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힘이 되어주는 그 존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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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사하는 여행 업계는 산업 특성상 1년 365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기에, 주말에 근무하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가끔 주말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면, 나는 업무를 시작하는 동시에 늘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부터 고민한다. 주말에는 구내식당 운영을 하지 않는 데다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근처는 사무실 밀집 지역이자 관광지이기 때문에 평일에 회사원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음식점들은 거의 영업하지 않고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값 비싼 음식점들이 몇 열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입사 초반 이곳의 지리를 잘 몰랐을 때 주말에 영업하는 가게를 잘 찾지 못했고, 겨우내 골목 구석에 국수 가게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해서, 몇 주 동안 국수로 점심을 때우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주말에도 운영하는 돈가스 가게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 가게는 4층에 있었는데, 불행히도 그 가게가 있는 건물은 별도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높은 경사의 계단을 헐떡이며 올라가면 겨우 돈가스를 만날 수 있었는데, 손님들의 이 고생을 아는지 가게 입구에는 커다랗게 ‘고생 끝에 돈가스’라고 적혀 있었다. 돈가스를 먹겠다는 열정으로 열심히 계단을 오른 나의 갸륵한 정성을 알아봐 주는 듯 한 그 문구에 살짝 위로받기도 했다.
그 가게의 돈가스 맛은 특출 나게 빼어나거나 또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맛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돈가스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사무실에서 꽤 먼 거리를 걸어가 4층에나 되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내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이렇게나 힘을 쏟고, 또 그 순간 작은 성취를 이뤄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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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비슷한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매달 1일 아버지의 출근 시간에 맞춰 용돈을 받았다. 1학년 때는 천 원, 2학년 때는 이천 원 … 6학년 때는 육천 원을 받는 식이었다. 나는 주로 문방구에서 간식을 사 먹으며 용돈을 썼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간식은 바로 ‘비틀즈’라는 이름의 사탕이었다. 한 입을 베어 물면 입안 가득히 퍼지는 과일 향에 더불어, 그 특유의 쫀득쫀득한 식감이 참 좋았다. 학창 시절에 난 껌이나 젤리 같은 간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꼭 이 ‘비틀즈’만큼은 참 사랑했었다. 다만 점점 커가며 더 많은 종류의 간식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 인공적인 비틀즈의 과일향을 찾는 일은 드물어졌다.
이후 약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학창 시절 그렇게나 좋아하던 비틀즈가 단종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추억의 그 맛을 이제는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 과자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 과자를 쉽게 발견할 수 없었고, 그렇게 추억의 간식을 이제는 다시는 못 만나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이 든 나는 비슷한 느낌의 대체품을 몇 먹어 보았지만, 내가 사랑했었던 그 맛이 아님은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비틀즈’를 사랑했던 소비자들의 아쉬운 의견이 많았었는지, 금세 그 과자는 새 단장을 해서 판매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그때부터 정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정말 매일같이 각종 편의점 어플을 들락거리며 혹시나 그 제품이 입고되었는지 확인하며, 다시 그 맛을 맛보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게 되었다. 얼마나 바랐었는지, 편의점에서 ‘비틀즈’를 구매하는 꿈까지 꿨을 정도이니 말이다. 일상 속에 원하는 무언가를 기다릴 일이 잘 없기 때문일까, 과자 하나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내 모습이 참 신기함을 느꼈다. 마침내 입고가 되었다는 공지가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편의점으로 달려가 주머니 속에 몇 봉지를 넣어버렸다. 마치, 연락이 영 끊겨버린 옛 애인을 만난듯한 기분이었다. 그리웠고, 반가웠다. 기다림 끝에 ‘비틀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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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은 기다림과 성취감들이 알게 모르게 내 삶의 작은 원동력이 되어 준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일상의 기다림과 설렘을 안겨준 4층의 돈가스와, 그리고 내 품으로 돌아온 비틀즈와, 또 다른 그 많은 것들이 참으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