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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 그래도 삶은 계속되더라고요.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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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행이 좋았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기차 여행이었을 만큼 여행이 좋았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학업 생활은 뒷전으로 하고 전국 팔도 유랑부터 떠났었다. 모르는 장소로 떠난다는 설렘, 그곳에서 만나게 될 인연들, 모든 것들이 내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입대하기 전까지는 며칠의 틈만 보이면 전국 곳곳을 쏘다녔다.

그래서일까, 갇혀 지내야만 하는 내무 생활에서는 너무나도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군 도서관에서 여행에 관한 책을 읽으며, 전역 이후에 가고 싶은 곳들을 정말 샅샅이 찾아보았다. 전역날에는 머릿속에 유럽 여행에 대한 환상을 가득 품은 채 위병소 밖을 나왔다.


계획한 대로 전역한 이후부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해외를 돌아다녔다. 별다른 계획도 없이 그저 해외로 나가 발길 닿는 대로 유랑하고, 신기한 풍경을 구경하고, 처음 보는 음식을 먹었다. 여행에 대한 내 열정은 상황에 가리지 않았다. 전 세계에 역병이 돌았던 때에도 나는 해외로 떠났고, 외국에서 공부를 해보겠다며 또 떠났으며, 해외에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해외에 대한 열망을 여행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는지, 나는 결국 해외에 살아보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남아시아 스리랑카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2년간 국제개발 활동을 하겠다며 버섯 농사를 짓기도 하고, 1년간 일본에서 언어를 배우겠다며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다.

낯선 땅에 있으면서도 정말 꾸준히 유랑했다. 해외에 살면서 또 다른 지역에 가보는 것은 언제든지 참 신선했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여행을 직업으로 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쉽게도 여행 유튜버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당시 각광받던 여행 관련 직업은 ‘여행 작가’였는데, 단순 여행 정보를 전달해 주는 일에는 큰 흥미를 못 느꼈을 뿐만 아니라, 내 필력이나 실력으로 경쟁력이 있을까 의문이 많이 들었다.

대학 졸업 시점이 다가오면서 이 좋은 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생각한 끝에 결국 항공 객실 승무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꼭 승무원이 될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꼭 찾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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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관광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정말 많은 국가를 여행했거나 관광 업계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관심 있는 산업군에 몸을 담게 되었고 여행업을 하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지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입사 후에는 마냥 좋았다. 이전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제조업 군의 일원이 되어 흥미 없는 제품을 홍보하거나 상담하는 일을 했었기 때문일까, 그래도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접하고 또 다룰 수 있는 상황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찾아낸 행운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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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역설적이게도, 관광업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여행에 관한 흥미가 떨어지는 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회사와 연결된 수많은 호텔들을 상대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숙소와 소통하며 알게 되는 악성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끔 진절머리가 날 싶을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나는 결국 여행으로 ‘실적’이자 ‘결과’를 내야 했었기에 업무의 압박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 일상이 되면 괴롭다”라는 격언이 사뭇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돈벌이를 한다는 것은 결국 업계에서 생산적인 일 혹은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야 하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매번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려우니, 성과가 낮은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괴리감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이라며 업계에 뛰어들었는데, 결국 또 다른 일을 찾아 떠나고 싶은 나 자신이 미운 순간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직무로 나아가기는 두렵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음에도 결과가 이러했었는데, 다른 선택을 한들 심경의 변화가 달라지기는 하는 것일까. 그 생각 끝에는 결국 좋아해서 선택했던 그 길을 다시 손에 쥐게 되는 듯하다. 좋아하는 일이라며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선택했었기에, 심경의 변화가 찾아오고 가끔씩은 무력감이 찾아와도 똑같이 계속 일감을 손에 잡는다. 깎이고, 파여가면서도 계속 애정을 퍼붓고 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좋아하는 일이라며 뛰어들었는데도 이렇게 성적과 결과에 대해 압박감을 느끼고 금방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꾸준히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이들을 만날 때면 정말 얼마나 많이 인내하고 또 본인을 다스리는 것일까, 정말 상상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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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여행이 내겐 일종의 도피처였다. 생각 없이 즐길 수 있고,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며, 한 번씩 찾으면 되는 기쁜 것이었다. 늘 여행을 일상처럼 살고 싶었고, 또 여행이 내 일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오히려 관광이 일상이 되니, 반대로 정해진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도피처가 되는 듯하다. 유랑하기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삶을 오히려 꿈꾸게 된다. 관광업 종사자라,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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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여행이 좋지만, 일로 하는 여행과 결과를 내야 하는 여행은 그 자체로 참 힘든 것 같다. 새삼, 내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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