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 세상에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대도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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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대도

나는 네게 단 두 가지의 결정만을 들이밀었다.

내 곁에 남던지,

아니면 영영 떠나버리던지


당연히 너는 내게 당황스런 표정 지었고

이리저리 궁상맞은 변명들을 둘러댔지만

그 순간 나의 결심만은 투우사의 칼날부리처럼

깊고, 예리하고, 단단했다.


말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듯 단호할 수 없고

오라기를 늘어트리듯 유해질 수 없는

곧은 심지 속 불 꺼진 영혼은

어둠과 빛의 스위치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자, 어서 결단을 내려주렴.

단두대 앞에서 처량히 순서를 기다리는

그 시대의 귀족이 된 것처럼

정의의 순간을 숨 막히게 기다렸다.


칼집을 쥐고 있는 존재가

당신이라는 것이 허망하지만

이내 여남은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서

조용한 그의 결단을 기다린다.


중도는 없었다.

빛나는 단검을 단칼에 치켜들었고

세로가 아닌 가로로 베어버렸다.

일순간 봄바람이 멈추었고, 잿빛 내음만 가득하였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반쯤 잘려나간 영혼이지만

어느새인가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채

다시 대문을 두드리겠다며 다가왔다.


운명 앞에서

선택이란 존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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