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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어린이들에게 감동받는 삶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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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나이가 기울면서 감동받을 일이 점점 줄어든다. 반복되는 삶 중에 과연 감동을 받을 일이 무엇이 있을까. 가끔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 칸에서 감동적인 영상을 보며 눈물이 찔끔 차오를 때가 있지만, 사실 일상을 살아가며 감동을 받을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나이가 들어가고, 사회에 적응하면서 눈물도 점점 말라간다. 매몰차게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는 일이 자연스레 많아지면서, 내면이 점점 깎이고 또 울퉁불퉁하게 메말라가는 것만 같다. 그래도 가끔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그렁거릴 때, 아직 내 영혼이 다 말라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일까, 눈물이 차오르게 만드는 이 ‘감동’이란 감정이 내겐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언젠가부터 이 소중한 감동받은 순간을 오랫동안 잘 간직하기 위해 감동을 받은 순간들을 노트에 적어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들은 대개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 등 인위적인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손에 꼽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의 큰 감명은 거의 없었다.


나는 어느 순간 가장 감동을 많이 받았었는가에 대해서 지난 삶을 톺아 보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언제 가장 큰 감동을 받았었나, 가만히 고민하며 돌아보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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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대 시절, 군 교회 유치부에서 잠시 유치부 교사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다. 유치부 교사가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우리 부대는 워낙 작았다 보니 부대 내의 종교 시설은 교회 밖에 없었다.

군 교회에 발길을 걷게 된 것도 사실 신앙심보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더 컸다. 우리 부대는 복지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 보니 부대 내 노래방, 사이버 지식 정보방, 독서실, 체력 단련장 정도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전입한 지 1년 정도가 지나니 싫증이 나서 발길이 잘 가지 않게 되었고, 차라리 남는 시간에 악기를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대 내 교회의 성가대실은 누구나 공간을 쓸 수 있도록 항상 열려있었는데, 시간이 될 때 가끔씩 그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곤 했다. 군대에서의 고된 하루 일정을 끝내고 악기를 연주하노라면 영혼이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난 참 그 공간이 좋았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조용히 성가대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성가대실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 소리에 입구를 문득 쳐다보았는데, 부대의 주인인 사령관님께서 자를 지켜보고 계셨다. 나는 우렁차게 경례했다. 사령관님께서는 내게 다가오시더니 앞으로 예배가 있을 때 찬양가 반주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고, 자리를 물리셨다. 나는 그렇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신앙심도 없었고 찬송가도 잘 몰랐지만, 예배 시간에 열심히 건반을 두드리곤 했다. 하지만 곧 부대에 JYP 엔터테인먼트 작곡가 출신의 후임이 전입하면서 내 역할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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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자연스레 유치부로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전역을 앞둔 병장이 있었는데, 꽤 오랫동안 유치부 활동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했는지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난 그 모습이 꽤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 오전 예배가 시작되기 전 매주 유치부 수업에 참가했다. 그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율동을 하거나, 아이들의 질서 유지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만큼은 너무나도 좋았다. 가끔은 교회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했었는데, 내 모습을 그린 아이들의 그림을 눈에 담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고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아이들과 같이 뛰어노는 날도,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어서 중간에서 조율할 일이 있을 때도, 어느 날은 내가 한 아이를 장난치다가 울려버린 일도 있었는데 사실 그 모든 순간이 내겐 감동이었다.

내가 정말 좋은지 나만 만나면 내 다리 위에서 방방 뛰던 아이도 있었고, 전역이 다가오면서 곧 못 만날 것이라고 말하니 자기 방을 내줄 테니 같이 살자고 이야기 한 아이도 있었다. 그 예쁜 마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늘 큰 감명과 감동을 받았다. 자그마한 아이들이 주는 깊고 강한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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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아가며 기어코 잊지 못할 기억이 또 하나 있다. 스리랑카에 있을 때 우리 사무실에서 후원하던 유치원이 하나 있었다. 그 유치원에서 발표회를 한다며 우리 사무실 직원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 행사에는 아이들이 조그만 손으로 만들어 낸 작품들이 너무나도 예뻐서, 한참이나 넋을 놓고 그 그림들을 관람했던 적이 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감동이었다. 웬만한 박물관,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받은 울림보다 내게 더 크게 다가왔다.


스리랑카에서는 예를 표하는 방식으로 스승님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합장한 채 바닥에 잠시 올리는 행동을 한다. 전시 관람을 끝낸 나에게 아이들이 몰려와 이런 식으로 내게 절을 했다. 이 순간 역시도 내 마음속에서 말하지 못할 벅차오름이 느껴졌었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한 힘을 얻었다. 정말 큰 감동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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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내게 가장 깊은 감동을 주었던 이는 세상에 아주 작은 존재들이었다.

앞으로,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정말 매 순간이 감동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동시에 나 역시도 미래의 아이들에게 큰 감명을 줄 수 있는 강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늘 바란다.


아이들은, 나에게 언제나 큰 감동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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