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첫 무대는 무려 1,000여 명의 관객이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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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가며 타인 앞에서 나를 소개하거나 한 주제에 대해서 발표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 마치 평소에 무언가를 갈고, 닦고, 연습하는 것이 결국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인 듯, 결국 내가 다른 이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준비한다.
공식적으로 타인 앞에서 내 보습을 선보이는 것을 흔히 데뷔(Debut)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다른 이들 앞에서 나의 모습을 드러냈던 경험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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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나는 밴드부에 가입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우연히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무작정 혼자 건반을 두드려 보기를 몇 달, 그래도 2~3곡 정도는 악보를 보지 않고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피아노를 익혔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친해지게 된 한 선배가 내게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는지 물어보았고, 그에 나는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다며 자신 있게 답했다. 그 선배는 내게 밴드부 가입을 권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밴드라는 집단에 처음 속하게 되었다. 혼자서 독주하는 것도 겨우 외워서 하는 와중에, 다른 이와 합주하는 경험을 몇 번 해보지도 못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고교 연합 축제의 무대에 설 기회를 덜컥 받게 되었다. 사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를 비롯해 악기를 연주하는 다른 학생들은 이제 막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이었고, 더욱이 무대에 올라 본 경험도 없었다. 그런 초심자에게 학교의 이름을 걸고, 학교를 대표해 나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상항이 찾아왔었다.
당시의 나는 정말 부담감이 많았다. 그래도 모든 학교가 모여 공연을 한다기에 그중 한 부분이라면 적당히 묻어가기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연습을 한 때는 부담스러워도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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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연 당일, 내 예상과는 달리 무대의 규모는 생각보다 거대했고, 그 앞에는 무려 1,000여 명의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공연자들은 모두 대중음악에 맞춰 간단한 안무를 준비했던 정도였는데, 밴드로서 음악을 연주하는 팀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공연의 가장 끝에 배정되어 말 그대로 무대의 절정을 장식하는 순번이었다.
우리 무대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다른 무대는 흘깃 보지도 못했다. 긴장에 사로잡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우리의 차례는 정말 금발 찾아왔고, 그야말로 우리는 사시나무 떨리듯 손발의 떨림을 느끼며 무대 위에 올라섰다. 키보드 담당인 나는 그저 악보 위에 찍힌 코드만 간단히 짚으면 되었는데 너무나도 긴장을 한 탓인지 커다랗게 적힌 코드마저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코드가 짚이면 건반을 눌렀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냥 흘려버리기 일쑤였다. 흘려버리는 코드가 많아질수록 내 머리는 더 새하얗게 변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타인 앞에서 악기를 연주한 무대를, 연주를 한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정말 애매모호하게 데뷔 무대를 마치게 되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었고, 연습의 부족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실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감정을 나 혼자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같이 세션을 연주했던 친구들 역시 모두 울먹이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눈망울을 보자마자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늘을 기억하리라. 혹시 앞으로 무대에 설 날이 온다면 누구보다 철저히 준비하리라, 나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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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은 정말 시작에 불과할 뿐 그 이후로 남들 앞에 나서야 할 일을 수 없이 많았다. 작게는 인사 담당자 앞에서 내 모습을 피력했던 것, 그리고 교내나 사내에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또 크게는 외국인 앞에서 내 생각을 발표하거나, 한국의 정책을 소개하고 토론했던 일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어떤 무대를 서던지 긴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첫 데뷔 무대 끝에 흘렸던 눈물 한 방울이 내 무대 인생의 서막을 알렸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완벽한 무대를 서보겠다'라는 나를 향한 다짐의 신호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