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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의 마지막 날, 지난 한 달의 명세표를 볼 때마다 정말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지난 한 달간 내 소비는 어떠했으며, 과연 어디에 집중돼 있었는가.
매일의 지출을 들여다보면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날에는 독서에, 또 어떤 날에는 운동에 마음이 쏠려 있었음을 명세표를 통해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스스로를 ‘합리적인 소비자’라 여겨 왔다. 세간에 익히 알려진 상술에 속지 않고, 지갑을 열 때마다 늘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정작 내가 어떻게 돈을 쓰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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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백화점 마감 시간 무렵 푸드코트를 돌며, 내가 물건을 살 때 무엇을 먼저 보는지 스스로 자각하고 깜짝 놀랐다. 나는 널따란 매장에 가득한 음식들 앞에서 가장 먼저 가격표를 보았다. 물건과 가격표가 나란히 있으면 우선 가격표에 적힌 숫자를 확인한 뒤, 그제야 무엇인지 살핀다. 그 숫자가 내가 생각하는 심리적 저항선 안에 있으면 비로소 관심을 준다. 거기에 ‘마감 할인’ 같은 문구가 붙어 있으면 저항선은 더 낮아진다.
예컨대 한 빵집에서 한 개에 2만 원 하는 빵을 50% 마감 할인해 1만 원에 판다면, 나는 이미 절반 이득을 본 듯한 마음으로 그 빵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살핀다. 실제로 그렇게, 평소 전혀 알지 못했던 독일 전통 빵 ‘슈톨렌’을 즉흥적으로 구매한 적도 있다. 이미 거나하게 식사를 마친 뒤였음에도 말이다. 상품의 본질이 어떻든, 값비싼 무언가를 저렴하게 샀다는 만족감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장바구니에 넣는 나를 발견했다.
유명 연예인이 어떤 제품을 홍보하더라도 쉽게 속지 않는 현명한 소비자라 자부했지만, 실상 나 역시 엉뚱한 소비를 자주 했다.
‘광고’에 속지 않는다며 자부하면서도, 타인과 함께하는 소비에는 쉽게 눈이 간다. 예를 들어 여자친구와 특별한 날을 기념하려 하면, 가장 먼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떤 식당에서 어떤 분위기를 연출할지 고민하며 수많은 광고를 뒤진다. 광고 문구가 보여 주는 현란한 수사를 곧이곧대로 믿고, 손쉽게 비싼 값을 지불해 버린다. ‘어쩌다 한 번’이라는 합리화 속에 생각을 가둔다. 그 ‘한 번’이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사실 내 소비에서 누가 홍보하는지는 결정적 요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연예인이 내 시선을 잡아끈 경우는 왕왕 있었다. 학창 시절 좋아하던 여자 아이돌이 있었는데, 마침 내가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그 가수가 한 교복 회사의 광고 모델이 되었다. 사실 교복 원단은 비슷했겠지만, 하필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홍보하는 브랜드는 원단 질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항간에 파다했다. 나는 좋아하는 가수에게 힘을 보태자며 어머니를 보챘지만, 기어코 어머니는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브랜드가 아닌 타사의 교복을 받아 들고서 실망을 감추지 못했던 어린 날의 내가 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광고 효과의 첫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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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을 필두로 시각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나를 현혹하는 수많은 것들이 찾아왔다. 학교에 갈 때 두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가서 또 한아름 가져오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빼빼로 데이’였다. 평소 그다지 좋아하던 과자는 아니었지만, 11월 11일이면 모두가 학교에서 그 과자를 주고받았기에 자연스레 나도 어울리려 한아름 들고 갔다. 당시에는 동네에 어린 학생도 많았기에 ‘빼빼로 데이’ 전날이면 동네 마트 한구석에 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부모님도 그걸 보시고 곧 ‘빼빼로 데이’냐며 흔쾌히 과자를 한 움큼 사 주셨다. 그리고 다음 날 그것을 친구들과 교환하는 일이 친구 사이 우정의 상징처럼 되었다. 한 해의 인간관계는 ‘빼빼로 데이’ 날 과자를 얼마나 받았는가에 따라 판가름 나곤 했다.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으면 무심한 듯 과자를 건넸고, 그녀가 내게도 빼빼로를 건네면 정말 날아갈 듯 기뻤다. 나에게 빼빼로란 그런 존재였다.
이런 식으로 수없이 다양한 광고에 노출되며 살았고, 그것은 매우 당연한 소비 공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늘 광고하는 상품을 사 보기만 했지, 정작 무언가를 홍보하며 팔아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게 대학 시절 ‘학생 홍보대사’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난생처음 얼굴도 모르는 대중 앞에서 내가 속한 집단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했다. 무언가를 알리려면 그것을 아주 잘 꿰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어떤 학과가 있고 어떤 교수님이 계시는지, 학생 활동은 무엇이 있고 축제는 어떤지 등을 로봇에 정보를 입력하듯 달달 외웠다. 그리고 외부인을 만나면 내가 아는 것을 자랑하듯 뽐냈다. 내 말에 관심을 기울여 주면 그야말로 신이 났고, 무심하면 쉽게 속상해했다. 그때 내가 알리고자 한 대상의 소프트 파워가 지니는 영향력을 난생처음 깊이 체감했다.
한편 그때 이런 고민도 했다. 대학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기에, 내가 너무 쉽게 타인의 미래에 개입하는 것은 아닐까. 과자나 과일 같은 물건이라면 소비하고 나면 그만이겠지만, 대학은 한 사람의 인생에 너무나 중요한 변수가 된다. 나의 홍보로 우리 학교를 선택했다가 그 사람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것이 내 생애 첫 마케팅 경험이었고, 자연스레 싹튼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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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이후 무언가를 알리고 팔아야 할 일은 무수히 쏟아졌다.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 우리의 아이디어를 심사위원들에게 간절히 호소해야 했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내 장점을 적극적으로 뽐내야 했다. 결국 나 자신을 팔기 위해 계속 홍보하고 알려야 했던 것이다. 내가 그 일과 잘 맞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일단 나 자신을 팔고 보았다. 그러는 사이 처음 품었던 마케팅에 대한 의문은 어느새 모두 휘발됐다. 내가 그곳에서 제값어치를 할 수 있을지는 뒷전이었다. 일단 무언가에 ‘팔리는’ 것이 더 중요했고, 정말 많은 기회와 단체 앞에서 나를 사 달라고 호소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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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에서 사내 홍보대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팔기 위해 당당히 지원했다. 여전히 나를 팔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태껏 그랬듯, 작가로서 나의 책과 생각을 사 달라며 계속해서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를 사 달라’고 끊임없이 대중에게 구애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상술도 수사학도 잘 알지 못하면서, 일단 팔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