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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내 사랑은 상상력을 먹으며 자란다.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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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30대 초반이고, 여전히 꿈이 무수히 많다. 개인적인 일과 세속적인 욕구가 모두 어우러져, 만약 나의 내면을 들어 볼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커다란 욕구의 주머니가 보일 수도 있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더 전문적인 공부도 해보고 싶고, 내 손으로 직접 사업이라는 것도 해보고 싶고, 한 회사의 높은 직급에도 올라가 보고 싶고, 멋진 반려자이자 가장(家長)이 되고 싶고, 돈도 아주 많이 벌어보고 싶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모두 이룰 수 있을 것만 같고, 또 조금씩 내가 생각한 것들을 이루어 가는 재미로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 삶을 조망하고, 또 내 꿈과 미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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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애정은 상상력을 먹으며 자랐다. 정말 그러했다. 가령, ‘뮤지컬’이라는 갈래의 공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을 때는 그 뮤지컬과 관련하여 정말 온갖 상상을 다 해보는 식이다. 웅장한 뮤지컬 노래를 연습해 수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상상을 하거나, 무대 뒤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무대 위를 조정하는 무대 연출가가 되는 상상을 하다가, 그 작품을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 외국 바이어들과 소통하는 현직자의 꿈을 꾼다. ‘연극 관람’이라는 자그마한 꽃씨가 나 마음속에서는 상상력을 먹으며 예쁘고 아주 커다랗게 자라나 어느샌가 가득 채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금세 그 꿈을 이루고 싶은 조바심과 욕심이 생기면서 상상력이 만들어 가는 환상 속으로 행동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늘 나의 꿈은 그렇게 자라났었다. 나는 본능에 이끌려 내가 만들어 낸 꿈의 끝자락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 갖은 애를 다 쓰곤 했다. 실제로 나는 고교시절 보았던 뮤지컬의 매력에 이끌려 나는 대학 전공으로 연극학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까지 연극과 관련된 아무런 경험이나 배경 지식은 없었지만, 왠지 연극이 이끌어내는 환상의 그 길 끝에는 내가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꽃밭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대학 입시는 처참히 실패했다. 서류 전형은 어떻게든 통과가 되었더라도, 연극과 관련된 아무런 경험이나 필살기가 없었기에 면접장에서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었다. 입시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대안책은 있었다. 대학에서는 연극 동아리가 있었고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동아리에서 ‘무대’라는 것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순수 재미를 추구하는 아마추어 수준에서도 내 환상만큼이나 무대 일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무대 준비 자체가 꽤나 고되었고, 아무래도 아마추어 극이다 보니 결과물도, 우리 공연을 보러 온 관객 수도, 사실 모든 것들이 내게는 하염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내 상상력이 쌓아 올린 환상의 모습이 파사삭 사그라드는 순간이었다.

혹시나 내가 아마추어 수준에만 머물러서 별다른 열정이 느껴지진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실제로 무대 일을 통해서 돈을 벌어보았던 적도 있다. 무대 설치를 한다면서 현장에서 망치 하나 들고 뛰어다니면서 직접 무대 설치를 해본 적도 있고, 음향 기술자 밑으로 들어가 무대 위 음향 선을 조절하며 기계를 만지면서 금전적 대가를 받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무대 위에서 돈을 벌어 보았지만, 내 생각만큼 가슴이 뜨겁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나를 생각한다면 내게는 선택에 대한 환상만 있었을 뿐 확신이 없었던 것이 이유가 아닐까 되짚어본다. 내 사랑은 상상력을 먹으며 자랐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내가 부풀린 거품이 모두 꺼져버리듯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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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내 상상력을 머금은 환상은 언제나 나를 압도할 만큼 커져 있기 때문에, 혹시나 내가 그 꿈을 이루지 못하면 더욱더 큰 아픔으로 내게 다가오곤 한다. 다들 그렇겠지만 환상이 자연스레 기대를 주었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큰 실망을 몰고 왔다.

특히 이성 친구와의 관계 발전 실패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러했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마음에 드는 이성이 내게 살짝 웃어주기만 해도, 어느새 손주 생각까지 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 정말로 나는 그렇다. 호감에 있는 이성과 작은 계기라도 만들어진다면 나는 어느샌가 상상 속에서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고, 이내 조바심이 생긴다. 빨리 현실에서 내 상상을 실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마음의 진전 없이 늘 말과 행동이 앞섰다. 혹여 상대가 내게 호감이 있었더라도, 이런 성급함을 마주할 때면 지레 겁을 먹고 멀리 떠나버린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실제로 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채 나는 그저 상상 속에 젖어 이미 상대를 나의 모든 이상향에 맞추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상상이 만들어 낸 이상형에 거의 다 닿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뤄내지 못한 다면 그 후에 밀려오는 후폭풍과 설움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기만 한다.

실제로 관계 실패 후에 몰려오는 슬픔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 크게만 느껴진다. 일의 경우에는 단순한 호기심이게 내게 꼭 맞지 않아도 그만이라 생각하지만, 이성 친구는 이미 내 마음에 쏙 들었다고 마음이 정해버렸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설움이 더욱이나 크게 느껴진다. 실패 이후에 성장이 있듯이 또 다른 이성과 접할 기회가 있을 적에 절대로 섣부르게 행동을 취하지 않겠다며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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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전히 수많은 것들을 보고서 영감을 받고, 혼자서 상상을 붙여가며 그와 사랑에 빠진다. 어린 날의 실수는 지금도 반복되지만, 여전히 내 상상력은 나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강한 힘과 동기가 된다. 하지만 그 환상을 이루려 너무 섣부르게만 움직였다가는 결국 물방울처럼 꺼지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일이건 사랑이건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늘 희망한다. 일이건 사랑이건, 꼭 내 상상만큼이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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