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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 사회인이 된 지금, 지난날의 가족을 떠올리면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우리 부모님은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이면, 가끔 자식들을 데리고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셨다. 나는 관광도시인 ‘경주’에서 나고 자랐기에 동네에는 돌아볼 곳이 많았고, 평일에는 현지인처럼 살다가 주말만 되면 가족들과 함께 관광객이 된 듯 동네를 누비곤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가족과 함께 걸었던 대릉원, 천마총, 오릉 등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동네 곳곳을 걸었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가끔 회사에서 축구 관람 초대권을 받아 오셨다. 그 표는 대부분 연고지 근처 포항에 있는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 티켓이었다. 한 번도 프로 축구를 본 적은 없었지만, 연고지가 가깝다는 이유로 포항 팀을 응원하러 경기장에 갔고, 포항 선수가 골을 넣을 때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 작은 체구에서 소리를 내지르며 주위의 모든 사람과 기쁨을 나누던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할 정도의 전율과 짜릿함을 느꼈다. 특히 포항 스틸러스의 ‘두두’ 선수가 성남 천마일화 팀을 상대로 연거푸 두 골을 터뜨렸던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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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포츠는 나와 내 세상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가끔 축구 경기를 보러 갔던 경험은 자연스레 프로 축구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초조해하고, 환호하고, 탄식하는 그 분위기가 너무도 좋았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월드컵 같은 굵직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 시립 공원에서 거리 응원을 하곤 했다. 경기를 앞둔 날이면 나와 친구들 모두가 들뜬 표정이었고, 경기 당일이 되면 우리는 빨간 옷을 맞춰 입고 공원으로 몰려갔다. 그곳에서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탄성과 야유를 나누며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학교에서는 축구 이야기뿐이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하나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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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포츠의 힘을 더욱 극적으로 느낀 날도 있었다. 스리랑카에는 ‘크리켓’이라는 종목이 인기인데, 스리랑카에 파견된 첫 주의 주말, 마침 내가 머무르던 수도 콜롬보 지역에서 꽤 큰 크리켓 국제 대회가 열려 직접 관람하기로 했다.
현장에는 크리켓 전용 매표소가 있었고, 경기 3일 전부터 선착순으로 표를 판매했다. 크리켓은 스리랑카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끄는 스포츠지만, 한국에서는 접할 기회가 없어 나에겐 매우 생소한 종목이었다. 경기 진행 방식도 몰랐고, 몇 시간 동안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경기장 앞에는 선수 유니폼을 파는 행상인들이 있었고, 나도 기념 삼아 스리랑카 유니폼을 하나 구매했다. 피부가 하얀 외국인이 스리랑카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돌아다니자 현장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마치 진짜 스리랑카 사람처럼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나는 난생처음 크리켓 경기를 보는 입장이었고, 10분 전에 유니폼을 산 외지인이었을 뿐인데, 그들은 나를 완전히 자신들과 하나로 받아들였다. 다행히도 그날 스리랑카 팀은 대승을 거두었고, 나 역시 낯선 이들과 함께 한참이나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스리랑카에 도착한 지 일주일 된 동양의 한 청년은, 스포츠 하나 덕분에 완전히 그들과 하나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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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야구 시즌이 되면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오늘 삼성 라이온즈 경기 봤니?”로 대화를 시작할 때가 많다. 단순히 경기 결과를 묻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를 잘 보내고 퇴근 후 여가 시간까지 잘 보냈는지를 확인하는 어머니의 애정 표현임을 나는 알고 있다.
지금도 가끔 누군가와 친분을 쌓아야 할 일이 있을 때면 함께 야구장을 찾곤 한다. 어머니, 친구, 직장 선후배와 함께 한바탕 소리를 지르며 응원할 때면,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품에 안겨 ‘두두’ 선수의 골을 보던 그날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앞으로 내가 부모가 된다면, 자녀와 함께 응원하는 스포츠 팀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 가족과 함께 열광하던 그 열정의 기억은,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커다란 자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