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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의 아버지는 하늘과 같았다. 늘 자신의 생각이 옳았고, 그 생각에 벗어나는 언행을 한다면 그야말로 불과 같이 화를 냈다. 아버지는 웃는 표정을 잘 짓지 않았고, 늘 화난 것처럼 보였다.
가정에서는 과묵했다. 집에서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는 그 흔한 친구와 있었던 이야기조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같이 집에 있는 날이면 대개 서로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유일하게 같이 밥을 먹는 순간이 되면 그저 서로 말없이 TV를 가만히 보고 있곤 했다.
이따금씩 학교에서 나온 성적표를 아버지에게 보여줄 때면, 나의 성적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지 늘 불같이 화를 낸 다음 용돈을 툭 던져주고 잠자리에 드셨다. 단잠에 빠져있는 그의 눈꼬리와 입가를 볼 때면, 그곳에 서려있는 독기에 간담이 서늘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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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야말로 기분파였다. 평소 술을 그리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담배는 수도 없이 피워댔다. 담배는 그가 유일하게 즐기는 기호식품이었다. 늘 가슴속의 화기를 담배 연기와 함께 내뿜는 듯했다. 그러다가도 미처 화기가 다 가라앉지 않았을 때는 가족을 통해 그것을 해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가슴속의 화기를 모두 뱉어 내고선 또 담배를 태운 뒤 잠을 자러 갔다.
가족 구성원 중 본인을 제외하면 유일한 남자인 나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나에게는 손찌검이 날아오기 일쑤였고, 어느 날은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다 찢어버린 적도 있었다. 머리가 굵어지고선 날아오는 손찌검을 가냘프게 막아보기도 했는데, 나에게 돌아온 것은 더 큰 폭력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손찌검을 할 때면 대꾸할 마음도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맞고만 있었다. 그의 손찌검은 위치를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흔들릴 때도 있었고, 어깨가 치인 적도 있었고, 발로 채인 적도 있었다. 그저, 나는 쏟아지는 압력 앞에 무기력하게 맞기만 했고, 그저 그의 손찌검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정말 잘못한 행동을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다만, 대개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작고 사소한 것들로 시작되었다. 가령, 가끔 배달 음식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는 날이면 식사 후 내 그릇에 건더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거나, 약수터에서 목이 너무 말라 누나보다 물을 먼저 달라고 졸랐던 것이라거나, 어제까지 끝내야 할 학습지를 오늘까지 끝내지 못했다거나 하는 아주 사소한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내 행동 중 어느 것으로부터 공격이 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잔뜩 웅크리며 살아가게 되었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책잡힐 일이 없었다. 아비의 눈에 들지 않기 위해 나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 방문을 꼭 닫고만 있었다. 내 공간 안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방 안에 혼자 남은 나는 혼자서 많은 것을 했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책을 읽었고, 어머니가 사주신 자그마한 음악 재생기에 만화 영화를 잔뜩 내려받아놓곤, 멍하니 그것들을 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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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지 않는 것, 또 걸리지 않는 것이 능사였다. 만약 내가 잘못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무차별적인 처벌이 나를 찾아왔기에 나는 늘 숨기기 급급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행동이 당당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잘못을 하더라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능청스럽게 내 허물을 숨길 줄 아는 거짓말쟁이 소년이 되어 있었다.
한편, 나는 내가 아이를 가진다면, 결코 우리 아버지처럼 내 자식을 대하지 않으리라고 100번이고 1,000번이고 다짐했었다. 그때의 아버지는 내게 너무나도 차가웠으며 따뜻한 피 한 방울이 없는, 마치 무쇠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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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가족 앞에서 결코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의 눈은 날카로웠고, 표정은 다부졌다. 반대로 나는 그의 앞에 대면하는 날에는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 내 아버지는 자식이 눈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가 눈물이 없는, 혹은 눈물이 메말라 버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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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가 딱 한번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 중 갑자기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왔고, 아무 말 없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셨다. 그러고선 내게 양복을 입혔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전에 절을 시켰다. 그날은 내가 인생에서 처음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된 날이고, 아버지는 본인의 어머니를 잃어버린 날이었다. 조문객을 맞이하게 되면서 첫 맞절을 올리는 순간, 아버지도 평생을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나이가 50이 넘어서야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무쇠처럼 단단해 보였던 강인한 남자에게도 눈물은 존재했었다. 그는 잠시 흐느끼고는, 장례식장 밖으로 나가 담배 연기를 내뿜고서 다시 평상시처럼 돌아왔다.
그래, 아버지에게도 눈물은 있었다. 그게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유일한 눈물이었다. 그날의 눈물은,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여태까지도 아버지가 흘린 그 눈물의 의미는, 자식이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마음 한켠에 무겁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