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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성이 그렇게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다. 막상 눈앞에 마감 시한이 다다를 때에야 한 걸음씩 움직이는 그야말로 완전히 배짱이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름 ‘올해는, 내년에는, 언젠가...’하면서 다가올 미래에 원하는 것들을 어렴풋이 그려내 보고는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개는 추상적이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좋겠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으면 좋겠는 등, 누구나 바라는 소박한 꿈들이다. 다만, 단 한 가지 내가 노년이 되었을 때 원하는 것이 있다. 나는 꼭 나이가 들어서도 나의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그것이다.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크게 중한 요소는 아닌 것 같다. 일하는 것, 노동하는 것 그 자체가 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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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말 안타깝게도 내가 자라오며 주위에서 본 노년의 경우는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할머니도 그러했고, 동네의 경로 분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동네에 있는 나무 정자에 늘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해가 저물고 나면 각자 본인의 가정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학창 시절 나는 누나와 함께 할머니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간 적이 있다. 거기서 할머니가 평소에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처음 보게 되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치매 예방을 한다며 화투 판을 하나 가져다 놓고선 혼자 알 수 없는 놀이를 하루종일 하셨다. 새벽 댓바람부터 시작한 화투 놀이는 밤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방의 한 구석에 가만히 앉아 해가 지는지도 모르는 채 가만히 화투판을 바라보던 할머니의 모습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화된 사진처럼 생생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내가 만났던 노인들은 거의 이러했다. 이따금씩 동네에서 소일거리를 하신다는 분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는 것이 다였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노인 대부분은 낮시간에 모여 무언가 대화를 한참이나 나누다가 해가 저물면 TV 앞에 앉아 저녁을 잡수시고 잠자리에 들며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주말이 되면 각자 본인이 믿는 종교 시설에 가서, 본인이 믿는 신에게 무언가 간절히 기도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그러했기에, 나는 노년의 삶이란 응당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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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각종 매체를 통해 노년에도 자신의 빛을 발하는 분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브라운관 속에서는 열성의 연기를 배우는 노배우들이 있었고, 수십 년간 청취자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 음악을 소개해주시는 라디오 진행자가 있었고, 국가의 중대사를 자문하는 각종 단체의 수많은 원로 고문들이 있었다. 개중에 가장 내게 큰 인상으로 다가오신 분들은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배우들과, 작필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원로 작가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노년이라도 맡을 배역이 충분히 많았고, 노년에도 써야 할 소잿거리는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노년에도 당당히 수많은 사람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 자체가 굉장히 인상 깊었고 또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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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도 노년에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꼭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아도 좋다. 꾸준히 내 생각을 담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허공을 떠다니던 추상적인 생각들이 비로소 정립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이다. 하나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그래도 한 발짝 나갔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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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늙어가고 싶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늙어서도 꾸준히 내 생각과 마음을 가득 담을 글을 계속해서 쓰고 싶다고 대답하리라. 이것이 내가 원하는 단 하나의 늙어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