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제주도(1)

제주도에 가게 된 울보

by 소진

다시 일주일이 시작됐다.


제주도에서 가족들이랑 만들었던 추억이 머릿속에서 일렁인다.

정갈하게 잘 차려진 횟집 스끼다시, 수영장 풀장, 살랑살랑 부는 바람, 맥주잔을 기울이며 풀어낸 속 이야기들.


이번 휴가때 느낀 점 하나를 꼽자면,

나를 고마워하지 않는 곳에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는 점.

이렇게 이야기하면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같지만,

사실은 올해 2월부터 있었던 일과 관련해 제주도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 뿐이다.


올해 2월부터 새로운 과에 배치받았다.

2년차였지만 작년에는 우리 회사의 본질적인 업무가 아닌 대외 대응 업무를 맡았으므로 본질적인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과에 배치받기를 원했다.

그렇게 배치받은 우리 과에는 유명한 과장님이 계셨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분이셨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 아래서 일해보는건 정말 귀중한 경험이니 최대한 하라는 대로 다 하면서 많이 배워보자‘

이 생각부터가 패착이였다.


과장님은 술마시는걸 좋아하셨고

나를 가르치시겠다는 일념으로 어떤 문서도 그냥 안넘어가셨다.

어떤 일이든 정도대로 해나가야 했고

모든 문서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가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고

뭘 해도 부족하다는 걸 생각하며 일을 해야 했고

머릿속을 혼자 정리하기보다는 술을 마셔야 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잃어갔다.

내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버티던 하루 하루가 무너졌고, 내 능력에 대한 불신과 인정욕구에 대한 결핍이 자꾸 커져갔다. 결핍이 커질수록 나는 일이 아닌 술자리와 밥자리에 매달렸고, 내 안의 빛이 사라져갔다.


저번주에는 하루에 네다섯명이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고,

다른 과 과장님께서 안되겠다며 술을 사주시며 몇년전 자살한 간부 이야기를 했다.


그 날 깨달았다.

아,

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구나.


그날 술을 마시고 되돌아온 사무실에서는

새벽 세시까지 일을 했다.

더 이상 주변의 만족을 위해 일하지 말자,

다만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을때까지 일하자.


새로운 업무를 받게 되어 파악해야 할 일은 넘치는데

머리는 지끈거리고 외로움은 컸고 술기운이 올라왔다.

그치만 멈출 수가 없었다.

울다가, 일하다가, 울다가, 컵라면 물을 올렸다.

컵라면 뚜껑을 뜯다가 다시 울었다.

컵라면을 다 먹고 업무를 일단 마무리하고 택시를 잡으니 새벽 세시였다.


다음날 아침,

제주도에 가자며 부모님이 깨우셨다.


문득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이렇게 힘든데 왜 아무도 쉴거냐고 물어봐주지 않는 걸까,

내가 그 전날에도 새벽에 퇴근을 했고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왜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바라는 것이 많을까.


나의 시간,

나의 자유,

나의 휴식,

내가 하는 선택,


왜 나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지.


가기 싫다고 하는 나에게 부모님은 일단 몸을 일으켜 세워보라고, 일단 씻으면 가고싶어질 거라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돼?

내 선택의 자유는 누가 보장해줘?


하지만 동시에,

힘들고 지쳐서 안간다고 하면 나를 뺀 가족들이 제주도에서 얼마나 신경쓰고 슬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니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제주도 여행만을 기다렸던 가족들이 슬퍼할 모습을 생각하니 기분이 슬퍼졌다.


사람의 감정이란 참 오묘하지,

가기 싫어 죽겠고 가자고 하는 가족들이 매정하다가도

이들이 슬퍼할 걸 생각하면 마음이 시렵고.


결국 엉엉 울면서 씻으러 갔다.

오늘도 내 감정과 체력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주로 살아가는구나 하고 억울해하며 얼굴을 있는힘껏 찡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를 내어 울었다.

울면서 샤워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화장실을 떠나지 못했다.


씻고 나와서 말했다.

“안갈거였으면 울지도 않았어. 가기로 해서 운거야. 다 울었으니까 짐 싸고 가자”


이렇게 제주도에 가게 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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