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같은 것을 보면서 전혀 다른 것을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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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모두 보는 시선이 다를 것이다. 그래도 삶을 살다 보면, ‘아니, 너와 내가 이렇게나 달라?’라고 느껴지는 일이 왕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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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첫 자취방을 구했던 날이었다. 당연히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기에 내가 살 집을 구하는데도 아버지의 등만 믿고 중개사의 뒷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래도 오랫동안 살 집이었기에 나름은 신중을 기하려고 노력했다. 인터넷에서 모르는 이들이 알려준 정보로 채광이 잘 들어오는 집이 좋다, 수압이 강한 집을 고르라는 등 온갖 조언을 늘여 놓았지만, 막상 내가 살고자 하는 집을 마주했을 때는 대체 채광이 얼마나 들어와야 적당한 것인지 혹은 어느 정도 수압이 강해야 살만 한지 등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아버지가 ‘이 정도면 좋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아무것도 몰랐었기 때문에 무엇이 양품(良品)인지에 대한 기준이 전혀 없었다. 기준이 없으니 선택이 더욱 힘들었다. 고생 끝에 나의 첫 보금자리를 구했지만 막상 내가 살 집이 나에게 꼭 맞는 집인지 나 조차도 확실할 수 없었다.
이러한 나의 고충을 나의 대학 동기들은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내 방을 구할 때 겪은 나의 고충을 친구들에게 들여놓고, 나는 무작정 그들의 공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채광이 어땠니, 수압이 어땠니 한창 떠들던 와중에 최근에 한 여자 아이가 본인도 최근 집을 구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아이가 자취방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아닌 안전이었다며 운을 뗐다. 그녀는 집을 찾을 때 집 앞에 가로등이 밝은지, 건물에 보안 장비가 잘 되어 있는지 등을 자세히 보았다며 내게 일러 주었다. 순간 엄청나게 놀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속에서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 완전히 의표가 찔린 듯 몸이 저릿했다. 같은 것을 찾으면서도, 우리는 보았던 것이 이렇게나 달랐다. 나는 집을 구할 때 집 앞에 가로등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나와 아주 가까운 이는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 나의 자취방 앞에 가로등이 있는지 비로소 보게 되었는데, 우리 집 앞 골목에는 작은 불빛 하나만이 나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생각하는 틀부터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순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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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군가와 길을 걸으며 같은 것을 보며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길을 걸을 때 눈에 보이는 간판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어로 된 간판이면 ‘왜 가게의 이름을 저렇게 지었을까?’ 생각하고, 외국어로 된 간판이면 꼭 한 번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 보거나 그 의미를 해석해보곤 한다. 그래서 동네 골목길을 걸을 때도 눈에 보이는 모든 간판을 읽느라 심심한 순간이 없다. 내가 잘 아는 공간에서 생경한 의미의 외국어 간판을 발견할 때면 마치 신비한 장소에 찾아온 듯 새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기어코 간판이 없는 공간에 다다를 때 나는 내가 보는 풍경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다.
한 번은 가족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한적한 시골에 하루를 머무른 적이 있다. 우리는 아주 여유롭게 두 발로 천천히 동네를 쭉 둘러보았다. 서울로 상경한 이후 늘 빌딩 숲에 둘러 싸여 푸르른 초록을 마주할 일이 확실히 적어졌다. 그래서 제주에 갔을 때 자연경관을 볼 때마다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넋을 잃고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와 동네를 돌아보던 중에 한 가게에서 LP 판을 가득 쌓아놓고 판매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당연히 그 가게의 간판부터 시작해 그 안에 가득 쌓인 LP들에 눈길이 갔는데 , 우리 어머니는 그 가게 앞에 펴 있는 꽃을 보면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LP판을 바라보던 나도 어느샌가 어머니를 따라 그 가게 앞의 영산홍을 구경했다. LP 가게 앞에서 꽃구경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나의 핏줄마저도, 분명 같은 곳을 보고도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의 핏줄과도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참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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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그랬다. 같은 곳에 있으면서 우리는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한 번은 친구와 장미 축제에 간 적이 있다. 정말 수많은 종류의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장미를 보러 온 사람들은 행사장 구석에 마련된 자동차 전시장에 눈독을 들이거나, 아름다운 장미를 뒤로 하고 거리의 각설이가 보여주는 품바 공연에 심취해 있었다. 장미 축제에서 장미가 아닌 다른 것을 감상하는 군중을 보며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었겠지만, 끝에는 전혀 다른 기억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제 막 2살이 된 조카 동생과 여행을 떠났을 때 당연히 내 조카 동생은 자기 눈높이에 맞는 것들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그것들은 대개 의자의 밑 부분이나 땅에 떨어진 가방의 끈처럼, 이미 훌쩍 커버린 어른의 시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그는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나와 조카는 분명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겠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것들만 보았고 전혀 다른 기억으로 그날의 여행을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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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보았고, 완전히 상반되는 생각을 하며 느꼈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또 그것들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세상의 수많은 의문문들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도 같은 것을 보면서도 아주 다른 것을 생각한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특히 같이 즐겼던 데이트 코스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나의 옛 이성 친구의 말이나, 나에게는 잊어버릴 수 없이 행복했던 기억을 누구에게는 정말로 불편했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된 때에는 내심 무척이나 서운했던 적이 있다. 그래도 나와 당신은 다를 수 있음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지. 나 역시도 그들과는 다른 무엇을 보았고, 또 느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