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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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유명 배우의 인터뷰를 보았다. 본인은 오늘이 후회되지 않게 하루를 전력으로 열심히 살아간다고 말했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의 말에는 충분히 힘이 있었다. 이미 그는 화목한 가정을 이룬 것으로 대중에게 유명하고,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굵직한 작품에서 배역을 잘 소화해 냈으며, 사회적으로 높은 명망을 얻었기에 그가 하는 말들을 청중이 모두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감명을 받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인터뷰를 보던 나는 돌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나는 그런 표정이 나왔던 것일까, TV를 끄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가치이다. 소포클레스가 말한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저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나의 삶 전체를 정의하기 때문에 오늘을 잘 사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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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물론 하루를 가득 채우면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던 날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술 약속이 가득했더라도 달력을 펼쳤을 때 무엇이든 일정이 가득 차 있는 것에 대한 뿌듯함,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나 나를 많이 찾아주고 또 왠지 나도 사회의 한 역할을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이 그렇게나 좋았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사회에 쓰임이 되기 위해 매사 최선을 다했던 적도 있었다.
꼭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보이는 것 같았다. 당시 나는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는데, 우연히 ‘퍼스널 브랜딩’을 하시는 분을 알게 되어 그분으로부터 학생 신분으로 나의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꽤 많이 배웠다. 그분의 말로는 먼저 책을 읽은 후 10개의 독후감을, 사람들을 만나며 10개의 인터뷰를, 그리고 내 생활과 생각을 담은 칼럼 10개를 써서 먼저 블로그에 올려볼 것을 권해 주셨다. 그 목표를 세우면서 참 부지런히 밖을 돌아다녔다. 일단 틈이 나면 책을 읽었고, 누군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친분을 쌓는 것에 공을 들였다. 그리고 글의 영감을 얻기 위해 노동이든, 여행이든, 연애든 가리지 않고 각종 경험을 쌓아가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글을 하나하나 정리하여 개인 공간에 게시했고, 20살의 애송이가 쓴 아무 내용도 없는 글을 누군가가 읽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것도 너무나도 좋았다. 별다른 성과를 냈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는 것은 참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경험이 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 당시에 매사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를 가졌던 것 같다. 어쩌면, ‘왜 내 주변 사람들은 허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지’라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선민의식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여 하루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이들을 아니꼬운 눈으로 보았고, 나는 그들과 다르다며 어디서든 무언가를 꼭 얻고 싶어 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아주 가볍고 편하게 만나는 자리일지라도 나는 늘 무거운 주제만 이야기했고, 그런 나의 모습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도 분명 있었다. 하루를 꽉 채워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생각과 행동에 힘이 들어갔고, 인간관계에까지 힘을 주니 당연히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몰랐었다.
그리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열정적으로 구애해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 상대의 속도에 맞추는 것에 관심이 없고 그저 오늘 끓어오르는 내 마음에 전력을 다해 표현하면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나가는 하루가 헛되지 않게 열렬히 누군가를 사모하고 상상했다. 그런 마음이 나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힘이 들어가 경직된 내 모습에 상대방 역시도 마음이 조금 열리는 듯싶다가도 지레 닫혀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너무나 열심이었기 때문에 잘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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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진지하게 임하다 보니 오히려 손 끝 사이로 흘려버린 것들도 많았다. 특히, 각종 모임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새로 사귀는 사람들과의 친교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언뜻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는 만남에서까지 나의 진짜 모습을 보이고 또 나의 진심이 닿기를 바랐던 날도 있었다.
가령 대화를 나누다가 그다지 결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거리를 두거나 상황을 피해서 편안함을 찾으면 되었지만, 이왕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김에 상대의 많은 것을 알아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별로 마음에도, 안중에도 없으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에게 꽤 많은 품을 들였다.
특히 이성을 만날 때에 이러한 성향이 더욱 도드라졌다. 지인이 한 번 가볍게 만나보라며 소개팅을 시켜줄 때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갔다. 막상 만나서는 오롯이 나만의 몫일 테지만, 그렇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다. 몇 번의 소개팅을 거치면서 꼭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주선자를 생각했고, 이왕 시간을 내서 만남을 가졌으니 그 상황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일어나도 괜찮았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내면서 차갑게 대하는 듯한 느낌은 미안해서 괜히 마음에도 없는 상대와 찻집에 가거나 산책을 하는 등 같이 시간을 보냈다. 우리 사이의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지 뻔히 잘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앞으로 더 이상 마주하지 않을 사람에게 헛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금전을 마구 써댔다. 이 역시 매 기회에 최선을 다해 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진지하게 임했음에도 뒤돌아보니 별로 남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나에게서 새어나가는 것이 훨씬 더 많게 느껴졌다. 이러한 감정이 들었을 때 마음에 힘을 더욱 뺄 필요성이 느껴졌다. ‘꼭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람을 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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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조건적인 열정과 노력이 절대 선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오히려 힘을 빼고 임했을 때 결과가 더 좋았던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눈에 힘이 들어간 그 유명한 명사가 매사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힘을 주어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는 분명히 정해져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쳤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눈빛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는 그 행동은 정말 아름답다. 하지만 그 열정을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순간 그 예쁜 빛이 순식간에 바래진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나 역시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내가 느낀 것들이 전부인 양, 너 역시도 그래야 한다며 열정을 강제하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절대 강요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꼭 그러고 싶다면, 행동으로 영감을 주고 싶다.
매일을 삶의 마지막처럼 살아가는 이는 물론 멋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마지막인 것처럼 대하는 것은 또 다가올 내일에 너무나 큰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오늘의 나는 적당히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