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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존재임에도 마음을 주고 또 사랑할 수 있다는 문장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러한 경험을 계속해 왔다.
디지털 세대의 한 복판에 태어난 나는 인터넷의 덕을 아주 많이 보면서 자랐다. 유아 시절부터 486 컴퓨터를 접했고,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한글을 배웠으며, 학급 친구들과는 ‘세이클럽’ 쪽지로, ‘네이트 온’ 메신저로, ‘싸이클럽’ 방명록으로, ‘페이스북’ 담벼락으로, ’인스타그램’ DM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플랫폼을 바꾸어가며 소통해 왔다. 그리고 온라인 세상에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비록 얼굴을 알지 못하는 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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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창 시절 한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었는데, 우연히 나와 같이 그 가수를 좋아하는 미국인을 알게 되었다. 당시 학교에서 매일 영어를 배우긴 했었지만, 그렇게 열심히 배운 영어를 실용적으로 사용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대상이 같았었던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자연스레 물꼬를 트게 되었고, 인생 처음으로 미국인과 영어로 소통해 보게 되었다. 입에 담아본 적 없는 타국의 언어를 사용하면 완전히 생활환경이 다른 이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제야 기어코 영어를 배우는 의미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의 이야기를 주로 나누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Tuesday였고, 미국 알래스카 주에 살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미국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한 소녀와, 대한민국 경주시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이 서로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잔뜩 나누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해주는 미국의 문화, 알래스카의 추위, 그리고 미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반대로 한국인들은 평소에 무엇을 먹는지부터 내가 어떤 과자들을 좋아하는지 등 나의 취향을 잔뜩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나의 가상 친구가 맛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직접 미국으로 과자를 보내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미국 주소를 물어보았고, 동네 마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몇 개 골랐다. 당시에 과자 값은 만 원 언저리가 나왔는데 그것을 미국까지 보내는데 과자 값의 열 배 정도가 들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내가 사용했던 돈 중 가장 큰 액수의 소비였다. 고맙게도 Tuesday 역시 내게 답신 선물을 보내왔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으로 외국으로부터 선물을 받았고, 그녀가 보내준 초콜릿을 씹으며 바다 건너온 모르는 이의 따뜻한 애정을 잔뜩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도, 목소리도 몰랐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고 그 기억이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 디지털 세계가 펼쳐지면서 미지의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1등 수혜자가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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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시작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와 소통하는 일은 점점 더 늘어났다. 전자 오락 속에서 만난 사람들도 매일 마주치다 보니 어느새인가 게임 속 캐릭터 하나하나에 정이 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매일 대면하는 학교 친구들보다 가상세계에서 친해진 미지의 인물들에게 더욱 친밀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고교에 입학하면서 디지털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하게 되었다. 굉장히 보수적이었던 우리 학교는 휴대전화 사용은 물론,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까지 불허하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인터넷 세상 사람들은 시야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고교 3학년 무렵, 나는 친누나의 길을 따라 교육 대학교 진학을 희망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같은 학교로 진학을 희망하는 또래 친구를 한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입시 정보 공유를 이유로 우리는 자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둘 다 교육 대학교로의 진학은 실패했다. 나는 무역학과로, 그 친구는 사범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래도 그때의 정이 남은 우리는 아주 가끔 서로의 대학 신입생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공유하고 지냈다.
그러다 문득 입대를 얼마 앞두지 않던 시절, 꽤 오랫동안 정을 나누었던 그 친구를 직접 대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급작스럽게 만남을 제안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동의해 주었고, 입대 전의 여행을 빌미로 그녀가 살고 있는 제천시로 향했다. 제천역 앞에서 만난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서로 익숙했었고, 모르는 사람이지만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별 다른 일이 있지는 않았다. 통닭을 한 마리 시켜 먹으며 그간 고마웠다고 인사를 전했다.
그것 역시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마음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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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얼굴을 모르는 이와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인터넷 채팅으로 상대를 만나 결혼까지 하셨다는 나의 고교시절 선생님의 사례를 보고서도 여전히 전혀 불가능한 일로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나의 절친한 친구 역시도 어느 날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 외국인과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하더니 이내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이에게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친구는 화면에 맺힌 존재에게 온갖 사랑의 말을 내뱉었고, 결국 그녀를 만나겠다며 머나먼 땅 러시아로 직접 향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를 대면한 친구는 잔뜩 애정을 머금고서 귀국했다. 결국 몸이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맞대지 않고서도 사랑이라는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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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 사회로 세상이 격동하였고, 지금은 외국게 회사에 재직하며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외국인과 매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도움을 주고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이 행동의 시작에는 어린 날의 따뜻한 나의 마음이 잔뜩 담겨있다.
꼭 얼굴을 마주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의 몸과 마음은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