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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사실 나는 어디를 가던 ‘동안’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30대가 된 지금까지도 가끔은 술집에서 주민등록증 검사를 받을 때가 있을 만큼 어려 보이나 보다. 한 번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러 호프집을 찾았는데, 가게 사장님께서는 나만 콕 집어 신분 검사를 하신 적도 있었다.
최근 들어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 나의 소개를 할 때면, 거의 모두 내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신다. “엄청 어려 보이셔서 깜짝 놀랐어요. 생각보다 나이가 꽤 있으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날이 최근에 부쩍 잦아졌다. 물론 다들 좋은 뜻으로 이러한 말을 건네주셨겠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는 항상 아리송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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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언제나 나는 동안으로 살아왔다. 대학 시절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입대를 했기 때문에 복학 후에는 남은 1학년 수업을 마저 들었어야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갔는데, 웬걸 처음 보는 신입생들이 내게 반말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들의 문화가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어려 보여서 당연히 자기네들의 동기라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좋은 점도 많았다. 특히 손 아랫사람을 상대할 때 동안의 장점이 빛을 발했다. 고등학생 때 잠시 청소년 활동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가끔 내가 활동했던 그 청소년 단체에서 강사 내지는 청소년 인솔자로 일을 돕기도 했다. 나 말고도 다른 활동가들이 많았음에도, 유독 청소년들이 내 말을 잘 따라주는 느낌이 있었다. 아무래도 외모가 앳되다 보니 어른스러운 다른 활동가보다 훨씬 더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다가와 준 듯했다. 정말 고마웠다.
군대시절, 군 교회 유치부 강사를 했을 때도 그러했다. 외모가 앳되었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처음 보는 아이에게 말을 걸더라도 그는 내게 곧잘 미소를 보여주곤 했다.
학생 홍보대사 활동 때도 역시 성과가 좋았다. 아무래도 나는 학생의 느낌이 물씬 났었기 때문일까, 항상 고등학생들이 내 말을 잘 따라 주어서 참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이들이 날 잘 따라줄 때면 늘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 내 조카와 사촌 동생들도 나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잘 다가와 주는 것 같아 너무나도 기쁘도 또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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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 어리게만 보이는 것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사업’ 내지는 ‘일’을 이야기하는 순간이다.
스리랑카에서 국제 개발 사업을 했을 때 직위가 직위인지라 시장이나 교육감, 장/차관 등의 인사를 맞이할 일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외모가 앳되다 보니 상대측에서 나를 조금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나도 엄연히 실무자인데, 정말 강하게 요구사항을 이야기해야 상대는 겨우 알았다는 행동을 취했었고, “어린 학생이 타지에서 참 고생이 많겠다”는 느낌의 말을 들을 때는 마음이 참 복잡했었다.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그래서 업무적인 만남이 있을 때면 나는 꼭 정장을 입거나 머리 모양을 차분히 정리하고 만남에 임했다. 그래도 나는 전문가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피부에 와닿는 부분은 이성 친구를 사귈 때이다. 사실 20대에는 큰 상관이 없었는데, 30대에 들어서고 나니 상대 이성들이 마냥 어린 외모만은 선호하지 않는 듯했다. 남자답고 듬직한 느낌이 점점 인기가 많아지면서, 나 같은 외모의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억지도 더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려, 맞지도 않는 모습과 행동을 취할 때도 분명히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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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에는 빛과 어둠이 있듯이, 남들이 늘 칭찬처럼 이야기하는 “참 동안이시네요.”라는 문장 속에도 여전히 어둠이 존재한다. 그래도 나는 늘 이것을 축복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려 한다. 똑같은 사실을 빛으로 만들지 어둠으로 만들지 모두 내 손아귀에 달려 있겠지. 이 앳된 외모를 어떻게 하면 내 삶에 더 잘 이용할 수 있을까, 아침 세안 후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