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조차도 몰랐었던, 나의 무의식적 행동들에 관하여
-
나는 일상생활에 루틴이 그렇게 단단하게 굳어진 사람은 아니다.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도 가끔 재미있는 드라마를 볼 때나 마음에 드는 게임을 할 때면 새벽 3~4시까지 잠을 안 자고 그에 집중하고 있는 날도 많다.
어제는 밤 10시에 자고, 오늘은 새벽 4시에 잔대도 아직까지는 몸이 잘 버텨낸다. 밥을 먹는 시간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그냥 먹고 싶은 시간에 먹는다. 그렇기에 나는 내 생활에 딱히 규칙이 없는 줄로 알았다. 생활 방식은 유연하고 굳어진 행동 양식이 없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간혹 특정한 상황에 나도 알지 못했던 무의식의 행동들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다.
-
치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책상 위에 쓰레기가 있으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내 눈에 보이는 저 쓰레기를 빨리 쓰레기 통 안으로 버려버리고 싶다. 그래서 간식을 먹고 난 후의 봉지나 무언가를 닦아버린 휴지 등은 가능한 재빨리 휴지통으로 치워버린다.
어느 날 치킨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방에 있는 한 손님이 식탁 위에 휴지를 이리저리 뽑아가며 식사를 하고 있으셨다. 손님께서 잠시 흡연으로 자리를 비우는 틈을 타 나는 어지럽혀진 식탁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후 손님께서 정리된 식탁을 보시더니 날 부르시곤 왜 자신이 먹고 있는 식탁을 치우냐면서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손님은 흡연하고 자리에 앉은 그 짧은 사이에 휴지 몇 장을 더 책상 위에 어지러이 펼쳐 놓으셨는데, 입으로는 손님에게 기분이 나빴으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온 정신은 책상 위 휴지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손님에게 사과 말씀을 드리고 방을 나가는 찰나 나도 모르게 책상 위 휴지 몇 개를 손에 쥐고서 나와버렸다. 그리고 참 운이 좋지 않게도 그 모습을 다시 손님이 보았고, 나는 잘 알지도 모르는 이에게 한참이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전까지는 내게 이런 습관이 있는지 몰랐다. 나도 모르는 나를 처음으로 발견한 순간이었다.
-
그리고 스리랑카에 있을 때 알게 된 습관이다.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살생(殺生)을 하지 않는다. 스리랑카에는 뎅기 모기가 있어 잘못 물리게 되면 온몸에 발진과 열이 올라오는 풍토병이 있는데, 오죽하면 그 모기마저도 죽이지 않겠다며 집에 들어온 뎅기 모기를 조심히 손에 모시고선 창문 밖으로 풀어줄 정도이다.
내가 살았던 곳은 풀숲이 많았기 때문에 온갖 벌레가 많았다. 나는 살생에 대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므로 내가 생활했던 방에는 온갖 살충제가 가득했다. 그리고 눈에 날벌레가 보일 때마다 거리낌 없이 그 벌레들을 잡아댔다. 휴지로 누르고, 살충제를 뿌리고, 전기 파리채로 지지고, 방제 스티커를 붙였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불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 비살생(非殺生)이라는 가치란 아무렴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하도 벌레를 많이 잡다 보니 어느 새부터 살생이 아예 몸에 배여 버렸다.
어느 날 주민들과 같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에 넣은 설탕 냄새를 맡은 날벌레들이 어느새 한 마리, 두 마리 앵앵거리며 날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의식을 하지 못한 채 날아오는 벌레들을 순식간에 손으로 탁탁 때려잡고 말았다. 눈 깜짝할 순식간에 벌레 세 마리를 잡고, 네 마리에 손이 나가는 중에 누군가가 “STOP!”하고 외쳤다. 나도 그 순간 정신을 차렸다. 평생 살생을 하지 않고 살아온 현지인들이 모두 놀란 토끼 눈을 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속에서 민망함이 엄청나게 올라와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벌레를 잡았던 그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시선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마에서 땀이 삐질 나오는 듯하다.
-
그리고 스킨 스쿠버를 배울 때도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내 습관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특히 샤워를 할 때 침을 많이 뱉는다. 보통을 샤워를 하면서 같이 양치를 하기 때문에 샤워를 할 때 입에 들어오는 물은 모두 양칫물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샤워를 하다가 입에 조금이라도 물이 들어가면 곧잘 뱉어버린다. 그런데 이런 습관이 스킨 스쿠버를 배울 때 예상치도 못한 복병이 될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처음 스킨 스쿠버를 체험한 날, 호흡기를 입에 물자마자 입 안에 엄청난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느낌은 마치 커다란 칫솔을 깨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호흡기를 입에 넣자마자 침을 뱉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서 호흡기를 물었다가 뱉는 것을 수십 번 반복했다. 습관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한 것이,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가지 않자 내가 평소에 침을 어떻게 삼켰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하다 못해 강사 선생님께 “호흡기를 입에 물고서 침을 어떻게 삼키냐”하고 물었는데, 강사는 정말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침은 그냥 삼키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며 나에게 반문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그냥 침은 꿀꺽 삼키면 되는 것인데, 성인이 되어 침을 삼키는 방법을 물어보다니, 참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본격적인 스킨 스쿠버 강습이 들어가면서 위험 상황 발생 시 대처 방법, 수신호, 수영법 등 다양한 것을 배웠는데 사실상 나에게 제일 중요한 관심사는 오직 ‘침 삼키기’ 뿐이었다. 모두에게 당연한 침 삼키기가 유독 그날 나에게는 힘든 숙제처럼 다가왔다. 이내 본격적으로 바닷속 세상에 들어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물고기들과 같이 유영할 수 있는 실습 시간이 다가왔다. 에메랄드처럼 아름다운 인도양의 바다에 들어가 투명한 바다 끝은 보는 것은 정말 천국에 온 것처럼 황홀했지만, 동시에 내 모든 신경은 온통 입 안의 침 삼키기에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입에 고이는 침을 억지로 꼴깍꼴깍 삼켜가며 환상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던 그날의 기억이 잊히지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습관이 무섭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 순간이었다.
-
그리고 마지막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긴 습관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 나는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고,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을 챙길 필요성을 느껴서 매일 아침 영양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아침 샤워를 마치고, 가루로 된 영양제를 하나 입 안으로 털어 넣는 것을 습관처럼 들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 습관은 나에게 꽤나 좋았다. 하루를 상쾌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내 건강에 좋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강 검진을 받은 날, 병원이 당부한 대로 전 날부터 그렇게 금식에 물 한 모금을 마시지 않아 놓고선 아침 샤워를 마치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입에 영양제를 털어 넣어버리고 말았다. 일반 알약이면 뱉어 내면 되겠지만, 내가 한창 먹던 영양제는 가루 형태이다 보니 입안에 털어 넣자마자 모두 녹아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양제를 입 안에 넣는 순간 ‘큰일 났다’라는 생각을 했으나, 몸이 익혀버린 습관에 이렇게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다행히도 건강 검진 결과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으나, 과연 이 결과물이 그날의 영양제 때문인지 아닌지는 나 조차도 알 수 없었다.
-
아무런 행동 양식을 정해놓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나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생활 습관들이 속속들이 있었다. 나 조차도 모르는 내 습관을 발견할 때면 늘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굳어진 이 습관들은 어느 순간에 정말 무섭게 발현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게 무의식의 행동들이 결국 내 생각을 좌우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사소하더라도 꼭 긍정적인 작은 습관을 몸에 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은, 작은 것들이 모여 커진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