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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출근길에 했던 것들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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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나는 청개구리 같은 습성을 가진 듯하다. 시간을 ‘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시간이 ‘날 때’ 무언가를 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가령 독서를 한다고 하면, 출퇴근 길이나 약속 시간을 기다릴 때, 혹은 점심시간 이후 남는 시간을 이용하는 등 자투리 시간에 무언가 하는게 만족스럽다. 다만 막상 휴일을 맞는 날에는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한 없이 늘어져서 그저 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남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가 아쉬워서 나는 출근길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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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은 바로 중국어였다. 이왕 외국계 회사에 입사한 김에 언어를 하나 더 할 줄 알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초급 중국어 책을 사서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책 한 권이 끝나가며 기초적인 문법 지식을 다 배워가고 있을 때 즈음, 회사에서 영어로 특강이 개최되어 듣게 되었다. 그런데 내용이 잘 들리지가 않았다. 막상 영어가 귀에 들리지 않으니, 지금은 중국어 공부를 할 때가 아니라 영어부터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어 공부로 노선을 틀어버렸다.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미국 CNN 방송국의 10대들을 위해 쉬운 용어와 어법으로 방송되는 뉴스인 ‘CNN 10’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영어 듣기에 더해서 시사 상식을 쌓을 수 있는 매체이기에 좋았다. 하지만 참 운이 좋지 않게도 그 시기에 맞춰서 해당 프로그램이 잠시 휴지기를 갖는다며 당분간 영상을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금방 열정이 식어버렸다.


때 마침 기존에 수강하던 작사 학원의 기초반 강의가 끝나서 본격적으로 Demo 곡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퇴근 길에는 늘 듣던 어학 강의 대신 새로이 올라온 Demo 곡을 수 없이 들었다. 새로운 가수의 곡을 들으며 입혀질 가사의 색깔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 좋았지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은 작사 활동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Demo 곡 듣기도 잠시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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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 기회가 되어 중국으로 약 일주일간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중국 땅에서 머물며 하루종일 중국인, 그리고 중국어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음식점에서 음식 하나 마음대로 주문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아쉬워 다시 한번 중국어의 중요성과 공부 의욕을 자극시켰고, 귀국 이후에는 EBS에서 발간하는 중국어 교재를 하나 구매해 중국어 강의를 듣곤 했다. 최근에는 부동산에 눈을 뜨면서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했고, 시간이 날 때에는 한 번씩 부동산 강의를 듣곤 한다.


물론 매일을 이렇게 알차게 보내지는 않는다. 귓구멍에 영어 Podcast를 꽂아 넣지만, 멍하니 뉴스 기사를 뒤져보거나 유머 글을 읽는 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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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짧은 시간 동안 출근길에 했던 것들도 정말 많이 바꾸었다. 결국 꾸준히 하는 것이 정석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역시나 주기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바꾼다. 언젠가 나에게도 정말 매일 하고 싶은 것이 생기기도 할까. 하나만을 끊임없이 탐닉할 수 있는 의지를 갖는 것이 나에겐 인생이 걸린 숙제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허투루 쓰기 싫은 마음이 내 출퇴근길에 여실히 드러난다. 나의 이 작은 시간들이, 언젠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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