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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번개 맞고 살아난 사나이, 바로 접니다.

- 믿기시나요? 저는 무려 번개를 세 번이나 맞아 보았답니다.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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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번개를 세 번이나 맞아 보았다. 그래도 멀쩡히 살아 있다. 물론 내 머리 위에 바로 번개를 맞은 것이 아니라, 내가 들어가 있는 건물에 번개를 맞긴 했었다. 그래도 약 2년간의 짧은 스리랑카 생활 중 3번이나 번개를 맞은 것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허풍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스리랑카에 살면 꼭 한 번 즈음 번개를 맞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번개를 맞는 것이 아주 놀랄만한 일이지만, 사실 스리랑카에서는 꽤 흔한 일 중 하나이다. 정말 매일 번개가 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매일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 꽂힌다.


스리랑카에는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우기가 되면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일광욕을 하더라도 하늘은 금세 어두컴컴해지더니 순식간에 비구름을 몰고 와 된소나기를 내리며 하늘을 번쩍인다. ‘하늘이 노하면 이렇겠구나.’라는 생각을 매일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스리랑카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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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내 생활을 도와주는 코디네이터가 비가 많이 올 때는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비가 올 때 전화기를 쓰면 전파가 하늘로 올라가 전화기에 번개를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아주 허무맹랑한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번개를 볼 일도 거의 없을뿐더러, 휴대전화를 쓴다고 번개를 맞는다는 상상 자체가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밖에 천둥이 치든 말든 아무 의식 없이 컴퓨터를 만지거나 전화기를 만지거나 했었으니까.

하지만 2012년께 실제로 KOICA 봉사 단원 몇 명이 산 중턱에서 번개를 촬영하다가 직접 낙뢰를 맞아 사망 사고가 있었다는 사고 사례를 접하고 정말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살아가며 ‘번개를 맞는다.’라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부터 무서움이 밀려오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정말 그럴까?’하는 의문이 늘 자리 잡고 있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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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첫 번째 번개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맞게 되었다.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에서 문화 및 언어 교육을 수료하고 현지인 집에서 약 일주일간 현장 적응 활동을 끝마친 뒤 앞으로 내가 살 집으로 살림살이를 옮긴 날이었다. 내가 생활한 집의 집주인은 한국에서 꽤 오래 일했었던 외국인 근로자였다. 약 5년간 한국에서 돈을 벌면서 무려 1억 원의 돈을 모아 스리랑카에 귀국했고, 본인 고향에 2층이나 되는 대저택을 지어놓고서 살고 있었다. 남는 방은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객을 맞이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었다. 내 숙소 근처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코끼리 고아원을 관광하거나, 버려진 코끼리에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지만 가끔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오곤 했다. 우리는 그 게스트하우스를 무려 2년이나 임차하게 될 초장기 입주자였다. 한국에서 일을 했다는 집주인은 우리를 정말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 집에 입주한 날 저녁, 집주인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 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대개 스리랑카의 가정집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쓰는 선풍기를 쓰는 것보다, 실링 팬(ceiling fan)이라며 선풍기를 천장에 달아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집안 곳곳에 실링 팬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가 같이 식사하고 있는 거실에는 실링팬을 설치할 수 있는 구멍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실링 팬 구멍 사이로 샛노란 전기가 팍 튀더니 온 집안에서 전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광경에 정말 깜짝 놀랐다. 우리가 입주한 날 바로 건물에 번개를 맞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건물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전류가 전부 지반으로 흘러 들어가 감전의 위험은 없었지만, 그제야 스리랑카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입주 첫날부터 정말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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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번개는 머지않아 또 맞게 되었다. 두 번째 번개는 사무실에서 맞았다. 아무래도 스리랑카는 행정 속도가 엄청 느리다 보니 사무실 내 WIFI 설치에도 만 1달이 걸렸다. 현지에서 내가 했던 일은 전자 보고서를 만들어 스리랑카 사무소장 및 본부 사업부에 전달해야 할 일이 많았다. 사무실 통신 신호가 약하고, 전기가 들어오는 날도 적어 일은 정말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상책이었다.

어느 날 오전부터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해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마무리를 했던 날이 있었다.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는 부가 내용 추가 및 오탈자 점검만 하여 전자 메일로 송신을 하면 되었는데, 때마침 하늘에선 비가 억수같이 내리며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그걸 본 현지 직원들은 빨리 업무를 마치고 내일 마저 하라고 우리 실무자들을 보채었는데, 나는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면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었고 퇴근을 보채는 직원들의 모습이 자그마한 투정으로 들려서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한 뒤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당연히 별생각 없이 사무실 WIFI 기계를 켜놓고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선 얼마 지나지 않아, 순간 사무실 천장이 샛노랗게 물들더니 천둥소리가 건물 전체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쓰던 WIFI 기계에 번개를 맞은 것이다. 번개를 맞은 충격으로, 건물 전체에 과전류가 흘러 전원이 연결된 모든 전자기기들이 한꺼번에 고장 나 버렸다. 그 모습에 나는 겁에 질린 채 한참을 떨다가 겨우 집으로 귀가했다. 그때부터 하늘의 힘을 절대 우습게 보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알고 보니 이런 과전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한국전력공사 격에 속하는 CEB(Ceylon Electricity Board)라는 전력 기관에서 번개가 많이 치는 날 자체적으로 전력 공급을 끊기도 했다. 우기가 되면 정말 매일같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왔는데, 비가 오는 시간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하고 있던 모든 행동을 잠시 멈추고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촛불 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또 하릴없이 벽에 멀리 떨어져 잠을 자곤 했다. 비가 올 때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에 갇혀 그 외로움과 고독함을 오독오독 씹어 먹는 일이 많았다. 비 내리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던 그날들은 유독 더 외롭게만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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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번개는 스리랑카 생활에 나름 익숙해졌을 때 맞게 되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 직원의 집은 유독 번개를 자주 맞는 집으로 유명했다. 그 집은 지역의 응급실과 가까지 있었기 때문에 유사시에도 CEB에서 전기를 끊지 못했다. 그곳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었는데 고도가 높기 때문일까, 언제나 전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일까, 유독 그 집이 있는 동네는 번개를 맞았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곤 했었다.

한 날은 그 집에 살고 있는 동료 선생님께서 본인이 직접 만든 수육을 대접하고 싶다며 나를 불렀다. 한창 식사를 하는 중에 또 비가 내렸고,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WIFI, 휴대전화 등 모든 전자기기를 꺼버렸다. 하지만 곧 선생님의 침대가 있는 안방 쪽이 순간 반짝이더니 그 방의 모든 전기 전원이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황당했다. 아무런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번개를 맞다니. 심지어 그 선생님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집에서만 벌써 번개를 세 번이나 맞았다고 하셨다. 역시 전자기기는 과전류가 흘러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선생님께서는 무척이나 속상해하셨다.


이후 선생님께서는 주인댁에 피뢰침 설치를 강하게 주장하셨다. 그리고 어느 날은 청소를 하다가 TV장을 들춰 보게 되었는데 TV장 위에 커다란 철판이 깔려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기함을 했다고 하셨다. 피뢰침 설치와 더불어 커다란 철판까지 떼버리고 나니 더 이상 집에 번개 맞을 일은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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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어쩌면 조금이라도 감전되지 않고 지금까지 용케 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자체만로도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스리랑카 현지에서 번개를 맞았던 그 순간들을 지금 되새겨본대도 아직 오금이 저릿하다.


그래, 나는 번개를 무려 세 번이나 맞고도 살아남았는데, 앞으로 무슨 걱정과 두려움이 있으랴. 하늘이 점지한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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