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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든지, 나이만 먹으면 모두가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가수 Buzz의 ‘어제 오늘의 단 하루가 차이 날 뿐인데, 마치 꿈인 듯 다 변했어’ 노래 가삿말처럼, 아이와 어른의 경계는 뚜렷하게만 보였다. 마치 하나의 강을 건너듯, 무언가 뚜렷한 경계선을 건넌다면 극적인 변화가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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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환상이 심어지는 듯한 순간들이 문득 찾아오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아무 노력 없이 시간만이 흘렀을 뿐인데, 고교 교정은 내게 학사모를 씌어주었고, 그 이후에는 완전한 ‘법적 성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웬만한 권리들을 모두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음주를 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고, 상황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성과 교제를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자유였다. 난 정말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그제야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었다.
처음 돈을 벌게 된 순간도 마치 그러한 듯했다. 내가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한 것 같지는 않는데도 일터에서는 내게 돈을 주었다. 그것도 내가 여태까지 받아 왔던 용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었다. 그 돈을 원하는 만큼 써도 되고, 반대로 원하는 만큼 쓰지 않아도 되었다. 심지어는 남에게 줘버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똑같았지만, 내가 가진 지위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된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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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어른이 된다는 것’ 역시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 역시도 나의 선택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즉 어른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파고들어 이야기하자면, 점점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며 ‘내 마음’만이 아닌 ‘타인의 마음’ 역시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행동을 할 때 나의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 역시 생각하고, 고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아는 순간부터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말과 행동의 책임감을 느끼고, 또 다른 이의 시각에서 생각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때라면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기는 것이라고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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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나도 ‘어른이 되었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문득 찾아올 때가 있다. 단적인 예로, 대학 생활 중 아무런 생각 없이 밤새 맥주잔을 부딪히던 우리가 어느새 혼약을 맺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모습을 바라볼 때, 명절날 오랜만에 만나는 사촌 동생들을 위한 용돈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자각할 때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물론 어른이 되지 않기를 선택한대도 좋다. 신체는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과 행동은 여전히 아이처럼 보이기를 선택한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언젠가, 내가 타인에게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을 때 그제야 마음을 고쳐 먹고 어른이 되기를 선택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동심(童心)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영원히 동심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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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은 나뉘어 있지 않다. 다만 그 사이 본인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