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을 꺼려하는 우리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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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꾸준히 던졌다. 매 순간의 선택에서 ‘왜?’라는 질문은 필수불가결이었다.
사회는 나에게 물었다. “왜 우리 학교에 지원했어요?”, “왜 이런 대외활동을 했나요?”, “왜 다른 부서가 아닌 우리 부서에 들어오고 싶나요?” 등의 질문들을 말이다. 나는 그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매 순간 ‘왜?’에 대한 질문을 완벽하게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이유를 지어내며 내 선택을 꾸며대는 순간들이 많았다. 별다른 노력 없이 했던 활동들이라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거창한 이유를 붙여버릴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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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끼리 모여 유튜브 영상을 촬영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별다른 목적이 없었고,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 대학생의 시선을 담은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였다. 누구의 후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은 학생들이 모였고, 목적은 그저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재미였다.
그런데 이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왜?’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마치 ‘왜?’라는 질문에 대한 설득을 덧붙여야 비로소 이 활동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듯했다. 어느 단체에 지원하던, 유튜브 채널의 출연 이력을 작성하노라면 면접관들은 ‘왜 많은 매체들 중 유튜브를 선택했는지’, ’왜 많은 분야 중 굳이 출연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그러면, 나는 그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없는 이유를 혼자 만들어내곤 했다. 내 순수한 열정에 억지로 색깔을 입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 이력 사항에 ‘유튜브’라는 항목을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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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내 모든 활동을 이력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명분이 늘 필요했다. 내가 행하는 모든 활동은 그것을 꼭 해야 하는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했고, 그렇기에 행동을 취함으로써 비로소 그 행동이 논리적 정당성을 얻는 듯했다.
추후 그 행동을 했던 이유나 근거를 막힘없이 줄줄 설명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타인들은 내가 했던 활동의 본질을 알아채는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제야 내 자체를 이해한 듯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한편, 그 표정을 마주하지 못한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내 활동들이 무언가 빈틈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며 다시금 눈치 보며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행동을 함에 있어서 ‘왜?’라는 질문을 덧붙이는 것은 습관을 넘어 일종의 강박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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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동에 ’왜?’라는 질문을 대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하는 행동들이 변질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령, 봉사활동을 하게 되더라도, 나는 꼭 그 봉사활동의 명분을 찾아야 했다.
군대 시절 외박을 나갈 때면 봉사활동을 하곤 했다. 정말 한 치 의심 없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힘든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그 활동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선행을 함에 있어서도 그럴싸한 명분을 찾곤 한다. 마치 힘든 상황에 처한 이들의 마음이 나에게 극적으로 다가 온 계기가 있을 때에야, 선행을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따뜻한 내 감정이, 차가운 이성을 만나 온도가 완전히 뒤바뀌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 조차도, 주객이 전도된듯한 느낌을 받는 날이 많았다. 이러한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참 씁쓸함이 느껴졌다.
명분을 찾는 것의 폐해는 더 있다. 어느샌가 명분이 없으면 행동마저 상실해 버리는 것이다. 이유가 없으면 행동도 없다. 이전에는 봉사활동을 해도 ‘그냥’했지만, 이제는 마땅한 이유가 없으므로 손길이 가지 않는다.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나조차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가슴속 봉사와 선행은 증발하듯 서서히 말라가는 듯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속물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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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별다른 명분이 없이도 마음이 앞서는 경우는 충분히 많이 있음을 실감한다.
나는 사람이 좋다. 왜 좋은지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다. 그냥 좋고, 잘 지내고 싶다.
모든 잣대에 명분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명분을 붙이지 않는 순간, 나의 순수한 영혼이 되살아날 것만 같다. 순수한 마음은 이유가 없다. 사회가 붙인 잣대에서 떨어진 이 이유 없는 애정이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