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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며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왔던 것은 다름 아닌 컴퓨터이다. 정말, 삶의 대부분을 컴퓨터와 함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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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접했었다. 유아 시절, 우리 집에는 비디오테이프를 감상할 수 있는 비디오 재생기가 있었다. 나는 그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눈을 떴고, 수많은 꿈을 꾸었다. 둘리와 함께 세계 여행을 하며 세상에 대한 포부를 가졌고, 핑구 비디오를 수없이 돌려 보며 남극 펭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나는 한글도 비디오로 배웠다고 했다. 한글을 알려주는 비디오를 혼자서 수 없이 돌려보던 나는 어느 순간 한글을 깨치고, 말까지 배우게 되었다.
이내 아버지께서는 우리 집에 486 컴퓨터를 들였다. 이때 나는 컴퓨터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의 Dos 컴퓨터는 유아 시절의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영단어 투성이었지만, 그것을 탐험하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몇몇 게임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외운 후, 내 손으로 몇 개의 자판을 누르는 날에는, 페르시아의 왕자가 되어 중세 시대의 미로를 탐험할 수 있는 탐험가가 되었고, 레밍즈의 일꾼이 되어 수 없이 깊은 곳으로 땅을 파내려 가기도 했다. 모니터 속 세상은 정말 무한했고, 이를 통해 끝없는 상상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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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컴퓨터가 좋았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시작하였고, 중학생이 된 우리 누나도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다. 집에 혼자 남게 된 나는 컴퓨터를 아주 붙들고 살았다. 인터넷 세상을 통하면 화려한 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되어 나를 감싼 괴물들을 모두 물리쳤고, 배를 타고 세상을 유랑하며 견문을 넓혔다. 강해지고 싶은 마음,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유랑하고 싶은 욕망들을 화면 속에 투영하듯 그 안으로 끊임없이 침잠하며 뱉어내었다.
학업보다는 컴퓨터를 우선순위로 두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라고 물었다. 난 한 소년 잡지에서 컴퓨터를 만지는 직업인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우연히 알게 되어,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며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프로그래머’가 무엇인지 되물었지만, 나 역시도 그 ‘프로그래머’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컴퓨터를 만지는 직업’이라며 얼버무렸다. 나는 그저, 나의 숨겨진 욕구들을 잔뜩 실현시켜 주는 컴퓨터가 그렇게도 좋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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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이렇게 이뤄진 컴퓨터와의 운명은 정말 삶 내내 끊임없이 이어졌다. 컴퓨터를 접하기 힘든 군대에서도 나는 행정병이라는 보직을 받으며 중대와 관련된 보급품 수령, 배차 신청 등을 전산으로 처리했었다. 스리랑카의 농업 현장에 있을 때도, 전기조차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회계 출납을 전산으로 관리하거나, 결과 보고를 작성하는 등 컴퓨터로 처리하는 업무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러하다. 나는 관광 산업에 들어왔지만 대면으로 고객을 만나는 것이 아닌, 비대면으로 고객들을 상대하며 얻게 된 모든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 전산으로 입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나마 즐기는 취미생활 역시도 육필로 쓴 글들을 자판으로 옮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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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 삶의 대부분을 컴퓨터와 보낸다. 정말 운명 같은 우리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에도, 대학 시절에도, 유학 시절에도, 심지어는 해외의 오지 발령을 받았을 때도 나는 늘 이 컴퓨터와 함께했다. 이렇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컴퓨터와 보내는 하루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