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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매일 외모를 꾸미는 그대들의 정성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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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다지 미용에 관심이 없었다. 외모를 꾸미는 방법을 몰랐고, 매일 꾸미기 귀찮았으며, 나 자신을 치장한다는 것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외면을 꾸미는 것에 왠지 모를 마초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용’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는 마치 하늘 위에 멀리 떠있는 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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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꾸며본 적도 없었고, 내 주변에 외모를 꾸미는 남자도 없었고 그렇기에 꾸미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머리와 얼굴에 무언가를 찍어서 바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사실 대학생이 될 때까지는 단 한 번도 머리를 길게 길러본 적이 없었다. 유년 시절 나는 매달 꼭 한 번씩 아버지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는데 아버지는 늘 내 머리를 짧게 자르게 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늘 ‘스포츠머리’만을 고집하셨는데, 나는 약 30년간 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스포츠머리’ 이외의 머리 모양을 본 적이 없을 만큼 항상 그의 머리는 짧았다. 정말 그의 시그니처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그는 언제나 짧은 머리 모양을 유지했다. 그의 머리가 늘 스포츠머리였기에 그의 아들인 나 역시도 늘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응당 ‘스포츠머리’만을 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늘 그래왔고, 그렇게만 잘랐으니까.

나는 아버지와 머리 모양이 늘 똑같았기 때문에 그와 함께 거리를 거닐 때면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이 아주 똑같이 생겼다며 웃으며 지나가곤 했다.


그렇게 나는 반 강제적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어야 했다. 집안의 분위기도 그러했고, 내가 진학했던 중, 고등학교 역시도 남학생들에겐 언제나 두발을 단정하게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는 날까지 귀 밑에 닿을 만큼 머리를 길러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머리를 길러서 귀를 덮어보는 것이 나의 소원일 정도였다. 하지만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성인이 될 때까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길다 싶으면 어느샌가 학생부장 선생님이 이발기를 가져와 머리를 밀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외모를 가꾼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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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복을 벗어던지자마자 머리에 칼날 하나 대지 않고 머리카락을 길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입대를 하게 되면서 애써 길렀던 머리카락을 또다시 조국에 바쳐야 했다.


그렇게, 내 몸에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길러보기 위해 무려 23년의 세월을 인내해야 했다. 전역 이후 대학에 복학했을 때는 기필코 이제는 머리카락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으리 결심하며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내 머리 모양에 대해 제지하는 이 하나 없으니 정말 칼날 하나 대지 않고 머리를 길렀다. 내 머리는 이내 멀리서 보면 털모자를 뒤집어쓴 것처럼 보일 만큼 길고 복슬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들이 내 머리를 보고 단정하게 잘라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지만, 어떻게 길러낸 머리를 잃어버리기가 그렇게나 싫었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하던 내 머리는 계속 길어져만 갔다.

꾸미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머리를 한 번도 길러보지 못한 나의 억하심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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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타고난 반골기질이 강하기 때문에 남들이 내 머리를 보고 뭐라고 하던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외모를 단정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혹시나 내가 함께하길 원하는 단체의 면접에서 떨어지면, 혹시 지저분한 내 머리 때문에 바랐던 단체에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의 눈에 들지 못했을 때에는 괜히 나의 부스스한 머리 때문에 그녀에게 선택받기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렇게나 아끼던 머리카락을 잘라내었다. 내가 들어가고 싶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이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처음으로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또 한 올 한 올 만져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훤칠해진 느낌이 났고, 어쩌면 새로운 인생을 다시 배워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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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머지 않아 나는 얼굴에 화장품도 찍어 바르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화장품을 발라본 날은 바로 우리 누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예식장에서 혼주 화장을 하면서, 나도 같이 화장을 받게 되었는데, 화장품을 잠시 발랐을 뿐인데도 내 피부결은 훨씬 깔끔해지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화장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고, 어디 잘 보이고 싶은 장소나 날이 있으면 또 혼자서 얼굴에 제품을 발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멋져 보이고 싶은 날에는 꼭 티를 냈다. 머리를 올리고, 얼굴에 분을 발랐다. 열심히 꾸미고 나면 그 밤에 뒤처리가 귀찮은 날이 많지만, 잘 꾸며진 상태로 누군가를 만나면 없던 자신감마저도 생기는 것 같아 참 좋았다.


외모를 꾸민다는 것이 섬세하게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보니 매일 하는 것도 엄청 귀찮은 일이고, 또 하루가 끝날 때 공들인 것을 모두 벗겨내어야 하는 것이 늘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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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주변에 여성들이 가득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매일 가꾸어진 모습의 동료들을 만난다. 매일같이 꾸미고 다니는 동료들을 스칠 때마다 정말 마음 깊은 존경심이 올라온다. 일주일에 5일을 사무실에 나오면서 어떻게 그들은 늘 아름답게 가꾸고 나오는 것일까. 달콤한 아침잠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선택하는 그 정성이 얼마나 갸륵한 것인지를 알기에, 꾸며진 사람 앞에 설 때면 늘 마음속으로 대단하다고 느낀다.


본인을 꾸민다는 것, 그 안에 들어 있는 노력과 정성을 직접 꾸미는 사람만이 잘 것이다. 세상을 좀 더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과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가지고자 하는 부단한 나의 노력을 조심스레 피부 위에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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