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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내 지난 꿈은 명사

- 동사(動詞) 형태의 꿈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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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해줬던 것도 아닌데, 나는 늘 목적의식이 명사에 머물러 있었다. 내 목적의식은 늘 그랬다. 내 목표라고 했던 것들은 가령 ‘명문대 대학생’이거나, ‘국제기구 종사자’, ‘항공 승무원’, ‘작사가’ 등 명확한 형태의 명사였다.

TV 속 어떤 강연에서 꿈은 동사형으로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사실 내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나는 명사가 동사의 뜻을 당연히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내 꿈이 ‘항공 승무원’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비행기 안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업무가 끝나면 취항지에서의 여행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단연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꿈이 ‘작사가’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직업 안에 가사를 쓰는 동작이 함의되어 있으니 명사로도 꿈이 당연히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는 명사로 된 나의 꿈을 남들에게 많이 이야기하고 다녔다.

“선배, 저는 승무원이 되고 싶어요.”, “친구야, 나는 작사가가 되고 싶어.”라며 당당한 태도로 공공연하게 외치고 다녔다. 명사로 된 꿈조차 없는 이들은 박수를 짝짝 치며 꿈이 있는 내 모습이 부럽다며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그러한 반응을 들을 때면 어깨가 으쓱하며 의기양양했다. 나 스스로 잘 골랐고, 또 잘하는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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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명사로 된 모든 꿈은 이루기가 참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 꿈들은 0% 아니면 100%로 양분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령, 작사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일단 내 이름으로 된 곡이 하나라도 발표되어야 비로소 남들에게 당당하게 작사가가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쓴 가사가 누군가의 앨범에 한 줄이라도 실리는 순간, 그것이 작사가로의 데뷔였기에, 나는 그저 데뷔를 위한 작사를 시작했었다. 100개의 화살을 던진다면, 그중에 하나는 꼭 얻어걸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원래 쓰고 싶었던 서정적인 느낌의 가사보다 쓰기 만만해 보이는 Demo 곡에 예뻐 보이고 그럴 듯 해 보이는 가사만 주야장천 썼었다.
나름 열성으로 가사를 썼지만, 나는 작사가가 될 수 없었다. ‘작사가’라는 명사에 집착할수록, 내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나는 가사를 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작사가라는 명칭을 쥐고 싶었던 것일까. 솔직한 내 심정은 후자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에게 ‘작사가’라고 이야기한다면 별 다른 미사여구 없이도 나 자신을 꾸며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모습이 탐났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순간, 나는 곧바로 잠시 숨을 고른다며 가사 활동을 잠시 놓아주었다.


그래, 사실 내 꿈은 이런 모양이었다. 나는 '작사가가 되기 위해' 가사를 썼다. 즉 명사가 되기 위해 동사를 한 것이다. 사소한 동사를 꾸준히 행하기보다는 거창한 명사가 되기를 나는 원했다. 물론 지금이라도 또 조금씩 가사를 써보면 좋으련만, 지금은 내 생각이나 마음속 욕구부터 잘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작사가’가 아니라 ‘가사를 쓰는 것’에 좀 더 마음의 비중이 올라갔을 때 다시 새롭게 도전할 것이라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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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가라는 꿈을 꾸는 과정은 확연히 달랐다. 나는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머릿속 파편들이 글을 통해 비로소 꿰어지는 듯한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큰 기쁨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쓰다 보니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또 그에 따른 열정도 불타오른다. 이에 비추어 보아, 왜 꿈이 동사여야 하는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꼭 그 사실을 깨닫고서야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나를 작가라며 일컫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 나는 누가 뭐라든 그저 마음을 계속 쓰고 싶은 마음만 들뿐이다. 물론, 추후에 내 글쓰기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더욱이 좋겠지만, 나는 그냥 한 걸음씩 내딛고 있을 뿐이다.
한편, ‘항공 승무원’에 대한 꿈이 좌절될 때마다 느꼈던 패배감을 느꼈던 내 지난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행사에 들어올 때는 한 편으로 꿈을 이루지 못 한 무력감으로 도망쳐 온 느낌도 들곤 했었다. 하지만 차라리 내 꿈은 ‘항공 승무원’이 아니라 ‘여행을 돕는다.’의 동사 형태의 모습이었다면, 그때의 내 삶의 태도는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꼭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꼭 생각했을 것이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내 꿈의 과정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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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으로, 내 꿈을 다시금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으로. 그러면서, 내 삶을 꿰뚫는 동사형태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잘 쓰고, 잘 이야기하고, 잘 자고, 잘 사랑하는 모습이 내 삶을 꿰뚫는 가치의 동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형태의 목적의식이 꽤 마음에 든다. 그래, 목적의식을 동사형으로 만든다면 하나의 주체가 되기 위해 나아가는 모습이 더 당당해질 것 같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내 꿈의 모습을 계속해서 만들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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