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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히, 착각 속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정말 많은 기회의 문을 두드렸다. 다른 이들도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대입의 문을 거쳤고, 이성 친구와의 만남의 문을 두드렸으며, 취업 문을 하염없이 두드리곤 했다.
짧은 삶 동안 참 많은 기회의 문을 두드렸고, 이따금씩 그 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씩 내게 큰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두드리면, 열린다.’라는 환상을 가지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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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솔직하게 지난날을 회고해 보자면, 나는 정성을 가득 담아 기회의 문을 두드려본 경험은 별로 없다. 사실 대입 준비를 할 때도 그렇게 큰 정성을 쏟지 않았다.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업에 집중했던 날도 많았지만, 늘 반복되는 일상의 답답함에 신문이나 동아리 활동과 같은 학업 이외의 것들에 더 눈길이 갔다. 3년간 기다렸던 수능날에 이르러서는 거의 기력이 다 떨어져, ebs 문제지만 빤히 들여다보다가 시험장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목표하던 대학이 있었지만, 수시 모집 끝에 좌절을 맛보곤 큰 상실감에 학업에 큰 집중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이었지만 철두철미한 준비보다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기본기로 승부했고, 평균보다는 약간 더 높은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되었다. 대입의 문을 두드릴 때도 전략적인 분석이나 판단보다는, 받아 든 수능 성적표와 입학 점수가 비슷해 보이는 학교를 몇 개 골라 지원했다. 그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학교를 하나 골라서 입학 신청을 했었다. 내 인생을 좌우할 가장 큰 결정 중 하나를 이렇게나 얼렁뚱땅 준비해서 되는대로 결과를 내어버린 것이다. 어찌하였든 나는 두드렸고, 어떻게든 문은 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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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원하는 것이 훨씬 많아진 듯했다. 멋있어 보이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싶었고, 호감이 가는 이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제야 정말로 나를 위한 준비와 도전을 처음으로 준비해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연극 동아리에 가입하길 원했는데, 동아리의 특성상 입단 전에 오디션을 본다고 했다. 동아리에 무척 들어가고 싶었던 나머지, 오디션을 준비하는 한편, 이미 동아리에 몸 담고 있는 선배들과 친해지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분인지, 동아리에는 상대적으로 아주 쉽게 입단할 수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동아리 입단 오디션은 요식행위에 불과했지만, 당시에는 원하는 것을 내 손으로 이루었다는 생각에 기쁨이 넘쳐흘렀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명제가 내게 처음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기회도 무척 많았다. 원하는 이성과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에 갖은 노력을 기울인 경우도 있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의 태도라던가, 남성스러워 보이는 옷차림 등을 찾아보며 그녀에게 이성으로서 눈에 띄고 싶은 욕심이 마음속 가득했다. 그녀와 약간의 관계가 진전된 이후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선호한다는 분위기의 식당을 찾아다니며 환심을 사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게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 환심을 사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모습이 부담스럽게 다가왔었기 때문일까. 결국 선택권은 두드리는 내가 아니라, 열어주는 상대에게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순간 중 하나이다.
또 하나의 경우는 취업이었다. 나는 미래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던 때 기내 승무원이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 승무원 학원에도 등록할 만큼 꽤나 진심이었다. 그런데 승무원을 준비할수록, 정형화된 인재상에 나를 끼워 넣는다는 것은 여간 내 체질과 맞지 않음을 느꼈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도 못한 채 두드렸던 노력의 문은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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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쉽고 편안한 마음으로 두드렸던 기회들이 활짝 열린 날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스리랑카 파견도 그렇다. 아무 자격도, 경력도, 심지어는 대학 졸업장도 없이 지원했던 해외 파견 인턴은 예상 외로 엄청난 기회로 찾아왔고, 별 노력 없이 두드렸던 기회가, 나에겐 인생의 중요한 축이 되며 삶의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에 ‘심혈을 기울여야 비로소 열린다’는 작은 강박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직장 역시도 그렇다. 전략적으로 입사를 준비했던 것보다, 나는 내 재능을 살리고 알아봐 줄 수 있는 조직 위주로 원서를 썼고, 가장 먼저 나를 골라준 곳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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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노력을 쏟아부은 행동들이 내게 다가와 주지 않았고, 반대로 별 의도 없이 내던졌던 시도들이 덜컥 열리는 것을 보면 내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만 같다.
노력과 상관없이 문은 열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노력과 변화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결국은 결과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노력을 다 하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그 안에서 성장을 찾아낼 줄 아는 태도, 그리고 그 결과를 승복할 줄 아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大天命)의 자세를 가질 줄 알아야 미련의 늪에서 한 발짝 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노력은 꾸준히 기울이겠지만, 두드리면 반드시 열릴 것이라는 착각을 벗어나는 것이 또 내 삶의 중요한 마음가짐으로 자리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