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최근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브런치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외로움이 나의 중심 감정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끝없이 바라고 그게 없어지는 순간 외로워지는 내 모습이
야속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오히려 이 감정들이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됨으로써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세상의 많은 새로운 부분들을 알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점을
지인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해왔고,
그렇게 만난 새로운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들은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은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한국 문화와 한국에서의 나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 쉬운 국가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미국과 서구 문화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미국을 경험하고,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이 모두 들어있는 미국에서는
누구와 연결되는 것도 - 비록 얕은 정도의 레벨이라도 - 쉬웠으며 외로울 틈이 없었다.
미국에서 본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은
어린 시절 꿈꿔왔던 세계 그 자체와의 연결과도 같았다.
미국을 경험하고 나서 미국이 아닌 다양한 세계의 문화를 경험해보고 연결되고 싶음을 경험한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직업으로서 다양한 나라와 한국을 맺어주는 일을 하는,
어쩌면 꿈으로만 꿔왔던 외교라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 하게 된 경험은 내가 생각해오던 것과 달랐고,
이 일을 시작한 후에도 외로움과 그리움은 나를 끝없이 따라다니지만,
외로움과 그리움이 이 직업으로까지 날 데려다준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일을 시작한 후에도
내 뒤를 따라다니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가장 내밀하고 상처받기 쉬운
(영어로는 vulnerable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듯 한데)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그 모습과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외로움과 그리움은,
나의 가장 내밀하고 솔직한 모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못함으로서 생겨나는 감정인데,
이 감정들 덕분에 나는 글을 쓰게 되었고,
나의 솔직한 모습들을 더욱 잘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외롭고 힘들 때면 글을 읽기도 한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와 마음 깊은 속에서 공명할 때면 외로움도, 그리움도 잊혀진다.
거꾸로 보면,
글을 쓰는 것은 나처럼 외로움과 그리움을 지닌 누군가와 공명하기 위한 또 다른 발버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쓴 글이 읽는 사람에게 더 잘 와닿을 수 있도록
문장과 문단, 그리고 형식을 조절해야 한다는 죄책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외로움과 그리움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다주었는지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외로움과 그리움,
평생을 살아도 해결되지 않을 숙제다.
한때는 이 감정들에 휩싸여 소중한 사람들을 잃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해로운 결정들을 내려보기도 했다.
사실 이 두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만 있다면 느끼지 않고 싶다.
그렇지만, 삶의 이 시점에서 이제는 나의 외로움과 나의 그리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다.
나를 끝없이 괴롭히지만,
내가 세상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나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를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 너희들이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갈지,
무섭고 두렵지만,
너희가 있어서 나는 앞으로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고맙다 친구들아.