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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다정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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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치고 꽤나 섬세하고 다정한 성격을 가진 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누군가가 축하받을 일이 있으면 나도 꼭 거기에 끼고 싶었고, 슬픈 일이 있으면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정이 많기 때문일까, 타인을 매정하게 대하는 것을 여전히 잘 하지 못하고, 가시 돋친 말을 해야 할 때면 내 속이 더 쓰린 것만 같다.

아직 내 성격이 영글지 못했을 때는 이 다정한 마음을 전하는 것부터 서투르기만 했다. 고교 시절,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어도 인간적으로 동경하던 선배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생일을 맞았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주워듣고 와서는 나름 선물을 만들어 그 선배를 찾아갔고, 냅다 그의 품에 내 선물을 안겨주었다. 당연 그 선배는 당황하면서도 고마워했었다. 나는 표현하는 방법이 무척이나 서툴렀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 선배의 눈에 띄었고 우리는 꽤나 친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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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계기로 누군가에게 정성을 담은 선물 공세를 한다면 우리는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난 늘 그의 생일날을 노렸다. 특별한 날에 그의 눈에 띈다면 나는 그와 가까워진 것이라고 나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주는 것이 있으면 돌아오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의 기념일 날 누구도 나에게 먼저 축하를 건네주는 이가 없었다. 굳이 내가 티를 내지 않았으니 당연히 내 생일임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다만, 당시의 나는 왜 타인들이 내게는 내가 쏟는 만큼의 애정을 보여주지 않는지, 왜 남들은 나만큼 다정하지 않은 지에 대해서 혼자만의 회의감에 빠져있기도 했다.


나는 다정했고, 기대가 컸다. 기대가 많으면 실망도 크다는 말을 아주 어린 나이에, 아주 작은 계기로 나는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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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때는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든 날도 있었다. 대학시절, 학생 홍보대사를 했을 때 신중을 기해 뽑은 후배 중 한 명이 교육 기간을 다 수료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 후배도 나름 고심하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론을 냈을 터인데, 나는 급작스러운 그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후배였다. 하지만 그런 이에게도 먼저 찾아가 백방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심으로 설득한다면, 상대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이기심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을 바꾸지 않은 채 예정대로 자신의 길을 떠났다. 마음을 쏟는다고, 또 무언가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뼛속 깊이 사무치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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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기 싫은 마음의 방어기제 때문일까, 나는 점점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왔다. 행하되, 돌아오는 것에는 점점 무심해졌던 것이다. 특히, 이런 성향은 나의 연애 전선에서 너무나도 뚜렷해졌다. 우선 상대방에게 커다란 기대가 없었다. 상대가 어디서 누굴 만나 무엇을 하든 전혀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점점 더 무심해진 나를 발견했다. 그도 그런 것이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옭아매면 옭아맬수록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더욱 가득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절실히 느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무심한 것은 아니다. 물론 만나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내가 할 것은 하되, 남이 나를 위해 무언가 행동해 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는 최대한 내려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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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천성이 다정하다 보니,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을 보면 언제나 행복하다. 정이 많고 눈물도 많아 잠시나마 짧게 알고 지낸 사이임에도 눈에서 멀어질 일이 생기면 늘 난 상대를 위한 손편지를 준비한다. 그리고서 더 담백하게 내 마음을 전하고, 또 다른 다음을 기약한다. 비록 빈말이라는 범주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사랑은 이렇게 지속된다. 그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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