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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술을 잘 못 마시더라도, 가끔 술집에 갑니다.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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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계(父系) 쪽 핏줄은 정말 술과는 거리가 먼 집안이다. 우리 할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마치 ‘저 술을 마셨습니다’라고 크게 홍보를 하듯이 얼굴이 금방 새빨개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술자리라곤 일절 나가지 않았다. 중년이 지나도록 술을 아예 마시지 않고, 별다른 취미도 없으셔서 퇴근 후에는 마냥 집에서만 계셨다. 아버지를 마주한 약 30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아버지가 제 손으로 술 캔을 따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딱 일 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법주를 한 모금 음복하시곤 금방 얼굴이 새빨개져 잠에 빠져 드시곤 했다.

아버지 본인이 별로 술을 즐기지 않으니 그의 배우자 역시도 그러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와 반대로 우리 어머니는 가끔 술자리를 즐기셨는데, 어머니가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며 외출할 때면 아버지는 늘 못마땅한 행색을 하셨다. 그래도 음주를 즐기는 처자식을 위해 냉장고 한편엔 늘 맥주 캔을 한가득 쟁여두곤 했다. 본인은 꼭 입에 대지 않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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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다지 술을 즐기지는 않는다. 남들이 청량하다고 이야기하는 맥주의 그 감촉이 내게는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술이 가지고 있는 향과 풍미도 사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물론 술자리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화합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좋지만, 몇 잔 마시지도 못하는 나의 술잔과, 왕창 마셔버린 타인의 술잔을 더해 늘 무거운 음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도 너무 싫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남들과 어울리기 위한 술자리는 점점 피하게 되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대안으로 차(茶)를 찾았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맥주 대신 다즐링 차를 찾았고, 캐모마일과 홍차를 대접했다. 차를 마시며 고풍 떠는 척하는 것도 좋았다. 기품 있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고, 그 기분에 심취하는 것이 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을 편식하다 보니 내 속으로부터 피어나는 색다름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찻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비슷한 이야기와 유사한 무게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면서, 사회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반복하는 것은 썩 좋지는 않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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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하는 것이 다양할수록 느끼고 깨치게 되는 것이 많지 않을까. 그래서 늘 비슷하게 느끼는 자극 말고 일상생활 중에서도 색다른 자극을 느껴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일상생활 중에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은 그 기회도 적었고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먹는 음식이라도 좀 더 다양하게 먹어보리라 생각했다. 가령, 편의점에서 새롭게 출시된 간식을 발견한다면 꼭 한 번 먹어보거나, 할랄 음식 혹은 비건 음식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종류의 음식들을 마주한다면 꼭 한 번은 입에 대어 보았다. 세상에는 내 취향에 맞지 않은 음식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중에서 꼭 내가 좋아할 만한 맛과 향을 찾을 때에는 마치 진흙 속에서 진주 목걸이를 캐낸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또 다른 것을 탐색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자연스레 세상 사람들이 어떤 맛을 추구하는 지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고, 이는 가끔 내게 색다른 기분과 감정, 그에 이어지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이왕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김에 평소에 잘 가지 않는 장소에도 가끔 발길을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에는 물담배를 좋아한다는 한 친구의 추천을 받아 물담배도 한 번 피워보게 되었다. 학창 시절 ‘대항해시대’라는 문화를 접하며 책 속에서 보았던 ‘물담배’의 존재를 직접 마주하고 이를 직접 시연해 보았을 때는, 단순 체험의 범위를 넘어 물담배는 어떤 맛일까 골똘히 상상하던 학생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새로운 경험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일깨워 주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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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가끔 술집에 들어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한 번씩 마셔보곤 한다. 그래도 몇 번 술을 마시다 보니 꼭 내가 좋아하는, 내 입맛에 맞는 술을 몇 개 발견했다. 가끔씩은 너무 맨 정신이 아니라 약간 취기가 돈 채로 생각하고, 또 글을 쓰면 내 속 마음 깊은 곳에서 가감 없이 내 느낌과 생각이 우러나올 때가 있다. 그렇게 사고하고, 생각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도 꽤 좋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더라도, 술집에 가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다채롭게 받아들이고 싶은 내 작은 몸부림이다. 앞으로도 가끔 사람들과 술에 취해 감성적인 대화를 잘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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