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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사에서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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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저는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도시에서의 삶을 언제나 꿈꿨습니다. 내가 바라는 그곳으로만 가면, 아무리 하찮고 작더라도 내 자리만 있다면 무엇인들 어떠랴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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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습니다. 제가 몸담게 된 산업군은 관광업계였고, 업계 특성상 끊임없이 친절하게 사람들과 소통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산업군에 잘 들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받아준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음에, 내게 일할 기회를 줌에 감지덕지 생각하며 회사 파트너들이 쏟아내는 문의사항과 불만사항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뭐든 좋았습니다. 아무렴 좋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가 유선상으로 무례한 언동을 하더라도 저는 속으로 삼키면 그만이었습니다. 그게 어른이고, 사회생활인줄 알았습니다. 삼키는 게 일이고, 참아내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나는 일을 하러 왔을 뿐인데, 왜 타인의 울분을 감내해야 하는지 별안간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렴 이런 의문은 하등 도움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삼켜낼수록 회사는 제가 더 큰 보상을 주었습니다. 어느샌가 저는 무뎌져만 갔습니다. 웬만한 창살로는 찔러도 멍이 하나도 들지 않은 만큼 질기고, 무뎌져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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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내는 것에 익숙해진지 만 2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무언가 성장을 한 것 같지만, 더 익숙해진 것은 누군가의 울분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너무나도 무심해졌나 봅니다. 파트너들이 저의 심드렁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뭐랄까, 그들은 내가 진정으로 공감해 주길 바랐고, 그 모든 것에 무심해져 버린 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졸지에 저는 업계의 성향에 맞지 않는 낙오자가 되었습니다.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고객을 바라지 않는 제 자신이 보였고, 이것은 지표로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3달을 연속으로 개인 성과지에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정말로 굳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억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면 그만인 것을, 꼭 친절하게 타인을 대해야 해야 하냐는 의문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상대로부터 비슷한 의견을 듣고 나니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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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름 다정하다고 생각했던 제가 불친절하다는 의견을 들을 때는, 뭐랄까 제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만 같이 느껴졌습니다. 회사에서는 제가 친절해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나름, 평생을 남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조직은 저에게 친절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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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업계에서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처음부터 무심한 사람이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무심해졌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친절하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의 모습은 오롯이 나의 착각이었을까요? 생각이 깊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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