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 서른, 나는 이제야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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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는 그렇게나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된다면, 꼭 어른이 된다면, 그 지긋지긋한 학업의 일상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옷을 입고,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수업을 듣는 것이 그렇게나 싫었다.
그랬던 나는, 이제 정해진 곳에서 정말 정해진 일만 해야 하는 피치 못한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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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본다면, 학창 시절 내 학업 성적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반복되는 것을 금방 지겨워하는 성격’이 유독 강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대학 생활이 좋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이유 역시도 그 이유를 이제야 단번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대학생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으면서도, 정규 수업처럼 다번 반복되는 일상의 것들은 또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간혹 학교생활 중 마음에 드는 혹은 흥미 있는 과목을 수강하게 되더라도 그 열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학업의 진입장벽이 너무나도 높으면 깨작깨작 노력하다가 제 풀에 지쳐 쓰러지던가, 아니면 조금 그 원리를 알게 되었다 싶을 때 금방 새로운 것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았다. 나는 이 짧은 대학 생활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아야겠다며 생각했다. 이 많은 경험을 다 해야 했기에, 하나를 골똘히 연구할 의지는 없었다. 마치 메뚜기가 들판을 뛰어다니듯, 나의 20대는 이곳저곳을 쏘다니기에 무척이나 바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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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그런 성격 덕분에 이루어낸 성과도 많다. 호기심이 많으면서 또 겁이 없는 성격인 탓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개발 도상국의 농촌에서 2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거주하며 일했고, 이후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공부하며 언어를 배우는 등의 짧은 시간 동안 눈에 띄는 많은 결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마주했던 현실이 사실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가장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느낀 것들 중 가장 주요하게 와닿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계속 이어졌다는 것’이다. 몸이 스리랑카에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매일같이 출퇴근을 해야 했었고, 또 몸이 일본에 있더라도 매일같이 학교에 등교해야 했다. 역시 그곳에서도 반복되는 일상이 있었고, 나는 반복되는 삶을 여전히 매일 소화해야 했다. 원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인 탓에 ‘일본 유학’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나는 더 특별한 것을 찾아다녔다. 가령, 이왕 일본에 왔으니 정말 일본 스러운 것을 배우겠다며 나는 ‘다도부’에 가입을 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일본 스러운 느낌과 분위기에 쉽게 매료되었으나, 사실 그 열정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막상 동아리 입부 후에는 또다시 다도에 대한 연습, 그리고 그 일상의 반복이었다.
여전했다. 나는 이렇게나 반복되는 것이 싫었다. 그나마 반복되지 않은 것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유학 중에 여행을 정말 신나게 다녔다. 새로운 풍경을 만날 때, 나는 비로소 행복감을 느꼈다. 정말,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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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행에 대한 환상을 품고선 여행 업계에 들어왔다. 하지만 막상 입사 후 마주쳤던 것은 내가 기대했던 새로운 거래처로의 출장보다 책상 위에서 해야 하는 서류 업무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 그렇게나 싫었던 청년은 그렇게 제 발로 그 길을 찾아왔다.
예전의 나였으면 가슴속에서는 정말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벗어난다고 한들, 결국에는 그 일상이 계속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천성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업계로 나아갈 것인가, 혹은 어떻게든 반복되는 일상을 이제는 수긍하며 꾸준히 버텨낼 것인가. 이제는 나에게 남은 일생일대의 단 두 개의 선택지이다.
‘참아보자’라는 마음과, ‘떠나 버리자’라는 욕구의 이정표가 가슴속에서 정말 끊임없이 다투고 있다. 미래의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나 역시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