 힘들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단숨에 정말 가까워졌다. 그런데 그녀는 왠지 나를 이성으로 보는 것 같다. 어느 날 같이 술을 한잔하고 걸어오는 날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싶다고 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 나는 솔직히 그녀에 대해서 잘 모르며 사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그런 그녀는 내가 말하고 전달하는 것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긴 한 걸까. 무엇을 보고 그녀는 내게 마음을 전했나 싶다. 그 이후로 조금 멀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조금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대화하며 풀어나가고자 한다.


ㆍ 어느 날 Isa와 Jun과 함께 카페를 간 적이 있다. Jun은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떴고, Isa와 함께 후쿠이 산책을 한 뒤 같이 한국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다. 서로의 국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선 자리를 뜨려고 하는 찰나, 옆자리의 일본인 손님들이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말을 걸어 주셨다. 일본인 손님은 두 분이었고, 남자분은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시는 듯했고, 여자분은 Yumi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재즈 음악을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들이 합석을 제의해서 상당 시간 대화를 나누고선 2차 술자리를 제안해 주셨다. 2차는 본인들이 아는 재즈 바에 갔는데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술도 같이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노는 것이 인상에 남았나 보다. 여성분은 내게 현지에서 한국어 과외를 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Yumi는 나를 따로 불러내었고, 맛있는 밥을 사 주시면서 본인의 계획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인들이 한국식 식당을 개업한다면 점원처럼 일하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사무실에서 한국어 과외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전체적으로 장기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일단은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갑자기 찾아오는 기회에 지금 이런 기회들이 내게 적합한 기회인가 아닌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일단은 아직 일본에 적응할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다.


ㆍ 후쿠이 대학교 국제과에는 SC(Student Co-ordinator)라는 단체가 있다. 우리 학교로 치면 ‘국제 홍보대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단체에서 이번 부활절을 맞아 부활절 행사를 하나 기획했다. ‘Easter egg hunt’라는 제목으로 학교 구석구석에서 단서를 찾아 어딘가 숨겨진 부활절 달걀을 찾아오면 되는 행사였다. 참가 인원수는 거의 약 30명으로 일본 학생과 유학생이 섞여 있었다. 30명의 학생은 크게 다섯 분단으로 나누어졌고 특정한 한 장소에 도착해서 주어진 문제를 풀면 다음 단서가 있는 장소를 알려 줬는데, 학교의 도서관, 공대 강의실, 국제 지역 학부 강의실 등 평소에 갈 일 없는 장소들을 이리저리 돌아볼 수 있었기에 좋았다. 문제는 일본어로 된 수수께끼라 풀기는 내가 도움을 주기는 많이 힘들었다. 학교 교정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우리 분단과 함께 학교 곳곳을 돌아다녔고, 결국 부활절 달걀은 국제관 2층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의외로 신선한 방식의 행사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몇몇 학생들이 모여 회전 초밥을 먹으러 갔고, 이후 저녁에는 역시 국제 학생들끼리 술자리가 있었는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단 술자리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미국인 친구 Bryan이 내게 와서 Isa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귀띔을 해 주었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그녀와 데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ㆍ 그리고 유학생 몇 명과 함께 후쿠이에서 유명한 온천인 ‘아와라 온천(あわら温泉, Awara Onsen)’에 다녀왔다. 온천이라기에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미리 알아본 온천에 들어갔는데 사실 이곳은 온천이라기보다는 목욕탕 혹은 스파에 가까웠다. 일반 목욕탕처럼 실내에는 온탕이 있고, 실외에는 노천탕이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천욕을 하며 같이 온 미국 친구 Bryan, 러시아 친구 Renat, 부탄 친구 Damchoe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Damchoe는 일본어를 거의 못 하는데, 자기를 초대해 주어 정말 고맙다고 했다. 부탄에는 이런 온천탕이 굉장히 많은데, 일본에서는 전혀 온천욕을 못 하다가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했다. 온천이 끝난 후에 온천 주변에 있는 골목에서 프랑스 음식을 잔뜩 시켜 다 같이 나눠 먹었다. 돌아오는 길 역 주변에 무료로 간단히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다시 모두 족욕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ㆍ 다음날은 마키시마 하우스의 모든 학생이 모여 ‘후쿠이 현립 공룡 박물관’을 다녀왔다. 후쿠이는 공룡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공룡이 처음 출토된 것이 여기 후쿠이 현이라고 했다. 그만큼 공룡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오죽하면 후쿠이 기차역에 내리면 정말 커다란 공룡 동상이 몇 개나 세워져 있을 정도이다.


ㆍ 공룡 박물관에 가려면 예약해야 했고, 마키시마 기숙사생 모두의 동의를 받아 다 같이 공룡 박물관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식사를 하고 박물관을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식사하려면 무려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번호표를 뽑은 뒤 먼저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박물관은 후쿠이에서 출토된 공룡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공룡에 관한 서술을 한 자료가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공룡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기 때문에 감상보다는 그저 보고 지나쳤고, 같이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겨우내 식당에 들어가서는 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공룡을 배경으로 한 식당답게 오므라이스를 시키면 공룡 모양의 알도 같이 나온다던가, 음료를 시키면 공룡 모양의 초콜릿을 얹어주는 등 공룡에 관련된 참신한 차림이 많았다.


식사하고 바로 기숙사로 돌아가긴 아쉬워 돌아오는 길에 모두 함께 오락실과 서점을 들렀는데, 다들 너무 피곤한 탓인지 얼마 즐기지도 못하고 바로 기숙사로 들어와 쉬었다. 하루를 이렇게 끝내기는 아쉬워 밤에 다 같이 휴게실에 모여 타코야끼 기계로 문어 빵을 잔뜩 만들어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학) D+30 2022. 5. 1. (일)


ㆍ 일본에 넘어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일본 생활, 사실 엄청나게 바쁘다. 매일 수업이 있는 것도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동아리 활동도 시작할 예정이라 일단은 월~금요일은 항상 일정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서양인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점이다.


ㆍ 며칠 전 같이 교환학생을 왔었던 한국인 후배 혜진이의 생일이 있었다. 혜진이 생일 전날에는 Juno, Nanami, Yukino, 유정이와 함께 저녁으로 회전 초밥을 먹은 뒤 볼링장에 가서 볼링을 치고 스티커 사진을 찍고 놀았다. 운 좋게 인형 뽑기 기계에서 동전 지갑을 하나 뽑아 Juno에게 건네었는데 그녀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다.


혜진이 생일의 낮에는 LPA라는 대형 상점에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와 Juno, Nanami, Yukino와 함께 혜진이의 생일잔치를 즐겼고, 밤에는 마키시마 하우스의 기숙사생들과 함께 혜진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생일잔치는 무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에서야 끝이 났다. 혜진이의 생일잔치는 끝이 났지만, 갑자기 Isa가 내게 할 말이 남았다며 잔치가 끝나고서 나를 불렀다. 둘만 남았을 때 Isa는 내가 너무 좋아졌다며 고백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단다. 9월이 되면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현재를 즐겨보자고 한다.


ㆍ 사실 일본에 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영어와 친해지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외국인을 많이 만난다면 일본어는 물론 영어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9월에 돌아가는 것을 미리 인지하고 만난다면 헤어지는 것에 크게 부담이 없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지금 여기만 생각한다면 가볍게 만나보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Isa와는 항상 영어로 대화했는데, 영어도 배울 겸 현재를 즐겨보자며 수락하고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Isa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역시도 서양에 대한 환상이 가득했다는 것을 많이 알게 된 듯하다. 특히 무의식 중에 가진 편견도 많았다. 서양인은 모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보수적인 사회가 많다고 Isa는 내게 일러주었다. 루마니아 사람은 루마니아 사람을 만나야 하고, 유럽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처녀성을 중시한다고 했다. 대화할수록 내가 정말 우물 안에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 관계는 급작스럽게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야기하면서, 몸짓을 서로 나누면서 확실히 우리는 통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ㆍ 우리는 한 짝이 된 기념으로 주변 도시인 가나자와 시를 다녀왔다. 카나자와는 후쿠이 역에서 호쿠리쿠 JR선을 타면 쉽게 닿을 수 있는 도시이다. 점심 즈음 되어 기차를 타고 가나자와로 갔다. 가는 기차 안에서 서양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우리 건너 자리에 앉았는데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 조금 대화를 나누었다. 카나자와 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들이었는데 가나자와의 좋은 곳을 여러 곳 알려주셨다.


카나자와에서는 거의 걸어서 돌아다녔다. ‘오미초 시장(近江町市場, Omicho Ichiba)’이라는 지역 시장을 돌아다니며 간식을 사 먹고, ‘겐로쿠 공원(兼六園, Kenrokuen)’에 들려 공원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같이 산책했다. 카나자와는 금박으로 유명한데, 금박을 붙여 먹는 아이스크림도 나름 유명해 하나 사 먹었다. 가격은 무려 만 원 정도였다. 딱히 금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아이스크림 나름의 맛은 있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치고 너무너무 비싼 가격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Isa는 이곳에 온 기념으로 꼭 먹어보고 싶어 했고, 재밌는 추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히가시차야가이(東茶屋街, Higashi Chayagai)’라고 차(茶)로 유명한 골목도 잠시 들러보았다. 오래된 노포가 가득한 그 거리는 정말 차분하고 고즈넉해서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비록 저녁 즈음 도착해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시진 못했지만 조용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는데도 충분했다. 그리고 가나자와에 오기 전 말레이시아 친구 Jun이 가나자와에 가면 Black curry라며 검은 카레를 꼭 먹어보라고 이야기해 주었는데, 근처 카레 가게를 찾다가 너무나도 배가 고파져서 그저 눈에 보이는 아무 카레 가게에서 별다른 특색 없는 카레를 먹었다. 밤늦어서 다시 기숙사에 도착했고, 기숙사 휴게실에서 앞으로 다가올 Golden week의 여행 계획을 짜고 있는 혜진, 유정, Nicole, yucheng과 이야기를 조금 나누곤 방에 들어와 푹 쉬었다.




유학) D+31 2022. 5. 2. (월)


ㆍ 내 튜터인 Karin이 일본인 친구 Shuka를 소개해 주었다. Shuka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한국어도 아주 조금이지만 구사할 수 있었다. Shuka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인 수업 중에 외국인에게 일본어 교육에 관한 취재를 하는 과제가 있다며 내게 도움을 내밀었다. 나는 수락함과 동시에 같은 과제를 하는 다른 친구들도 있는지 물어보았고, Shuka의 친구들에게 대만 친구 Yucheng과 프랑스 친구 Julia를 소개해 주었다. 또, Shuka는 우리에게 본인의 일본인 친구 Kazune와 Yamazaki를 소개해 주었다. 취재에 앞서 간단히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만간 그들의 과제를 도와줄 예정이다.


Karin과 친해지기는 정말 힘들다. 본인의 이야기는 거의 안 한다. 내게 질문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항상 Miyu라는 친구랑만 붙어 다닌다. 내 튜터이지만, 제일 친해지기 어려운 일본인이기도 하다.




유학) D+38 2022. 5. 8. (일)


<황금연휴>


ㆍ 일본의 최대 연휴인 ‘Golden Week’가 찾아왔다. 징검다리 연휴를 포함하면 무려 10일가량의 휴일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번 여행 기간을 Isa와 같이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PBL(Project base learning) 수업을 핑계로 후쿠이 현의 한 도시인 ‘쓰루가 시’부터 시작해서 교토, 나라, 오사카를 돌아보는 일정을 준비했다. 이번 학기 PBL 수업은 후쿠이 대학과 루마니아의 한 작가를 연계하는 활동을 했다. 후쿠이 현의 각종 자료를 취합하여 루마니아에 있는 한 소설 작가에게 보내주어 그 작가가 일본을 배경으로 소설을 집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주목표였다. PBL 수업을 같이 수강하는 Momoka와 같이 후쿠이 역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쓰루가 시의 박물관을 몇 개 둘러보며 기록을 남겼다. 쓰루가 탐방을 마치고 나와 Isa는 교토시로 넘어갔다. 항상 그러했듯 우리는 여행 중 별다른 일정이라는 것은 없었고, 숙소 예약도 교토로 넘어가는 길에 했는데, 황금연휴라 그런지 숙소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호텔과 Air bnb 등 여러 곳에 문의하여 보았지만, 모든 숙소에서 객실을 확인해 본다는 말만 하였고 한 곳도 예약 확정을 지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교토역에 도착했는데 역무원이 JR 티켓이 한 장 더 필요하다며 개찰구에서 막혔고, 표를 한 장 더 사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Isa는 이 상황을 당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분명히 표를 샀는데 왜 한 번 더 사야 하냐며. 상황을 겨우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는 중에 숙소 예약이 되었고 그렇게 교토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이후 하루는 교토에서 숙소 주인장이 추천해 준 대로 금각사, 리츠메이칸 대학,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 (嵐山竹林の道, Arashiyama Bamboo Forest) 등을 돌아다녔다. 교토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에 마음의 병에 생긴 것도 이번에 Isa에게 전부 이야기하게 되었다. 밤에는 숙소에서 운영하는 책 공방으로 가 나만의 공책을 만드는 활동을 했다. 공책의 덮개는 기모노의 재질로 만들어 주셨는데, 오랜 기간 책 공방을 운영해 오신 할아버지 사장님이 공책 만드는 방법을 친절하게 잘 설명을 해 주셔서 인상에 남는다. 혹여 일본어로 하면 Isa가 잘 못 알아들을까 봐 서투른 일본식 영어로 설명을 해주는 모습이 참 감사했다. 책을 다 만들고 나서는 같이 활동에 참여했던 한국인인 문영 씨와도 간단히 술 한 잔 마시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도일했고, 같은 숙소에서 격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일본 유학을 시작했다는 문영 씨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교토에서 이튿날, 숙소 사장님이 만들어 주신 아침을 먹고 사장님의 자가용인 올드카를 타고 교토 시내를 한 바퀴 돈 다음에, 우리는 수많은 토리이(鳥居, Torii)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로 향했다. 신사를 오르기 전 역 주변 대형 잡화점에서 도시락을 사고 강가 주변에 앉아 먹었는데 정말 일본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았던 강가에서 식사를 실제로 해보니 쾌감이 가득했다. 후시미 이나리 진자(伏見稲荷大社, Fushimi Inari Taisha)에 올라 수많은 빨간 문들을 걸으며 사진을 잔뜩 찍고 내려와 우리는 ‘나라 시’로 향했다. 나라는 사슴으로 유명한 곳인데, 실제로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슴의 모습은 어떨까 참 궁금했었다. 나라 시내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아늑하니 참 좋았다. 저녁 시간 즈음 숙소에 도착했는데, 커다란 딸기가 들어 있는 떡을 한 조각 먹고 잠시 쉬다가 사슴을 보러 밖을 나섰다. 낮에는 사슴이 공원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어둑어둑한 시간이 되어 나라 사슴 공원으로 향했는데 많지는 않았지만 몇몇 사슴이 공원의 풀을 뜯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사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슴은 정말 길거리 곳곳에 자유롭게 있었으며 언제든지 다가가서 만져도 되었다. 밤하늘이 어둑한 시간이었지만 몇몇 사슴은 아직 공원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사람들도 사슴을 향해 과자를 건네고 있었다. 참 평화로운 느낌이 좋았다.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저녁으로는 카레와 마카롱을 먹은 뒤 숙소에 들어와 쉬었다. 숙소로 오는 길에 우리는 마카롱을 파는 자동판매기를 보았는데, Isa는 그 자판기를 보고선 너무나도 신기해했다.


다음 날의 나라 시내는 역시 평화로웠다. 숙소 주인의 추천을 받아 간단히 아침을 해결할 겸 찻집에 들러 음식을 두 개 주문했는데, 찻집 사장님이 꼭 한 사람당 음료 하나를 구매해야 한다고 하셔서 아침 식사에 음료까지 가득 먹고 길을 나섰다. 사실 일본 생활하면서 이런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참 당황스럽다. 음식을 시켰으면 굳이 음료까지 주문 요청을 안 해도 될 텐데, 충분히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항상 규칙을 고집한다. 나도, Isa도 이런 문화가 참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이후 나라 공원에 갔는데 확실히 전날보다 사슴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가끔 사슴에게 주려고 과자를 사는 관광객이 있는데 관광객이 과자를 열자마자 사슴들이 거의 달려들 듯하여 어떤 분들은 거의 도망가듯 사슴에게 간식을 주더라. 그런 풍경을 정말 한참이나 의자에 앉아 감상했다. 전체적으로는 정말 평화로웠다. 느긋이 공원을 산책하는 사슴을 거의 한 시간을 말없이 그저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그 풍경을 즐기고, 점심으로는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 Hitsumabushi; 장어덮밥)를 먹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이 장어덮밥인데, 본 고장인 일본에서 먹을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다. Isa는 물고기를 전혀 먹지 못해 어린이 메뉴를 시켰는데 내친김에 일본 술을 곁들이자는 이야기가 나와 어린이 음식을 안주로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먹은 장어덮밥은 정말 맛있었다. 나라라는 도시는 조용하고 아득하며 평화로웠고 음식도 전체적으로 정갈하였기에 내게 참 좋은 여행지로 남았다.


행복했던 나라 여행을 뒤로하고 우리는 오사카로 나아갔다. 교토, 나라, 오사카는 같은 권역이라 전철 한 번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숙소가 도톤보리(道頓堀, Dotonbori)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도톤보리로 가 오사카의 명물 타코야끼와 오코노미야키, 이카야끼 등을 먹어보았다. 역시 본 고장의 맛은 달랐다. 여태까지 먹어 본 어떤 문어 빵보다 바삭하고 맛이 깊었다. 이곳이 정말 본 고장이구나 싶었다.


도톤보리는 정말 사람이 많고 붐볐는데, 전체적으로 생기 있고 활기찼지만 술 취한 사람들이 많고 곳곳에서 이상한 옷을 입은 채 호객 행위를 호객꾼들이 많았다. 자극적인 옷을 입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술집이든 사람들이 가득했고 모두 맥주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 약간은 음산한 느낌의 활기 참이었다. 지금은 일본 정부의 쇄국 정책으로 인해 일본인으로만 거리가 가득했는데, 외국인도 가득한 도톤보리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둑하고 붐비는 거리를 Isa와 한참이나 걸어 다니다 먹어보고 싶은 길거리 음식을 잔뜩 먹고 숙소에 들어와 쉬었다. Isa는 이전 한 일본인에게 오사카의 밤거리를 혼자서 걸어 다니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는데, 그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 것 같다고 하였다.


다음날 점심 늦게야 일어나 주변 식당에서 점심 도시락을 포장해 와서 먹고 또 쉬었다. 오늘은 스리랑카에서 만난 Daisuke 형을 만나는 날이다. 언젠가 스리랑카에서 Daisuke를 만나 짧게나마 잠시 여행을 같이한 적이 있다. 언젠가 오사카에 온다면 자기에게 꼭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약 4년이 지난 지금에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형을 만나 주변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에서 맥주 한 잔을 같이 마시고, 꼬치 튀김 가게에 가서 꼬치 튀김과 맥주를 잔뜩 마신 다음에, 오사카 우메다 역으로 이동해 닭꼬치구이를 또 잔뜩 먹었다. 중간중간에 일본 전통 놀이가 있다는 오락실에 들려 Happy ball이라는 게임을 하기도 하고, 신세카이(新世界, Shinsekai)라는 곳에서 같이 사진을 찍고 놀았다. Daisuke 형은 이렇게 외국 친구가 자기를 만나러 오사카로 와 주었다는 것에 정말 기뻐했다. 그새 그는 결혼했고, 아이도 생겼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형이었지만 정말 친근하고 편하게 대해주어서 참 고마웠다.


밤에는 형의 친구인 Yu 씨와 함께 ‘Talking Bar’를 가지고 했다. 이야기하는 주점이라 어떤 느낌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형을 따라갔다. 여느 Club처럼 여성과 남성의 입장료가 달랐는데 여성은 500엔, 남성은 무려 3,000엔을 내야 했다. 여섯 배의 차이였다. 물론 입장하면서 손목에 도장을 찍고 주점 안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교환권을 주는데, 남녀 사이 교환권 수의 차이가 나긴 했지만 사실 그만큼의 표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입장하고선 왜 ‘이야기 주점’인지 알 수 있었다. 외형상 다른 주점과 다른 바가 없었다. 어두운 조명에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는 없고 주점 한가득 책상만 가득했다. 커다란 음악 사이에 술을 마시며 주변에 있는 손님과 이야기를 하면 되었다. 상대는 그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 분위기에서 춤을 추는 이 하나 없고, 그저 다들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그 시끄러운 분위기에 어떻게 소통하나 신기하긴 했지만 다들 어떻게든 이야기를 나누고 있긴 했다. Yu 씨와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보았으나, 소음이 가득해 자기소개도 똑바로 잘 못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한국 소주를 정수기에 가득 담아놓고, 마음껏 마실 수 있도록 해 놓았더라. 그것은 조금 신기했고 나머지는 전체적으로 너무 정신없었다. 우리는 그곳의 분위기를 잠시 즐기고 나와 각자 돌아갔다. 어찌 되었든 몇 년 만의 외국인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또 반갑게 우리는 맞아주어 정말 기뻤다. 더해서, 오사카는 음식으로 유명한데 덕분에 다양한 음식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참 좋았다.


마지막 날은 오사카성과 오사카의 ‘컵라면 박물관’을 들렸다. 컵라면의 외형을 원하는 대로 꾸미고, 자신이 원하는 재료로 나만의 라면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박물관 자체는 오사카의 후미진 곳에 있었고, 우리는 거기서 각자 컵라면을 하나씩 만든 뒤, 주변 라면 가게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후쿠이로 돌아왔다. 돌아오며 Isa는 사실 약 이틀 정도의 여행을 예상했었다고, 이렇게 일주일 가량이나 같이 여행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옷도 최대한 간편히 들고 나왔는데 오히려 이게 나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의 첫 긴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유학) D+39 2022. 5. 9. (월)


<일본에서 맞는 내 생일>


ㆍ 황금연휴가 끝나자마자 바로 내 생일이 찾아왔다. 모처럼 일본에서의 생일이라 Isa와 조용하고 조촐하게 보내고 싶었으나, Isa의 생각은 완전히 다른 듯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잔치를 하고 싶어 했고, 심지어 잔치를 계획하는 모습도 곧 내게 들키고 말았다.


ㆍ 아침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Isa가 직접 만들어 준 파스타를 먹고, 조금 쉬다가 저녁 수업을 다녀왔다. 친구들이 오늘 밤 나를 위해 몰래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약간은 눈치채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저녁 수업을 나가는 길에 다른 친구들이 내 생일 용품을 사 오는 모습을 먼 곳에서 보고 말았다.


저녁 수업이 끝나고 난 뒤 갑자기 일본인 친구 Shuka가 무언가를 준비했다기에 따라갔는데, 사물함에 과자를 잔뜩 넣어 놓고 선물이라고 가져다주는 데 정말 감동이었다. 참 신기했던 점은 아직은 Shuka와 그리 친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몇 번 만나지도 못한 사이인데 이렇게 먼저 챙겨주는 친구가 있어 정말 고마웠다. 기숙사에는 다른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또 이렇게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친구 앞에서 빨리 자리를 뜨기가 뭐 해 생각보다 Shuka, Kazune와 시간을 많이 보내었다.


그리고선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기숙사 친구들도 나를 위해 선물과 각종 음식을 준비해 놓았더라. 그뿐만 아니라 따로 과실주를 사 준 친구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과자를 잔뜩 받았다. 정말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Chiyo와 Hibiki가 갑자기 불러 나가 보니 Starbucks의 잔과 커피를 선물해 주었고, Juno, Yukino, Nanami 역시 과자와 술을 잔뜩 준비해서 내게 따로 선물해 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또다시 밤에 Julia, Koshiro, Abdi가 부르더니 내게 Adidas 옷을 하나 선물해 주었다. 만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렇게 갚지 못할 선물을 잔뜩 주다니. 여기서 만난 친구들에게 참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받았으니 조금씩은 갚아 나가야지.


한국에서도 축하 세례는 이어졌다. 사용하지도 못할 기프티콘을 엄청나게 받았고,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는 정말 많이 받았다. 정말 고마운 2022년의 생일이다.


그리하여 조금씩 갚아주려 한다. Juno, Yukino, Nanami, 혜진, 유정, Bryan에게는 Starbucks 음료를 한 잔씩 사 주었고, Chiyo, Hibiki, Isa에게는 하루 날을 잡아 한국 음식점에서 한식을 사 주었는데, 무려 16,000엔이 나왔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결제했다. 그래도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에 잊지 못할 경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유학) D+44 2022. 5.15. (일)


ㆍ 이전에 Shuka, Kazune, Yamazaki와 약속했던 취재 과제를 도와주었다. 외국인 학생은 나, 대만인 Yucheng, 프랑스인 Julia였는데 나는 어느 정도 일본어 회화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Yucheng과 Julia는 이제 일본어를 배우는 초급 단계였기에 취재할 수 있을까 싶었다.


문항은 간단했다. 일본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데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지금 일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면 되었다. 지금 내 단계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고유 명사와 수량을 세는 단위가 가장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 생각보다 간단히 과제는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카이센동 가게로 가 저녁을 같이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기회에는 Isa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과도 같이 자리를 가질 약속을 했다.


ㆍ 이번 학기에는 PBL 수업에는 두 가지 활동이 있다. 첫 번째는 루마니아의 소설 작가에게 후쿠이의 정보를 취합하여 전달하는 것, 두 번째는 후쿠이시 카츠야마(勝山, Katsuyama) 지역의 로쿠로시(六呂師高原, Rokuroshi kogen) 고원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두 가지이다. 5월 중순을 기준으로 우리가 약 한 달 반 정도 후쿠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과 특징들을 취합해서 루마니아의 Elena 작가님에게 보내드렸고, 이후에는 로쿠로시 고원의 한 청소년 수련원을 홍보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다음 목표였다. 그래서 교수님의 차를 얻어 타고 학교에서 약 한 시간 떨어진 오노 시의 카츠야마로 갔다. 그곳에서 사카모토 담당자님을 만났는데, 엄청 쾌활했다. 담당자님께서는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운영이 잘 되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생기고 나서는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로쿠로시 고원을 찾아주는 손님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후쿠이 대학 학생들이 이 공간을 홍보하는 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셨다. 우리도 로쿠로시 고원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하므로 담당자님께서는 우리를 인솔하셔서 로쿠로시 고원 안에 있는 숲 체험을 시켜주셨다. 같이 흙길을 걸으며 숲에 자라 있는 나무와 꽃의 종류에 대해서 알려주셨고, 나중에는 그곳에서 직접 딴 나뭇잎을 우려 차를 만들어 마시는 활동도 했다. 숲 체험 자체는 흥미로웠고 직접 딴 나뭇잎으로 차를 마시는 것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충분히 홍보할 수 있는 소재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변에 보이는 아무 잎을 가져와 친구와 등을 맞댄 채 그 나뭇잎에 관해서 설명하고, 상대방이 설명하는 대로 나뭇잎을 그려보는 활동도 하였다.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숲 체험이었다. 그리고 로쿠로시 고원은 젖소로 유명한데, 그곳에서 직접 짠 우유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고 있는 공방이 있다기에 그곳에 들려 모두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했다. 나름 알찬 하루를 보냈다. 이곳을 홍보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남은 학기의 목표라니, 참으로 참신하고 신기한 수업 활동이 될 것 같다.


ㆍ 말레이시아 Jun이 자신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준다기에 그곳으로 갔다. 나와 Isa, 혜진, Yucheng 이렇게 4명이 초대받았다. 한국식 문화대로 화장실 휴지를 사서 가져다줬는데 Jun은 그런 한국 문화를 정말 신기해했다. Jun은 우리를 위해 소면을 만들어 주었고, 간단하게 칵테일을 한 잔씩 대접해 주었다. 오전에는 Jun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이전에 만난 Yumi가 자신의 재즈 음악 공연에 초대해 주어서 저녁 시간 때에 미나미 에치젠(南越前町, Minamiechizen-cho)으로 향했다. 공연장에 입장하려면 3,000엔을 내야 했는데, Yumi는 우리를 특별 초대해 주어서 나와 Isa는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Yumi의 음악을 감상했는데, 중저음의 목소리로 특이한 발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각종 재즈 음악을 들으며 후쿠이에서 또 다른 황홀경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같이 사진을 찍으며 미리 사 온 꽃다발을 내밀었는데 알고 보니 그 꽃다발은 일본에서 성묘할 때 조상님께 바치는 꽃이라고 하면서 엄청나게 웃으셨다. 참 머쓱했지만, 다행히도 이게 더 기쁘다면서 흔쾌히 받아주셨다. 이후, 우리는 다시 후쿠이로 돌아가려 했는데 공연에 같이 참석한 Miwa가 우리를 후쿠이로 데려다주며 회식에 참여하지 않을 것인지 물어보았다. 우리가 끼여도 되는 자리인지 잘 몰랐었지만, 참석을 한 번 더 권하기에 회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우리가 간 곳은 후쿠이의 주점 Ninja에 갔는데, 가게 이름처럼 가끔은 머리 위 천장을 통해 음식을 가져다주곤 하였다. 그곳에서 공연 관계자들과 함께 정말 많이 먹고 마셨다. 내 기억엔 1차 회식 자리만 약 4시간가량을 보냈는데, 소주와 맥주부터 시작해 막걸리, 청주, 포도주 가릴 것 없이 많은 종류의 술을 마셨고 또 안주도 정말 말 그대로 끊임없이 시켰다. 육해공 가릴 것 없이 각 종류의 고기와 나물, 튀김, 탕이 들어왔고 15명쯤 되는 사람들이 앉은자리에서 그 많은 음식을 모두 먹어 치웠다. 그 공연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던 예술가분들도 외국인인 우리에게 각종 질문을 던져 주셨다. 네 시간이 지나 총회식비는 약 80만 원 정도가 나왔지만, Yumi는 우리가 와준 것이 정말 고맙다며 회식비를 대신 내주었다. 이런 감사한 일이 다 있을까. 정말 고마웠다. 1차 술자리를 파할 때 거의 새벽 3시 즈음이었지만, Yumi와 다른 일행은 한 잔 더 마시러 2차로 향했고 우리는 피곤함에 도저히 못 버티겠기에 숙소로 들어와 쉬었다.




유학) D+53 2022. 5.24. (화)


ㆍ 혜진이가 일본인 친구 Yuka와 Haruka를 소개해 주었다. 그 둘과 초밥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는데 그 둘은 여름 방학이 되면 한국으로 놀러 온다고 했다. 아직 관광비자가 외국인에게 발급되기 전이라 한국에는 어떤 비자로 올 것인지 물었는데 되려 그 친구들은 내게 비자가 무엇인지 물었다. 환불도 안 되는 비행기 표를 구매했던데, 그 친구들은 과연 한국에 올 수 있을까?


ㆍ 이번 학기에는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 교수님은 이탈리아 출신의 Ivan 선생님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하기 전 Ivan 선생님은 내게 한 가지 요청을 하셨다. 본인이 아는 사람 중에 논문에 한국어에 관련된 것을 쓸 예정이라며 가능하면 그 논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내게 물어보셨다. 나는 물론 가능하다고 했고, 어느 날 한 학생을 내게 소개해 주셨다. 처음에 나는 다른 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님과 면담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만나고 보니 그냥 나와 같은 과를 다니고 있는 졸업반 학생이었다. 이름은 Minowa Chika. 졸업 논문에 한국어 화자에 대한 것을 쓰려고 한다는데, 거기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다른 교수님을 만나는 줄 알고 정장을 입고 교수님을 찾아뵈었고, 오늘의 만남도 Ivan 교수님 연구실에서 간단히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Ivan 교수님께서는 연구실이 아니라 어디든 가서 차를 마시든 식사를 하든 친해져서 돌아오라고 하셨다. 거의 쫓겨나듯 연구실에서 나와 Chika와 아스와야마 공원 유원지(足羽山公園. Asuwayama Koen)로 향했다. 처음에는 일본어로 대화하다가 갑자기 자기는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며 한국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회화를 너무 잘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으니 라디오와 Youtube를 통해 배웠다고 했다. 한 번도 한국 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없고, 심지어는 한국 사람과 대면으로 대화해 보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정말 너무나도 신기했다. 이렇게 만난 김에 정말 오랜 시간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중에 한국에 유학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한국의 생활과 한국에 문화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알려주었고 그녀 역시도 내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어주었다. 웬만한 표현을 다 이해하기에 한국어로 설명을 해 줬는데, 일본에서 한국어를 이렇게 많이 사용한 것이 사실 처음이었다. 일본에 와서 굳이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가끔 가족들과 통화할 때 사용한 것이 다였으니. 오랜만에 한국어로 Chika와 한참을 떠들었다. Chika도 처음 만난 한국 친구가 재미있었는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 했고, 우리는 즉흥으로 에치젠 해안(越前海岸, Echizen Kaigan)으로 가서 바다를 보기로 했다. Chika의 자동차를 타고 에치젠 해안을 달리며 오랜만에 바다를 보았다. 후쿠이에서 바라본 동해의 모습은 다시 보아도 정말 아름다웠다. 에치젠 해안에서 해가 지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았고, 이렇게 종일 운전하며 예쁜 풍경을 보여준 Chika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해 주기로 했다. 쓰루가 시에 가면 유명한 한식 가게가 있다기에, 그곳에서 떡볶이와 비빔밥, 파전 등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정말 뜬금없는 만남이고 뜬금없는 여정이었지만 행복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ㆍ 말레이시아 친구 Jun이 자신의 일본인 친구를 소개해 준다며 유학생들을 잔뜩 불렀다. 부르기에 일단 갔는데, 거기에는 Julia, Isa, 혜진이 있었고 일본인 친구는 신입생 Kei 양이 있었다. Kei와는 서로 얼굴은 알고 있지만, 대화는 해본 적 없는 친구였다. 스무 살의 신입생인 Kei는 이렇게 다양한 국가의 유학생들 앞에서 당당히 자기의 의견을 말하였고, 정말 명랑하고 당당한 아이였다. 우리는 다 같이 찻집에 가서 케이크와 음료를 한 잔씩 마시고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미술관 옆 찻집에 들렸다가 저녁 식사로는 회전 초밥의 의견이 나와 회전 초밥 가게로 가고 있는 와중 말레이시아 식당을 발견해 발길을 돌렸고, Rasa Sayang이라는 말레이시아 음식점에 도착했다. Jun이 말레이시아 언어로 식사를 하고 싶다고 요청하니 사장님께서는 우리에게 옥상에 마련된 특별한 자리를 내어 주셨고, 후쿠이의 밤하늘이 가득 보이는 옥상 자리를 제공받았다. 후쿠이의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Jun이 자신이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음식을 주문해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번 봉사 동아리 설명회에서 알게 된 Terai 군이 나와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Terai 군을 초대하였다. 하나둘 음식이 나왔고, 말레이시아 음식은 정말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볶음밥과 돼지고기튀김, 닭고기 등이 나왔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고, Jun이 추천해 준 홍차는 여태 먹은 홍차 중 가장 맛있었다. 당도가 정말 진했지만, 값싼 단맛이 아니었다. 우리는 맛있는 말레이시아 음식, 시원한 밤하늘과 함께 정말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ㆍ 5월 21일에는 미쿠니(三国町, Mikuni-cho) 지역에서 축제가 열렸다. 원래 본 행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커다란 형상을 만들어서 수레로 끌어 거리를 순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행사였는데, 그 행사를 할 때 즈음이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몰릴 것이라는 말을 들어, 순회 행사가 끝난 다음 날 행사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행사장에는 전날 순회했던 형상들이 거리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고, 포장마차가 정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포장마차 행렬은 미쿠니 신사에도 이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커다란 신사 안에서도 포장마차가 영업하고 있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넉넉하지 않아 Isa와 나는 강가에 앉아 포장마차에서 산 소바, 빵, 초코 바나나 등을 먹었다. 한참이나 축제의 분위기를 즐긴 후 미쿠니 지역에 있는 바닷가를 찾았다. 그곳에서 Abdi, Julia, Sonia 등을 만났고 잠시 함께 바닷가를 구경한 후에 나와 Isa는 ‘사카이시’로 이동했다. 에치젠 철도에는 ‘Angel land’라는 역이 있기에 그곳은 어떤 장소일까 궁금해서 방문해 보았는데 과학관이 있는 커다란 공원이었다. 그곳을 잠시 산책하다 Yuka가 일하고 있다는 프랑스 음식점이 주변에 있다기에 들려서 저녁을 먹었다. 프랑스 음식점답게 음식은 시간에 따라 일정한 순서대로 나왔는데, 전채 요리를 먹고 주요리로 나는 생선 요리를, Isa는 닭 요리를 먹었다. 후식으로는 초콜릿 브라우니를 제공해 주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참 세련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저녁 기차를 타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ㆍ 다음날은 학교에서 열린 Internship 설명회가 있었다. 호쿠리쿠 지역과 관서 지역의 회사들이 모여 학생들에게 이번 여름 방학에 열릴 Internship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어떤 회사가 참여하는지도 몰랐지만, 혹시 어떤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 나는 정장을 입고 행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15분간 기업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시간이 되면 25분간 그곳에서 기업이 준비한 발표를 들으면 되었다. 참가한 회사를 살펴보니 90% 이상이 기술과 제조에 특화된 공장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정말 편안한 차림으로 참석하여 설명회를 듣고 있었다. 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은 나와 기업 관계자뿐이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일본과 한국의 Internship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른 듯했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한두 달을 임시직으로 고용되어 업무를 배우거나 체험하기도 하고, 정직원이 되기 전에 수습사원으로 Intern을 채용한 뒤 직원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짧으면 하루, 보통은 사흘에서 나흘의 기간이 보통이었다. 길어도 2주의 기간이고, 한 달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비록 임시직이라도 소정의 급여를 챙겨주지만, 일본은 완전 체험형으로 대부분이 무급이라고 했다. 내 시선에서는 직업 체험보다는 업무 견학에 더 가까워 보였다. 사실 기간이 기간인지라 급여를 받는 것이 참 애매해 보이긴 했다. 기간이 짧다 보니 학생들은 여름 방학에 적어도 2~3개의 기업이나 기관에서 임시직을 경험해 보는 듯했다. 이런 부분이 신기했다.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으로는 후쿠이의 지방정부에서 나와 Internship 설명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체험 임시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번호표를 받아야 설명회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학생들이 붐볐다. 공무원의 intern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신선한 정보였다.


단 며칠의 체험을 하려고 이렇게 설명회를 열고, 학생들과 기업들이 참석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두세 곳의 기업 설명회를 들었지만 더는 흥미가 돋지 않아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 저녁에는 Yukino와 Nanami, Yucheng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Yucheng을 따라 대만 음식점에 갔고, 마파두부나 볶음밥 같은 중국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 이후 이시카와 현의 찻집에 들러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시카와 현의 바닷가를 들려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흐려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바다를 본 것으로 족했다. 밤에는 유리노사토 공원(ゆりの里公園, Yurinosato Koen)으로 가서 아름다운 불빛을 구경했다. 공원 전체가 아름다운 전광 장식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예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종일 운전하며 고생해 준 Yukino에게 정말 고마웠다. 저녁은 마키시마 하우스에서 다 같이 도시락을 사 와서 먹고 오늘의 여행은 끝이 났다.


ㆍ Julia가 어느 날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고깃집에 갔다. 어느 정도 돈을 내면 두 시간 동안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Julia가 대만 친구 세 명을 데려왔는데 셋 다 덩치가 조그마한 여학생들이었다. 식당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는데 그 친구들은 정말 두 시간 동안 고기를 쉬지 않고 먹었다. 계속해서 주문했고, 그 친구들을 정말 끝도 없어 먹었다. 중간에 나는 도저히 배가 불러 자리에서 나와 한참을 뛰었다. 맛있게 고기를 먹기는 했지만, 다음부터 이렇게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나보다 훨씬 더 먹은 대만 친구들은 아무 내색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그 작은 덩치에 어떻게 저렇게 음식이 많이 들어갈 수 있는지 참 신기했다.




유학) D+61 2022. 6. 1. (화)


ㆍ 일본에 온 지 거의 2달이 지났다. 적응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다 지난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너무 빨리 적응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주변 환경과 현재 상황에 거의 완벽히 적응했다.


스리랑카 때는 생활 체계도 잘 몰라 어영부영하는 와중에 언어 구사도 힘들었기에 직원이든 주민이든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었다. 하지만 이곳은 딱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고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운이 좋게도 한국에 관심을 두는 일본인들, 특히 여학생들이 많아서 그들이 이곳 생활 적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아직은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고, 지금은 한 달 80,000엔씩 장학금을 받고 있기에 딱히 돈이 부족하지도 않다. 비록 단기간이긴 하지만 지금 나를 열렬히 좋아해 주는 여자 친구도 있고 학기 중이라고는 해도 학업에 그렇게 열을 올릴 필요도 사실 없는 상황이다. 교환 교에서 D- 이상의 성적을 받기만 하면 모교에서 전부 인정을 해주기 때문에 딱히 학업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쉽게만 흘러가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 일찍 타성에 젖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후쿠이는 역시나 한적한 시골이었다. 동네 구석구석에 어딘가에 가고는 싶지만, 그마저도 차량이 없으면 어이든지 접근이 힘들다. 그저 학교 주변에 가만히 머물러 있거나 이따금 친구의 도움을 받아 주변 어딘가 가 보던가 하는 것이 사실 전부이다. 하루가 굉장히 단순하고 사실 많은 순간이 지루하다. 어느 순간부터 몸을 담고 있는 이곳이 무척이나 좁게만 느껴지고, 적응하며 느끼던 감명도 사라져 버렸다. 가령 주변에 음식점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일본 음식점은 제외하고 찾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기를 정말 바랐고, 결국 이루어냈지만 내 안에 많은 것들이 금세 사그라든 듯하다.


ㆍ 하지만 정말 운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일본 정부에서 비자를 쉽게 내주고 있지 않은 지금 시기에 나는 일본에 입국하였고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았지만, 생활비로는 충분한 장학금을 받고 있다. 생활비를 사용하고, 각종 세금과 방세를 내어도 많이 여유로운 상황이다. 이곳 생활하는데 큰 부담이 없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생활 세금에 대해서 다시 고찰해 보게 되었다. 마키시마 하우스는 약 4평 내외의 작은방이다. 한국에 약 7평 방에서 생활할 때는 한 달에 전기세 약 4,000원, 수도세 3,000원, 가스세도 5,000원 만 내면 한 달을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기, 가스, 수도 모두 민영화가 되어 있어 세금을 바라보는 수치 자체가 남달랐다. 마키시마 하우스에는 물때 오염 방지를 위해 항상 화장실의 환풍기 전원을 끄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그런 것은 차치하더라도 방 안에서 사용하는 전기라고 해봐야 냉장고, 노트북, 방 안 조명, 전자기기 충전, 가끔 트는 에어컨이 전부인데 전기세가 한 달에 무려 40,000원이 나온다. 수도세도 두 달에 한 번씩 33,000원을 지급해야 하고, 요리도 잘 안 해서 하루 한 번 온수 샤워를 제외하고 가스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데도 매달 30,000원씩 요금이 나온다. 어떨 때는 한국과 비슷하게 생활했음에도 세금 차이가 10배씩 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살인적인 세금이다. 물가 자체도 전체적으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특히 비싼 분야가 있다. 특히 서비스와 관련된 것들은 정말 가격이 비싸다. 인건비가 우리나라와 수준이 비슷하게도 불구하고 이발, 미용, 손톱 정리 등 기본적인 가격이 최소 2배가 넘는 듯하다. 이런 물가 상황이기 때문일까, 내가 만난 친구들은 모두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보통은 2개에서 많게는 6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도 만났다. 정말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인가 보다. 나 역시도 기회가 닿는다면 아르바이트를 꼭 해볼 생각이다.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일을 통해 이곳의 문화를 조금 더 배워보고 싶다.


ㆍ 지난 주말에는 학교에서 축제가 열렸다. 한국 대학에서는 주로 평일에 축제가 열리지만, 일본 대학은 주말에 축제가 열리는 것이 흥미로웠다. 교내에 포장마차와 Kitchen car가 들어와서 음식을 팔았고, 교내에 음주는 단연 금지였다. 한국 대학문화와 정말 달랐다.


학생들도 모의 음식점에서 간단한 음식을 팔곤 했는데, 학과보다는 동아리별로 모여 음식을 팔거나 작품 발표 활동을 했다. 예사 대학 축제가 그렇듯, 음식은 질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쌌다. 교정의 규모가 작은 탓에 모든 작품 활동은 한 건물 안에서 진행되었는데 서예, 사진 등 대부분 전시를 하거나 상품을 주는 놀이를 해서 경품을 받아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시를 한 곳은 종이접기 동아리, 서예부, 사진부 등이 있었고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은 다도부, 포켓몬스터 동아리, Love live 연구회 등이 있었다. 포켓몬스터 동아리에서는 각자 포켓몬 카드를 가지고 와서 서로 대결을 펼쳤고, Love live 동아리에서는 만화 영상을 보면서 같이 응원하는 활동을 하더라. 교내에 이런 문화가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딱히 무대라고 할 공간이 없는지, 취음악부 학생들은 학교 식당에 모여 공연을 했다.


학교 축제는 이틀간 진행되었는데 첫날은 나도 축제를 즐겨보고자 했다. 다도회에서 선배들이 대접해 주는 차 한 잔을 마시고, 만화 동아리, 항공 동아리에서는 간단한 놀이를 해서 상품을 받았다. 운이 좋게도 Isa는 만화 동아리에서 커다란 포켓몬 인형을 하나 받았다. 사진부, 서예부, 종이접기 부의 작품을 구경하고 간이음식점에서 소바를 하나 사 먹으니 더는 할 것은 없었다. 일본 대학의 축제는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다음날은 나도 다도부의 일원으로서 다도부 축제의 일손을 조금 도왔다. 손님이 오면 신청을 받고, 시음이 끝나면 그릇을 치우면서 세척하고, 행사가 끝난 후 물건을 다시 동아리방으로 옮겼다. 총학생회에서 준비한 Bingo 놀이에서는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나는 당첨되지 못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친구 Jun은 10,000엔 상품권이 당첨되었다. 참 더운 날씨였지만 다도부에서는 정장 입기를 권장하여서 정장을 입고 종일 일손을 도왔다. 행사가 끝나고 선배들이 고생했다며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끼 사 주셨다. 모교의 대학 축제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한 번 즈음은 경험하기 좋았다.


ㆍ Isa가 자기 친구들을 초대해서 Romania Day를 계획하고 있다고 일러주었다. 그날에는 친구들을 기숙사로 모두 불러 루마니아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하고, 루마니아 전통 놀이와 전통 춤을 추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주제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요 며칠간 무기력함이 많이 들어서 식사만 같이하고 Isa의 양해를 구한 뒤 나는 방에 들어와 계속 쉬었다.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행사가 다 끝나고선 Isa가 내게 찾아와 약간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자신이 열심히 준비 한 행사인데 오지 않았다면서. 약간 미안했지만 나도 정말 쉬고 싶었다.


ㆍ 조만간 인도네시아 친구 Abdi의 생일이다. Abdi가 하고 싶은 것을 계획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주변 동네 풋살장을 예약했고, 저녁으로는 초밥을 한 끼 대접하기로 했다. Abdi는 내 생일에 내게 옷을 한 벌 사 주었고, 혜진이 생일에는 Starbucks 음료 교환권을 선물해 주었다. 이번 기회에 나도 돌려주고 싶어 혜진이, Chika와 함께 LPA에서 Abdi의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무엇을 선물할까? 정말 한참을 고민하다가 Abdi를 위해 Nike 반소매 옷과 축구공 모양 인형을 하나 샀다. 나는 내 운동화도 한 켤레 샀다. 물건을 사고 LPA 주변의 스테이크 가게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정말 황홀하도록 맛있었다. 밤에는 Chika가 후쿠이의 예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하치만 산(八幡山, Hachiman-san) 전망대에 데려다주었고, 우리는 한참이나 후쿠이의 야경을 감상했다. 정말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만날 때마다 항상 놀라운 곳으로 데려다주는 Chika에게 정말 고맙다.




유학) D+68 2022. 6. 8. (수)


ㆍ 눈을 감으면 일본, 또 눈을 뜨면 일본이다. 가끔은 내가 지금 일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일본에 와서는 일본어보다 영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순간 두 개의 언어가 머릿속에 뒤섞여 지금 두 개 언어 모두가 입 밖으로 잘 안 나온다. 확실히 두 개 언어가 성장하고 있기는 한데, 둘 다 눈에 띄도록 확확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일본에 오기 전에 계획했던 것들이 있다. 여기서 한국어 과외를 하거나, 아르바이트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새로이 다가오는 경험을 즐기느라, 또 적응하느라 하는 핑계로 하루하루 미루다 보니 원래 계획했던 것들은 사실 별로 이루지 못한 듯하다. 이곳에서 확실히 색다른 경험, 색다른 사람. 색다른 장소, 색다른 음식을 많이 경험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을 제하고 보면 수면욕, 식욕, 성욕으로 점철된 생활밖에 없는 듯하다. 이곳에 와서 아직 무언가를 열성적으로 한 것도 없고, 특히 학업에서는 전혀 열성을 쏟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은 벌써 절반이 흘렀고, 언젠가는 지금의 생활을 언제나 그리며 살아가게 되겠지.


ㆍ 며칠 전에는 대만 친구 Yucheng의 생일이 있었다. 사실 요즘 Yucheng과의 교류는 전혀 없다. 어떻게 지내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번 잔치에는 말레이시아 친구 Nicole이 Yucheng을 위해 본인의 대만 친구 몇 명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했다. 평소와 별다른 것은 없었다. 잔치가 끝나고 Yucheng은 Line 단체 문자 방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선 또 어딘가로 사라졌다.


ㆍ 그다음 날에는 Abdi의 생일이었다. Abdi를 위해 미리 풋살장을 예약해 놓았고, 당일 정시가 되어 풋살장에 모였다. Julia, An, Isa, Juno, Abdi, Jun, 나 총 일곱 명이 축구를 했다. 반 이상이 여학생이었는데, 축구를 살면서 완전 처음 해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풋살장을 예약했기에 당연히 축구공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축구공은 따로 가지고 왔어야 했다. “어떡하지”라며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이전 예약 시간이 일본인 친구 Shuka, Adu가 속해 있는 Season sport 동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하던 배구공을 하나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들은 흔쾌히 공을 빌려주었고, 다행히도 배구공으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예상한 대로 3:3 축구는 정말 체력 소진이 심했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약 50분을 뛰어다녔다. 마지막으로 승부차기를 했는데, Isa가 배구공으로 내 고간 부분을 강하게 맞춰버렸다. 그걸 본 다른 친구들은 웃고 뒤집히며 한바탕 난리가 났고, 참 머쓱하게 경기를 끝냈다.


이후 우리는 초밥집에 가서 거나하게 저녁을 먹었다. 물론 Abdi의 몫은 모두가 각출했다. 식사 후에 마키시마 하우스에 돌아와 맥주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때 이전에 혜진이와 같이 산 선물을 Abdi에 전달했다. Abdi도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해 주었으면 좋겠다.


ㆍ 가끔 전자우편으로 후쿠이현 국제 교류 행사에 관한 안내가 온다. 후쿠이의 관광지인 마루오카 성(丸岡城, Maruoka-jo)을 일본인들이 영어, 중국어, 한국어 3개의 언어로 소개하는 행사가 있기에 Isa와 같이 신청했다. 유학생 중에는 나와 Isa, 혜진, 유정, 그리고 대만 친구 Rubi가 신청했다. 주최는 후쿠이 시민 국제 교류협회였는데, 이전에 이 단체에서 진행한 행사를 참여한 적이 있어서 담당자와는 안면이 있었다.


성 소개는 영어 세 모둠, 중국어 세 모둠, 한국어 한 모둠 해서 크게 7개의 모둠으로 나누어졌다. 한국어 참가자는 나, 혜진, 유정과 후쿠이 대학을 다니는 다른 남학생 한 명으로 4명이 전부였다. 참가자가 4명 밖에 없었기에 마루오카 성을 소개해 주는 일본인 해설자분들이 더 많았다. 해설자분들은 전문 통역사가 아니라, 지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인듯했다. 여섯 명의 해설자 중에는 직장인도 있었고, 은퇴한 교수님도 있었다. 전체적인 느낌으로 성을 소개해 준다는 느낌보다는 본인이 준비한 대본을 한국어로 읽기 연습하러 온 느낌이었다.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대부분 대본을 따라 읽기도 버거워 보였고, 발음도 부정확해서 정확히 어떤 설명을 해 주시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중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담당 한국인 교원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부가 설명을 해 주셔야 겨우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입장료 없이 마루오카 성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성안에는 경사가 깊어 위아래층으로 왕래가 힘들었다. 성 자체는 보이는 그대로였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성 견학을 마치고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은 뒤 근처 온천으로 향했다. 주변에 노상 온천이 있다기에 들렸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았다. 따뜻한 온천물 안에서 잠시 낮잠도 한숨 잤다. 내친김에 마루오카 성 주변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돌아오는 버스가 이른 시간에 끊겨서 기숙사 주변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ㆍ 그다음 날은 일본인 친구 Hibiki와 시가현 여행을 하기로 했다. Hibiki는 같이 PBL 수업을 듣고 있는 Chiyo의 남자 친구로 Chiyo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둘이 더 친하게 지내고 있다. 어디든지 데려다줄 수 있다는 Hibiki의 말에 조금 먼 곳인 시가현을 골랐고, 우리는 같이 시가현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다양한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내가 냈다. 내 튜터 Karin을 통해 알게 된 시가현의 관광지인 시라히게 신사(白鬚神社, Shirahige jinja)를 들렀다. 시라히게 신사는 호수 안에 토리이가 묻혀 있는데 참 신기하고 일본다운 광경이었다. 이후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다가 우연히 하와이 식당인 R-cafe라는 곳을 알게 되어 그곳으로 향했다. 주차장을 찾느라 꽤 애를 먹었고 겨우 도착한 식당은 정말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하와이 식당이라 그런지 커다란 무대에 사람들이 모여 하와이 춤을 추고 있었고, 각종 하와이 음식을 팔고 있었다. 하와이 음식을 먹어본 것은 나도 처음이라 Loco moco와 Salad plate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식사한 뒤 비와호(琵琶湖, Biwa-ko)를 배경으로 춤추는 사람들, 아름다운 비와호의 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다시 후쿠이로 돌아와서 쉬었다. 후쿠이에서는 막 아르바이트를 끝낸 Chiyo와 만나 Coco’s에서 같이 식사를 했고, Hibiki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ㆍ 저번 주부터 사랑니가 조금씩 아파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오른쪽 사랑니가 썩어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보았을 때는 이가 조금 보이기에, 지금 사랑니가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왼쪽 사랑니는 반쪽 정도 자랐지만, 완전히 누워있고, 오른쪽은 곧게 자랐지만 결국 썩어버리고 말았다.


월요일 운동 수업이 끝나고 Mizusawa 선생님이 일본 생활하는데 어디 불편한 것은 없냐고 물어보셔서 사실 이가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이 갑자기 차에 올라타라고 하시더니 바로 치과에 데려가 예약을 잡아 주셨다.


그날 저녁 Shuka, Kazune, Isa, Julia, Yucheng과 다시 만나 저녁을 먹었고, Kazune가 통역을 도와줄 겸 치과에 같이 방문해 준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다음날 치과에 방문했는데 이빨은 썩었고 뽑아내야 한다고 했다. 치과의사 선생님은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Kazune의 도움으로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치과 예약을 했다. Kazune에게 정말 고마웠다. 생각보다 그녀의 시간을 많이 쓰게 되어 많이 미안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Kazune는 학교 근처 대형 편의점에 아르바이트하러 갔고, 나는 그녀의 차에서 잠깐 더 쉬다가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잤다.


다음날 혼자 다시 병원에 찾아 사랑니를 뺐다. 너무 아팠다. Isa는 당분간 내게 죽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국민 건강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총병원비의 30%만 내면 되었다. 이를 뽑는 데엔 다 합쳐서 총 50,000원가량을 쓴 것 같다. 입안의 이물감이 가시지 않는다. 일본에서 이를 뽑게 되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유학) D+76 2022. 6.16. (목)


ㆍ 원래는 6월 중순 즈음 나고야를 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사랑니를 뽑는 바람에 여행하기로 한 주말은 아무것도 못 하고 방에서 쉬었다. 대신 Yumi가 재즈 공연을 한다고 해서 나고야 대신 Yumi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공연장은 후쿠이시에서 멀리 떨어진 미나미 에치젠 조에 자리 잡고 있었다. Isa와 점심을 먹은 뒤 JR을 타고 한 시간가량을 이동해 ‘난조 역’에 도착했다. 살짝 일찍 도착하여 입장권을 구매한 뒤 주변 산책을 했다. 미나미 에치젠 조 역시 황량한 시골이었지만, 강가를 따라 멋진 강이 있었고, 들판이 흐드러진 아름다운 공원이 있었다. Isa와 그 공원을 한참을 거닐다 공연 시간이 되어 Yumi의 공연을 감상했다. 꽤 규모가 큰 공연장이었지만 좌석이 가득 차 있었고, 저번 공연과는 달리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른 초청 가수 없이 혼자 무대를 가득 채우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선곡은 저번 공연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저번 공연에서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듣는 것도 나름 참 좋았다. Yumi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공연이 끝나고 Miwa 선생님이 우리를 JR 사바에 역까지 데려다주었고, 우리는 같이 당고를 하나 사 먹고선 기숙사로 돌아왔다.


ㆍ 다음날은 Kimi, Mizuki와 점심 식사를 같이했다. Kimi는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이고, Mizuki는 같은 다도부 소속으로 일본의 다도를 함께 배우고 있는 친구였다. 항상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친구들을 위해 한국식 냉면 가게를 추천해 주었고 같이 점심으로 냉면을 먹었다.


국제과에서는 매주 다른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번 주는 German day로 독일어로 인사 및 숫자 등 간단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한다. 이번 주 독일어 강사는 Isa였고 요 며칠간 Isa는 이 행사를 참 열심히 준비했었다. Kimi, Mizuki와 점심을 먹고 약간 늦은 시간에 행사에 도착해서, Isa가 개발한 간단한 숫자 놀이를 했다. 이후 Mizuki는 수업이 있어 다른 장소로 이동했고, 나와 Kimi는 주변 찻집에서 커피를 한잔 하며 시간을 보냈다. Kimi는 최근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조만간 들를 예정이다.


저녁에는 저번 마루오카 행사에서 만난 한국어 교습 강사 이은정 선생님이 본인의 집으로 초대해 주셔서 선생님 집에 들렀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대접해 주신다며 선생님은 잡채와 파전을 준비해 주셨다.


일본 후쿠이시는 한국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데, 매달 한 번씩 Online으로 회의 및 교류가 있는 듯했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이 그 행사가 있는 날이었고 우리가 식당에서 식사하는 동안 뒤쪽 거실에서는 일본인, 한국인이 교류회를 가졌다. 뒤에서 업무를 보시는데 식사를 하는 것이 약간 머쓱하긴 했지만, 밥을 먹고 있으라고 몇 번이나 권유해 주셔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음식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한참이나 먹고도, 돌아가서 먹으라며 잡채와 파전을 또 가득 포장해 주셨다. 혼자 먹기는 너무 많은 양이라 다음 날 점심때 Shuka, Kazune, Adu, Yuzuki를 불러 다섯 명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러더니 Shuka가 오늘 Season sport 동아리에서 농구 시합이 있을 예정이라고 같이하자고 했다. 일단 Shuka에게 친구들 몇 명 불러본다고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Isa, Julia, Yucheng 정도만 부르려고 했는데, Julia가 중국인 친구 Han, 이탈리아 친구 Sonia를 불렀고, 다 같이 저녁에 농구 경기를 했다. 다들 정말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한바탕 재밌게 뛰고선 저녁으로 Mcdonalds를 먹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ㆍ 최근 갑자기 전화기 충전이 잘 안 되어 후쿠이에 있는 Mega don Quixote에 들려서 무선 충전기를 하나 샀다. 가는 길에 비가 추적추적 오기에 우산을 챙겨 갔는데 버스에 깜빡하고 두고 내렸다. 근처에서 Isa와 스테이크를 먹고 기숙사로 향하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바람에 쫄딱 젖은 채로 학교에 도착했다.


ㆍ 그리고 최근에는 꽤 독특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후쿠이 지역 신문사에 단독 취재하여 기사에 실린 일이 있었다. 국제과 ‘Mouri’ 선생님의 추천으로 이번 취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취재의 목적은 명료했다. 7월 10일에 제26회 일본 참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데 선거에 앞서 외국 청년을 대상으로 각종 질문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로 물어본 것은 한국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은 무엇인지, 한국 젊은이들의 정치적 관심사는 무엇인지, 나도 투표 경험이 있는지, K-pop 가수들의 투표 독려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징병제 제도 아래에서 군대 생활은 어땠는지, 일본인과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는지, 나도 정치 활동을 해본 적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셨다.


Mouri 선생님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해 주셨다. 취재일이 되어 기자님을 만났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취재를 하면서 간단한 일본어도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정말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떠오르는 대로 대답해서 무엇을 정확히 전달했는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엉성하게 답변했다. 기자분은 내신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취재를 마무리했지만, 제 역할을 잘했는지 잘 모르겠다.




유학) D+82 2022. 6.22. (수)


ㆍ ‘후쿠이 취업 매력 여행’이라는 후쿠이현 취업 캠프를 참여하게 되었다. 6월 17일 금요일부터 19일 일요일까지 3일간 외국인 유학생이 사바에의 한 수련원에서 합숙하며 후쿠이의 기업, 박물관 등을 방문하고, 후쿠이 기업의 합동 설명회에 참여하는 것이 행사의 주 내용이었다. 첫날 사바에 지역의 Luxottica라는 안경 제조 공장에 견학하고 밤에는 Luxottica의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견학하는 동안 지역 NHK 방송국에서 우리 모습을 취재해 갔는데, 중간에 Isa와 나에게 질문을 던져 주셨고, 뉴스 시간에 Isa와 내 모습이 잠시 나왔다.


주최 단체는 NPO 말레이시아 국제 교류협회였는데, 협회에서 사흘간의 숙소부터 세끼 식사, 교통편을 전부 무료로 제공해 주셨다. 첫날 저녁으로 맛있는 초밥을 사 주셨고, 음료도 정말 한가득 챙겨주셨다. 다만 숙소 시설이 아무것도 없었고, 10시가 되면 소등이라 밤에 같이 무언가를 할 수도 없었다. 참가 학생들은 13명이었다. 학생들은 중국, 마카오, 베트남,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곳에서 모인 학생들이었는데 대부분 같은 학교에서 단체로 왔는지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하고 전체적으로 내외하는 분위기였다. 목욕탕은 공용 목욕탕을 사용했는데 파키스탄 친구가 자기는 여태 한 번도 자신의 나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며 모든 이가 목욕을 끝마치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잠시 목욕탕에 다녀왔다.


두 번째 날에는 방직공장과 섬유 박물관에 다녀왔고, 점심으로 텐동을 먹은 뒤 후쿠이시에서 주최하는 취업 박람회에 다녀왔다. 생산하여 판매하는 공장이 대부분이라 나와 Isa는 별 흥미가 없었고, 두세 개의 설명회를 들은 뒤 주변에 있는 양호관 정원에서 잠시 산책을 했다. 양호관 정원(養浩館庭園, Yokokan Teien)은 이전에 Chiyo가 가 보라고 추천해 준 곳인데 한적하고 조용하니 분위기가 참 좋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니시야마 공원(西山公園, Nishiyama-kōen)을 잠시 들렀는데 거기서 난생처음으로 레서판다를 보았다. 처음 본 레서판다는 정말 귀여웠다. 저녁으로는 말레이시아 음식을 챙겨주셨고 후쿠이에서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하루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날은 오전에 에치젠 지역에 사는 주민들과 간담회를 했고, 맛있는 소바를 먹은 뒤 박물관과 신사를 견학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풍경(風磬) 이 가득한 찻집이었는데 수많은 풍경의 소리가 정말 아름다웠다.


현지 취업 시장에는 크게 관심이 가는 것은 없었지만 무료로 이렇게 각종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심지어 멀리서 온 학생들을 위해 교통비를 보전해 주었는데, 가장 가까이에서 온 우리도 약 10,000원의 소정의 교통비를 받았다. 정말 마음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마음 써주시는 모습이 눈에 보여 참 감사했었다. 다른 참여자들과 교류가 잦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괜찮은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담당자인 Mohamad 씨는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불러준다고 하셨다.


ㆍ 다음은 Korean Day가 있었다. 이전 German day처럼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시간이었는데, 이번 강사는 혜진, 유정이가 맡았다. 인사부터 자기소개, 숫자 및 날짜 읽는 법, 요일 읽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확실히 한국 문화가 인기가 많나 보다. 이전에 열린 행사에 비해 두 배 이상의 학생들이 참가해 강의를 들어주었다. 강의가 끝나고 Isa가 갑자기 오더니, 다음 학기에 한국에서 유학할 예정인 Hikari와 Haruna를 소개해 주었다.


ㆍ 나는 ‘현대 기업 사정’이라는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학교 수업과 연계되어 전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고 수강 신청했는데 모교에서 전공 인정은 되지 않는 듯했다.


여하튼 현대 기업 사정 수업에서 현장 견학을 하는데, 마침 며칠 전에 들렀던 Luxottica 공장을 견학한다고 했다. 이미 공장의 세세한 부분을 다 보았기에 한 번 더 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듯하여 그 수업을 자체 휴강하고 방에서 쉬었다.


ㆍ ‘KOICA 개발 협력 좋은 일자리’에서 개발 협력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일단 동아프리카 초급전문가에 등록 신청했고, 여타 다른 직위도 한 번 지원해 보았다. 역시 국제기구로의 길은 넓고 많았다. 역시나 나는 눈을 다시 해외로 돌리고 싶다. KOICA 코디네이터도 좋고, UN이나 OECD 등 다양한 관계 기관을 겪어보고 싶다.


또한, 직장을 가져서도 부업을 가지고 싶다. Online으로 한국의 물건을 일본이나 다른 국가로 판매해 보고자 한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Amazon이나 Shoppe 등의 판매 방법을 한 번 연구해 보아야겠다.




유학) D+89 2022. 6.29. (수)


ㆍ 학교 식당에서 작은 행사를 준비했다. 여태까지 잘 팔렸던 음식을 추첨하여 다시 학생들에게 재판매하는 행사를 했고 학교에서는 붕어빵을 판매했다. 교내 식당에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이 재미있다. 붕어빵을 사서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학식은 금세 질려버리고 말았다. 가격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사실 음식 구성이나 맛이 거의 똑같다. 매일 튀긴 음식이 나오고, 심지어 대부분 튀김이 겉모습만 다를 뿐 맛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학식에서는 음식을 안 먹으려 한다.


ㆍ 학교에서 유학생을 상대로 안전 교육을 시행했다. 모든 유학생을 한 곳에 모았는데 생각보다 후쿠이 대학 내에 유학생들이 꽤 많았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 유형과 대처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혹시 신변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고 체계 등을 알려주셨다.


ㆍ 후쿠이 역 근처에서 멜론 행사를 진행한다는 안내를 보았다. 그래서 Isa, Julia와 같이 행사가 열리는 날 아침 행사장으로 향했다. 후쿠이 역 주변엔 자그마한 광장이 있는데 항상 식품 박람회를 하거나 기업 전시회가 열린다. 아침 일찍 도착했음에도 행사장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2000번대의 입장권을 받아 행사장에 들어왔다. 멜론 관련 행사이다 보니 멜론 빵, 멜론 음료, 멜론 빙수 등 다양한 음식이 가득했고 우리는 멜론 빵과 멜론 빙수를 하나씩 사 먹었다. 설빙에서 판매하는 빙수와 커다란 차이점은 없었지만 무더운 하늘 아래서 떠먹는 빙수는 확실히 더 달게만 느껴졌다. 행사 이후 그냥 숙소로 가기는 그래서 후쿠이시 미술관을 들렀다. 미술관에서 이것저것 전시물을 관람한 뒤 주변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잠시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Shuka, Kazune, Yamazaki, Yuzuki, Julia, Yucheng, Isa, Taisuke와 함께 타코야키 파티를 열기로 했다. 타코야키와 동시에 내가 한국 음식을 몇 개 요리해 줄 생각이었다. Mega Don Quixote에서 타코야키 재료, 술, 떡볶이 재료, 라면 등을 샀고 Taisuke의 집에서 맛있게 요리해서 먹었다.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떡볶이와 짜장라면을 요리해서 주었는데 정말 맛있게 잘 먹어 주더라. 잘 먹어 주어 정말 고마웠다. 타코야키는 반죽이 너무 묽어 거의 계란빵 비슷한 맛이 났는데, 나중에는 고추냉이를 잔뜩 넣어 벌칙 놀이를 하기도 했다. Isa, Julia, Yucheng은 일본어를 잘 못하는 편이고, 사실 일본인 친구들도 영어를 거의 못 하기에 내가 통역 비슷한 역할을 계속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벌칙 놀이를 몇 개 가르쳐 주고, 같이 Tiktok 영상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거의 밤을 새울 듯이 이야기를 하더니, 12시가 되니 다들 슬슬 집으로 돌아갔다. 나와 Isa는 끝까지 남아 Taisuke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갔다. 조만간 Taisuke를 따라 그의 고향인 토야마를 같이 방문하기로 했다. 친구들이 한국 음식에 만족해 주어 정말 다행이다.


ㆍ 학교 제도 중에 U-pass라는 제도가 있다. 유학생들이 혹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U-pass를 통해 선배 튜터를 정할 수 있고, 한 시간 동안 그 튜터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할 수 있다. 딱히 궁금한 것은 없었지만 한 번 그 제도를 이용해 보고 싶어 Haruna에게 U-pass를 신청했다. 당일이 되어 Haruna에게 이력서를 쓰는 방법을 물어보았고, 혹시 일본 회사에 면접을 볼 때 어떤 말투로 답변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았다. Haruna는 2022-2학기부터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이제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이라 나에게 한국에 대한 많은 정보를 물어보았다. U-Pass 시간이었지만 Haruna가 가르쳐주는 시간 반, 내가 가르쳐주는 시간 반을 썼다. 저녁은 Haruna, Kimi와 함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ㆍ 매주 수요일마다 국제과에서 일본어, 영어 교류회를 가지고 있다.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행사에서 30분은 일본어로, 30분은 영어로 주제에 맞는 대화를 하면 된다. 두 언어 다 외국어인 나도 매주 참여해 다른 학생들과 교류하고 있다.




유학) D+96 2022. 7. 6. (수)


ㆍ 교환학생의 기간이 점점 끝나감을 느낀다. 이번 달이 끝나면 후쿠이시에서 정규 학기가 끝나고, 다시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감을 느끼면서 가끔은 아쉬움과 무기력함이 휘몰아친다. 시간이 부족하니까 하루라도 더 빨리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보고, 다양한 곳을 가 보고 싶다.


ㆍ 7월이 시작되면서 Isa, Julia와 그동안 미뤄왔던 ‘나고야시’를 방문했다. 나고야의 전체적인 느낌은 사람들은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7월의 나고야는 너무나도 더웠다.


나고야는 Abdi의 여자 친구 Sagit가 있는 곳으로, Abdi가 몇 번이나 나고야 관광을 추천했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마다 묵는 숙소, 맛집 등을 미리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후쿠이에서 시외버스 한 번이면 나고야에 닿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시외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 커다란 화장실이 있어 굉장히 놀랐었다. 나고야는 된장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나고야에 오자마자 그 유명하다는 미소 돈가스부터 사 먹었다. 생각보다 맛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일본다운 맛이었다. 숙소는 Abdi가 추천해 준 장소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좁았다. 나와 Isa는 목요일에 도착했고, Julia는 금요일에 이곳에 올 예정이었는데, 3명이 함께 한방을 쓸 수 있을까 싶었다.


다음 날에는 Peanuts cafe가 있다고 해서 점심에 찾아갔다. 나는 Isa가 Peanuts 만화에 관심 있는지 몰랐었는데 이전에 Mega Donki에 갔을 때 Peanuts 반소매 옷을 사는 것을 보고 Isa의 취향을 따라 이곳을 와 보기로 마음먹었다. 예상대로 Isa는 정말 좋아했다. 곳곳에 있는 Snoopy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Peanuts 주인공으로 꾸며진 음식도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나고야는 항구 도시로 수족관도 유명하다. 우리는 당연히 수족관을 들렸고,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돌고래, 펭귄, 해파리 등 각종 해양 생물들을 천천히 살펴보았고, 돌고래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저녁으로는 수족관 근처의 한 노포에서 우동을 먹었는데, Isa는 일본에서 먹은 우동 중 제일 맛있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다음 나고야 바다를 예쁘게 수놓고 있는 놀이공원을 들렀고, 그곳에서 나고야 바다를 한참이나 구경하다 다시 숙소로 향했다. 밤에 Isa는 자기 모교의 한 단체와 Online 회의가 있다고 했고, 나는 Isa가 회의하는 동안 나고야역에 Julia를 배웅하러 나섰다. 밤늦게 Julia를 만나 호텔 수속을 도와주었고, 저녁 식사로는 나고야에 유명한 테바사키(手羽先, Tebasaki; 닭튀김)를 먹으러 갔다. 테바사키는 후추 향이 너무나도 강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기대보다는 약간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저녁에는 닭튀김, 맥주 한 잔으로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아침에 일어나 지역 시장인 오스 상점가(大須商店街, Osu Shopping Arcade)를 들렀다. 나고야는 또 단팥 식빵으로 유명한데, 늦은 아침 식사로 Konparu에 들러 단팥 식빵과 샐러드를 주문해서 먹었다. 아침을 먹은 뒤 오스 상점가를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니 한류 상품을 파는 상점이 많았는데, 어디든 정말 사람들이 가득했다. 해외에서 이렇게 한류 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정말 좋은 사업 품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체력을 금방 다 써버렸고, 숙소에 돌아와 잠시 쉬다가 지하철을 타고 나고야 성으로 향했다. 나고야 성은 정말 평온한 분위기였다.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주변에 머물러 평화로운 분위기의 나고야 성의 풍경을 한참이나 감상했다. 저녁은 Abdi를 만나 같이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나고야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Sagit를 다시 만났고, 그들이 좋아한다는 인도네시아 음식점에서 요리를 잔뜩 시켜 먹었다. Abdi가 알아서 주문했고 나오는 대로 맛있게 먹었는데 대체로 요리가 매워서 땀을 정말 많이 흘렸다. 낮에는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고, 저녁에는 음식이 매워서 땀을 흘리니 정말 몸에 수분이 다 날아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Abdi는 나고야에서도 자신들을 만나줘서 참 고맙다며 음식값을 모두 계산해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Abdi에게는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


원래는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는 나고야에서, 월요일은 시가현을 들렸다가 다시 후쿠이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비가 계속 내리고, 모두의 체력 문제로 그냥 후쿠이로 하루빨리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줄어든 만큼 나고야를 더 즐기기로 하여 일요일에는 나고야시 과학관에 들렀다. 마지막 점심으로는 텐무스(天むす Tenmusu; 새우튀김 주먹밥)를 먹으러 가려고 했지만,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 급히 오키나와 풍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과학관으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식용 벌레를 판매하는 자동판매기를 보았다. 정말 놀라웠다. 벌레를 판매하는 자판기라니, 일본은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관은 일본어를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끔 체험 형식의 기구들이 많았다. 과학관은 무려 6층짜리 건물이었는데 6층은 천체투영관(planetarium)이 있었다. 1~5층의 과학 체험실을 모두 들러보고, 마지막으로 6층 천체투영관에 갔는데, 낮에 너무 돌아다닌 탓인지 어두운 곳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조금씩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장에 박혀있는 많은 별을 보며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 과학관을 나와 잠시 간식을 사 먹고선 다시 후쿠이로 돌아왔다. 이렇게 나고야 여행은 끝이 났다. 전체적인 소감으로 느낀 점은 혹시 미래에 나고야에 살게 된다면 참 좋은 환경 일 듯하지만, 여행지로서의 매력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원래는 나, Isa, Julia 이렇게 세 명이 함께 한방을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방이 좁아 같이 밤에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친구들과 참 좋은 시간을 보냈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ㆍ‘Kiyoka’라고 하는 친구와 친해졌다. Instagram 친구가 무려 5,000명이 넘는 kiyoka는 패션 관련해서 사진을 올리곤 하는데, 덕분에 가끔 의류 회사에서 후원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한 연예인에게 초대받아한 브랜드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조만간 지역 방송국의 라디오 DJ를 맡아 진행을 하기로 한다고 했다. 참 대단하고도 독특한, 재미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자기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를 만나 연애 상담을 하고 있기에 한참이나 Kiyoka들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렇게 당당하고 사회적으로도 작은 성공을 거둔 친구가 작은 사랑 앞에 설레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ㆍ저번 후쿠이 신문 취재에 응한 것이 기사로 실렸다. 월요일 아침에 운동 수업을 들으러 교실에 가니 교수님이 신문을 한 부 들고 오셨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직접 내 기사가 실린 부분을 하나하나 읽어주셨다. 참 감사하기도 하면서 민망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말 놀랐던 것이 이날 기사를 봤다는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다. 딱히 친구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는데 Hibiki가 내게 와서 신문을 봤다고 하고, Emika도 신문을 보았다고 했다. 말레이시아 교류협회 담당자인 Mohamad 씨에게도 신문 보았다는 연락이 왔고, 한국인 이은정 선생님께도 또 따로 연락이 왔다. 작은 신문사인 줄 알았는데 정말 영향력이 대단한 듯했다. 정말 신기했다.


ㆍChika의 졸업 논문 작성 취재를 도와주었다. 일본어를 배운 기간, 배운 방법, 일본어의 つ와 ちゅ, ず와 じゅ 발음 차이 등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생각보다는 간단한 질문이라 대답하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아무쪼록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ㆍ슬슬 귀국 이후의 생활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오는 듯하다. 원래 계획했었던 KOICA 코디네이터 지원은 국내 영어 점수가 없어서 지원 자체가 힘들었고, YP 역시도 근무 기간의 문제로 이번에는 지원이 힘들 듯했다. 더해서 KOICA 동아프라카 실 초급전문가 지원은 탈락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GTEP 김귀옥 교수님을 통해 한국계 해외 기업을 노려보고자 한다. 어떻게든 길이 생기리라 생각하고, 또 확신한다. 더 좋은 기회들이 내게 찾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학) D+103 2022. 7.13. (수)


ㆍ 며칠 전에는 Kiyoka와 Kinoshita를 만나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Kinoshita는 얼마 전 후쿠이, 수원 시민 교류회에서 알게 된 청년이었는데, 한국어를 잘하는 남학생이다. 후쿠이 대학을 졸업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선배이다. Kiyoka를 통해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고,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무엇을 먹고 싶냐기에 이전의 기억을 살려 말레이시아 음식점인 Rasa Sayang으로 향했는데, 워낙 이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음식이나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낮에 Isa가 준 강장제 때문인가, 가슴이 너무 두근거렸다. 결국, 음식을 먹다가 오랜만에 공황이 왔고 잠시 밖으로 나가서 먹은 것들을 전부 게워내고 말았다. 정말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가끔 이렇게 불안 증세가 올라와서 내 삶을 괴롭힌다. 이 고통을 벗어나고 싶다. 그래도 속을 게워내니 조금 낫더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찍 기숙사에 들어와서 쉬었다. 언제쯤 내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이 될 수 있을는지. 혹시 내 몸에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 된다.


ㆍ 일본에서는 타나바타(七夕, Tanabata; 칠월칠석)를 건실히 챙긴다. 다도부에서는 칠월 칠석을 맞아 행사를 하기로 했고, 다도부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후쿠이 국제 교류회관의 화실을 빌렸고 그곳에서 다도 시음회를 열었다. 신입생들이 돌아가며 경건히 차를 내주었고, 나는 이번에도 손님의 역할로 차를 맛있게 받아 마셨다. 다도회에서는 항상 다과로 고급 과자를 준비해 주는데, 먹을 때마다 정말 황홀하다. 이번 행사에는 물양갱을 준비해 주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타나바타 행사 때는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종이에 적어 대나무 숲에 달아 놓는 게 전통이라는데, ‘많이 놀러 다니기’, ‘Team lab 전시회 가 보기’ 등 소소한 소원을 적어 놓았더라. 그 사이에 나도 안전한 일본 생활을 기원하는 종이를 끼워 넣었다.


고풍스러운 방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니 정말 기분 좋았다. 그리고 차를 대접받을 때의 정확한 예절을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다.


ㆍ 선거를 며칠 앞둔 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익명의 사람에게 암살을 당했다.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범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는데,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그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암살을 해 버린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에 속하는 일본이, 대낮에 최고 권력자가 총에 맞아 사망하다니. 아베 신조의 정치적 신념이 어떻든지 개인적으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천년의 권력을 누릴 듯하던 한 사람이 정말 순식간에 목숨이 빼앗겼다. 인생 참 덧없고 허무함을 느낀다.


7월 10일에는 일본 선거가 있었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평일인 일요일에 선거한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그날 Wonder forgel 등산 동아리에서는 이전 축제에서 거둬들인 수익금을 사용하는 행사를 기획한다고 했다. 나는 Kimi를 따라 그 행사에 참여했다. 일본 친구들에게 투표했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하지 않았더라. 동아리는 BBQ를 준비했는데, 재료를 사는데 수익금 60,000엔을 사용하였고, 더해서 음료와 채소, 각종 물품 등 해서 총 80,000엔어치의 장을 보았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사 온 고기를 마음껏 먹었고, 오후에는 알아서 배구나 피구를 하고 놀았다. 고기를 다 먹고 Julia가 숯불에 마시멜로를 구워줬는데, 정말 달콤하고 맛있었다. 먹고 남은 음식은 학교에 도착해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웬일인지 다들 받아 가기를 원치 않기에 나 혼자 고기를 잔뜩 받아왔다.


ㆍ 다음 날은 태순이의 생일이었다. 태순이 생일을 맞아 어제 받아 온 닭고기를 건네었고 밤에는 역시 태순이를 위한 잔치를 했다. Isa와 Nicole이 태순이를 위해 직접 케이크를 구워 준비해 놓았다. 한가득 음식을 가득 먹고, 나는 Kiyoka, Sana, 유정이와 같이 노래방을 갔다. 일본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지만 워낙 K-pop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한국 노래만 주야장천 부르고 왔다.




유학) D+109 2022. 7.19. (수)


ㆍ 시간은 정말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렇게도 그려왔던 교환학생 생활이 거의 끝나감을 느낀다. 어느덧 모든 수업이 종강만을 남겨 놓고 있고, 또 며칠 후면 일본에서의 짧은 여름 방학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전공 학점이 몇 학점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간다면 어떻게든 또 직장을 잡고 취직을 해야 한다. 일본에서 자리를 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조금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 무한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확실히 한국에 돌아가서 또 다른 미래를 도모해 보고자 한다. 후쿠이에 와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친절을 받았고 부족한 대답을 하려 애썼다. Isa 역시도 나와 충분히 많은 것들을 주고받았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슬슬 마지막을 준비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ㆍ Isa, Taisuke와 함께 ‘토야마 시’를 가게 되었다. 이전에 Taisuke가 조만간 본가인 토야마 현으로 돌아간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는데, 참 고맙게도 나와 Isa를 토야마까지 데려다주었으며, 토야마에 있는 동안 우리의 여정을 함께해 주었다.


비가 잔뜩 오는 날 우리는 Taisuke의 차를 타고 토야마로 향했다. Taisuke 집 주변에 있는 호텔에 수속을 하고, 동네에서 유명한 중화 우동 가게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우리가 사려고 했는데, 마침 Taisuke가 상품권이 있다며 저녁도 우리에게 사 주었다. 숙소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공원인 카이노마루 공원(海王丸公園, Kaiō-Maru koen)을 같이 산책하고, 야경이 예쁜 칸스이 공원(環水公園, kansui koen)에서 같이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Taisuke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직접 보여주었다. 논밭 한가운데 학교가 있고,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학교였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했다. 토야마에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는 방이 없어 흡연실에 입실했는데, 담배 냄새가 강하게 나서, 쉽게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다음날도 점심 즈음에 만나, Haruna가 추천해 준 Kheir이라는 음식점에서 같이 늦은 점심을 먹었다. 토야마 이미즈시에서 유명한 타카오카 대불(高岡大仏, Takaoka Daibutsu)을 같이 보고, 히미 시에 있는 아마하라시 해안(雨晴海岸 Amaharashi Kaigan)을 같이 보았다. 원래는 만년설이 보이는 곳이라고 했지만, 날씨가 흐려서 멀리 있는 산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토야마의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이후 쿠레하산 전망대(呉羽山, Kurehasan)에서 토야마 시의 전역을 구경하고, Kureon이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우리의 일정은 끝이 났다. 토야마의 많은 곳을 보여준 Taisuke에게 정말 고마웠다.


숙소에 들어와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Isa와 길을 나섰다. 토야마는 흰 새우가 유명한데, 사실 새우를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원래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러 가려했지만, 가게가 문을 닫는 바람에 보이는 가게 아무 곳이나 들어갔고, 거기서 우연히 흰 새우의 맛을 보게 되었다. 흰 새우는 회로도, 튀김으로도 먹을 수 있었는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음식점의 사장님도 외국인인 우리에게 각종 음식을 권해주셨고, 주변에 들러 볼 만한 곳도 몇 군데 더 추천해 주셨다. 우리 눈에 띈 곳은 미국인이 운영하는 칵테일 바였는데, 식사 후 그곳에 들려 맛있는 칵테일을 한 잔 더 마셨다.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다음날은 토야마 시의 유명한 음식인 Black ramen을 먹고, 산책을 조금 한 뒤 가나자와를 거쳐 후쿠이로 돌아왔다. 카나자와에 들른 김에 이전에 같이 가 보고 싶었던 21세기 박물관에 들렀는데, 마침 한국 작가가 전시하는 게 있어 잘 한참이나 둘러보았다. 한국 작가는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커다란 화면에 류준열 배우님이 연기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 서서 그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일본 땅 한가운데서 한국어로 연기를 하는 류준열 배우를 보니 참 이질감이 많이 들었다. 후쿠이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저번에 먹어보지 못한 카나자와의 Black curry를 먹어보았다. 후쿠이로 돌아온 뒤에는 미나미 에치젠에서 열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려고 했지만, 우리 생각보다 불꽃놀이 시간이 너무 짧았고 오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불꽃놀이는 다음 기회에 보기로 했다. 행사장까지는 약 한 시간을 넘게 갔어야 했지만 불꽃놀이는 20분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고 했고, 자동차를 타고 행사장에 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중간에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었기에 시간이 아슬아슬 맞지 않을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다음날도 일정이 조금 빡빡해서 사실 나도 쉬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내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꽃놀이를 위해 토야마에 있을 때부터 굉장히 서둘렀기 때문에 Isa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우리의 이번 여정은 정말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토야마에서 흰 새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웠지만 우리가 예약한 숙소에는 흡연실밖에 없었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2박의 연박을 하려면 비흡연 객실은 없고 흡연 객실을 사용해야 했는데 방 안에 담배 냄새가 거의 스며들어 있었고, 숙소 자체도 오래되어 신축 건물로 이전할 예정이라 건물 자체도 많이 낡은 축에 속했다.


ㆍ 다음 날은 Kinoshita를 만났다. 원래는 Kinoshita와 물놀이장을 가 볼 생각이었으나, 갑자기 Kinoshita가 발을 다치는 바람에 실내에서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전에 가고 싶었던 사카이시의 인도 요리점, ‘Sapna’에 가서 맛있게 인도 카레를 먹었다. Kinoshita는 곧 있을 휴가를 맞아 한국에 일주일 정도 관광하러 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서울의 이곳저곳을 물어보더라. 나도 알고 있는 한 요령껏 대답해 주었다. Kinoshita는 학부생 시절 서울 한양대학교에 교환학생을 갈 예정이었으나 일본에서 출국하기 전날 코로나바이러스 19 사태가 심각해져 파견이 취소되었고, 결국은 한국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2년 만에 가 보는 한국이 어떨까 참 기대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Kinoshita와 점심을 먹은 뒤 정말 멋진 바다 풍경이 보이는 에치젠 해안의 한 찻집, Mare에 들렀고, 또 우리는 한국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Kinoshita 역시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다음에는 Isa와 같이 만나기로 약속했다.


ㆍ 재성이 형이 결혼했다. 나 귀국하고 난 이후에야 결혼한다던 사람이 갑자기 애가 생겨 급하게 결혼을 준비하더니 빠르게 해 버렸다. 형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배 속에 있는 아기 뽀야도 무럭무럭 잘 자랐으면 좋겠다.




유학) D+114 2022. 7.24. (일)


ㆍ 학기가 끝나가는 와중 졸업반인 Sana와 Ayaka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Kiyoka가 가끔 일하는 Siam style resort에 들리려고 했는데, 가게가 영업하지 않아 주변에 있는 인도 음식점에서 식사했다. 밥을 먹고 시간이 조금 나아 아스와야마에 있는 동물원을 잠시 들렀다. 후쿠이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원이라 입장료가 무료였는데, 카피바라, 기니피그, 거북이 등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동물원에 벽이 없어 동물들은 그냥 바닥에 알아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언제든지 다가가서 만지거나 먹이를 줘도 괜찮았다. 동물원 바닥을 걷다 나도 모르게 동물의 발을 밟아 버릴 것 같아 정말 조심하며 다녔다. 동물들은 무척 귀여웠다.


ㆍ 귀국 설명회를 들었다. 귀국 전에 해야 하는 각종 서류 정리에 대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시간이었다.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참으로 길었지만 돌아보면 짧았던 5개월의 시간. 아직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결코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돌아간다면, 나는 바로 현실을 느낄까. 앞으로의 일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것저것 고민이 많아진다.


ㆍ 학교에서 SDGs와 관련된 행사를 열어서 참석해 보게 되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저번에 다녀온 기업 설명회와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SDGs에 관련된 기업 몇 개를 초청하여 돌아가며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행사였다. 역시나 제조업의 회사가 대부분이라 크게 눈길이 가는 회사는 없었다.


행사가 끝난 후 Kinoshita, Isa와 저번에 가 보지 못한 Siam style resort 식당에 다녀왔다. 식당은 독특하게 미국 달러화의 환율에 따라 음식값을 계상했다. Kinoshita는 내가 일본에서 만난 남자 친구 중에 가장 잘생긴 친구라고 생각한다. Isa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미국식 음식을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ㆍ Yumi의 회사에서 작은 축제를 한다기에 Isa와 같이 놀러 갔다. 행사장까지 거리가 꽤 멀어서 후쿠이 철도를 타고 도착하니 학교에서 약 2시간이 걸려 겨우 도착했다. 행사장에선 예나 음식을 팔고 있었고, 전통 놀이 기구가 있었으며, 손톱을 꾸며주는 공간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손톱 꾸미기 직원들이 후쿠이 지역의 아이돌이라고 했다. 행사장의 한구석에는 Miwa 선생님은 도수 치료를 하고 있었고, 어떤 곳은 장수풍뎅이를 나누어주는 곳도 있었다. Yumi는 내게 하나 가져갈 것을 권하였지만,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어서 그냥 거절했다. 그곳에서 Yumi의 회사 지인을 만나고, 나중에 친구들에게 줄 향초를 몇 개 샀다. 참 고맙게도 돌아오는 길에는 Yumi가 후쿠이까지 다시 데려다주었다. 곧 일본 땅을 떠나는 것을 알게 된 Yumi는 가기 전에 식사를 한 끼 꼭 하자고 한다.


ㆍ 다음 날에는 이은정 선생님의 주최로 한일 차 문화 교류회가 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기모노를 입고 전통차를 시음하는 행사였는데, 다도부에서 몇 번 차를 마신 경험이 있어서 크게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점심은 Kinoshita, 유정이와 함께 먹었고 행사장에서는 기모노를 하나 빌려 입었다. 행사가 끝나고 난 뒤 내가 입은 기모노를 선물로 준다고 해서 하나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은정 선생님께서 약밥과 냉면을 하나씩 챙겨주셨다. 항상 무언가를 챙겨주시는 선생님. 참 감사했다.


혜진이는 학기가 끝나는 동시에 후쿠이를 떠난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기회였는데 내게 편지를 하나 내밀었다. 친구들도 이제 슬슬 떠나감을 느낀다. 행사가 끝나고 Kinoshita, 유정이와 함께 저번에 갔었던 에치젠 해안의 Mare로 향했다. 에치젠 해안은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음료와 아까 받은 약밥을 먹고선 다시 후쿠이로 돌아왔다. 일본 생활 끝까지 항상 좋은 추억을 잔뜩 만들어 주는 모두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ㆍ 7월이 점점 끝나가며 아쉬운 것들이 정말 많다. 그중 가장 아쉬운 것은 Isa와의 관계이다. 처음 맺는 서양인과 깊은 관계였지만,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끝은 점점 다가오고 있고, 타오르는 불꽃도 점점 꺼져감을 느낀다. Isa 없는 후쿠이의 삶과 생활은 과연 어땠을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 이별을 고하는 것 참 힘들기만 하다. 몇 번을 겪었음에도.


Isa를 필두로 다른 친구들과의 안녕도 슬슬 이야기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유학) D+121 2022. 7.21. (일)


ㆍ 최근 후쿠이 대학 의학부에서 진행하는 흥미로운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면 시 뇌파 측정에 관한 연구였는데, 후쿠이의 한 고급 호텔인 Fujita hotel에서 하루를 묵으며 잠만 자면 된다고 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하게 되었다. 별안간 연구 참여에 관한 연락이 왔고, 실험에 참석하게 되었다. 숙소는 후쿠이 대학 측에서 전부 준비를 해 주었고, 그냥 나는 가서 씻고 잠잘 준비만 하면 된다고 했다.


2022-1학기의 마지막 주. 월요일 두 개의 수업을 완전히 끝마치고 Fujita hotel로 향했다. 월요일의 마지막 수업은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업으로 조마다 연구한 부분을 발표하면 되었다. 나는 스리랑카의 독특한 문화와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발표하였다. 스리랑카에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 휴일이고, 한국에서는 이사하면 이사 떡을 이웃에게 돌리고 하는 등의 발표를 했다. 마지막 발표를 마치고 Isa, Sonia, han, 태순이와 같이 Hachiban ramen을 먹고 연구에 참여하러 Fujita hotel로 갔다. 호텔까지는 Isa가 동행해 주었다. 방은 후쿠이 대학 측에서 예약해 주었기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 호텔의 꼭대기 층에 올라갔다. 목욕하고 어느 정도 잘 준비를 하고 있으니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 두 분이 방으로 들어오셨다. 이번 실험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 주신 다음, 정말 간단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정말 간단했다. 한 자릿수의 숫자 두 개를 더하는 문제를 2분 안에 50문제를 풀면 되었다. 이후 숫자 25개와 히라가나로 된 단어 25개를 주면서 총 50개의 단어가 적힌 종이를 받았고, 2분간 외운 뒤 주어진 1분간 여태 외운 단어를 종이에 쓰면 되었다. 10분 내외의 간단한 시험이 끝나고 몸에 장치들을 붙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하나, 빗장뼈에 하나, 머리에 하나, 그리고 뇌파를 잘 읽을 수 있도록 수모 같은 모자를 착용하고 잠을 자야 했다. 기상 시간은 7시 15분이었는데, 언제든 잠에 빠져들어도 상관없다고 하셨다. 잠잘 때까지 TV를 보아도 되고, 전화기를 만져도 된다고 하였다. 실험이라고 해서 너무 딱딱하게만 생각했었나 보다. 최근 수면 시간이 거의 새벽 2~3시로 고정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오늘은 수면 실험 연구를 하러 왔으니 조금 일찍 잠들기로 했다. 다만 종이를 하나 주면서 언제 잠에 빠졌는지, 중간에 언제 깼는지 꼭 적어달라고 하셨다.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손가락에 무언가를 달고 잠에 빠져드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겨우내 잠이 들어 새벽 3시 30분 즈음에 한 번 깬 뒤 이후 1시간 단위로 잠에서 깼다. 잠자는 것도 일종의 일이 되니 나름대로 참 고역이었다. 어찌어찌 잠을 청해 아침 7시 즈음 일어났다. 연구원분들이 와서 몸에 설치한 장치를 모두 떼어내주셨고, 전날 했던 시험을 똑같이 한 번 더 하는 것으로 실험은 모두 종료되었다. 참 감사하게도 조식권을 받아 호텔에서 조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꽤 괜찮은 대우를 받은 것 같다. 조식은 맛있었고, 배부르게 먹는 것으로 모든 실험은 마무리가 되었다. 나중에 사례비로 10,000엔도 계좌로 넣어주신다고 했다.


ㆍ학기의 마지막이다. 벌써 17주가 끝나고 학교와 내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한다. 사실 이곳에 와서 열성적으로 수업을 듣거나 하지는 못했었다.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 마지막 주의 수업은 무엇이 되든 최대한 참석해 보고자 하였다. 참 운이 좋은 것 중 하나가 이번 학기에 수강한 과목 중에 중간, 기말시험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시험에 대한 부담이 없었기에 학기를 마무리하는데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었다. 이렇게 마지막 학기도 참으로 운 좋고 편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ㆍ요즘 일본의 코로나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학교 캠퍼스에도 벌써 다수 확산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캠퍼스의 몇몇이 걸렸다고 풍문으로 들었는데 어느샌가 마키시마 하우스의 기숙사생들도 많이 확진되고 말았다.


저번 주 일요일에 차 문화 교류회가 끝나고 Kinoshita, 유정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유정이가 확진되어 버려 상황이 약간 심각했었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항체가 남아 있는지 별 증상이 없었지만, 마키시마의 다른 학생들이 격리에 들어갔다.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제과에서도 최대한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ㆍ이런 와중에 나와 Isa는 에치젠 축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포장마차 음식도 사 먹고, 시가지 행진도 보고, 작은 불꽃놀이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행사장에 꽤 외진 곳에 있었는데 근처 지하철역으로 가려면 최소 1시간은 걸어야 했다. 운이 좋다면 마지막 열차를 탈 수 있을 듯해 오는 길에는 택시를 탈 요량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관광객은 많았지만, 택시는 아예 없었고, 근처 편의점에서 도움을 구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혹시 몰라 택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지만, 행사장이 너무 외진 지역이라 되지 않았다. 걸어서 기차역에 닿은 다음에 근처에 숙소를 잡는 방법밖에는 없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한 부부가 어디로 가는지 묻더니 우리를 역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였다. 어쩜 이렇게 운이 좋았을까. 염치없이도 바로 타겠다고 했다. 태워주신 분은 한 가족이었는데 편의점에서 우리가 난처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 것을 들으셨나 보다. 정말 감사하게 시간에 딱 맞게 역까지 태워주셨다.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남편분은 Parasonic을 다니시고, 아이는 아내분은 현재 임신 중이고 하는 것 등의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마지막 열차에 오를 수 있었고, 기숙사에 도착해 푹 쉬었다.


ㆍ다음날은 Isa와 산책을 다녀왔다. 저번에 Isa가 초대되어 갔었던 이탈리안 식당에서 식사하고, 주변에 있는 아스와 산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이탈리안 식당은 기숙사에서 꽤 멀리 자리 잡고 있어 후쿠이 역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갔어야 했다. 겨우내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고, 사장님이 해 주시는 맛있는 화덕 피자를 먹었다. 사장님께서는 개업이 생각보다 미뤄져서 전날 겨우 가게를 개업했다고 하셨다. 정말 운이 좋았다. 사장님은 이탈리아 사람이었는데 일본인과 결혼하여 후쿠이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셨다. 가만 들어보니 일본어를 잘 구사 못 하시기에 염치불구하고 아내분과 대화를 어떻게 하냐고 여쭈어보니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한다고 하셨다. 사실 소통도 겨우 하는 수준이라고 너스레를 떠신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데 결혼을 하셨다니 참 대단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사랑의 힘이란.


그리고 주변에 있는 아스와 산을 두 발로 직접 올랐다. 무더위에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40분 정도 등산해 다시 카피바라, 기니피그, 거북이 등을 만났다. 하산까지 걷다가는 무더위로 기절해 버릴 것만 같아서 아스와 산의 정상까지 택시를 불러 타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더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푹 쉬는 수밖에.




유학) D+128 2022. 8. 7. (일)


<교환학생의 마지막 달>


ㆍ 어느덧 8월이다. 학기는 거의 마무리되었고, 어느 정도 신변 정리가 마무리된다면 나 역시도 이곳을 정리하고 다시 새 삶을 떠나러 가야 한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일본의 명절인 오본(お盆, Obon)을 맞아 다들 본가로 돌아가는가 보다. 수업은 일찌감치 끝이 났고, 학점 인정을 위한 서류 역시도 전부 득한 뒤 친구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이 시험을 모두 끝마치기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 인사 겸 식사를 위해 여태 만난 모든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


ㆍ 일단 부탄 친구 Damchoe가 떠나가는 친구들을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순수 손으로 만든 부탄 음식을 주었는데, 음식을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접시가 정말 수도 없이 많았다. 처음 먹어보는 부탄 음식은 스리랑카 음식과 결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고기와 채소, 렌틸콩과 밥, 손으로 먹는 수식 문화. 모든 음식이 처음 맛보는 맛이었지만 굉장히 친숙했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Damchoe 덕분에 정말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몇 친구들은 벌써 본가로 돌아갔다. 혜진이는 학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고, Nicole 역시도 몇 년 만의 모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Nicole이 떠나기 전 송별회를 준비했으나 몇몇 학생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되고, 그녀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것으로 우리의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Nicole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정말 많은 도움을 준 친구이다. 친구들의 생일잔치를 기획하고, 챙겨주는 역할은 항상 Nicole이 먼저 맡았다. 내게는 이곳 생활하면서 참 고마운 존재였다. 그녀와 다시 못 본다니 참 아쉬웠다. Nicole도 코로나에 걸려 참 고생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ㆍ Isa는 내게 저번에 약속했던 케이크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사과가 잔뜩 들어가 있는 케이크였다. 특별한 날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케이크를 받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양이 많아서 한꺼번에 다 먹지는 못했지만 하나 빠지지 않고 다 먹었다. 나는 참 행복한 일본 생활을 하는 듯하다.


그리고 ‘관광학’ 수업에서 마지막 과제로 후쿠이 관광 계획표를 만드는 과제가 하나 있었는데, Isa가 정말 많이 도움을 주었다.


ㆍ 시간이 있을 때 만날 수 있는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처음으로 교토 출신인 Kei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같이 초밥을 먹고 Kei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는데 우리에게 작은 편지지를 건네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이어서 만난 친구는 Kimi. 역시 그녀에게도 짧은 식사와 함께 행운을 빌어 주었다. 힘이 닿는 한 모든 친구와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


ㆍ PBL 수업 중 하나가 후쿠이 중앙 공원에서 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영화를 상영하는 분단이 있었다. 1970년대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 영화를 보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모금을 하는 행사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Yukino, Nanami, Shun, Keizo 등이 참여하는 행사라 꼭 참여하려고 했다. 행사장에는 나, Julia, Abdi, An, Isa, Sonia가 같이 갔다. 조금 이른 저녁으로 Uosin에서 맛있는 초밥을 먹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멋진 조명으로 장식된 행사장에서 입장 수속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크라이나 국가 연주를 시작으로 영화는 상영되었는데, 자막이 나오지 않아 몇 번이나 영화 상영을 중단했다. 영화 상영이 지연되는 동안 나와 An, Abdi와 공원 근처를 산책했는데, 편의점에서 음료 하나를 사고 돌아오니 영화의 반절이 지나 있었다. 이탈리아 음성에 일본어 자막까지 더해져 내용을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었고, 뒷자리에서 다른 친구들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가 끝난 뒤 우리끼리는 따로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저번에 Yumi, Takumi와 같이 갔었던 칵테일 바를 향했는데, 특히 Abdi가 그곳의 분위기를 흠뻑 즐기는 듯했다. 정말 좋은 곳을 추천해 줘서 고맙다며 내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살짝 술기운이 돌 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또 좋은 추억을 쌓았다.


ㆍ Isa의 친구 Terrence의 소개로 학교 주변 Tawaramachi 역 주변에서 축제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의 구성원과 똑같이 Tawaramachi 역으로 향했다. 일본의 마쯔리는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포장마차가 서 있고, 무대가 있고, 곳곳에서는 작은 물고기를 잡는 놀이를 하며, 불꽃놀이와 경품 추첨을 하는 등 거의 비슷하게 구성이 이루어져 있다.


포장마차에서 닭 요리, 카스텔라 등을 사서 먹고 있노라니 갑자기 행사장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내렸던 비는 금세 그쳤고, 많은 사람의 열기와 바닥의 습기가 행사장을 후끈 달아 올렸다.


후쿠이는 Cheer dance가 유명하다. 특히 후쿠이 상업고등학교는 영화에 나올 정도로 전국적으로 Cheer leading이 유명하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무대에서는 초·중학생이 나와 Cheer dance를 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고, 나머지는 K-pop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무대 옆에서 자그맣게 준비한 불꽃놀이를 바라보고, 경품 추첨을 하는데 생각보다 상품이 어마하게 많았다. 후쿠이의 각종 기업에서 후원받은 물건부터 포도, 멜론, 쌀, 전자기기 등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낙첨되고 말았다. 내 친구 Mizuki는 특별 선물에 당첨되어 과채 음료수를 한 상자 받아 가기도 했다.




유학) D+133 2022. 8.12. (금)


<다가오는 끝>


ㆍ Okumura, Hibiki와 net cafe에 놀러 갔다. 일본의 net cafe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당구, 다트, 만화, 노래방 등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는 멀티방 비슷한 역할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당구를 치고, 다트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 net cafe가 있는 줄 알았으면 자주 올 걸 그랬다. 친구들과 항상 어디서 무엇을 할지 고민한 적이 많았는데, 미리 이곳을 알았더라면 많이 왔을 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ㆍ Kiyoka도 만나 마지막 인사를 하기로 했다. Maruoka 성 주변에 사는 Kiyoka를 만나 한국식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내가 준비한 선물, 편지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즐겼다. Kiyoka 역시도 Sekai no owari의 음악 앨범 하나를 내게 선물해 주었다. 나는 Kiyoka에게 Starbucks 잔을 하나 선물했는데, 평소에 너무 가지고 싶어 하던 것이라며 너무 좋아했다. 밤에는 같이 불꽃놀이를 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밤늦게는 일을 마치고 본가로 돌아가는 Taisuke를 만나 선물과 편지를 건네었다. Taisuke도 우리에게 참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소중한 친구이다. 밤이 늦은 관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우리 각자 놓인 앞으로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ㆍ 후쿠이에서 가장 큰 불꽃놀이 축제인 ‘미쿠니 마쓰리’에 다녀왔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붐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엄청나게 긴장했었다. Julia, An, Sagit, Sonia 등 몇몇 유학생들과 같이 가자며 약속을 잡았는데, 개중에 몇 명이 유카타를 입을 것이라며 나에게도 유카타를 입을 것을 권해주었다. 얼마 전 한일 차 문화 교류회에서 받은 유카타를 입고 행사에 참여했다. 지역 최대의 축제인 만큼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붐볐지만, 내가 생각한 것만큼은 아니었고,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불꽃놀이의 향연을 보며 정말 일본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에치젠 철도 측에서는 10분마다 한 대씩 노상 철도를 배차해 주었고, 정말 운 좋게도 차량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에치젠 철도의 줄을 기다리면서 불꽃놀이의 Finale를 봤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하늘을 수없이 밝게 수놓는 수많은 폭죽의 향연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ㆍ 후쿠이 생활을 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던 Chika와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Chika가 사는 사바에 역에서 만나 자기가 좋아하는 서양 음식을 같이 먹었다. Chika는 지금 한국 대학으로의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자기소개서를 들고 왔기에 내가 맞춤법이나 작성법에 대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노트북이 필요하다는 Chika의 말을 따라 잠시 Chika의 집에 방문했고, 거기서 Chika와 15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도 잠시 만나 잠시 시간을 같이 보내었다. 이후로 학교로 돌아와 자기소개서 첨삭을 한참이나 도와주고, 저녁으로는 같이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또 Chika는 나에게 한국 돌아가서 먹으라며 일본 과자도 몇 개 챙겨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앞으로 한국에서 또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길.




유학) D+137 2022. 8.16. (화)


<끝의 시작>


ㆍ 정말 행복했었고, 매 순간 가슴이 뜨거웠었던 일본 교환학생 생활이 마무리되고 나는 다시 나의 터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ㆍ 일본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보게 되었다. Shibamasa world라고 아와라 시에 있는 한 유원지에서 이틀간 일해보게 되었다. Hikari의 사촌 중 한 명이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구인 글을 보고 일본에서도 일을 한번 해보고 싶어 지원해 보게 되었다. 아침 8시까지 출근을 마무리해야 했는데 회사까지는 같이 일하게 될 Kurumi 양이 내 출퇴근을 도와주었다.


첫 출근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교정을 한 바퀴 뛰었다. 이후 목욕을 하고 Nittazuka 역으로 향했다. Kurumi 양의 자가용을 타고 회사에 가서 서류 작성을 한 후 근무복을 받고 간단한 서비스 교육을 받은 후 바로 근무에 투입되었다. 일본어로 일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라 확실히 긴장이 많이 되었다. 다행히도 청소가 업무의 대부분이라 고객을 응대할 일이 많이 없어 다행이었다. 내가 맡게 된 곳은 캠프장이었는데, 아침 시간에는 밤새 쌓인 쓰레기들의 분리수거를 돕고, Cabin을 청소하는 일을 했다. 일한다는 긴장감과 왠지 모를 스트레스에 휩싸여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는 신물이 올라오고 현기증이 생기며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괜히 일한다며 객기를 부린 것일까, 약간은 후회되기도 했다. 게다가 바깥 날씨가 너무나도 더워 자주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실내의 휴게실은 또 너무 추웠다. 추운 곳과 더운 곳을 계속 왕래하다 보니 체력이 완전 바닥이 나고 말았다. 겨우 버티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억지로 몇 모금을 삼키고 잠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근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니 상태가 많이 좋아져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일본은 아직도 근무 시간 표시를 손으로 표시하고, 점심 도시락을 직접 싸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전에 준비하는 시간도 모두 근무 시간으로 인정해 준 것은 참 인상 깊었다. 일본의 직장이라고 하면 정말 엄격한 분위기일 듯했는데, 생각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헐거워서 놀랐다.


그리고 Chiyo와 Hibiki와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이전에 만난 Okumura가 일하는 오코노미야키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선물을 교환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특히 Hibiki는 일본 생활하며 내게 참 많은 도움을 준 친구라 마지막으로 인사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르바이트는 이틀간 이어졌다. 전날과 달리 일본에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 비가 억수같이 왔지만, 여전히 출근은 했고, 사람들은 캠핑을 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캠프장의 여러 곳을 청소하고 다녔다. 비가 쏟아지고 날씨가 흐리고 추워서 그런지 본부에서는 stew를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정말 정말 맛있게 먹었다. 비가 오는 탓에 퇴근을 조금 일찍 시켜주셔서 조금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틀간의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다. 덕분에 참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ㆍ 다음날은 Isa와 시가현으로 즉흥 여행을 떠났다. 원래는 이틀간 일했던 Shibamasa World에 가려고 했다. 그래도 이틀간 일했다고  피로가 많이 쌓였는데 다음날 늦게 일어나 물놀이장을 가는 것은 조금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근처 시가현으로 여행을 떠났다. 시가현의 나가하마시로 갔는데, 그곳에서 유명한 놋페이 우동을 먹고, 비와호 산책을 한 뒤 잠시 그 호수에서 수영했다. 적당한 온도에 해가 지는 비와호에서 수영하니 너무나도 행복했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다시 후쿠이로 돌아와 푹 쉬었다.


ㆍ Momoka도 우리가 귀국하기 전 얼굴을 꼭 한 번 더 보자고 했다. 그래서 그녀와는 유리공예 박물관에 들렀다. 후쿠이의 한 산 중턱에 있는 미술관에 들러 밥도 먹고 공예품도 관람하며 시간을 보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Momoka는 우리는 위해 편지와 선물을 준비했었다. 참 고마웠다. 같이 유리공예를 했는데, Isa와 Momoka는 고양이를 색칠했고, 나는 자그마한 부엉이를 꾸몄다. 나중에 완성이 되면 Momoka가 국제 우편으로 우리에게 보내준다고 했다. 고마웠다. 유리공예를 하는 도중 비가 많이 쏟아졌는데, 공예를 도와주신 선생님께서 우리를 역까지 데려다주셔서 편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녁에는 중국인 Han이 우리를 불렀다. Han 역시 중국 음식을 가득 요리해서 우리에게 대접해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유학) D+139 2022. 8.18. (목)


<정리>


ㆍ Kiyoka, Ayaka, Sana를 만나 팬케이크를 먹으러 간 날이 있었다. 근데 이날은 몸 상태가 정말 너무너무 좋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먹으니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고 또 잠이 쏟아졌다. 친구들과 팬케이크를 먹으며 약 한 시간쯤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정말 도저히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변기에 토를 해가며 정말 억지로 시간을 버티고 기숙사로 돌아와 쉬었다. 정말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낀다. 스트레스 때문인 걸까. 위장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몸에 정말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래서 제산제를 하나 사서 섭취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것이라도 해야 한다.


ㆍ 동사무소에 가서 마지막 신변 정리를 했다. 전출 신고를 하고 국민 보험금을 마저 냈다. 그리고 마키시마 하우스에서 마지막 송별회를 했다. 모든 유학생과 일본인 친구들이 모여 피자와 술을 곁들였고, 평소에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적어 서로 교환하는 것으로 잔치는 마무리되었다. 이곳에서 일본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Juno, Yukino, Nanami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송별회에서는 누군가와 소통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에 더욱더 많은 공을 들였다. 5개월간 정들었던 마키시마 하우스의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으며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별회가 끝나고 나는 꽤 많은 숫자의 편지를 받았다. 며칠째 이어지는 강행군과 같은 일정에 받은 편지를 다 읽자마자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ㆍ 다음날 나는 후쿠이 생활하며 정말 많은 도움을 준 Miwa, Yumi와 만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레 Yumi가 코로나바이러스 밀접 접촉자가 되는 바람에 Miwa 선생님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이후에 후쿠이에 다시 찾아갈 것을 약속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와중에 Yumi를 잠시 찾아가 작게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다음에 꼭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전기 검침을 마치고 나를 찾아온 Okumura에게도 마지막 인사와 선물을 건네었다.


저녁에는 Abdi, Julia, Damchoe, An과 함께 LPA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친구들에게도 내가 준비할 차를 나누어 주었는데, 결국 An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내일 나와 Isa, Julia는 후쿠이를 떠날 예정인데, 우리를 배웅하러 역으로 와 준다고 했다. 참 고마웠다. 밤에는 Shuka와 Kazune가 찾아왔는데 그 친구들과도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작은 편지와 함께 자그마한 꽃다발을 선물해 주었는데, 아무렴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나는 후쿠이에서 사귄 모든 친구와 인사를 나누었다. 고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행복하고, 참 아쉬웠다. 많은 감정이 내 몸속을 타고 들어갔다. 하루에 약속이 무려 네 개나 있었다. 겨우 일정을 끝마치고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유학) D+140 2022. 8.19. (금)


<마키시마 하우스를 떠나며>


ㆍ 마키시마 하우스를 떠나는 날이다. 전날 밤늦게까지 약속이 있었기에 아침 늦게까지 푹 자고 전기 및 가스 등 세금 처리를 한 뒤 Jun과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예전에 오사카에 갔을 때 라면 박물관에서 만든 라면을 먹었는데, 너무나도 긴장한 탓일까. 거의 입에 대지도 못하고 다시 누워 낮잠을 잤다. 오사카로 출발하는 버스가 5시 차였기에 3시 즈음 일어나 슬슬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였고, Isa가 많이 도와준 덕에 정말 겨우 준비를 마쳐 마키시마 하우스를 나올 수 있었다.


에치젠 전철역까지는 Bryan과 유정이가 배웅해 주었고, Abdi, An, Terence는 우리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다.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고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오사카로 출발했다.


나와 Isa는 오사카를 거쳐 고베로 향할 예정이었고, Julia와 Shiba는 오사카에서 같이 하루를 묵은 뒤, Julia는 프랑스로, Shiba는 다시 후쿠이로 돌아간다고 했다. 약 세 시간 즈음을 달려 오사카에 도착해 Julia, Shiba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고베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사카에서 고베까지는 많이 멀지는 않았고 우리는 예약해 놓은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저녁을 먹고 쉬었다. Terence가 마지막 선물로 우리에게 치즈 케이크를 선물해 주었는데, 도착한 저녁 숙소에서 편하게 쉬었다.


ㆍ 원래는 9월 늦게까지 일본에 남아 있을 예정이었다. 한국에 일찍 들어갈 이유도 사실 없고, 모처럼 일본에 왔으니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Isa와 수많은 추억을 쌓다 보니, Isa가 내 곁을 떠난다면 남겨진 내 마음이 너무나도 쓸쓸할 듯하여 나도 그녀와 함께 이 땅을 뜨고자 마음을 먹었다. 가능하다면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를 들렀다가 한국으로 귀국할까 생각했었지만, 갑자기 동규가 자기 회사에 입사할 것을 권해주었고 귀국 후 딱히 할 것이 없었기에 나는 일단 수락했다. 최대한 빨리 귀국하기를 원하기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이때 Isa와 같은 날에 귀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귀국 전에 조금 더 일본을 돌아보자며 우리는 고베-시즈오카-도쿄를 들렀다가 각자의 국가로 귀국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고배로 왔다.




유학) D+150 2022. 8.29. (월)


<마지막 여행, 그리고 새로운 시작>


ㆍ 고베에서의 첫날 루마니아에서 교환학생을 했다는 Isa의 친구 Masaki를 만나 같이 고베를 돌아다녔다. 아침 10시 즈음 만나 동물원에 가서 동물을 보고 점심으로 아카시야끼(明石焼き, Akashiyaki)를 먹은 후 메리켄 공원(メリケンパーク, Meriken Park)으로 가서 BE KOBE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바깥 날씨가 너무나도 더워 정말 돌아다니기가 힘들 지경이었고, 중간중간 어디든 들어가 많이 쉬었다. 저녁에는 내 친구가 소개해 준 맛집에서 중화 소바를 먹었고, 다음 날 움직여야 할 거리가 멀어 밤에는 푹 쉬었다.


고베는 ‘고베규’라고 소고기가 유명하다. 고베에 왔으니 마지막으로 고베규를 먹자며 3,000엔, 4,000엔 하는 고베규 스테이크를 점심으로 먹었다. 정말 잘 먹고 산책하는 겸 고베를 조금 돌아다녔는데,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너무 늦게까지 산책을 하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이전에 세웠던 계획이 전부 무산되었고, 갑자기 몸 상태도 어지러움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원래는 오사카에서 나고야로, 나고야에서 시즈오카로 두 번 버스를 갈아타 시즈오카로 갈 예정이었다. 일단 열차를 타고 오사카로 갔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나고야를 거치지 않고 바로 시즈오카로 가는 시외버스를 발견하여 정말 운 좋게 그 버스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뒷자리에 앉은 승객이 악취가 너무 심했다. 몇 시간 동안 그 냄새 때문에 버스에서 푹 쉬지를 못했다. 겨우내 시즈오카에 도착하여 숙소에 수속을 하고 나름 지역에서 유명한 오뎅을 먹으러 다시 길을 나섰다. 원래 가려 했던 오뎅 거리는 일찌감치 문을 닫았기에 근처 오뎅 가게에서 간단히 오뎅과 맥주 한 잔을 마시러 갔다. 시간도 늦고 밥도 먹었기에 무척 피곤했는데, 오뎅 가게에서 만난 옆에 앉은 일본인 무리가 우리가 외국인인 것을 알고 정말 온갖 것을 다 물어보기 시작했다. 일본 음식 중 무엇이 가장 좋은지, 좋아하는 만화는 무엇인지, 소바를 먹어봤는지 등 내게는 하등 의미 없는 질문으로 느껴졌다. 몸은 피곤한데 저런 의미 없는 질문 세례에 몰래 Isa에게 발걸음을 재촉했고 밤이 늦어서야 호텔에서 쉴 수 있었다.


ㆍ 시즈오카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후지산’이었다. 후지산을 보고 싶어 시즈오카의 전망대를 몇 개 찾았고 ‘미호노 마츠바라(三保の松原, Mihono Matsubara)’라는 곳을 추천받아 갔지만 날씨가 흐려 후지산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대신 바닷가 근처에 앉아 나른하고 심심한 하루를 보냈다. 바다를 보며 도시락을 먹고 한참이나 해변을 구경했다. 저녁으로는 돈가스를 먹고 방에 들어와서 쉬었다. 며칠 동안 계속 움직이고 여행하고 하는 것이 벅차 우리는 시즈오카에 하루 더 묵기로 했다. 다음날은 정말 푹 쉬고 늦게 일어난 후 점심으로 카레를 먹고 근처 시즈오카 성을 돌아본 뒤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또 쉬었다. 저녁에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멜론 등을 사 먹고 또 쉬었다.


시즈오카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니혼 다이라(日本平, Nihondaira)’라는 곳으로 향했다. 산 위에 있는 전망대라 후지산을 볼 수 있을까 많이 기대했다. 하지만 구름이 잔뜩 낀 탓에 후지산은 볼 수 없었다. 기상은 맑았지만 두 번의 도전 끝에 결국 보지 못했으니 참 아쉬웠다. 그래도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니혼 다이라 호텔’에서 Afternoon tea를 마셨다. 정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초록 풍경이 광활히 펼쳐진 호텔 유리창을 통해 차와 맛있는 케이크를 잔뜩 먹고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인 도쿄로 향했다. 숙소는 일부러 하네다 공항 근처로 잡았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Henna Hotel이라고 번역하면 ‘이상한 호텔’ 정도가 되는데, 이름답게 공룡과 로봇이 숙박객을 맞고 있었다. 역시나 밤늦게 도착한 탓에 늦게나마 저녁을 먹고 거의 뻗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Isa는 루마니아 대학교수인 Yusuke와 시간을 보냈고, 나는 영남대에서 알고 지내던 Fujimoto Kazunari를 만나 같이 저녁을 먹었다. 직장인이 된 Kazunari는 정말 사뭇 느낌이 달랐지만,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직장이나 퇴사, 학교나 졸업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웬일인지 역시나 거의 입에 음식을 대지를 못하겠더라. 곧 귀국을 앞두고 있어 긴장한 탓인지, 스트레스 탓인지 몰라도 거의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겨우 힘을 내서 대화를 나누고, 한 시간 조금 지나 부리나케 숙소로 돌아가 쉬었다. 아무래도 귀국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의 탓이 정말 크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다음날은 Isa와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종일 침대에서 늘어지다 저녁에 시부야로 가 각자 쇼핑을 했다. 나는 Isa에게 줄 선물로 Starbucks 잔을 준비했고, 그녀는 시부야에서 새 가방을 샀다. 우리의 마지막 밤, 서로 선물을 교환하며 많이 울었다. 이 밤이 지나면 우리는 또 영영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다. Isa는 내게 짱구 만화책을 선물해 주었고,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를 선물해 주었다. 정말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참 이상하게도 나는 일본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었다. 때마침 내게 Isa가 다가왔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우린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 서로를 통해 배운 것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 그녀를 떠나보내야 한다니, 참 슬프고도 아쉬웠다. 또 만날 기회가 있을까 싶지만,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저녁으로는 한국식 치킨을 먹고 오지 않는 잠을 정말 억지로 취했다.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Isa를 하네다 공항으로 데려다주고, 그녀를 보내며 또 울었다. 그제야 절실히 알았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었다고. 그리고 다시 또 만날 날을 기약했다.


ㆍ 숙소로 돌아와 푹 잤다. Isa 없는 일본은 정말 밋밋했다. 당장이라도 이 땅을 뜨고 싶었다. 무슨 욕심으로 일본에 하루 더 남아 있겠다고 했던가. 귀국 전 PCR 검사도 있고, 마저 해야 할 것이 남았지만 정말 아무 의욕이 없었다. 겨우내 몸을 일으켜 점심도 못 먹고 요코하마로 가서 PCR 검사를 받았다. 오는 길에 잠시 요코하마에 사는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기도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친구 앞에서 애써 웃는 모습을 겨우 보여주다 겨우내 숙소로 돌아왔다. 내 마음속에는 황망함과 피곤이 가득했다. 사실 아직도 비행기 표를 사지 않은 상황이라 숙소에서 비행기 표를 사고, 정말 무거운 몸을 이끌어 짐을 싸고, 뮌헨에 도착한 Isa와 잠시나마 통화를 한 뒤 오지도 않는 잠에 겨우 빠져들었다.


ㆍ 새벽 2시 즈음 잠들어 6시 즈음 일어나 귀국할 채비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아침 일찍 하네다 공항으로 향한 뒤 나리타 공항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낮 12시 비행기를 나고서 안전히 인천으로 도착했다. 이렇게 정들었던 내 짧은 유학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지난 6개월간 많은 사랑을 쏟아준


Ozaki Karin(오자키 카린), Honda Juno(혼다 주노), Yamada nanami(야마다 나나미), Kasashima Yukino(카사시마 유키노), Noguchi Ugenchodei(노구치 우게초데이), Yoshida Hibiki(요시다 히비키), Wada Sana(와다 사나), Kuya Takumi(쿠야 타쿠미), Miyoshi Yumi(미요시 유미), Hoben Shuka(호벤 슈카), Fujimaru(후지마루), Keizo(케이조), Terai(테라이), Uchda Yuka(우치다 유카), Uchiyama Kazune(우치야마 카즈네), Matsui Uduki(마츠이 유즈키), Yamazaki Yu(아마자키 유), Matsuda Yoko(마츠다 요코), Kanayama Taisuke(카나마야 타이스케), Kutsuki Adu(카츠키 아즈), Nakahara Miyu(나카하라 미유), Ueno Mizuki(우에노 유즈키), Kawai Haruna(카와이 하루나), Kawadu Hikari(카와즈 히카리), Kinoshita Takahisa(키노시타 타카히사), Matsui Kiyoka(마츠이 키요카), Sho Kiyoka(쇼 키요카), Fukushima Kimi(후쿠시마 키미), Nishide rin(니시데 린), Fujimoto Kazunari(후지모토 카즈나리), Okumura Yuma(오쿠무라 유마), Katsuya shun(카츠야 슌), Minowa Chika(미노와 치카), Koshiro(코시로), Ayaka(아야카), Kurumi(쿠루미), Kei(케이), Haruka(하루카) etc.


Junxuan tham, Bryan John, Yucheng, Anxinyi, Han, Abdi Karya, Julia viricel, Sagit, Natto lidzhiev, Nicole, Damchoe Wangchuk, Terence, Shaymi, Sonia Nicoli, 우혜진, 최유정, 김태순, 이은정


그리고


Isabella clirlanaru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장식해 줘서 너무나도 고맙다. 정말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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