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의미가 담긴 모든 것들이 좋습니다.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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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하루를 보내면서도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주 작은 선택을 하는 데에도 조그마한 의미를 담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가령, 1부터 10까지의 숫자들 중 무작위로 두 개를 고르라고 한다면 막 고르는 것보다는 나의 생년의 숫자를 따서 ‘9’와 ‘5’를 고르는 식이다. 그리고 나는 현재 30층에 살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아령을 들 때에도 나에게 의미 있는 숫자인 ‘30’의 개수를 꼭 채우고 있다. 이렇게 나의 행동이나 선택에 의미를 담아내고, 또 타인이 내놓은 의미를 알아보는 것이 일상의 큰 재미이다.


이런 탓에, 나는 길거리를 다니며 낯선 간판들을 읽어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가게의 간판에는 각종 의미들의 함축이면서 표상이기에, 조금이라도 특이한 모양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골똘히 그 의미를 생각하는 때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지하철 역 앞에는 떡볶이, 토스트, 모시떡 등을 파는 가판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중 떡볶이 가게에 가끔 들리는데, 그 가게의 이름은 ‘오둘둘 떡볶이’였다. 내심 가판에 이름이 있는 것도 재미있게 느껴졌지만, 왜 떡볶이 가게에 ‘오둘둘’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결국 가판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가게 사장님께 “왜 가게 이름을 ‘오둘둘’로 지으셨어요?”라고 여쭈어 보았다. 사장님의 남편이 해병대 522기 대원이라 그렇게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카타르시스가 피를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름 덕인지, 유독 그 가게의 떡볶이는 양념 색깔이 해병대의 색감만큼 더욱 강렬하게 보이기도 했다.


외국어 간판은 더욱 눈에 잘 들어온다. 특히, 나는 일본어를 할 수 있기에 동네 거리 곳곳에 걸려 있는 일본어 간판에 모두 시선을 둔다. 눈대중으로 해석이 되지 않으면 길을 가다가도 주저 없이 사전을 꺼내 들고 간판의 뜻을 찾아본다. 그래도 여전히 뜻을 모르겠으면 그 가게에 들어가 넌지시 직원에게 뜻을 물어본 적도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내가 참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은 직원이 ‘아무 뜻도 없다.’라는 식의 맹숭한 대답을 들은 날도 있었지만, 나는 그제야 모든 해답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삶 속에 큰 재미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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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미’가 좋기에, ‘의미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구태여 하는 일도 많다. 입사 면접을 다 마치고 최종 결과를 기다리던 날, 떨리는 마음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러 집 근처의 야구장으로 향했다. 즉흥적인 발걸음이었기에 표 예매는 따로 하지 않았고, 현장에서 자유석 표를 산 뒤 사람이 주변에 관람객이 없는 한적한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울 공을 주웠다. 삼성 라이온즈의 이성규 선수가 친 공이 머리 위 저 멀리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순간 벽에 맞아 튕겨지더니 정확히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파울 공을 주운 순간 그 선수는 내게 엄청나게 큰 의미가 되었다. 사실 그 선수는 이전에 별다른 관심이 가지 않던 선수였지만, 우연히 그가 내게 파울 공을 안겨주며 커다란 의미가 되어주었다. 고작 나는 그가 쳤던 공을 주웠을 뿐인데, 지금까지도 ‘야구’라고 한다면 단연 그 선수부터 우선 떠오른다. 결국 나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그의 파울 공을 주운 다음 날 회사로부터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장식해 준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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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서,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물건이라도 누군가의 의미가 들어간다면 기꺼이 그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사롱’이라고 해서 일상생활 중 남자들도 전통 치마를 입는다. 나는 당시 스리랑카에서 사는 김에 사롱을 하나 살 계획을 세웠다. 현지 문화 교육을 끝마치고 사롱 전문 판매점에 갔는데, 처음 사롱의 원단을 보았을 때 꼭 마음에 드는 원단은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곧장 가게를 나왔겠지만, 그날은 내게 스리랑카어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께서 내게 어울릴만한 원단을 하나 찾아 주셨고 꼭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옷을 구매했다.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신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맞춰주신 사롱을 입고서 현지인들과 함께 맨손으로 카레를 먹었을 때 비로소 현지 문화에 동화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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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살이에는 의미가 담긴 물건이 많다. 내 생일 선물이라며 친구들이 고심하며 골라 준 옷에도, 관광지에서 사 온 물 잔에도, 같은 글귀를 함께 읽자며 건네받은 책에도, 게임기에도, 케이크에도 누군가의 마음과 의미가 가득 담겨 있다. 그 옷을 입을 때마다, 물 잔에 든 음료를 마실 때마다, 마음을 간지럽히는 문장을 읽을 때마다, 입안 가득 초코 가루를 털어 넣을 때마다 수많은 마음이 담긴 의미를 생각한다.

의미를 담는 순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각자의 물건에 애착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 그 뒤에 숨겨진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물건 뒤에, 말 뒤에, 장소 뒤에 담겨 있는 많은 의미들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이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나는 의미가 좋고, 또 좋다. 앞으로도 아주 사소한 의미를 한 아름 담아 당신과 마음을 주고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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